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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대해인황자 일행이 영록군으로 들어감

동틀 무렵에 자추야(莿萩野;타라노)주 001
번역주 001)
구체적인 소재지는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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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도착해 잠시 내려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적식(積殖;츠무웨)주 002
번역주 002)
阿山郡 伊賀町 지역으로 『和名類聚抄』 伊賀國 阿拜(아헤)군에 拓殖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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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산 입구에 도착해 녹심(鹿深;카후카)주 003
번역주 003)
近江國 甲賀郡 지역이다. 『日本書紀』 敏達천황 13년 2월조에 鹿深臣이 보이는데 이 지역과 관련된 씨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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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넘어온 고시황자와 만났다. 또한 민직대화(民直大火;타미노아타히오호히)주 004
번역주 004)
民直씨는 大和國 高市郡에 거주하는 倭漢氏 계통의 도래계 씨족으로 후에 忌寸姓이 되었다. 大火는 대보 3년 7월에 죽었는데, 임신년의 공으로 정5위하를 추증받았다(『속일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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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염조덕족(赤染造德足;아카소메노미야츠코토코타리)주 005
번역주 005)
德足은 이곳에만 보이는 인물이다. 赤染造씨는 염색을 행한 赤染部의 伴造 씨족으로 후에 常世連의 姓을 수여받았다(『속일본기』). 『新撰姓氏錄』 좌경·우경·河內國 諸蕃에 常世連이 실려 있는데 그 출자를 燕國王 公孫淵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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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직광우(大藏直廣隅;오호쿠라노아타히히로스미)주 006
번역주 006)
廣隅는 이곳에만 보이는 인물이다. 大藏直은 倭漢氏가 수많은 씨족으로 나눠진 것 가운데 하나로 大化개신 이전에 야마토 왕권의 大藏을 관장한 씨족이다. 후에 忌寸姓이 되었고, 延曆 4년 坂上·內藏 등 倭漢씨의 동족과 함께 宿禰성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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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상직국마려(坂上直國麻呂;사카노우에노아타히쿠니마로)주 007
번역주 007)
坂上直國麻呂는 이곳에만 보이는 인물이다. 坂上直씨는 大和에 거주하는 도래계 씨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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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흑마려(古市黑麻呂;후루이치노쿠로마로)주 008
번역주 008)
古市黑麻呂는 다른 곳에는 보이지 않는다. 古市씨는 河內國 古市郡에 본거를 가진 씨족으로 생각되며 『新撰姓氏錄』 河內國 諸蕃에 古市村主가 실려 있는데 그 출자를 「百濟國虎王也.」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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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전대덕(竹田大德;타케다노다이토쿠)주 009
번역주 009)
竹田大德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新撰姓氏錄』 左京 皇別에 竹田臣이 실려 있는데 阿倍朝臣과 동조, 大彦命의 아들 武渟川別命의 후손이라 한다. 또 左京 神別에 竹田連이 실려 있는데 神魂命의 13세손인 八束脛命의 후손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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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향와신안배(膽香瓦臣安倍;이카고노오미아헤)주 010
번역주 010)
近江國 伊香郡과 관계가 있는 씨족으로 보이며, 膽香瓦臣安倍는 후에(6월 24일) 村國男依 등과 함께 不破에서 近江으로 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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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따라왔다. 대산(大山;오호야마)주 011
번역주 011)
伊賀와 伊勢의 국경을 이루는 산으로 스즈카(鈴鹿 ) 산맥과 布引 산지의 鞍部를 넘는 고갯길이 있는데 이를 소위 가태월(加太越)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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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넘어서 이세(伊勢)영록(鈴鹿;스즈카)주 012
번역주 012)
伊勢國의 鈴鹿 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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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렀다. 이에 국사(國司)의 장관[守]주 013
번역주 013)
令制의 國司의 관직은 4등관으로 가미(守), 스케(介), 조, 사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장관을 가미라 한다. 다만, 여기에 守, 介라 되어 있는 것은 영제에 입각한 수식이며 원래는 頭, 助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하에 보이는 가미, 스케 그리고 탕목령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는 이세국의 그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세국에 대해인의 탕목이 있었다는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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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댁련석상(三宅連石床;미야케노무라지이하토코)주 014
번역주 014)
천무천황 9년 7월에 사망한다. 三宅連씨는 『新撰姓氏錄』 右京 제번, 攝津國 제번에 新羅國王子 天日桙命의 후손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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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관 삼륜군자수(三輪君子首;미와노키미코비토) 및 탕목령 전중신족마려(田中臣足麻呂;타나카노오미타리마로)주 015
번역주 015)
천무천황 13년 11월에 朝臣성을 하사 받았고, 直廣壹位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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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수신가(高田首新家;타카타노오비토니히노미)주 016
번역주 016)
高田首는 『新撰姓氏錄』 右京 제번에 高麗國人多高子使主의 후손이라 하고 있다. 高田首新家는 美濃國에 있는 대해인의 탕목을 관리하는 직원으로 추정되는데(『속일본기』 天平寶字 7년 11월 정유조), 그는 천무천황 14년 10월에 信濃에 사신으로 파견되고 있으며, 大寶 원년 7월에 죽어 종5위상을 추증받았다. 慶雲 원년 7월 功封 40호의 4분의 1을 자식인 首名에게 전봉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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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영록군(鈴鹿郡) 주 017
번역주 017)
군가의 소재지는 三重縣 鈴鹿 郡 關町 加太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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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와서 만났다. 또 군사 5백 명을 동원하여 영록산도(鈴鹿山道;스즈카노야마미치)주 018
번역주 018)
平安시대 이후의 鈴鹿 越은 滋賀縣 甲賀郡 土山町에서 三重縣 鈴鹿 郡 關町에 이르는 것인데 大和, 難波에 수도가 있었던 무렵은 三重縣 阿山郡 伊賀町 拓植에서 關町에 이르는 加太越이 관도였다. 鈴鹿 은 不破와 함께 기내에서 동국에 이르는 要路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해인황자는 이 양도를 재빨리 장악함으로써 이후의 군사행동을 유리하게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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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막았다. 천곡(川曲;카하와)주 019
번역주 019)
이세국 하곡군(河曲郡)으로 鈴鹿 시의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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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언덕 아래에 이르자 해가 저물었다. 황후가 피곤해하므로 잠시 가마를 멈추고 쉬었다. 그런데 밤하늘이 흐려져 비가 오려고 하였다. 오래 쉴 수가 없어서 출발하였다. 그러자 추워지고 번개가 내리치며 비가 몹시 왔다. 천황을 따르는 종자주 020
번역주 020)
원문은 從駕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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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의복이 젖어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삼중군(三重郡;미헤노코호리)의 군가(郡家)주 021
번역주 021)
三重郡은 四日市市의 대부분과 三重郡 남부지역으로 군가의 소재지는 鈴鹿 市 采女라는 설이 있으나 川曲의 언덕 아래와는 거리상으로 너무 가깝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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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러 가옥 한 채를 불태워 차가운 몸을 녹였다. 이 날 밤중에 영록관사(鈴鹿關司;스즈카노세키노츠카사)주 022
번역주 022)
軍防令 置關조에는 3관(이세의 鈴鹿 , 미노의 不破, 에치젠의 愛發)은 국사가 분담하여 지키도록 규정되어 있다. 鈴鹿 關의 소재지는 鈴鹿 郡 關町의 古廐이다. 다만 임신의 난 당시의 鈴鹿 에 關이 설치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를 부정하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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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자를 보내어 “산부왕(山部王;야마베노오호키미), 석천왕(石川王;이시카와노오호키미)이 같이 와서 귀순하려 합니다. 그래서 관(關)에 머물도록 해 두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이 곧 노직익인(路直益人;미치노아타히마스히토)주 023
번역주 023)
路直씨는 倭漢直씨의 분파로 山木直을 그 조상으로 하는데, 후에 忌寸, 이어 宿禰성을 하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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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내 그들을 불러들이게 하였다.

  • 번역주 001)
    구체적인 소재지는 불명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阿山郡 伊賀町 지역으로 『和名類聚抄』 伊賀國 阿拜(아헤)군에 拓殖鄕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近江國 甲賀郡 지역이다. 『日本書紀』 敏達천황 13년 2월조에 鹿深臣이 보이는데 이 지역과 관련된 씨족일 것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民直씨는 大和國 高市郡에 거주하는 倭漢氏 계통의 도래계 씨족으로 후에 忌寸姓이 되었다. 大火는 대보 3년 7월에 죽었는데, 임신년의 공으로 정5위하를 추증받았다(『속일본기』).바로가기
  • 번역주 005)
    德足은 이곳에만 보이는 인물이다. 赤染造씨는 염색을 행한 赤染部의 伴造 씨족으로 후에 常世連의 姓을 수여받았다(『속일본기』). 『新撰姓氏錄』 좌경·우경·河內國 諸蕃에 常世連이 실려 있는데 그 출자를 燕國王 公孫淵이라 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廣隅는 이곳에만 보이는 인물이다. 大藏直은 倭漢氏가 수많은 씨족으로 나눠진 것 가운데 하나로 大化개신 이전에 야마토 왕권의 大藏을 관장한 씨족이다. 후에 忌寸姓이 되었고, 延曆 4년 坂上·內藏 등 倭漢씨의 동족과 함께 宿禰성을 받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坂上直國麻呂는 이곳에만 보이는 인물이다. 坂上直씨는 大和에 거주하는 도래계 씨족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古市黑麻呂는 다른 곳에는 보이지 않는다. 古市씨는 河內國 古市郡에 본거를 가진 씨족으로 생각되며 『新撰姓氏錄』 河內國 諸蕃에 古市村主가 실려 있는데 그 출자를 「百濟國虎王也.」라 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竹田大德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新撰姓氏錄』 左京 皇別에 竹田臣이 실려 있는데 阿倍朝臣과 동조, 大彦命의 아들 武渟川別命의 후손이라 한다. 또 左京 神別에 竹田連이 실려 있는데 神魂命의 13세손인 八束脛命의 후손이라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0)
    近江國 伊香郡과 관계가 있는 씨족으로 보이며, 膽香瓦臣安倍는 후에(6월 24일) 村國男依 등과 함께 不破에서 近江으로 진공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11)
    伊賀와 伊勢의 국경을 이루는 산으로 스즈카(鈴鹿 ) 산맥과 布引 산지의 鞍部를 넘는 고갯길이 있는데 이를 소위 가태월(加太越)이라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2)
    伊勢國의 鈴鹿 郡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3)
    令制의 國司의 관직은 4등관으로 가미(守), 스케(介), 조, 사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장관을 가미라 한다. 다만, 여기에 守, 介라 되어 있는 것은 영제에 입각한 수식이며 원래는 頭, 助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하에 보이는 가미, 스케 그리고 탕목령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는 이세국의 그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세국에 대해인의 탕목이 있었다는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바로가기
  • 번역주 014)
    천무천황 9년 7월에 사망한다. 三宅連씨는 『新撰姓氏錄』 右京 제번, 攝津國 제번에 新羅國王子 天日桙命의 후손이라 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15)
    천무천황 13년 11월에 朝臣성을 하사 받았고, 直廣壹位에 추증되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16)
    高田首는 『新撰姓氏錄』 右京 제번에 高麗國人多高子使主의 후손이라 하고 있다. 高田首新家는 美濃國에 있는 대해인의 탕목을 관리하는 직원으로 추정되는데(『속일본기』 天平寶字 7년 11월 정유조), 그는 천무천황 14년 10월에 信濃에 사신으로 파견되고 있으며, 大寶 원년 7월에 죽어 종5위상을 추증받았다. 慶雲 원년 7월 功封 40호의 4분의 1을 자식인 首名에게 전봉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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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가의 소재지는 三重縣 鈴鹿 郡 關町 加太 지역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8)
    平安시대 이후의 鈴鹿 越은 滋賀縣 甲賀郡 土山町에서 三重縣 鈴鹿 郡 關町에 이르는 것인데 大和, 難波에 수도가 있었던 무렵은 三重縣 阿山郡 伊賀町 拓植에서 關町에 이르는 加太越이 관도였다. 鈴鹿 은 不破와 함께 기내에서 동국에 이르는 要路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해인황자는 이 양도를 재빨리 장악함으로써 이후의 군사행동을 유리하게 진행하였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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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국 하곡군(河曲郡)으로 鈴鹿 시의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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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從駕者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21)
    三重郡은 四日市市의 대부분과 三重郡 남부지역으로 군가의 소재지는 鈴鹿 市 采女라는 설이 있으나 川曲의 언덕 아래와는 거리상으로 너무 가깝다는 단점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22)
    軍防令 置關조에는 3관(이세의 鈴鹿 , 미노의 不破, 에치젠의 愛發)은 국사가 분담하여 지키도록 규정되어 있다. 鈴鹿 關의 소재지는 鈴鹿 郡 關町의 古廐이다. 다만 임신의 난 당시의 鈴鹿 에 關이 설치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를 부정하는 설이 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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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路直씨는 倭漢直씨의 분파로 山木直을 그 조상으로 하는데, 후에 忌寸, 이어 宿禰성을 하사 받았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고시황자, 민직대화, 적염조덕족, 대장직광우, 판상직국마려, 고시흑마려, 죽전대덕, 담향와신안배, 삼댁련석상, 삼륜군자수, 고전수신가, 산부왕, 석천왕, 노직익인
지명
자추야, 적식, 녹심, 대산, 이세(伊勢), 영록, 영록군(鈴鹿郡), 영록산도, 천곡, 삼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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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인황자 일행이 영록군으로 들어감 자료번호 : ns.k_0042_0020_003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