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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대반련취부의 공적을 치하함

이 날에 대반련취부(大伴連吹負)가 유수사 판상직웅모(坂上直熊毛;사카노우헤노아타히쿠마케)와 몰래 의논하여 한두 사람의 한직(漢直;아야노아타히)들에게 “내가 거짓으로 고시황자라고 칭하여 수십 기를 거느리고 비조사(飛鳥寺;아스카데라)주 001
번역주 001)
法興寺=元興寺를 말한다. 『日本書紀』 崇峻천황 즉위전기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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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북로주 002
번역주 002)
飛鳥寺 북쪽에서 서쪽 방면으로 통하는 中道, 혹은 飛鳥寺 북쪽 백 수십 미터 지점에서 동서로 통하는 山田道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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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나가 적의 진영과 대치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이에 내응하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미 군사를 백제(百濟;쿠다라)주 003
번역주 003)
현재의 奈良 縣 내의 飛鳥寺와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북 내지 동북방에 위치한 지역으로 생각되며, 구체적으로는 (1)奈良 縣 北葛城郡 廣陵町 百濟설, (2)天香具山(橿原市) 西麓의 百濟설, (3)櫻井市 吉備의 百濟大寺跡 주변설 등이 있다. 모두 飛鳥古京을 공격하는 거점으로서는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는데, 다만 (1)의 경우는 飛鳥寺에서 직선거리로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거리상으로 좀 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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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는 집에 준비해두고 남문에서 나왔다. 먼저 진조웅(秦造熊;하타노미야츠코쿠마)주 004
번역주 004)
秦造씨에 대해서는 應神천황 14년 시세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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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들보(犢鼻)만 착용한 상태로 말을 타고 달려가 절 서쪽의 진영주 005
번역주 005)
飛鳥寺 서쪽에 飛鳥川을 사이에 두고 약간의 평지가 있는데, 이곳에 임시 병영을 마련하고 징집한 병사들의 숙사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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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향해 “고시황자불파에서 오신다. 군사가 많이 따라온다.”고 소리쳐 외치게 하였다. 이때 유수사 고판왕과 징병을 맡은 사자 수적신백족 등이 비조사의 서쪽 느티나무[槻] 밑주 006
번역주 006)
『日本書紀』 황극천황 3년 정월조에 「法興寺의 槻樹」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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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진영을 치고 있었다. 다만 백족만은 소간전(小墾田;워하리다)주 007
번역주 007)
후보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飛鳥川의 左岸에 위치하는 明日香村 大字豐浦의 북방인 小字古宮 주변설, (2)飛鳥寺의 우안으로 古宮 동쪽의 雷丘 동록에 위치한 大字雷설이다. 아울러 양자 모두를 포함해 小墾田이라 칭했을 것이라는 이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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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무기고에 남아서 무기를 근강으로 운반하였다. 이때 영내의 군사들이 웅(熊)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모두 다 도망쳤다. 거기에 대반련취부가 수십 기를 거느리고 갑자기 습격해 오자 웅모 및 여러 직(直)들주 008
번역주 008)
東漢氏의 제족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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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와 연합하였고주 009
번역주 009)
원문은 「連和」이다. 이는 『漢書』 高后紀 등에 보이는 말로 連合和睦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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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들도 이를 따랐다. 그리고 고시황자의 명령이라고 말하고 수적신백족을 소간전의 무기고에서 불러냈다. 그러자 백족은 말을 타고 천천히 와서 비조사의 서쪽 느티나무 밑에 다다랐다. 어떤 사람이 “말에서 내려라.”라고 말하였으나 백족은 지체하며 말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옷섶을 잡아 끌어내리고 활을 쏘았는데 화살 하나가 맞았다. 그래서 칼을 뽑아 베어 죽였다. 또한 수적신오백지(穗積臣五百枝)와 물부수일향을 붙잡았지만 잠시 후 이들을 용서하여 군중에 두었다. 또 고판왕과 치협왕(稚狹王;와카사노오호키미)을 불러 종군시켰다. 잠시 후 대반련안마려(大伴連安麻呂;오호토모노무라지야스마로)주 010
번역주 010)
大伴連安麻呂는 천무천황 13년(684)에 宿禰성이 되었고 式部卿 參議 兵部卿 大宰府의 帥 등을 역임하였으며, 和銅 7년 5월 大納言 겸 大將軍 정3위로 죽었는데 후에 종2위를 追贈받았다. 長德의 여섯째 아들로 旅人, 田主, 坂上郞女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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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상직로(坂上直老;사카노우에노아타히오키나), 좌미군숙나마려(佐味君宿那麻呂;사미노키미스쿠나마로) 등을 불파궁(不破宮)주 011
번역주 011)
野上의 행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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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보내 일의 진행상황을 보고하였다. 천황이 크게 기뻐하여 취부를 장군주 012
번역주 012)
동년 7월 9일조에 倭京將軍이라 보인다. 令制에서는 군단의 병사수가 3천 명 이상일 경우 將軍을 두고 있다(『軍防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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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임명하였다.

  • 번역주 001)
    法興寺=元興寺를 말한다. 『日本書紀』 崇峻천황 즉위전기조 참조.바로가기
  • 번역주 002)
    飛鳥寺 북쪽에서 서쪽 방면으로 통하는 中道, 혹은 飛鳥寺 북쪽 백 수십 미터 지점에서 동서로 통하는 山田道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현재의 奈良 縣 내의 飛鳥寺와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북 내지 동북방에 위치한 지역으로 생각되며, 구체적으로는 (1)奈良 縣 北葛城郡 廣陵町 百濟설, (2)天香具山(橿原市) 西麓의 百濟설, (3)櫻井市 吉備의 百濟大寺跡 주변설 등이 있다. 모두 飛鳥古京을 공격하는 거점으로서는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는데, 다만 (1)의 경우는 飛鳥寺에서 직선거리로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거리상으로 좀 멀다는 생각이 든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秦造씨에 대해서는 應神천황 14년 시세조 참조.바로가기
  • 번역주 005)
    飛鳥寺 서쪽에 飛鳥川을 사이에 두고 약간의 평지가 있는데, 이곳에 임시 병영을 마련하고 징집한 병사들의 숙사로 삼았던 것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日本書紀』 황극천황 3년 정월조에 「法興寺의 槻樹」라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후보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飛鳥川의 左岸에 위치하는 明日香村 大字豐浦의 북방인 小字古宮 주변설, (2)飛鳥寺의 우안으로 古宮 동쪽의 雷丘 동록에 위치한 大字雷설이다. 아울러 양자 모두를 포함해 小墾田이라 칭했을 것이라는 이해도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東漢氏의 제족을 말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원문은 「連和」이다. 이는 『漢書』 高后紀 등에 보이는 말로 連合和睦의 뜻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0)
    大伴連安麻呂는 천무천황 13년(684)에 宿禰성이 되었고 式部卿 參議 兵部卿 大宰府의 帥 등을 역임하였으며, 和銅 7년 5월 大納言 겸 大將軍 정3위로 죽었는데 후에 종2위를 追贈받았다. 長德의 여섯째 아들로 旅人, 田主, 坂上郞女의 아버지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1)
    野上의 행궁을 말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2)
    동년 7월 9일조에 倭京將軍이라 보인다. 令制에서는 군단의 병사수가 3천 명 이상일 경우 將軍을 두고 있다(『軍防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대반련취부(大伴連吹負), 판상직웅모, 고시황자, 진조웅, 고시황자, 고판왕, 수적신백족, 백족, 대반련취부, 고시황자, 대반련안마려, 판상직로, 좌미군숙나마려, 취부
지명
불파, 소간전, 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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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련취부의 공적을 치하함 자료번호 : ns.k_0042_0020_003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