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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대해인황자가 화를 당할까 걱정함

이 달에 박정련웅군(朴井連雄君;에노위노무라지워키미)이 천황주 001
번역주 001)
여기서는 천무천황을 말한다. 천무천황의 실제 즉위는 672년이나 『日本書紀』는 즉위전의 대해인황자에 대해 모두 천황으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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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신이 사사로운 일이 있어 혼자서 미농(美濃;미노)에 갔습니다. 그때에 조정주 002
번역주 002)
大友皇子를 옹립한 近江조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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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농(美濃), 미장(尾張;워하리) 양 국사(國司)에게 명령하여 ‘산릉(山陵)주 003
번역주 003)
천지천황의 산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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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기 위하여 미리 인부를 징발해 지정하여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인부들에게 각각 무기를 지참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이는 산릉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며, 반드시 큰일이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만일 서둘러 피하지 않으시면 틀림없이 위급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또 어떤 사람이 “근강경(近江京;아후미노미야코)주 004
번역주 004)
近江 大津宮을 중심으로 京이 형성되었다고 여겨지나 서쪽에는 산, 동쪽에는 거대한 비파호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평지는 좁고 긴 지형이었기 때문에 條坊을 갖춘 경의 존재를 상정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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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왜경(倭京;야마토노미야코)주 005
번역주 005)
倭都라고도 하는데, 倭京이라는 명칭은 『日本書紀』 효덕천황 백치 4년 시세조, 천지천황 6년 8월조에 보이며, 倭都라는 용어는 백치 5년 정월조 등에 보이고 있다. 대체로 6세기 말 이후의 주로 아스카 지방에 있던 궁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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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기까지 군데군데 척후를 두었습니다. 또한 토도교(菟道橋;우지바시)주 006
번역주 006)
宇治川에 걸려있는 다리로 현존하는 宇治橋斷碑에 의하면 효덕천황 大化 2년(646)에 道登이 건립했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하여 『속일본기』 문무천황 4년 3월조의 道照의 沒傳에는 도조가 백치 4년(653)에 입당해 귀국 후에 건설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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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지키는 경비병[守橋]에게 명하여 황대제(皇大弟)주 007
번역주 007)
대해인황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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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의 사인(舍人)주 008
번역주 008)
율령제에서는 舍人이 관인조직에 편입되게 되는데, 이 무렵에는 아직 천황, 황족의 사적인 근시자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대해인황자의 사인은 임신의 난에서는 황자의 명에 따라 커다란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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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사로이 식량을 운반하는 것을 금지시키라 하였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이 꺼림칙하여 은밀히 조사해보니 그 내용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짐이 황위를 양보하고 은둔한 것은 오로지 병을 다스리고 몸을 온전히 하여 길이 수명을 다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부득이 화를 입게 되었다. 어찌 가만히 앉아 몸을 망칠 것인가.”라고 말하였다.

  • 번역주 001)
    여기서는 천무천황을 말한다. 천무천황의 실제 즉위는 672년이나 『日本書紀』는 즉위전의 대해인황자에 대해 모두 천황으로 표기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大友皇子를 옹립한 近江조정을 말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천지천황의 산릉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近江 大津宮을 중심으로 京이 형성되었다고 여겨지나 서쪽에는 산, 동쪽에는 거대한 비파호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평지는 좁고 긴 지형이었기 때문에 條坊을 갖춘 경의 존재를 상정하기는 어렵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倭都라고도 하는데, 倭京이라는 명칭은 『日本書紀』 효덕천황 백치 4년 시세조, 천지천황 6년 8월조에 보이며, 倭都라는 용어는 백치 5년 정월조 등에 보이고 있다. 대체로 6세기 말 이후의 주로 아스카 지방에 있던 궁도를 의미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宇治川에 걸려있는 다리로 현존하는 宇治橋斷碑에 의하면 효덕천황 大化 2년(646)에 道登이 건립했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하여 『속일본기』 문무천황 4년 3월조의 道照의 沒傳에는 도조가 백치 4년(653)에 입당해 귀국 후에 건설했다고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대해인황자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율령제에서는 舍人이 관인조직에 편입되게 되는데, 이 무렵에는 아직 천황, 황족의 사적인 근시자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대해인황자의 사인은 임신의 난에서는 황자의 명에 따라 커다란 활약을 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박정련웅군
지명
미농, 미농, 미장, 근강경, 왜경, 토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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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인황자가 화를 당할까 걱정함 자료번호 : ns.k_0042_0020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