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란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인접하고 있는 신드와 쿠취
9. 란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인접하고 있는 신드와 쿠취
신드와 쿠취가 인접하였다는 사실은 상식적 논거이다. 파키스탄은, 그렇지만, 란은 분할하는 실체이고 인접하는 경계선은 대강 북위 24도선을 따라 나 있다고 주장한다. 본 장과 관련하여, 이것과 연관된 증거는 이미 언급된 섹션 2, 3, 5 및 6 안에서 이미 논의된 바 있다. 인도 측 입장은, 신드와 쿠취 간 인접한 경계선은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고 인도는 이것을 뒷받침 하면서, 란 전체가 쿠취에게 속했고 신드의 한계는 란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끝났다고 말한다. 이 같은 문제들은 섹션 7과 8에서 논의된다. 인도는 더 나아가 신드와 쿠취 간 인접하고 있는 경계선은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다고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몇몇 여타 증거에 의존한다. 이 증거는 밑에 나와 있다. 인도가 말하기를 신드와 쿠취 간의 서쪽에 인접한 경계선인, “수직선”에 관한 증거는, 제 3장, 섹션 3 안에서 논의된다.
(a) “동부 나라(Narra) 등등에 관한 보고서” J. G. 피페(Fife)중위, 공학자, 특별한 임무에 대하여, 1852 (인도자료 C-100):
쿠취의 라오는 코리 강이 이전 신드 통치자들이 축조했던 제방을 제거함에 따라 그 이전 수로로 복원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1843년에 인디아 정부는 당해 지역에 대한 조사 측량을 명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인도자료 A-25). 신드 내 수로 감독관 이었던 베이커 대위가 측량자로 선임 되었다. 그는 두 개의 보고서 (파키스탄자료 B.271 및 인도자료 C-103)를 작성 하였다. 그 이후에, 영국 정부는 피페 중위 에게 인더스 강의 동쪽 지류를 재개(다시 염) 하는 문제를 좀 더 고려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그의 보고서 안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였다:
“영국 영토가 끝나는 지점 근처 로마-카-바자르에 관한 한, 상당한 양의 경작 가능한 육지가 있지만, 그 밑으로는, 쿠취의 라오의 소유물 가운데, 그 땅은 상당한 양의 소금을 머금고 있어서 매우 경작하기에는 불리하다고 한다.”
인도는, 이러한 언급은 영국 영토 즉 신드의 영토가 라힘 키 바자르까지만 연장되어 있고 그 밑으로는 피페가 설명 한 것처럼 쿠취의 라오의 소유로서 란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은, “근처” 라는 용어는 매우 한정적인 것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그 “근처” 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확장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진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축척 크기에 따른다. “근처”라는 것은 만약 어떤 이가 그것을 매우 커다란 축척으로 본다면 심지어 수백 마일까지 연장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피페의 생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진실로 아는바 없다. 이것과는 별개로, 피페는, 라힘 키 바자르 밑의 매 인치가 라오의 소유물 안에 있다고 말한 바는 없었다. 영국령이 끝난다는 것과 라오의 소유권 내에 있는 영토라는 개념사이에는, 영국령 또는 라오의 소유물 어느 쪽도 아닌 그 무엇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같은 입장은 피페의 진술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피페는 “그 토질은 소금을 많이 머금고 있다고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거기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단지 라힘 키 바자르까지 갔을 뿐이었고 그것을 넘어서 그가 언급했던 것은 수집된 정보로부터 나온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가 언급했던 계획은 훨씬 위, 심지어 히데라바드 보다 더 위에 있는 인더스 강의 동쪽 지류를 여는 것 이었는데 이 사업은 나라 프로젝트라고 지칭된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가능한 한 많은 부분에 걸쳐 신드에 물을 대는 것(관개)이었다. 이 사업이 수행 된다면 그것은 맨 끝 꼬리에 있는 카이르푸르 공국도 편익을 받는 것이 가능하였다, 쿠취에게도 이익이 될 수도 있었고 그러므로 쿠취는 이 사업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럼에 따라, 부수적으로, 카이르푸르와 쿠취에게 부여될 수 있는 편익이 있는가 여부에 관한 문제 또한 조사 중 이었다. 피페는 북쪽으로부터 탐사를 개시하였고, 그가 쿠취에게 부여될 수 있는 당해 사업상 편익에 관하여 부정적으로 보고서에 기재한 까닭에, 그는 라힘 키 바자르까지 이동했지만 그 밑으로 더 이상 탐사를 계속 할 필요가 없다고 사료 하였다. 그가 영국 영토가 라힘 키 바자르에서 끝난다고 말했을 때, 그의 영국령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영국이 그 안 에서 세수 증가를 목적으로 관심이 있는 영역이고, 그는 라힘 키 바자르를 넘어서는 란인 관계로 신드의 마을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확하고 구조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그는 “영국영토가 끝나는” 라는 표현을 사용 하였다. 인도는, “근처” 라는 단어는 일정한 근접성을 암시한다고 답한다. 그 용어가 매우 결정적이지 않고 그 완전한 의미가 축척에 따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피페는 커다란 맥락(기준, 축척)에서 사유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관개라는 목적으로 당해 지역을 조사하는 중이었고 그는 당해 경계선은 라힘 키 바자르의 근처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정한 어떤 장소를 생각하는 중이었고 그런 차원에서, 명백하게 “근처(주변)”는 매우 가까운 혹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그 무엇을 의미한다. 란의 폭은 평균적으로 대략 48 마일이고 그는, 라힘 키 바자르의 근처에 있는 것으로써, 란의 중간(가운데)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의미했던 바는 그 경계선은 라힘 키 바자르에 매우 가까운 데 있다는 점 이었다. 그 문장 내용 가운데, “이웃하여” 라는 단어는 그 통상적 의미처럼 단어가 중요하다. 전체 보고서를 통해 본다면, 피페가 의미하는 것은 누구든지 통상적으로 인식하는 것 -바로 이웃하여 라는 의미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쿠취의 라오의 소유물 안에 그 장소 밑에” 라고 말할 때에는, 그는 그 장소 넘어서는 라오의 소유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란의 가장자리까지 실제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라힘 키 바자르를 넘어서 무엇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그의 일이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관개를 논하고 있었고 그가 모든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공학자였다는 사실은 그의 의견의 평판을 반드시 떨어뜨린 것은 아니다. 피페는 베이커의 보고서를 계속 하는 중이었고 그것에 대하여 코멘트 하는 중이었다; 베이커는 분명 쿠취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고, 그리하여 피페의 관심의 한계를 신드로만 한정하여 그가 이 주를 넘어서 더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틀린 말이 될 것이다.
파키스탄은, 누구도 얼마만큼 멀리 밑으로 그리고 라힘 키 바자르에 어느 정도 가까이 영국 영토가 끝나고 쿠취 영토가 시작되는지 등을 결정할 수 없다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만약 누구라도 라힘 키 바자르 밑으로 간다면, 그는 라오의 영토가 시작되는 장소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밑으로 10마일 인지 12마일 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피페는 실제로 거기에 없었고 아무도 그에게 라오의 영토가 시작되는 곳이 어딘지 말해주는 이는 없다.
파키스탄은, 누구도 얼마만큼 멀리 밑으로 그리고 라힘 키 바자르에 어느 정도 가까이 영국 영토가 끝나고 쿠취 영토가 시작되는지 등을 결정할 수 없다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만약 누구라도 라힘 키 바자르 밑으로 간다면, 그는 라오의 영토가 시작되는 장소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밑으로 10마일 인지 12마일 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피페는 실제로 거기에 없었고 아무도 그에게 라오의 영토가 시작되는 곳이 어딘지 말해주는 이는 없다.
(b) 전후 개발 계획, 1945 (인도자료 TC 48):
이것은 신드 정부가 1945년에 발간한 책이다. 그것은 신드 정부의 첫 번째 전후 계획의 초안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각각의 정부부서의 개별적 계획안으로 구성되어있다. 인도는, 그 책은 신드 정부가 일정한 계획을 가장 먼저 결정하였고 당해 정부는 신드 지방 개발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그들 구성원들은 신드 수상을 장으로, 모든 장관들을 당연직 구성원으로 그리고 몇몇 고위 공직자들과 민간인들을 구성원들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지적한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타르 파르카르 구역 내 숲으로 된 협지에 농장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그러한 협지들 중 하나가 “라힘-키-바자르에서 아데감을 통하여 베라노까지 신드-쿠취 경계선을 따라 나 있는 협지”라고 묘사 되었다 (전게서, 175면). 인도는, 이것은 신드 - 쿠취 경계가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 것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인도 측에 따르면,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진 위원회가 이것은 신드 - 쿠취 경계선이었다고 생각했다.
파키스탄은 그 책 안에서 그 안에 있는 개별적 계획안들은 정부 부서의 장들이 각각 마련했다고, 그리고 그러한 계획안들 중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당해 정부에 의해 아직 조사되고 승인 되어야만 한다고 하는 인용문들을 지적하고, 그러므로 그 계획은 전후 기간을 위하여 제한된 일정한 라인만을 보여줄 뿐이어서, 그것은 다양한 부서들 내에서 준비된 여러 가지 계획안들의 편찬물이기에, 심도 있는 대안들이 그 이후에 필요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당해 위원회는 그 계획안들을 승인해야 하고 혹은 조사해야 하며 그 책은 그 위원회가 결정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는 어떠한 부분도 담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 된다. 당해 위원회가 그 계획안들을 살펴보았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인도가 의지하고 있는 계획안은 신드 내 일개 전직 산림관리자의 권고안이다. 그것은 정부 차원의 산림관리자의 계획안도 아니다. 파키스탄은 도로를 다루고 관리하고 있는 또 다른 계획안을 관심을 기울인다. 의도된 도로를 위한 계획안과 함께, 코히스탄 사막과 란 지역을 제외하고, 신드 전속 지역 내에 어느 장소도 길에서부터 약 2마일 이상 떨어져 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가진 내용이 삽입된다. 누가 도로 계획안을 초안했던지 간에 그는 신드가 란의 몇몇 영역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은 그 책 안에서 그 안에 있는 개별적 계획안들은 정부 부서의 장들이 각각 마련했다고, 그리고 그러한 계획안들 중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당해 정부에 의해 아직 조사되고 승인 되어야만 한다고 하는 인용문들을 지적하고, 그러므로 그 계획은 전후 기간을 위하여 제한된 일정한 라인만을 보여줄 뿐이어서, 그것은 다양한 부서들 내에서 준비된 여러 가지 계획안들의 편찬물이기에, 심도 있는 대안들이 그 이후에 필요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당해 위원회는 그 계획안들을 승인해야 하고 혹은 조사해야 하며 그 책은 그 위원회가 결정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는 어떠한 부분도 담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 된다. 당해 위원회가 그 계획안들을 살펴보았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인도가 의지하고 있는 계획안은 신드 내 일개 전직 산림관리자의 권고안이다. 그것은 정부 차원의 산림관리자의 계획안도 아니다. 파키스탄은 도로를 다루고 관리하고 있는 또 다른 계획안을 관심을 기울인다. 의도된 도로를 위한 계획안과 함께, 코히스탄 사막과 란 지역을 제외하고, 신드 전속 지역 내에 어느 장소도 길에서부터 약 2마일 이상 떨어져 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가진 내용이 삽입된다. 누가 도로 계획안을 초안했던지 간에 그는 신드가 란의 몇몇 영역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c) 바로다 내 총독 대리가 서 인디아 공국들 및 구자랏을 위하여, 뉴델리 소재 중앙수로 관계 및 통항 위원회의 장에게 보낸 메모, 1946 (인도자료 A-63):
C. G. 호에스가 쿠취의 마하라오에게 보낸 서신, 1944 (인도자료 A-64), 그리고 관개 시설구성원인 모신 알리가 기록한 노트, CWINC, 1947년 5월 (인도자료 A-65):
이들 서류는 인더스 강으로부터의 수로를 통하여 반니에 물을 대려고 하는 쿠취의 라오의 생각과 연관되어 있다. 인도 측 입장은 다음과 같다: 1943년에 쿠취의 라오는 인도 정부에게 당해 공국에게 여러 가지 관계 사업에 관하여 조언을 해줄만 한 적당한 공학자들의 이름을 천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인도 정부는 공공사업부 내 선임 공학자 겸 신드 정부장관이었던 C. G. 호에스가 천거되었다. 라오는 그것에 따라 호에스에게 인더스 강물을 쿠취로 가져오는 계획안의 실행가능성을 조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1943년에 작성된 호에스의 보고서는 인도자료 A-63에 부속된다. 그는, 그 계획안은, 라오가 “신드 국경선의 다음에 있는 룬의 북쪽 편 땅”을 경작할 수 있다면, 실행한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숙고를 권유하는 대안적 계획안을 제시하였다. 이 대안적 계획은 제룩 근처 인더스 강가에 댐을 건설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이러한 댐 공사는 신드 영토 내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부터 약 75마일 가량 떨어져서 위치하고 있다”, 만약 75마일 지점에 있는 란의 토질이 쌀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적합하다고 판명되고 그 영역이 대략 10만 에이커에 달한다면, 그 지점으로부터 그 수로는 반니 내 루나까지 설치되어야 했거나 혹은 란의 경계선을 따라 바로 그 75마일 지점에서 관계시설이 시작되어야만 했었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75마일 지점에서 루나까지의 수로 라인에 대한 수평보기(Levelling)를, 그리고 반니 땅 위에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과 75마일 바로 남쪽에 있는 란의 10만 에이커 영역 내의 토질의 적합성 등을 조사하는 것, 그리고 몬순기간(우기) 동안 란의 상태를 관찰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의 보고서와 함께, 호에스는 간략한 약도 (인도지도 B-55)를 제출하였다. 인도는 쿠취 내 가장 가까운 지점이 제룩에서 75마일 떨어진 곳이고, 대안적 계획안은 75마일 밑으로 란 내 10만 에이커에 달하는 쌀 경작지 조성을 위한 것이라는 호에스의 언급에 의지하면서, 신드의 선임 공학자 겸 신드 정부 장관이었던 호에스는 란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제룩(Jherruck)에서 75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신드 경계선이 끝나고 동시에 쿠취 경계선이 시작된다고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해에, 그는, 자신이 대안으로 제안된 계획안을 더욱 깊이 살펴보았다고 하는 내용의, 인도자료 A-64에 있는 편지를 라오에게 썼다. 그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들 서류는 인더스 강으로부터의 수로를 통하여 반니에 물을 대려고 하는 쿠취의 라오의 생각과 연관되어 있다. 인도 측 입장은 다음과 같다: 1943년에 쿠취의 라오는 인도 정부에게 당해 공국에게 여러 가지 관계 사업에 관하여 조언을 해줄만 한 적당한 공학자들의 이름을 천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인도 정부는 공공사업부 내 선임 공학자 겸 신드 정부장관이었던 C. G. 호에스가 천거되었다. 라오는 그것에 따라 호에스에게 인더스 강물을 쿠취로 가져오는 계획안의 실행가능성을 조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1943년에 작성된 호에스의 보고서는 인도자료 A-63에 부속된다. 그는, 그 계획안은, 라오가 “신드 국경선의 다음에 있는 룬의 북쪽 편 땅”을 경작할 수 있다면, 실행한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숙고를 권유하는 대안적 계획안을 제시하였다. 이 대안적 계획은 제룩 근처 인더스 강가에 댐을 건설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이러한 댐 공사는 신드 영토 내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부터 약 75마일 가량 떨어져서 위치하고 있다”, 만약 75마일 지점에 있는 란의 토질이 쌀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적합하다고 판명되고 그 영역이 대략 10만 에이커에 달한다면, 그 지점으로부터 그 수로는 반니 내 루나까지 설치되어야 했거나 혹은 란의 경계선을 따라 바로 그 75마일 지점에서 관계시설이 시작되어야만 했었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75마일 지점에서 루나까지의 수로 라인에 대한 수평보기(Levelling)를, 그리고 반니 땅 위에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과 75마일 바로 남쪽에 있는 란의 10만 에이커 영역 내의 토질의 적합성 등을 조사하는 것, 그리고 몬순기간(우기) 동안 란의 상태를 관찰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의 보고서와 함께, 호에스는 간략한 약도 (인도지도 B-55)를 제출하였다. 인도는 쿠취 내 가장 가까운 지점이 제룩에서 75마일 떨어진 곳이고, 대안적 계획안은 75마일 밑으로 란 내 10만 에이커에 달하는 쌀 경작지 조성을 위한 것이라는 호에스의 언급에 의지하면서, 신드의 선임 공학자 겸 신드 정부 장관이었던 호에스는 란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제룩(Jherruck)에서 75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신드 경계선이 끝나고 동시에 쿠취 경계선이 시작된다고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해에, 그는, 자신이 대안으로 제안된 계획안을 더욱 깊이 살펴보았다고 하는 내용의, 인도자료 A-64에 있는 편지를 라오에게 썼다. 그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만약 귀하께서 란의 북쪽 편에 있는 귀하의 토지를 쌀 재배에 적합하다고 느끼신다면 그리고 귀하께서 또한 금전적 계획이 원활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본인은 귀하께서 정치성을 통하여 신드 정부에게 편지를 보낼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인도가 의지하는 이 내용은 란의 북쪽 부분에 있는 지역이 쿠취에게 속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312
호에스의 보고서는, 쿠취의 데완의 요청에 따라, 총독대리가 인디아 정부 중앙수로관개 및 통항위원회에 보냈다. 그 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모신 알리 씨가 쿠취와 당해 지역을 방문하였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부 신드 댐 건설 사업에서 끌어온 수로에 의해 룬의 북쪽 신드 경계선에 접하고 있는 경작 가능한 토지에 물을 대는 것은 매우 실현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인도자료 A-65 제5문 (a)).
당해 조직의 장과 토의를 마친 후, 그 역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을 남겼다:
“쿠취는 거대한 룬의, 남쪽 해변과 인더스 강 유역 토지, 북쪽 해변에 있는 토지를 관개하기 위하여 인디아 수자원에 대한 적절한 몫을 허여 받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의견입니다, 본인이 위에 한 제5문 (a)에 언급한 것을 보시오”.
인도는, 신드 정부 장관 겸 신드 선임공학자이었던 호에스와 당해 집정관은 모두 쿠취가, 제룩 댐 건설, 다시 말해 데 바브라오(Deh Babrao)에 소재하고 있는 수량조절장치로부터 75마일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고, 그것이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이었다는 입장을 묵인하였고 채택하였다고 말한다. 호에스는, 신드 영역의 끝의 위치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확신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종류의 정교한 계획안을 결코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설명은, 호에스의 보고서는 인도지도 B-44속에 있는 자주색라인이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이었다는 가정 위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잘못됐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파키스탄의 설명은, 호에스의 보고서는 인도지도 B-44속에 있는 자주색라인이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이었다는 가정 위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잘못됐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색인어
- 지명
- 신드, 쿠취, 란, 신드, 쿠취, 란, 란, 쿠취, 신드, 란, 신드, 쿠취, 란, 신드, 쿠취, 나라(Narra), 쿠취, 코리 강, 신드, 신드, 인더스 강, 쿠취, 신드, 라힘 키 바자르, 쿠취, 란, 라힘 키 바자르, 라힘 키 바자르, 히데라바드, 인더스 강, 나라, 신드, 카이르푸르, 쿠취, 쿠취, 카이르푸르, 쿠취, 쿠취, 라힘 키 바자르, 라힘 키 바자르, 라힘 키 바자르, 란, 신드, 라힘 키 바자르, 란, 라힘 키 바자르, 란, 라힘 키 바자르, 쿠취, 라힘 키 바자르, 쿠취, 라힘 키 바자르, 쿠취, 라힘 키 바자르, 신드, 신드, 신드, 신드, 신드, 타르 파르카르, 라힘-키-바자르, 아데감, 베라노, 신드, 쿠취, 신드, 쿠취, 란, 신드, 쿠취, 신드, 코히스탄 사막, 란, 신드, 신드, 란, 구자랏, 쿠취, 인더스 강, 반니, 쿠취, 쿠취, 신드, 인더스 강, 쿠취, 신드, 룬, 인더스 강, 신드, 란, 반니, 루나, 란, 루나, 반니, 란, 란, 쿠취, 란, 신드, 신드, 란, 신드, 쿠취, 란, 신드, 란, 쿠취, 쿠취, 쿠취, 신드, 룬, 신드, 쿠취, 거대한 룬, 인더스 강, 신드, 쿠취, 신드, 쿠취, 신드, 신드, 쿠취
- 법률용어
- 묵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