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선산악회의 제1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계획과 과도정부의 협력
The Proposal of the 1st Scientific Expedition by the Corean Alpine Club and Cooperation of Interim Government
↘ 1947년 봄부터 조선산악회는 학술조사단의 파견 시기 와 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고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출발을 1947년 8월로 계획하고 필요한 물품과 기차, 선박 등 교통편에 대한 협조를 정부 부처와 각 기관에 요청했다. 1947년 6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처음 기사화된 후, 과도정부에서는 안재홍 민정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했다. 과도정부는 조선산악회의 학술조사단 파견에 긴밀하게 협력하며 별도의 독도조사단(4명)까지 조직하여 동행하도록 했다. 이때 미 군정장관은 출장 명령을 통해 과도정부 소속 공무원들의 울릉도·독도 행을 허가했다.
1946년 가을, 조선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논의
한성일보에 실린 홍종인의 “울릉도학술조사대보고기(1)”에 따르면 조선산악회에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언급한 것은 1946년 가을부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1946년 가을, 조선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논의
“… 그리하여 작년(1946년) 가을부터 의도한 것이 이제 실현을 보았던 것이다 …
독도행은 실행 전까지는 외부 발표를 시종 보류하고 있었으나, 이는 우리가 당초부터 계획해온 기습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
조선산악회 제22회 역원회에서 울릉도 학술조사대 파견 시기와 방법 논의
1947년 5월 16일 조선산악회는 제22회 역원회 주01)역원회(役員會)는 지금의 이사회와 같은 말이다. 를 개최하고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 시기와 방법을 논의했다.
K. A. A 총발(總發) 제31호
서기 1947년 5월 12일
조선산악회 회장 송석하
__________씨 귀하
역원(役員) 피선(被選) 급(及) 제22회 역원회(役員會) 소집 통지의 건
과반 4월 16일 본회 제2회 정기총회의 역원 선거의 결과 별지 금년도 역원 표와 같이 귀하께서 “____사(事)”에 피선되옵기에 자의(玆以) 앙고하옵고 일래 다망하실 것이나 본회 발전에 기여해쥬심을 복희하오며 좌기 요항(要項)의 역원회 소집 기타를 앙고하오니 소만(掃万) 참석하심을 경요하옵니다.
기(記)
1. 본회 사무국 설치의 건
시내 을지로 입구 조선여행사 본사 내
1. 역원회 급 회원 집회의 건
월례 역원회 매월 제3 금요일 하오 4시
임시 역원회 수시 필요에 따라 회장이 소집
월례 회원집회 매월 제1 금요일 하오 4시
1. 제22회(월례) 역원회 소집의 건
(1) 일시 5월 16일(금)
(1) 장소 을지로 입구 조선여행사 본사
(1) 의사
1. 각부 보고
1. 특별회원단체 회원 급(及) 지부에 관한 규정의 건”
1. 회표장(회원장) 결정의 건 총무부 제안”
1. 표창장 발송의 건
백운대 시설에 관하야 총무부 제안
1. 북한산 산막 건설의 건 사업부 제안
1. 당면사업의 건
(ㄱ)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시기, 방법)
(ㄴ) 신록(新綠) 광릉(光陵) 막영회(幕營會)
(ㄷ) 기타
1. 기타 사항
이상
주석
조선산악회 임시총회에서 울릉도 학술조사대 파견 계획 발표
조선산악회는 1947년 6월 11일 임시총회를 열고 속리산 추풍령 탐사회와 울릉도 학술조사대 파견에 대한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5월 16일 역원회에서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이 결정되고, 새로운 사업으로 ‘속리산 추풍령 탐사회’가 제안되어 그 자리에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임시총회 안내
좌기에 의하여 임시총회를 갖고자 하오니 상호 연락하시사 빠짐없이 참석하여 주심을 자(玆)에 안내하나이다.
1947년 6월 2일
조선산악회장 송석하 백
회원 제위
기(記)
(부기(附記)) 1947년도 회비(일백오십원) 미납하신 분은 6월 말일까지 납입하여주심을 앙망하나이다.
1. 시일 급(及) 장소 6월 11일(수) 오후 4시 서린동 42(종로 광교 서편) 후생관
1. 의사(議事) 1. 회무 보고 2. 단체 회원 규약 3. 회칙 보수(修補)
4. 회원장의상(會員章意象) 결정
5. 광릉(光陵) 캠핑회 경과보고
6. 사업계획 발표
(ㄱ) 속리산 추풍령 답사회
(ㄴ)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
이상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첫 기사화
6월 11일 조선산악회의 임시총회에서 결정된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 사업은 그 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더욱이 이 시기 독도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일본 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관한 내용이 1947년 6월 20일 『대구시보』를 통해 처음 기사화됐던 것이다.
『대구시보』, 1947년 6월 20일, 2면, “왜적 일인(日人)의 얼빠진 수작 울릉도 근해의 소도(小島)를 자기네 섬이라고 어구(漁區)로 소유”
… 우리의 도서를 해적 일본이 저희 본토에서 128리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고 주제넘게 저희네 섬이라고 하며…
조선산악회에서 해안경비대 총사령관에게 학술조사대의 포항-울릉도 간 왕복 배편 협조 요청
1947년 7월 30일 조선산악회에서는 회장 송석하 명의로 과도정부의 통위부 해안경비대 총사령관 앞으로 협조 요청 서한을 보냈다. 이 협조 요청 서한에는 8월 11일 울릉도에 학술조사대를 파견하는데 그 인원이 50명이며 포항과 울릉도 간 왕복 이동에 필요한 선박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경계자(敬啓者) 유하(榴夏) 건국 촉성지시하
귀체도금안(貴體度錦安)하심을 앙축(仰祝)하나이다. 취백(就白) 본회에서는 금년도 제2차 하기(夏期) 사업으로 래(來) 8월 11일 울릉도에 학술탐사대(자연과학 급 문화부문)를 파견하여 적으나마 건국 성업(建國 聖業)에 이바지하고자 하와 자이(玆以) 계획서를 앙정(仰呈)하옵고 고견(高見)을 배사(拜竢)하오니 일래다망(日來多忙)하신 중 죄송하오나 귀하의 절대한 찬조를 복희(伏希)하오며 본 거사(擧事)에 필요하온 좌기(左記) 제반 편의 혜사(惠賜)를 삼가 앙청(仰請)하나이다.
1947년 7월 30일
조선 산악회
회장 송석하 (직인)
통위부(統衛部) 해안경비대
총사령 귀하
기(記)
별지 계획서에 의하온 본 학술탐사대 대원 50명의 포항, 울릉도간 왕복 선행 운송에 특별 편의 혜사(惠賜)를 앙청하옴.
↘
별지 계획서에 따라 본 학술탐사대 대원 50명의 포항 울릉도 간 왕복 선박 사용의 편의를 제공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조선산악회에서 해안경비대 총사령관에게 보낸 학술조사대 일행의 포항-울릉도 간 이동 책임 각서
해안경비대 총사령관에게 협조 요청 서한을 보내고 이틀 후인 1947년 8월 1일 조선산악회에서는 회장 명의로 해안경비대에 서신을 다시 보냈다.
그 서신의 제목은 ‘각서’로 선박 운항 중 발생하는 사고에 의한 인명, 물품 등에 관한 일체의 책임은 울릉도학술조사대와 대원 각자가 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각서를 보낸 경위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7월 30일자 협조 요청 서한을 받은 해안경비대에서 요청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각서
본회 주최 울릉도학술조사대 일행 50명의 포항, 울릉도간 왕복 해상 수송을 귀관 영솔하의 해안경비대 함선 편에 의촉(依囑)함에 제(際)하야 선행 중 발생하는 사고에 의한 인명, 물품 등에 관한 일체의 책임은 본 대(本隊)와 대원 각자가 부(負)할 것을 약(約)함.
서기 1947년 8월 1일
서울시 예장동 2
국립민족박물관내
조선산악회장 송석하
해안경비대 총사령관 귀하
조선산악회에서 대구역장에게 조사대의 기차 운송 관련 편의 제공 요청
7월 30일 이후 조선산악회에서는 해안경비대뿐만 아니라 각 기관 단체에도 지원 및 협조 요청을 했다. 이 사실은 조선산악회에서 협조 요청 서한의 양식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협조 요청 서한에는 조선산악회의 1947년 하기사업으로 울릉도학술조사대를 파견하여, 울릉도의 사회, 자연 전반에 걸쳐 조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조사대는 사회과학반 등 8개 학술반과 본부 행동반으로 편성하는데 대원은 50명으로 예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협조 요청 서한에는 문화적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울릉도 주민들에게 의약품, 도서, 학용품 등 위문품도 나누어 줄 것이라고 적혀 있으며, 또한 각 기관 및 단체에 맞게 협조 요청 사항을 적을 수 있도록 공란을 두었다. 맨 마지막에는 각 관공서와의 절충이나 협조 요청에 있어 편의를 도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선산악회에서는 이 협조문 양식에 근거하여 8월 4일 대구역장 앞으로 협조 요청 서한을 보냈는데, 대구역장에게는 ‘승차 운송의 편의’를 제공해 달라고 했다. 조선산악회에서는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에 필요한 선박뿐만 아니라 기차 등 편의 제공을 위해 해안경비대 총사령관 및 대구역장 등 각 기관 및 단체에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던 것이다.
1947년 8월 4일
조선산악회장 송석하 (직인)
대구역장(大邱驛長) 귀하
1. 요건: 조선산악회 주최 울릉도학술조사대 후원 앙청(仰請)에 관한 건
1. 설명
(가) 본회 금년도 하(夏) 사업으로 8월 16일부터 2주간의 기간으로 우리 학계의 중진을 망라하야 울릉도의 사회, 자연 제반에 관한 학술조사대를 편성 파견하야 조사의 결과를 보고 강연, 전람 급(及) 보고서의 간행으로써 동도(同島)의 실태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야 금후(今後)의 문화, 산업 제방면에 기어코저함
(나) 조사대의 편성은 사회과학반, 생활실태조사반, 생물학반, 농림반, 수산반, 지질광물반, 기상반, 보도촬영반, 본부행동반 등으로 하야 전원 50명으로 예정함. (각 반원 명부는 추후 제출함)
(다) 겸하야 동도(同島)가 동해상에 고립(孤立) 편재(偏在)하야 문화적으로 혜택이 빈핍(貧乏)함에 감(鑑)하야 의약품, 도서, 학용품 등의 위문품을 휴행(携行)코저함. 이상 취지에 귀(貴) 역(驛)으로서 적극 찬동하시와 본 조사대의 승차(乘車)·윤송(輪送)의 편의(便宜)으로 성원(聲援) 편달(鞭撻)해 주심을 앙청함
1. 후원 조건: 본대(本隊) 사업 실행에 제(際)하야 관계 관공서(官公署) 명(名) 방면과의 절충, 협력 요청에 편의를 도모해주실 것임.
안재홍 민정수석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 첫 회의 개최
“독도 문제 중대화 수색위원회 조직코 협의”
… 과도정부에서는 동 문제를 중대시하여 민정장관이 위원장이 되어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하여 4일 상오 10시부터 중앙청 민정장관실에서 그 대책에 관한 첫 협의를 하기로 되었다.
8월 3일 신문에는 과도정부에서 독도에 관한 문제를 중대시하여 민정장관 안재홍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하여 첫 회의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회의는 8월 4일 오전 10시 중앙청 민정장관실에서 열렸는데, 관계 방면의 권위자들이 다수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독도가 우리의 판도라는 유력한 증거물을 얻었으며, 주도 면밀한 조사를 거듭하여 맥아더 사령부에 보고하기로 했다고 보도하였다.
“독도 문제 중대화 수색위원회 조직코 협의”
중앙청에서는 독도 문제를 중대시하고 수색위원회(搜索委員會)를 조직하였다는 것은 기보한 바이거니와, 4일 민정장관실에서 동 위원회에서는 관계 방면 권위자들이 다수 참석한 아래 첫 회의를 열어 독도가 우리의 판도라는 유력한 증거물을 얻었다. 즉 역사적 증거 문헌과 독도가 강원도 행정구역에 편입된다는 일인의 지리학 논문이 발견되었다. 이리하여 동 위원회에서는 주도 치밀한 조사를 거듭하여 맥 사령부에 보고하기로 되었다.
해안경비대 총사령관이 조선산악회에 회신 “울릉도 독도 간 이동은 군정장관의 허가가 필요하니 군정장관의 허가를 얻어 다시 통보할 것”
과도정부에서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개최한 다음날(8월 5일) 해안경비대에서는 조선산악회에 서신을 보내 포항과 울릉도 간 선박 편의 제공을 약속했다.
해안경비대는 울릉도학술조사대의 포항과 울릉도 간 이동을 위한 선박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울릉도와 독도 간 이동에 대해서는 군정장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며 군정장관의 허가를 얻어 해안경비대에 다시 통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울릉도 항구에 입출항할 때는 수심 관계로 경비함정의 접안이 어려우니 울릉도 관계 부서에 의뢰하여 소형 선박을 이용하여 퇴선과 승선을 하라고 했다.
조해경총(朝海警總) 제373호
서기 1947년 8월 5일
조선해안경비대 총사령관 준장 손원일 (도장, 직인)
조선산악회장 귀하
울릉도 학술조사대 일행 해상운송의 건
수제지건(首題之件)에 관하야 포항 울릉도 간의 해상 운송에 대하야는 귀하의 요청에 응하겠아오나 8월 25일, 26일일의 울릉도 독도 간의 왕복은 군정장관의 허가를 필요로 함으로 확답키 곤란하오니 양지하시고 해(該) 허가를 수령 후 1차 통보하여주심을 앙망함.
추신: 울릉도 항내는 수심 관계로 안벽(岸壁)에 정박 불가능하오니 동도(同島) 관계청에 의뢰하야 18, 28일의 출입항 시에는 소주(小舟)를 이용하야 승퇴정(乘退艇)하시앞.
이 공문에서는 특별히 주목할 점이 세 부분 있다. 첫째, 조선산악회의 7월 30일 협조 요청 서한에는 포항과 울릉도 간 이동에 관한 사항만 있고 울릉도와 독도 간 이동에 대한 내용은 없는데, 해안경비대의 답신에는 울릉도와 독도 간 이동에 관한 내용이 있다는 점이다. 조선산악회에서 별도의 방법으로 울릉도와 독도 간 선박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조선산악회가 독도 답사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해안경비대가 포항과 울릉도 간 이동 선박에 대해서는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울릉도와 독도 간 이동에 대해서는 확답이 곤란하다며 군정장관의 허가를 얻으라고 한 점이다. 공문에는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당시 독도는 연합국최고사령관 지령(SCAPIN) 제677호 및 제1033호에 의해 일본의 통치영역에서 제외되어 있었고 일본인들의 접근도 허용되지 않았다. 1946년 2월 연합국최고사령관 행정관할지도를 보면 독도는 한국의 관할구역으로 되어 있다.
독도가 한국의 관할구역임에도 울릉도-독도간 이동이 미 군정장관의 허가가 필요한 일이었다면, 이는 당시 해안경비대의 원래 경계임무 관할을 벗어나는 사항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울릉도와 독도 간 운항이 해안경비대의 관할을 벗어나는 사항이라면 군정장관에게 허가를 얻어야 하는 주체는 조선산악회가 아니라 해안경비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해양경비대의 경비함정이 관할범위 밖으로 이동하는데, 그 곳을 방문하고자하는 조선산악회에서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사유를 알기 위해 당시의 해양경비대의 관할범위 및 임무와 관련된 내부 규정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일정과 관련된 부분이다. 조사대는 8월 18일 울릉도에 입도하고 8월 28일 울릉도에서 나오는 일정으로, 독도 답사는 8월 25일과 26일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전까지 조선산악회에서 8월 11일부터 2주간 답사할 것이라고 한 것과는 다르다. 조선산악회에서 작성한 6월 2일 임시총회 통지문부터 7월 30일 해안경비대에 보내는 협조 요청 서한에 이르기까지 울릉도학술조사대의 출발일자는 8월 11일이었다. 8월 3일 무렵에 울릉도학술조사대의 일정이 변경된 것은 과도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조선산악회가 해안경비대의 협조를 요청하는 가운데 8월 11일이면 선박 제공이 어렵다든가, 또는 과도정부 민정장관 안재홍이 적극 관여하여 과도정부 독도조사단이 합류하는 과정에서 일정 변경(11일에서 16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다.
결국 울릉도학술조사대는 변경된 일정으로 8월 16일 서울을 떠나 8월 17일 대구에서 강연회를 마치고 포항에서 1박을 하고, 18일 아침 7시 10분 대전호를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과도정부 외무처 일본과에서 “울릉도 여행 건으로 상의를 위해 당일 오후 2시까지 내방해 줄 것”을 요청
과도정부에서 조선산악회의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에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적 태도를 보인 것은 외무처 일본과에서 조선산악회에 보낸 8월 7일 서한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과도정부 외무처 일본과에서는 1947년 8월 7일 조선산악회장(송석하)에게 서한을 보내, ‘울릉도 여행 건’으로 상의코자 하니 당일 오후 2시경 외무처 일본과로 내방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서한을 보낸 그날 바로 일본과로 내방해 달라는 것을 보면 이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외무처 일본과 서한에는 독도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런데 울릉도로만 가는 여행이었다면 굳이 일본과에서 상의를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울릉도 여행 건’에 대해 상의하자는 것은 조선산악회의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 좀 더 사안을 좁히면 독도 답사에 관해 상의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자리에서는 해안경비대에서 조선산악회에 요청한 울릉도와 독도간 이동에 관한 군정장관의 허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947년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에는 실제 외무처 일본과장(추인봉)도 당시 과도정부 독도조사단원으로 참가했다.
설대(舌代)
울릉도 여행 건으로 상의코저 하오니 미안하오나 금일 오후 2시경 외무처 일본과로 내방하여주시면 감사하겠음니다.
8월 7일
외무처 일본과
산악회장 좌하(座下)
미군정청 출장 명령 공문, 과도정부 소속 한국인 공무원 6명 울릉도, 독도 출장 허가
해안경비대에서 8월 5일 조선산악회에 요청한 군정장관의 허가와 관련된 부분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미군정청(USMGIK) 본부에서 시행된 1947년 8월 15일 공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공문의 제목은 ‘여행 명령(Travel Orders)’으로, 미군정청 군정장관 아처 러취(Archer L. Lerch)의 명령에 따라 1947년 8월 15일 시행된 공문이며 미군정청 소속 공무원들의 출장을 허가하는 내용이다. 이 공문에는 과도정부 소속 한국인 공무원들(6명)의 울릉도와 독도 출장을 허가하는 내용도 있다.
이 시행 공문은 영어로 작성되었고 부관참모보 대리 와드(H. M. Ward) 중위가 서명하였다.
출장 명령은 울릉도학술조사대가 서울을 출발하기 전날(8월 15일)에 내려졌다.
시기적으로 보면 조선산악회장이 8월 7일 외무처 일본과에서 협의를 한 후 군정장관에게 출장 신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출장자 명단은 관련부처, 이름, 출발일, 귀환일, 목적지로 되어 있다.
과도정부의 울릉도 독도 출장자 명단을 보면 외무처 관련자 4명과 문교부 관련자 2명으로 되어 있다. 관련부처는 출장자의 소속 부처와 관계없이 출장 업무 또는 출장 신청과 관련된 부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외무처 관련 출장자들을 보면, 외무처 일본과장 추인봉, 문교부 편수사 이봉수, 수산국 기술사 한기준, 국사관 관장 신석호 등 4명으로 되어 있는데, 이들은 과도정부 독도 조사원들이다.
다음으로 문교부 관련 출장자들을 보면, 조선산악회 울릉도학술조사대 관련자들로 보이는데, 송석하(Sohng Suk Ha)와 최연식(Choi Yun Shik)이다. 송석하는 국립민족박물관장으로 당시 조선산악회장 겸 울릉도학술조사대장을 맡고 있었다.
최연식은 과도정부의 독도 조사원도 아니고 조선산악회 울릉도학술조사대 편성 명부에도 없다. 그가 출장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면 미군정청 소속 한국인 공무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 울릉도 독도 현지 조사에 참가했는지는 알 수 없다.
HEADQUARTERS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APO 235 UNIT 2
MGXAG 300.4 (T-186) 15 August 1947
SUBJECT: Travel Orders
TO: Distribution “X”
1. (중략)
2. Fol named individuals, civilian employees, this Hq are authorized to proceed from APO 235 Unit 2 o/a dates indicated to such destinations in Korea as are set forth opposite their respective names:
| ACTIVITY | NAME (중략) | DATE | DATE OF RETURN | DESTINATION |
| Ofc of For Aff | Mr Chyu In Bong | 16 Aug 47 | 29 Aug 47 | Tokto & Ullung |
| Ofc of For Aff | Mr Lee Bong Soo | 16 Aug 47 | 29 Aug 47 | Tokto & Ullung |
| Ofc of For Aff | Mr Hahn Ki Joon | 16 Aug 47 | 29 Aug 47 | Tokto & Ullung |
| Ofc of For Aff | Mr Cyn Suk Ho | 16 Aug 47 | 29 Aug 47 | Tokto & Ullung |
| Dept of Edu | Mr Sohng Suk Ha | 16 Aug 47 | 31 Aug 47 | Uhl Yong Do, Dok Do and Po Hand |
| Dept of Edu | Mr Choi Yun Shik | 16 Aug 47 | 31 Aug 47 | Uhl Yong Do, Dok Do and Po Hand |
| 관련부처 | 이름 | 출발일 | 귀환일 | 목적지 |
| 외무처 | 추인봉 | 1947. 8. 16 | 1947. 8. 29 | 독도, 울릉도 |
| 외무처 | 이봉수 | 1947. 8. 16 | 1947. 8. 29 | 독도, 울릉도 |
| 외무처 | 한기준 | 1947. 8. 16 | 1947. 8. 29 | 독도, 울릉도 |
| 외무처 | 신석호 | 1947. 8. 16 | 1947. 8. 29 | 독도, 울릉도 |
| 문교부 | 송석하 | 1947. 8. 16 | 1947. 8. 31 | 울릉도, 독도, 포항 |
| 문교부 | 최연식 | 1947. 8. 16 | 1947. 8. 31 | 울릉도, 독도, 포항 |
3. (중략)
4. Supply Officer, this Hq, will furnish authorized rations.
5. Tvl by Govt rail and/or mtr T auth. Upon compl of mission personnel will ret to proper orgn and sta. TDY. TDN. Auth: Ltr, Hq, XXIV Corps, file TFXAG 300.4, dtd 1 Oct 45.
※ Personnel marked by asterisk are auth tvl by air. BY COMMAND OF MAJOR GENERAL LERCH:
(서명)
H. M. WARD
1st Lt CE Actg Asst Adj Gen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출발
1947년 8월 조선산악회가 제1차로 파견한 울릉도학술조사대의 학술조사 계획서이다.
학술조사의 취지 및 조사대의 편성과 과제, 활동 계획 등이 담겨있다.
학술조사대는 울릉도 뿐만 아니라 독도도 조사했다.
“울릉도학술조사대 출발”
조선산악회 주최의 울릉도학술조사대 일행 63명은 예정과 같이 1947년 8월 16일 오후 7시 서울발 열차로 내려가 대구에서 강연회를 열고, 18일 포항을 떠났다고 한다. 조사대원은 모두 각 분야의 권위자들을 망라하여 이번에 그 업적은 클 것이다. 또한 일행은 도민을 위하여 의료품과 위문품도 대량을 가지고 가는 바, 더욱 독도 문제가 주목을 끄는 이때에 조사대의 파견은 더 한층 의의가 있다 할 수 있다.
조선산악회에서는 8월 17일 해안경비대 포항기지 부사령관의 요청으로 최종 명단을 제출하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조사대 편성 명부를 작성하였다. 그 명부들 중에 「서기 1947년 8월 울릉도학술조사대(편성 명부)」로 되어있는 자료에는 과도정부 독도조사단이란 표시는 없지만 독도조사단에 참가한 일부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그 편성 명부의 총원은 67명이고, 제일 마지막에 4명의 이름이 따로 적혀있는데, 과도정부 독도 조사원들이다.
이름과 소속(직위)은 신석호(申奭鎬)(국사관 부관장), 이봉수(李鳳秀)(문교부 편수사), 이준(李遵)(외무처 일본과), 최창근(崔昌根)(상무부 공업국 전기과 기사)까지 4명이다. 그리고 이름이 없이 소속만 적혀 있는 부분도 있는데 그 소속은 ‘수산국 수산과’로 되어 있다.
외무처 일본과 이준에 대해서는 연필로 삭선을 긋고 대신 ‘추인봉(秋仁奉)’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과도정부 독도조사단의 4명 중 신석호, 이봉수는 변경이 없었지만, 외무처 일본과의 이준은 과장 추인봉으로 변경되었고, 수산국 수산과 공무원은 한기준(韓基俊)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상무부 공업국의 최창근은 울릉도학술조사대의 학술반원으로 재배치되었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서 과도정부의 독도조사단 일행 4명이 정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