(5) 대한민국 지역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정복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백제를 침공함으로써 한강 지도 보기   유역을 둘러싼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이 본격화된 것은 광개토왕 다음 왕인 장수왕 때로, 장수왕은 427년(장수왕 15)에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남하정책을 단행하여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였다.

 

475년(개로왕 21) 고구려의 장수왕이 군사 3만명으로 침입하여 왕도 한성을 포위하자, 개로왕 이 성문을 빠져 나와 달아나다가 고구려군에게 살해당하였다. 그리하여 백제의 왕도 한성은 함락되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에게 점령당하였다. 고구려는 이곳에 한산군(漢山郡)을 설치하고 북한성(北漢城)에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여 별도(別都)를 삼아 뒤에 신라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길 때까지 77년간 영토로 삼았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阿且山 一帶 堡壘群) 발굴현장
아차산 4보루 온돌 세부 모습

이처럼 남평양 일대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의 상징으로, 호로고루성(瓠蘆古壘城)이나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堡壘群) 등 당시의 군사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례대로 점령하면서 삼국의 유물과 유적이 고루 분포해 삼국시대의 생활상과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 일대가 지닌 위상을 여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닫기
(TV)이렇게 중국은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고구려 성까지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부로…
남동생 :
누나, 고구려는 우리 역사잖아. 중국이 왜 저러는 거야?
누나 :
음, 그건 말이지… 함께 찾아보자.
누나 :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 3성인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의 역사 지리, 민족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업이래.
남동생 :
무슨 근거로 그러는데?
누나 :
중국은 현재 중국 땅에 있던 모든 나라의 역사를 모두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야.
남동생 :
음… 그럼 옛날 고구려는 어디에 있었는데?
누나 :
지도로 봐볼까?
누나 :
고구려보다 오래된 고조선부터 보자.
남동생 :
와아! 엄청 넓네!
누나 :
고구려는 여기…
남동생 :
전부 한반도 북쪽과 만주 쪽에 있었네?
누나 :
그래. 아까 얘기한 대로 지금은 중국 땅인 곳도 있어.
남동생 :
흠! 이 나라의 땅이었던 곳을 현재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 이거지.
누나 :
그래.
남동생 :
음, 그러면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하려면 어떻게 중국과 싸워야 해?
누나 :
싸우긴. 우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반론을 제시하면 돼.
남동생 :
역사적 사실이라면… 어떤 거?
누나 :
흐음!
남동생 :
어떻게 다른데?
누나 :
고구려 사람들은 성을 쌓을 때 대부분 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긴 쐐기돌을 많이 사용해서… 이런 모습이 되는데,
남동생 :
그렇구나. 고구려성이 훨씬 강하네.
누나 :
그렇지!
누나 :
또,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영락’이라는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내용과 건국신화가 새겨져 있지.
남동생 :
아하!
누나 :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 옛날 고조선부터 이어온 역사를 계승하고 있고, 신라에 멸망한 이후에도 고려, 조선 등이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계승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분명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란 말이지
남동생 :
휴! 증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누나 :
역사는 언제나 밝혀지게 되어 있어.
남동생 :
추리 소설의 범인처럼 말이지?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