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사신 김승원 등이 왕경으로 불러들이고, 탐라의 구마예는 본국으로 돌려보냄
무신(25일)에 등극을 축하하는 사신[賀騰極使]주 001
번역주 001)

김승원 등 중객(中客)주 002 이상 27인을 왕경주 003으로 불렀다. 그리고 대재(大宰)주 004에게 명하여 탐라의 사신에게 조(詔)를 내려 “천황이 새로이 천하를 평정하여 비로소 즉위하였다. 이로 인해 단지 축하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이는 그대들이 직접 본 바와 같다. 또 요즈음 겨울철이 되어 파도가 높다. 오래 머무르게 하면 도리어 그대들의 근심이 될 것이다. 그러하니 빨리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본국에 있는 왕 및 사자 구마예 등에게 처음으로 작위를 주었다. 작위(爵)는 대을상(大乙上)이다. 아울러 (관은) 금수(錦繡)로 장식하였다주 005. 그 나라의 좌평의 관위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축자에서 귀국시켰다.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왕의 상을 알리는 告喪使와 즉위를 축하하는 賀騰極使이다. 고상사는 동시에 하등극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어 양자는 표리관계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고상사에 관한 기록은 『日本書紀』 皇極천황 원년(642) 정월조에 백제가 전왕인 舒明의 조문사를 보낸 일이 있고, 동년 신라에서는 조문사와 함께 皇極의 賀騰極使를 동시에 보낸 일이 있다. 이후 신라는 672년 天武의 즉위시 하등극사와 天智의 조문사를 보냈으며, 703년에 효소왕의 상을 알리는 고상사를 일본에 보낸 일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皇極朝에 파견된 신라사절은 백제와의 군사적 대립이 극심했을 때로 외교전략의 일환으로서 이해된다. 이를 제외하면 양국의 弔問, 告喪, 慶祝사절은 680년대 이후 20여 년간에 집중되어 있다. 국제정세의 안정기에 이러한 성격의 사절 왕래는 상대국에 대한 우호적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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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1)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왕의 상을 알리는 告喪使와 즉위를 축하하는 賀騰極使이다. 고상사는 동시에 하등극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어 양자는 표리관계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고상사에 관한 기록은 『日本書紀』 皇極천황 원년(642) 정월조에 백제가 전왕인 舒明의 조문사를 보낸 일이 있고, 동년 신라에서는 조문사와 함께 皇極의 賀騰極使를 동시에 보낸 일이 있다. 이후 신라는 672년 天武의 즉위시 하등극사와 天智의 조문사를 보냈으며, 703년에 효소왕의 상을 알리는 고상사를 일본에 보낸 일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皇極朝에 파견된 신라사절은 백제와의 군사적 대립이 극심했을 때로 외교전략의 일환으로서 이해된다. 이를 제외하면 양국의 弔問, 告喪, 慶祝사절은 680년대 이후 20여 년간에 집중되어 있다. 국제정세의 안정기에 이러한 성격의 사절 왕래는 상대국에 대한 우호적 표시이다.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 번역주 004)
- 번역주 005)
색인어
- 이름
- 김승원, 구마예
- 지명
- 축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