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리 벽화고분(德興里壁畵古墳)

덕흥리벽화고분 앞칸 서벽 태수 배례도
덕흥리벽화고분 앞칸 북벽 벽화 구성도
덕흥리벽화고분 널방 북벽 구성도
덕흥리 고분 지도 보기  은 북한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에 위치하고 있다.  무학산 서쪽의 옥녀봉 남단 구릉 위에 자리잡은 흙무지돌방무덤으로 1976년 발굴되었다. 무덤의 방향은 남향이며, 널길, 앞방, 이음길, 널방으로 이루어진 두 방무덤이다. 무덤 안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렸으며, 주제는 생활풍속이다. 앞방 북벽 상단에 14행 154자의 묘지명(墓誌銘)이 있으며, 장면마다 직명(職名)이나 설명문이 적혀 있다. 묘지명을 포함하여 모두 600여 자의 글자가 남아 있다.

 

 

덕흥리 벽화고분은 광개토대왕 재위 기간인 408년에 만들어졌다. 무덤 주인인 진(鎭)은 고구려의 장군직과 태수직을 거친 인물로 유주자사 경력이 있으며 77세에 죽어 음력으로 408년(영락 18년) 12월 25일 무덤에 묻힌 인물이다. 4세기 중국의 현 하북성과 요령성 일부를 걸쳐 설치되었던 유주(幽州)의 13군태수(郡太守)가 자사(刺史) 진에게 나아와 배례(拜禮)를 하는 장면, 60여 개의 별자리 견우, 직녀를 비롯해 신화, 전설상의 존재로 가득한 천장고임의 하늘세계 그림은 풍부한 벽화내용 가운데에도 특히 주목받는 장면이다. 

 

 

진의 고향인 신도에 대해 평안북도 또는 중국 하북 지역으로 보기도 하고, 유주자사란 직명이 고구려의 것인지, 중국의 것인지에 따라서 고구려의 판도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덕흥리벽화고분은 주인공과 축조연대가 밝혀진 중요한 유적이면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 고구려의 정세 및 다양한 풍속을 파악하게 해주는 자료의 보고로 가치가 높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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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렇게 중국은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고구려 성까지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부로…
남동생 :
누나, 고구려는 우리 역사잖아. 중국이 왜 저러는 거야?
누나 :
음, 그건 말이지… 함께 찾아보자.
누나 :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 3성인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의 역사 지리, 민족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업이래.
남동생 :
무슨 근거로 그러는데?
누나 :
중국은 현재 중국 땅에 있던 모든 나라의 역사를 모두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야.
남동생 :
음… 그럼 옛날 고구려는 어디에 있었는데?
누나 :
지도로 봐볼까?
누나 :
고구려보다 오래된 고조선부터 보자.
남동생 :
와아! 엄청 넓네!
누나 :
고구려는 여기…
남동생 :
전부 한반도 북쪽과 만주 쪽에 있었네?
누나 :
그래. 아까 얘기한 대로 지금은 중국 땅인 곳도 있어.
남동생 :
흠! 이 나라의 땅이었던 곳을 현재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 이거지.
누나 :
그래.
남동생 :
음, 그러면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하려면 어떻게 중국과 싸워야 해?
누나 :
싸우긴. 우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반론을 제시하면 돼.
남동생 :
역사적 사실이라면… 어떤 거?
누나 :
흐음!
남동생 :
어떻게 다른데?
누나 :
고구려 사람들은 성을 쌓을 때 대부분 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긴 쐐기돌을 많이 사용해서… 이런 모습이 되는데,
남동생 :
그렇구나. 고구려성이 훨씬 강하네.
누나 :
그렇지!
누나 :
또,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영락’이라는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내용과 건국신화가 새겨져 있지.
남동생 :
아하!
누나 :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 옛날 고조선부터 이어온 역사를 계승하고 있고, 신라에 멸망한 이후에도 고려, 조선 등이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계승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분명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란 말이지
남동생 :
휴! 증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누나 :
역사는 언제나 밝혀지게 되어 있어.
남동생 :
추리 소설의 범인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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