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대거 연수 지방을 침입하였고 이후 분산해서 평량(平涼) 등지를 침범 약탈하였음

  • 국가
    달단(韃靼)
[성화] 2년(1466) 여름에, 대거 연수 지방을 침입하였다.주 001
각주 001)
成化 2년(1466) 6월에 延綏 부근에 거처하고 있는 毛里孩가 자주 침범해 왔으며, 이에 대해 陝西 巡撫 項忠에게 勅書를 내려 太監 裵當과 總兵 楊信과 협의하여 河套를 征剿하도록 했는데, 이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58 「議復河套」 成化 2년 6월條 참조.
닫기
[이에] 황제가 양신(楊信)을 총병관(總兵官)에 임명하고 도독 조승(趙勝)을 부총관으로 삼아, 경군(京軍)과 여러 변경의 병졸 2만 명을 이끌고 이들을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양신은 전에 일을 논의하러 궁궐에 가서 아직 이르지 않았다. 적이 분산해서 평량(平涼) 주 002
각주 002)
平涼: 甘肅省 東部 六盤山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위로 涇河가 흐른다. 陝·甘·寧 3省이 모이는 ‘金三角’으로, 동으로는 陝西 鹹陽, 서쪽으로는 甘肅의 定西, 白銀, 남쪽으로는 陝西 寶雞와 甘肅 天水, 북쪽으로는 寧夏 固原, 甘肅 慶陽과 맞닿아있다. 역사상 隴東의 전통적인 상품집산지로 예전 실크로드의 중요 도시였으며, 천하의 재물이 모여드는 ‘旱碼頭’로 불렸다.
닫기
을 약탈하고, 영주(靈州)고원(固原) 주 003
각주 003)
固原: 지금의 寧夏回族自治區에 위치한다. 西安·蘭州·銀川 3省의 城市로 구성된 삼각지대의 중심에 위치하며, 이슬람 문화와 中原文化가 교차하는 지역이다.
닫기
를 침범했으며, 멀리 말을 달려 정녕(靜寧) 주 004
각주 004)
靜寧: 甘肅省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寧夏 隆德縣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秦安縣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는 通渭縣과 이어져있고, 북쪽으로는 西吉縣과 맞닿아있다. 예전부터 關隴의 요충지로 ‘咽喉之地’라고 불렸다.
닫기
·융덕(隆德) 주 005
각주 005)
隆德: 지금의 寧夏 回族自治區에 있으며, 明初에는 陕西 布政使司 平凉府 靜寧州에 속해 있었다. 隆德縣은 六盤山 서쪽 기슭, 寧南 변경에 위치한다. 서북쪽으로는 靜寧·西吉과 이어져 있고, 동남쪽으로는 涇源·莊浪과, 동북쪽으로는 固原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關山이 험준하고 水道가 西行하여 예로부터 군사상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지역으로 ‘關隴鎖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닫기
등 여러 곳을 약탈하였다. [그해] 겨울에 다시 연수를 침입하였는데, 참장(參將) 탕윤적(湯胤績) 주 006
각주 006)
湯胤績: 字는 公讓으로, 明의 開國 重臣인 湯和의 曾孫子이다. 巡撫 尙書 周忱이 그에게 啟事하도록 하니 즉석에서 數萬言을 갖추어 올렸다고 한다. 이에 주침이 조정에 천거하여 錦衣千戶를 除授받았다. 景泰 연간(1450~1456)에 尙書 胡濙의 천거를 받아 指揮僉事가 되었고, 成化 3년(1467)에 延綏 東路參將이 되어 孤山堡를 分守하였다. 고산은 적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탕윤적은 미리 성을 쌓고 군대를 늘려 수비를 강화하자고 奏請하였다. 황제의 답을 받기 전에 적이 대거 몰려왔다. 이에 탕윤적은 병을 무릅쓰고 말을 타고 싸웠으나 함정에 빠져 죽었다. 이 일이 보고되자 예에 따라 贈祭되었다.
닫기
이 전사하였다.주 007
각주 007)
관련 내용은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成化 3년條 참조.
닫기


  • 각주 001)
    成化 2년(1466) 6월에 延綏 부근에 거처하고 있는 毛里孩가 자주 침범해 왔으며, 이에 대해 陝西 巡撫 項忠에게 勅書를 내려 太監 裵當과 總兵 楊信과 협의하여 河套를 征剿하도록 했는데, 이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58 「議復河套」 成化 2년 6월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2)
    平涼: 甘肅省 東部 六盤山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위로 涇河가 흐른다. 陝·甘·寧 3省이 모이는 ‘金三角’으로, 동으로는 陝西 鹹陽, 서쪽으로는 甘肅의 定西, 白銀, 남쪽으로는 陝西 寶雞와 甘肅 天水, 북쪽으로는 寧夏 固原, 甘肅 慶陽과 맞닿아있다. 역사상 隴東의 전통적인 상품집산지로 예전 실크로드의 중요 도시였으며, 천하의 재물이 모여드는 ‘旱碼頭’로 불렸다. 바로가기
  • 각주 003)
    固原: 지금의 寧夏回族自治區에 위치한다. 西安·蘭州·銀川 3省의 城市로 구성된 삼각지대의 중심에 위치하며, 이슬람 문화와 中原文化가 교차하는 지역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4)
    靜寧: 甘肅省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寧夏 隆德縣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秦安縣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는 通渭縣과 이어져있고, 북쪽으로는 西吉縣과 맞닿아있다. 예전부터 關隴의 요충지로 ‘咽喉之地’라고 불렸다. 바로가기
  • 각주 005)
    隆德: 지금의 寧夏 回族自治區에 있으며, 明初에는 陕西 布政使司 平凉府 靜寧州에 속해 있었다. 隆德縣은 六盤山 서쪽 기슭, 寧南 변경에 위치한다. 서북쪽으로는 靜寧·西吉과 이어져 있고, 동남쪽으로는 涇源·莊浪과, 동북쪽으로는 固原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關山이 험준하고 水道가 西行하여 예로부터 군사상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지역으로 ‘關隴鎖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6)
    湯胤績: 字는 公讓으로, 明의 開國 重臣인 湯和의 曾孫子이다. 巡撫 尙書 周忱이 그에게 啟事하도록 하니 즉석에서 數萬言을 갖추어 올렸다고 한다. 이에 주침이 조정에 천거하여 錦衣千戶를 除授받았다. 景泰 연간(1450~1456)에 尙書 胡濙의 천거를 받아 指揮僉事가 되었고, 成化 3년(1467)에 延綏 東路參將이 되어 孤山堡를 分守하였다. 고산은 적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탕윤적은 미리 성을 쌓고 군대를 늘려 수비를 강화하자고 奏請하였다. 황제의 답을 받기 전에 적이 대거 몰려왔다. 이에 탕윤적은 병을 무릅쓰고 말을 타고 싸웠으나 함정에 빠져 죽었다. 이 일이 보고되자 예에 따라 贈祭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7)
    관련 내용은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成化 3년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양신(楊信), 조승(趙勝), 양신, 탕윤적(湯胤績)
지명
연수, 평량(平涼), 영주(靈州), 고원(固原), 정녕(靜寧), 융덕(隆德), 연수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대거 연수 지방을 침입하였고 이후 분산해서 평량(平涼) 등지를 침범 약탈하였음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