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녀산성 - 고구려 졸본성

오녀산성 원경
남벽 아래 남아 있는 돌무지무덤, 장강유적의 남은 자취

환인분지의 약 800m의 산지에 축조된 오녀산성 은 남북 약 1,000m, 동서 너비 약 300m의 비교적 규모가 큰 성이다. 동·서·남쪽은 모두 넓적한 돌로 성벽을 쌓았고, 북쪽은 수직에 가까운 벼랑에 의지하여 성벽을 이루었다. 부근에는 고력묘자촌(高力墓子村) 돌무지무덤을 비롯, 많은 고분군이 있다. 이 오녀산성과 주변의 고분군들은 고구려 건국 초기의 국가성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를 하고 있다.

 

오녀산성 지도 보기  의 성벽은 30×20×35cm의 돌로 견고하고 높은 성벽을 구축하기 위해 층이 올라갈수록 안으로 들여쌓는 굽도리 축조공법을 사용하였다. 성 내부의 지세는 평탄하며, 서측은 절벽이 길게 이어져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동측은 성문을 직접 공격할 수 없도록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옹성(甕城)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고구려 유적 중 오녀산성과 국내성에서만 발견되는 양식이다.

 

 

성안에는 천지라고 하는 못이 있고, 이 못과 연결된 조그마한 샘도 있다. 못이나 샘은 모두 잘 다듬은 돌로 쌓았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약 2,000점에 달하는 고구려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2004년에 다른 고구려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환인 일대는 요동에서 국내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므로 오녀산성은 국내성 천도 이후에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환인 서쪽에서 혼강으로 진입하는 교통로를 공제하면서 환인분지 일대의 중심적인 군사방어거점으로서 기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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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렇게 중국은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고구려 성까지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부로…
남동생 :
누나, 고구려는 우리 역사잖아. 중국이 왜 저러는 거야?
누나 :
음, 그건 말이지… 함께 찾아보자.
누나 :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 3성인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의 역사 지리, 민족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업이래.
남동생 :
무슨 근거로 그러는데?
누나 :
중국은 현재 중국 땅에 있던 모든 나라의 역사를 모두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야.
남동생 :
음… 그럼 옛날 고구려는 어디에 있었는데?
누나 :
지도로 봐볼까?
누나 :
고구려보다 오래된 고조선부터 보자.
남동생 :
와아! 엄청 넓네!
누나 :
고구려는 여기…
남동생 :
전부 한반도 북쪽과 만주 쪽에 있었네?
누나 :
그래. 아까 얘기한 대로 지금은 중국 땅인 곳도 있어.
남동생 :
흠! 이 나라의 땅이었던 곳을 현재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 이거지.
누나 :
그래.
남동생 :
음, 그러면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하려면 어떻게 중국과 싸워야 해?
누나 :
싸우긴. 우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반론을 제시하면 돼.
남동생 :
역사적 사실이라면… 어떤 거?
누나 :
흐음!
남동생 :
어떻게 다른데?
누나 :
고구려 사람들은 성을 쌓을 때 대부분 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긴 쐐기돌을 많이 사용해서… 이런 모습이 되는데,
남동생 :
그렇구나. 고구려성이 훨씬 강하네.
누나 :
그렇지!
누나 :
또,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영락’이라는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내용과 건국신화가 새겨져 있지.
남동생 :
아하!
누나 :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 옛날 고조선부터 이어온 역사를 계승하고 있고, 신라에 멸망한 이후에도 고려, 조선 등이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계승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분명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란 말이지
남동생 :
휴! 증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누나 :
역사는 언제나 밝혀지게 되어 있어.
남동생 :
추리 소설의 범인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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