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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대반련취부가 대판도에서 일기사한국의 군사와 싸움

이때 하내국사(河內國司;카후치노쿠니노미코토모치) 장관 내목신염롱(來目臣塩籠;쿠메노오미시호코)은 불파궁(不破宮)에 귀순하려는 마음이 있어 군병을 모았다. 여기에 한국이 와서 몰래 그 계획을 듣고 장차 염롱을 죽이려 하였다. 염롱은 일이 새어나간 것을 알고 곧 자살하였다. 하루가 지나자 근강군은 여러 길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취부의 군사는 이에 맞서 싸울 수가 없어서 퇴각하였다.
이 날에주 001
번역주 001)
7월 4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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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취부는 근강군에게 패하여 단지 한둘의 기마병을 이끌고 도망쳤다. 묵판(墨坂;스미사카)주 002
번역주 002)
현재의 奈良 縣 宇陀郡 榛原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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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러 우연히 토(菟)의 군사가 와서 그들과 만나자, 다시 돌아와 금강정(金綱井;카나즈나노위)주 003
번역주 003)
橿原市 小綱町으로 추정되나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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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주둔하여 흩어진 병졸을 불러 모았다. 그때 근강군이 대판도로 온다는 말을 듣고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 당마(當麻;타기마)주 004
번역주 004)
현재의 北葛城郡 當麻町이며, 『和名類聚抄』에 葛下郡 當麻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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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거리에 이르러 일기사한국의 군사와 위지(葦池;아시이케)주 005
번역주 005)
구체적인 장소는 미상이나, 葛下郡 王寺村의 葦田池로 보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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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싸웠다. 이때 내목(來目;쿠메)이라는 용사가 있어 칼을 뽑아 급히 달려가서 바로 군중으로 돌입하였다. 기마병이 그 뒤를 따라 나아가자, 근강군이 모두 도망하였다. 이를 쫓아가 베었는데 그 수가 매우 많았다. 그러자 장군이 군중에게 “무릇 병사를 일으키는 본의는 백성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원흉 때문이다. 그러므로 헛되이 죽이지 말라.”고 명하였다. 이에 한국은 군사들과 헤어져 혼자 도주하였다. 장군이 멀리서 보고 내목에게 활을 쏘게 하였다. 그러나 맞지 않아 결국 달아나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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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奈良 縣 宇陀郡 榛原町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橿原市 小綱町으로 추정되나 불명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현재의 北葛城郡 當麻町이며, 『和名類聚抄』에 葛下郡 當麻鄕이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구체적인 장소는 미상이나, 葛下郡 王寺村의 葦田池로 보는 설이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내목신염롱, 염롱, 염롱, 취부, 취부, 일기사한국, 내목, 한국, 내목
지명
묵판, 금강정, 당마, 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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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련취부가 대판도에서 일기사한국의 군사와 싸움 자료번호 : ns.k_0042_0020_004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