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 지역

중국 길림성 집안현지도 보기 지역은 고구려 유리왕대부터 장수왕대까지 425년간 고구려의 수도가 있던 지역이다. 이곳에는 수도성으로 존재했던 국내성(國內城)이 있던 지역이며, 고구려 초기부터 전성기까지 수많은 전란을 겪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즉 고구려는 집안 지역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패권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성 시기는 그 발전이 평탄하지만은 않은 시기였다. 동천왕 때는 위나라의 위협에 시달렸고 고국원왕 시기에는 선왕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대비가 납치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수림왕대 국가체제의 재정비를 거쳐 광개토대왕 시기에 이르러서야 정복국가로서 그 위용을 동북아시아에 떨치게 되었다.

 

 

국내성이 위치한 현 길림성 집안시 지역에는 약 1만 2천여 기의 고구려 무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한국 고대사 연구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의 무덤으로 비정되고 있는 장군총, 고국양왕 혹은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는 태왕릉, 미천왕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는 서대총 등 왕릉급 묘제들이 존재한다.주1)

 

혼강 유역의 졸본(환인)에서 압록강 유역인 국내(집안)로의 천도는 고구려사의 발전 방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구려는 경제·군사적인 측면에서 여건이 좋은 압록강변의 국내로 천도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아울러 대외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하였다. 중국 한나라 군현 세력으로부터 보다 멀어짐으로써 국가의 위기를 최소화시키는 한편 압록강 유역을 장악하여 그 주변에 산재해 있던 여러 세력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가 있었다. 이는 곧 국가체제의 정비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동옥저(東沃沮) 지역을 비롯한 주변의 곡창지대로 진출하기 위한 육로와 수로망을 장악하여 고구려가 태조왕 이후 비약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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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렇게 중국은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고구려 성까지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부로…
남동생 :
누나, 고구려는 우리 역사잖아. 중국이 왜 저러는 거야?
누나 :
음, 그건 말이지… 함께 찾아보자.
누나 :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 3성인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의 역사 지리, 민족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업이래.
남동생 :
무슨 근거로 그러는데?
누나 :
중국은 현재 중국 땅에 있던 모든 나라의 역사를 모두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야.
남동생 :
음… 그럼 옛날 고구려는 어디에 있었는데?
누나 :
지도로 봐볼까?
누나 :
고구려보다 오래된 고조선부터 보자.
남동생 :
와아! 엄청 넓네!
누나 :
고구려는 여기…
남동생 :
전부 한반도 북쪽과 만주 쪽에 있었네?
누나 :
그래. 아까 얘기한 대로 지금은 중국 땅인 곳도 있어.
남동생 :
흠! 이 나라의 땅이었던 곳을 현재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 이거지.
누나 :
그래.
남동생 :
음, 그러면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하려면 어떻게 중국과 싸워야 해?
누나 :
싸우긴. 우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반론을 제시하면 돼.
남동생 :
역사적 사실이라면… 어떤 거?
누나 :
흐음!
남동생 :
어떻게 다른데?
누나 :
고구려 사람들은 성을 쌓을 때 대부분 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긴 쐐기돌을 많이 사용해서… 이런 모습이 되는데,
남동생 :
그렇구나. 고구려성이 훨씬 강하네.
누나 :
그렇지!
누나 :
또,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영락’이라는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내용과 건국신화가 새겨져 있지.
남동생 :
아하!
누나 :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 옛날 고조선부터 이어온 역사를 계승하고 있고, 신라에 멸망한 이후에도 고려, 조선 등이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계승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분명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란 말이지
남동생 :
휴! 증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누나 :
역사는 언제나 밝혀지게 되어 있어.
남동생 :
추리 소설의 범인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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