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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대해인황자 일행이 대야, 은군을 거쳐 이하군에 도착함

이때 둔전사(屯田司)주 001
번역주 001)
屯田은 대화전대의 屯倉의 계보를 띠는 야마토 왕권의 직할령이다. 宇陀郡에 둔창이 있었다는 사료는 없으나 大宇陀町의 동쪽 菟田野町에 大宇見田이 있다. 사인인 土師馬手는 대해인의 사인이라는 설과 야마토 조정에서 파견되어 屯田司의 잡무를 담당하던 하급관인으로 보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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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인인 토사련마수(土師連馬手;하지노무라지우마테)주 002
번역주 002)
후에(26일) 稚櫻部臣五百瀨와 함께 東山의 군사를 일으키는 사자가 되었고, 천무천황 13년 12월에 宿禰성을 하사 받았으며, 和銅 4년 2월에 종4위하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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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천황을 따라온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였다. 감라촌(甘羅村;카무라노무라)주 003
번역주 003)
그 위치에 대해서는 大宇陀町의 神樂岡설과 그보다 더 북쪽에 해당하는 大宇陀町 口今井字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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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나는데 사냥꾼 20여 명이 있었다. 대반박본련대국(大伴朴本連大國;오호토모노에노모토노무라지오호쿠니)이 엽사의 수령이었다. 곧 모두 불러 따르게 하였다. 또 미농왕(美濃王;미노노오호키미)주 004
번역주 004)
미농왕에 대해서는 천무천황 2년 12월 무술조에 小紫美濃王이라 보이고 있다. 제왕 가운데 소자위는 상당히 고위이며, 이는 임신의 난의 공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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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불렀더니 곧 와서 따랐다. 또한 탕목(湯沐)주 005
번역주 005)
탕목은 중궁이나 동궁에게 지급되는 식봉의 일종이며, 탕목령은 탕목의 땅을 지배하고 과세의 수납을 행하는 관리자이다. 여기서는 대해인에 속하는 탕목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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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쌀을 운반하는 이세국(伊勢國;이세노쿠니)주 006
번역주 006)
여기서의 탕목을 이세국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나 安八磨의 탕목에서 나온 쌀을 이세에 이르러 이세국의 駝로 옮겨 실은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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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짐을 싣는 말[駄] 50필을 토전군(菟田郡;우다노코호리)의 군가(郡家)주 007
번역주 007)
郡家는 군의 관청으로 지금의 奈良 縣 宇陀郡 榛原町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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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만났다. 그래서 쌀을 모두 버리고 걷는 사람을 타도록 하였다. 대야(大野;오호노)주 008
번역주 008)
宇陀郡 室生村 大野 지역으로 宇陀川과 室生川이 합류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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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도착하자 해가 저물어 산이 어두워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마을에 있는 집의 울타리를 부수어서 불을 밝혔다. 한밤중이 되어 은군(隱郡;나바리노코호리)주 009
번역주 009)
名張郡과 같다. 伊賀國의 서남부에 해당하며 나바리군은 현재의 三重縣 名張市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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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도착하여, 은(隱;나바리)의 역가(驛家)주 010
번역주 010)
驛家는 역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令制에서는 30里(약 16km)마다 설치되어 大路 20필, 中路 10필, 小路 5필의 말을 두었다(廐牧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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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불살랐다. 그리고 마을에서 큰 소리로 “천황이 동국으로 가신다. 그러니 인부들은 모두 모여라.”라고 외쳤다. 그러나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횡하(橫河;요코카하)주 011
번역주 011)
橫川은 현재의 미에현 나바리시에 위치한 것으로 名張川과 宇陀川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여겨지는데, 대화개신 당시 기내의 동쪽 끝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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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도착하자 검은 구름이 끼었다. 넓이는 10여 장(丈)으로 하늘을 뒤덮었다. 이때 천황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촛불을 밝히고 친히 식(式)주 012
번역주 012)
栻이라고도 하며 길흉을 점치는 음양도의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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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잡고서 점을 치고 “천하가 양분될 징조다. 그러나 짐이 결국 천하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급히 행진하여 이하군(伊賀郡;이가노코호리)주 013
번역주 013)
伊賀國의 군명으로 지금의 미에현 나가군의 동반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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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러 이하(伊賀;이가) 역가를 불태웠다. 이하군중산(中山;나카야마)주 014
번역주 014)
구체적인 소재지는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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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니 그 지역의 군사(郡司)들이 수백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따랐다.

  • 번역주 001)
    屯田은 대화전대의 屯倉의 계보를 띠는 야마토 왕권의 직할령이다. 宇陀郡에 둔창이 있었다는 사료는 없으나 大宇陀町의 동쪽 菟田野町에 大宇見田이 있다. 사인인 土師馬手는 대해인의 사인이라는 설과 야마토 조정에서 파견되어 屯田司의 잡무를 담당하던 하급관인으로 보는 설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후에(26일) 稚櫻部臣五百瀨와 함께 東山의 군사를 일으키는 사자가 되었고, 천무천황 13년 12월에 宿禰성을 하사 받았으며, 和銅 4년 2월에 종4위하로 죽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그 위치에 대해서는 大宇陀町의 神樂岡설과 그보다 더 북쪽에 해당하는 大宇陀町 口今井字설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미농왕에 대해서는 천무천황 2년 12월 무술조에 小紫美濃王이라 보이고 있다. 제왕 가운데 소자위는 상당히 고위이며, 이는 임신의 난의 공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탕목은 중궁이나 동궁에게 지급되는 식봉의 일종이며, 탕목령은 탕목의 땅을 지배하고 과세의 수납을 행하는 관리자이다. 여기서는 대해인에 속하는 탕목을 말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여기서의 탕목을 이세국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나 安八磨의 탕목에서 나온 쌀을 이세에 이르러 이세국의 駝로 옮겨 실은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郡家는 군의 관청으로 지금의 奈良 縣 宇陀郡 榛原町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宇陀郡 室生村 大野 지역으로 宇陀川과 室生川이 합류하는 곳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名張郡과 같다. 伊賀國의 서남부에 해당하며 나바리군은 현재의 三重縣 名張市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10)
    驛家는 역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令制에서는 30里(약 16km)마다 설치되어 大路 20필, 中路 10필, 小路 5필의 말을 두었다(廐牧令).바로가기
  • 번역주 011)
    橫川은 현재의 미에현 나바리시에 위치한 것으로 名張川과 宇陀川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여겨지는데, 대화개신 당시 기내의 동쪽 끝에 해당되는 지역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2)
    栻이라고도 하며 길흉을 점치는 음양도의 도구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3)
    伊賀國의 군명으로 지금의 미에현 나가군의 동반부에 위치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4)
    구체적인 소재지는 불명이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토사련마수, 대반박본련대국, 미농왕
지명
감라촌, 이세국, 토전군, 대야, 은군, 횡하, 이하군, 이하군, 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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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인황자 일행이 대야, 은군을 거쳐 이하군에 도착함 자료번호 : ns.k_0042_0020_003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