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신드의 경계로써 란의 북쪽 가장자리
8. 신드의 경계로써 란의 북쪽 가장자리
(a)에서 (d) 봄베이 총독인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이 신드의 아미르에게 보낸 편지, 1820 (인도자료 A-90).
봄베이 정부가 바로다 소재 총독 대리에게 보낸 편지, 1820 (인도자료 A-91).
쿠취의 총독 대리인 맥무르도 대위가, 히데라바드에 있는 원주민 고문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와 함께, 신드의 아미르에게 보낸 편지, 1820 (인도자료 A-92).
봄베이 총독인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이 신드의 아미르에게 보낸 편지, 1820 (인도자료 A-93):
19세기의 첫 번째 십년 동안, 코사스(Khosas) 산적 떼들이 쿠취, 카티아와르, 팔란푸르, 라드한푸르, 등의 영토 안에서 약탈을 일삼고 그 영역을 침범하곤 하였다. 그 산적 떼들이 파르카르 출신이었지만 신드의 아미르가 그들을 뿌리 뽑을 수 없었고 위에 언급한 영역 속으로 그들이 침탈해 들어가는 것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 되었던 까닭에, 신드의 아미르는 계속 되풀이하여 영국 정부가 이들 산적 떼들을 통제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인도는, 영국세력이 1819년에 쿠취와 조약을 체결한 이후에, 그들은 그 산적 떼들을 징벌하려는 목적으로 일정한 무력을 행사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코사스의 침탈로부터 그들의 신민(백성)과 동맹세력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그에 따라서, 봄베이 총독인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은 신드의 아미르에게 무력의 행사를 제안하고 그 방법을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아미르가 그렇게 계획된 무력이 오로지 산적떼들과 전투하기 위함이지 신드를 침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게끔 의도되게 했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봄베이 총독은 인도자료 A-90 속에 있는 그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쿠취의 총독 대리인 맥무르도 대위가, 히데라바드에 있는 원주민 고문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와 함께, 신드의 아미르에게 보낸 편지, 1820 (인도자료 A-92).
봄베이 총독인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이 신드의 아미르에게 보낸 편지, 1820 (인도자료 A-93):
19세기의 첫 번째 십년 동안, 코사스(Khosas) 산적 떼들이 쿠취, 카티아와르, 팔란푸르, 라드한푸르, 등의 영토 안에서 약탈을 일삼고 그 영역을 침범하곤 하였다. 그 산적 떼들이 파르카르 출신이었지만 신드의 아미르가 그들을 뿌리 뽑을 수 없었고 위에 언급한 영역 속으로 그들이 침탈해 들어가는 것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 되었던 까닭에, 신드의 아미르는 계속 되풀이하여 영국 정부가 이들 산적 떼들을 통제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인도는, 영국세력이 1819년에 쿠취와 조약을 체결한 이후에, 그들은 그 산적 떼들을 징벌하려는 목적으로 일정한 무력을 행사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코사스의 침탈로부터 그들의 신민(백성)과 동맹세력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그에 따라서, 봄베이 총독인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은 신드의 아미르에게 무력의 행사를 제안하고 그 방법을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아미르가 그렇게 계획된 무력이 오로지 산적떼들과 전투하기 위함이지 신드를 침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게끔 의도되게 했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봄베이 총독은 인도자료 A-90 속에 있는 그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은 영국정부가 코사스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점령 하거나 혹은 란을 넘어서 그의 연결지역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그리하여 총사령관은 신드 영역에 진입하려는 것을 금하는 분명한 명령을 받을 것이다.”
바로다에 있는 총독 대리에게 이와 같은 계획과 관련한 지시사항을 부여 하면서, 봄베이 정부는 그 편지 안에서 (인도자료 A-91)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하였다:
“존경하옵는 평의회 내 총독 각하께서는 우리의 정책이 코사스 산적 떼들을 우리의 국경선으로부터 그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점령하려는 의도 없이 혹은 란을 넘어서 우리의 연결 지역을 확장 하려는 의도 없이 일정한 거리를 두어 제거하는데 한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사료하고 계십니다...”.
쿠취의 총독 대리인 맥무르도 대위 역시 신드의 아미르에게 인도자료 A-92속에 있는 그 편지를 썼는데, 그 안에서 그는 아미르에게 영국정부는, 코사스를 징벌하기 위하여 타르 파르카르 구역에 진입 하면서, “그 국경선을 란의 자연적 한계를 넘어서까지 확장 하려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 는 것을 분명히 해 주었다.
몇 달 후, 봄베이 총독인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은 신드의 아미르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또다른 편지(인도자료 A-93)를 썼다:
몇 달 후, 봄베이 총독인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은 신드의 아미르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또다른 편지(인도자료 A-93)를 썼다:
“영국정부는 룬을 넘어서 그의 연결지역을 확장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고, 단지 우리의 국경선을 우리의 동맹 세력 지방들을 산적 떼들의 침탈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써 설정해 놓는 상태만을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인도는 영국정부가 란을 넘어서 자신의 연결지역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이 편지들 속의 언급에 대하여 답하면서, 신드의 아미르의 영토는 란의 북쪽 끝 가장자리에서 끝나고 란은 신드의 일부분으로 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 편지는, 영국은 그들 자신의 영토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맹 세력, 쿠취와 여타 이웃하고 있는 인디아 공국들, 의 것들 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당해 조약 상, 쿠취의 영토의 완전성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파키스탄은, 그 사용이 제안된 무력행사는 라드한푸르와 조드푸르와 관련한 것이었이지 쿠취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쿠취는 한명의 병사도 파견하지 않았고 이러한 입장은 란은 쿠취의 영토였다는 주장과 양립될 수 없다. 그것은 란은 하나의 장애물(barrier장벽)이다. 라는 생각과 상통할 수 있었다. “란을 넘어서” 라는 단어는 팔란푸르를 넘어서를 의미한다. 인도 자료 A-90은, 그 원정이 종료된 이후에, 그 무력 집단은 “쿠취(Cutch) 카티아와르 국경선 안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말 한다; “쿠취(Cutch) 경선” 혹은 “카이타와르 국경선” 용어는 란의 반대편 쪽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무력행사는 팔란푸르를 기점으로 란을 가로질러 수행 되는 중이다. 인도 자료 A-91은, “우리의 정책은 우리의 국경선으로부터 일정 거리에 걸쳐 코사스를 제거하는데 한정되어야만 한다...” 라고 말한다; 쿠취인, “우리의 국경선” 은 총독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으로서, 그가 코사스가 있었으면 하는 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다; 그는 코사스를 그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점령하려는 의도 없이 그의 국경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떨어뜨려 놓은 채 유지하기를 원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그의 생각은, 그들과 그 사이에 일정한 장벽(장애물)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란을 우리와 신드 간 장벽으로써” 고려하는 범주만큼 앞으로 나간다 (인도 자료 A-91). 인도 자료 A-92는 란의 자연적 경계를 쿠취와 구자랏에 인접하는 것으로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란은 하나의자연적 장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밖에, 그것은 그 이전의 두 글자처럼 정확하게 동일한 생각을 개진한다. 인도 자료 A-93속에서, “우리의 국경선”라는 단어는 수차례에 걸쳐 사용 된다. 란은 우리의 국경선 바로 옆에 있다 - 란의 이쪽 편에 쿠취, 카티아와르, 팔란푸르의 국경선.
파키스탄은, 그 사용이 제안된 무력행사는 라드한푸르와 조드푸르와 관련한 것이었이지 쿠취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쿠취는 한명의 병사도 파견하지 않았고 이러한 입장은 란은 쿠취의 영토였다는 주장과 양립될 수 없다. 그것은 란은 하나의 장애물(barrier장벽)이다. 라는 생각과 상통할 수 있었다. “란을 넘어서” 라는 단어는 팔란푸르를 넘어서를 의미한다. 인도 자료 A-90은, 그 원정이 종료된 이후에, 그 무력 집단은 “쿠취(Cutch) 카티아와르 국경선 안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말 한다; “쿠취(Cutch) 경선” 혹은 “카이타와르 국경선” 용어는 란의 반대편 쪽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무력행사는 팔란푸르를 기점으로 란을 가로질러 수행 되는 중이다. 인도 자료 A-91은, “우리의 정책은 우리의 국경선으로부터 일정 거리에 걸쳐 코사스를 제거하는데 한정되어야만 한다...” 라고 말한다; 쿠취인, “우리의 국경선” 은 총독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으로서, 그가 코사스가 있었으면 하는 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다; 그는 코사스를 그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점령하려는 의도 없이 그의 국경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떨어뜨려 놓은 채 유지하기를 원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그의 생각은, 그들과 그 사이에 일정한 장벽(장애물)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란을 우리와 신드 간 장벽으로써” 고려하는 범주만큼 앞으로 나간다 (인도 자료 A-91). 인도 자료 A-92는 란의 자연적 경계를 쿠취와 구자랏에 인접하는 것으로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란은 하나의자연적 장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밖에, 그것은 그 이전의 두 글자처럼 정확하게 동일한 생각을 개진한다. 인도 자료 A-93속에서, “우리의 국경선”라는 단어는 수차례에 걸쳐 사용 된다. 란은 우리의 국경선 바로 옆에 있다 - 란의 이쪽 편에 쿠취, 카티아와르, 팔란푸르의 국경선.
p.305
인도는, 무력 사용에 있어서 쿠취의 부재는 어느 한 순간도 쿠취가 당해 영토들이 산적떼들의 침탈로부터 구제 받아야할 동맹세력들 중 하나로 명백히 일컬어지는 논거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원정 계획은, 영국 군대가 그 산적 떼들이 “사막을 가로질러 쫒겨날 때까지” 즉, 타르 파르카르 사막의 다른 편까지 그들을 쫒아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군대의 일부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잠시 동안 다시 돌아오려고 하는 코사스 도적떼들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진군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머무를 수도 있다; 그들이 충분히 그러한 것을 물리쳤다고 만족 할만한 근거가 있기만 하면 바로, “그들은 쿠취 혹은 카티아와르 국경선 안으로 철군 할 것이다”. 코사스 족들을 북쪽으로 밀어낸 후에, “그 군대는 란의 인접 지역으로 철수할 것이다”, 이것은 란의 북쪽 편에 인접하고 있어서 그들은 코사스가 만약 되돌아오려고 한다면 그들에 대하여 진군할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 군대가 코사스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바로 “쿠취 또는 카티아와르 국경선”, 다시 말해서, 쿠취 혹은 카티아와르 속으로 그 군대만이 철수할 수 있었던 단단한 육지로 철수하는 것이 예상 됐었다. 그 편지들은, - 왜냐하면 그것은 신드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국이 란을 가로지를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것을 넘어서 그들은 계획되고 제한된 목적상 엄격하게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장벽(장애물)” 라는 단어를 양측에 있는 공국들 간을 가르는 실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것을 문맥상 의도된 것 이상으로 그 의미를 확장 시킨다: 영국이 말했던 것은 그들 자신들이 란의 반대편에 주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란을 코사스 족들을 일단 쫒아내 버리기 위한 충분한 장벽으로써 취급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었다. 란의 본질적 성격 때문에, 상호 연락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었고, 더 나아가 영국은 그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었으며 그들의 입지가 더욱 어려워짐에 따라, 란은 하나의 물리적 장애물로써 취급될 필요가 있었다. “구자랏과 쿠취에 접하는 룬의 자연적 경계를 넘어선 국경선” 라고 말함에 따라, 그것은, 영국이 란의 자연적 한계를 넘어서 그들의 국경선 - 란의 다른 편에 있는 국경선을 확장 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쿠취와 구자랏에 인접하고 있는 란은 단순한 설명 이었다. 그 편지의 중요한 내용은 란은 당시에 아미르의 재산 혹은 그의 주권 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인도 자료 A-90 속에 나타난, “그들은 쿠취 또는 카티아와르 국경선 안에 철수할 것이다” 라는 용어는 그것들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 -란 그 자체가 경계선이다 이외의 어떠한 것으로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진술 한다; 그것에는 두 가지 가장자리가 있다, 한 쪽은 타르 파르카르, 그리고 다른 한 쪽은 쿠취와 카티아와르 쪽 이다. 그 군대는 일정한 상황이 벌어질 때 까지 타르 파르카르 편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항이 만족스럽게 다루어진다면, 그것은 쿠취 쪽으로 올 것이다. 넓은 벨트(belt)인 란은 당해 경계선이다. 인도 자료 A-91은 란을 “우리와 신드” 사이에 있는 장벽으로 본다고 언급한다; 그것이 여기서 경계선으로 취급되는 란의 가장자리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언어를 완전히 그리고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장벽은 란의 폭이다. 인도 자료 A-92는 “구자랏과 쿠취에 인접하고 있는 란의 자연적 한계” 라고 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 자료 A-90 속에 나타난, “그들은 쿠취 또는 카티아와르 국경선 안에 철수할 것이다” 라는 용어는 그것들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 -란 그 자체가 경계선이다 이외의 어떠한 것으로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진술 한다; 그것에는 두 가지 가장자리가 있다, 한 쪽은 타르 파르카르, 그리고 다른 한 쪽은 쿠취와 카티아와르 쪽 이다. 그 군대는 일정한 상황이 벌어질 때 까지 타르 파르카르 편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항이 만족스럽게 다루어진다면, 그것은 쿠취 쪽으로 올 것이다. 넓은 벨트(belt)인 란은 당해 경계선이다. 인도 자료 A-91은 란을 “우리와 신드” 사이에 있는 장벽으로 본다고 언급한다; 그것이 여기서 경계선으로 취급되는 란의 가장자리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언어를 완전히 그리고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장벽은 란의 폭이다. 인도 자료 A-92는 “구자랏과 쿠취에 인접하고 있는 란의 자연적 한계” 라고 하고 있다.
(e) 해밀톤, 동 인디아 지명사전, 제 2권, 1828 (인도자료 C-36):
이 지명사전은 신드의 통상적 경계선을 묘사하면서, 모래사막과 쿠취는 그것의 동쪽에 있는 반면에, 쿠취와 바다는 신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한다. (556면). 인도는, 그 같은 설명은 광범위한 것이고 자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이 모래 황무지를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동쪽에 있는 파르카르와 쿠취인데, 이것은 란이 쿠취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은, 그 지명 사전 역시 “신드의 동쪽 한계는 특별히 잘 정해지지 않았지만 고 맥무르도 대위 그것들은 푸란 수도 혹은 옛 인더스 강에 의해 정해져야만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고 지적한다 (전게서, 556면). 그것은, 동쪽 한계가 잘못 정해졌으나 맥무르도의 의견은 아마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동쪽에 있는 그 모래 사막은 맥무르도가 인식한 그 황무지인데, 그것은 란을 포함하고 있다. 이 지명사전에 부록으로 된 지도가 란은 분할하는 실체라고 보여준다.
(f) 봄베이 정부가 동인도회사 이사회의 편지로부터의 발췌문과 함께, 쿠취의 총독 대리에게 보낸 편지, 1834 (인도자료 A-94):
코사스 산적떼들을 통제할 수 없어서 궁극적으로 영국정부는 파르카르 내에 군사기지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생각과 관련하여, 당해 이사회는 그 편지 속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하였다:
“여기 이후로 우리는 당신의 의도는 당해 지방 자체 내에 군사기지를 유지함으로써 파르카르의 약탈인들을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국경선을 따라 자그마한 인원들을 주둔시키는 것 말고.”
인도에 따르면, 그 국경선에 대한 언급은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파키스탄은, 그들은 팔란푸르 해변가를 따라 자그마한 수의 무리들을 배치시키는 중이었고 그것이 바로 국경선이었다고 말한다. 인도는, 영국이 타르 파르카르 안에 자그마한 전초적 경계부대를 원래 두었었지만 그 다음에 그들은 영구적 기지를 만들기로 결정하였다고 답한다.
(g) 쏜톤, 동 인도 회사 정부와 인도 대륙의 부족 공국들 아래 있는 영토들에 관한 지명사전, 제 4권, 1854 (인도자료 C-40):
이 지명사전은 신드를 쿠취는 그 남쪽에 놓아둔 채, 북위 23도 37분과 28도 32분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490-1면). 동일 지명사전 제 2권 (인도자료 C-23)은, 쿠취의 한계를 북위 22도 47분에서 24도 40분까지 연장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44-5면). 인도는, 신드와 쿠취에 대한 설명을 같이 본다면 그것은 란의 어느 부분도 신드 안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신드의 남쪽 한계는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은, 란을 포함하고 있는 쿠취라는 설명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신드를 설명하는 것은 란을 필연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쿠취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 관하여 파키스탄 측의 언급은 상기 섹션 7 안에 나타나 있다. 쿠취 영역은 란을 제외하고 라고 하면서, 신드 영역은 그렇게 하지 않고 따라서 란의 어느 부분도 신드에 속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면서 인도는 답한다.
(h) 라이크스, 신드의 타르와 파르카르 구역에 관한 수상록 (파키스탄 책 24):
라이크스는 이 수상록 속에서, 그의 책임 아래 있는 타르의 그 부분이 “쿠취의 거대한 란의 북쪽 경계를 따라 나 있는 하나의 협지이다” (2면) 라고 말한다. 인도에 따르면, 이것은, 타르 파르카르의 구역 지방행정관이었던 라이크스가 쿠취의 란의 북쪽 경계를 타르 파르카르의 경계선이라고 보았다는 사실을 설정해 준다. 이 문제는 위의 섹션 7 안에서 더 자세히 논의된다.
p.307
(i) 1882-83 봄베이 행정 보고서 (인도자료 C-41):
이 보고서는, 신드 내 히데라바드 구역은 북위 24도 13분과 26도 15분 사이에 놓여있다 (65면)고 언급한다. 타르 파르카르 구역은 북위 24도 13분과 26도 15분 사이 그리고 동경 68도 51분과 71도 8분 사이에 놓여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66면). 따라서, 인도는, 히데라바드와 타르 파르카르 구역은 북위 24도 13분 밑으로 연장되어 있지 않았고, 타르 파르카르 구역은 동경 71도 8분을 넘어서까지 확장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j) 및 (k) 신드 주의 지명사전집 - “B" - 제 6권 - 타르 및 파르카르 구역, 1919 및 1926 (인도자료 C-43 및 C-44):
이들 지명사전들은 타르 파르카르 구역들을 북위 24도 13분과 26도 21분 사이에 그리고 동경 68도 40분과 71도 11분 사이에 놓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1 면). 인도는, 당해 구역은 따라서 북위 24도 13분을 넘어서 그리고 동경 72도 11분 넘어서까지 연장되지 않아서, 그것은 신드로부터 란을 제외한다고 말한다.
이들 지명사전집은 디플로 탈루카는 북위 24도 16분과 24도 51분 사이에, 미티 탈루카는 24도 16분과 24도 58분 사이에 그리고 나가르 파르카르 탈루카는 24도 11분과 25도 02분 사이에 놓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각각 31 및 23면). 이들 탈루카에 대한 설명은, 인도측에 따르면, 역시 란의 어느 부분도 신드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이들 지명사전집은 디플로 탈루카는 북위 24도 16분과 24도 51분 사이에, 미티 탈루카는 24도 16분과 24도 58분 사이에 그리고 나가르 파르카르 탈루카는 24도 11분과 25도 02분 사이에 놓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각각 31 및 23면). 이들 탈루카에 대한 설명은, 인도측에 따르면, 역시 란의 어느 부분도 신드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l) 신드 주의 지명사전 - "B" - 제2권 히데라바드 구역, 1920 (인도자료 C-42):
히데라바드 구역은 이 지명사전 속에서 북위 24도 11분과 26도 18분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되고 (1면), 그리고 그 구역의 바딘 탈루카는 북위 24도 13분과 24도 58분 사이에 놓여있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인도는 히데라바드 구역은 따라서 란의 어떠한 부분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m) 인디아 제국 지명사전, 일련의 지방, 봄베이 관부, 제 2권, 1909 (인도자료 C-29):
이 지명사전은, 신드의 한계와 관계된, 신드의 남쪽 구역과 탈루카의 경위도 수치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카라치 구역 북위 66도 42분과 68도 48분 (237면).
히데라바드 구역 북위 24도 13분과 27도 14분 (219면).
타르 파르카르 구역 북위 24도 13분과 26도 15분 (298면).
자티 탈루카 동경 68도 1분과 68도 48분 (250면).
바딘 탈루카 북위 24도 13분과 24도 58분 (229면).
디플로 탈루카 북위 24도 16분과 24도 51분 (311면).
미티 탈루카 북위 24도 17분과 24도 57분 (310면).
나가르 파르카르 탈루카 북위 24도 14분과 25도 02분 (311면).
히데라바드 구역 북위 24도 13분과 27도 14분 (219면).
타르 파르카르 구역 북위 24도 13분과 26도 15분 (298면).
자티 탈루카 동경 68도 1분과 68도 48분 (250면).
바딘 탈루카 북위 24도 13분과 24도 58분 (229면).
디플로 탈루카 북위 24도 16분과 24도 51분 (311면).
미티 탈루카 북위 24도 17분과 24도 57분 (310면).
나가르 파르카르 탈루카 북위 24도 14분과 25도 02분 (311면).
인도는, 비록 신드 구역과 탈루카의 한계가 정해져도, 란의 여하한 부분도 신드에게 속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만약 쿠취가 란의 일부분을 갖는 것으로 혹은 24도선까지 연장된 것으로 정해진다면, 하나의 기이한 결과가 뒤따른다: 신드는 란의 어떠한 부분도 없이 한정되고, 쿠취는 란의 일정한 부분과 함께 한정되며 란의 그 나머지 부분은 미결인 채로 남아 있다.
반면에, 파키스탄은, 신드와 쿠취는 란의 해변에 접하고 있는 두 공국이고, 해양적 속성을 갖고 있는 란은 이러한 해변 영토들을 가르는 것으로 설명되고 묘사된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의 입장은, 육지 이외의 란의 속성은 당해 공국의 육지 안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파키스탄은, 신드와 쿠취는 란의 해변에 접하고 있는 두 공국이고, 해양적 속성을 갖고 있는 란은 이러한 해변 영토들을 가르는 것으로 설명되고 묘사된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의 입장은, 육지 이외의 란의 속성은 당해 공국의 육지 안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n) 브리가데(Brigade) 신드 독립지역에 관한 군사 보고서, 인디아 일반 참모, 1928 (인도자료 TC 77):
인도는, 이 지역을 다음과 같은 용어로 정의하고 있는, 1928년 브리가데 신드 독립지역에 대한 군사보고서에 의존한다: “브리가데 신드 독립지역은 신드 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보고서와 함께 하는 하나의 지도는 인도가 인도지도 TB-24로 증거로 제출한다. 당해 보고서는 인도가, 인도가 주장했던 신드의 경계선이 군사적 목적을 포함하여 인디아 정부가 가진 모든 목적을 위하여 승인된 경계선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써, 인도는 그것에 의존한다. 인도지도 TB 24 상에서 당해 경계선을 따라 나 있는 손으로 그려진 색칠된 리본은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라는 인도 측 의견이 있는 반면에, 그 지도는 쿠취와 신드의 경계선은 인접하고 있고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키스탄은 당해 보고서 내 다른 인용문에 의존하는데, 그것은 신드는 남쪽으로 란에 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역시 그 지도를 의존하고 있는데, 파키스탄의 청구이유 안에서 그 지도는 신드를 쿠취 공국으로부터 분할하지 않는다고 한다. “봄베이 구역” 라는 용어는 인도지도 TB 24 상에서 쿠취 뿐만 아니라 란위 에 걸쳐서 쓰여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인도는 또한, 신드는 란의 여하한 부분도 쿠취와 연관하여 사용된 여하한 종류의 표현으로 취했던 적이 결코 없었다고 일컬어진다는 사실을 지적 한다 -“란을 포함하여”, “란을 제외하고”, “란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란으로부터 독립하여” 혹은 “그것의 란” 등이 없음. 인도는, 심지어 영국 의회에 제출된 통계적 초록은 쿠취 영역을 설명하면서 “란을 제외하고” 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그러한 유보사항은 신드 영역을 설명하는 데는 없다고 말한다 (섹션 7 참조).
인도는 또한, 신드는 란의 여하한 부분도 쿠취와 연관하여 사용된 여하한 종류의 표현으로 취했던 적이 결코 없었다고 일컬어진다는 사실을 지적 한다 -“란을 포함하여”, “란을 제외하고”, “란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란으로부터 독립하여” 혹은 “그것의 란” 등이 없음. 인도는, 심지어 영국 의회에 제출된 통계적 초록은 쿠취 영역을 설명하면서 “란을 제외하고” 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그러한 유보사항은 신드 영역을 설명하는 데는 없다고 말한다 (섹션 7 참조).
색인어
- 지명
- 봄베이, 신드, 봄베이, 바로다, 쿠취, 히데라바드, 신드, 봄베이, 신드, 쿠취, 카티아와르, 팔란푸르, 라드한푸르, 파르카르, 신드, 신드, 쿠취, 봄베이, 신드, 신드, 봄베이, 란, 신드, 바로다, 봄베이, 란, 쿠취, 신드, 타르 파르카르, 란, 봄베이, 신드, 룬, 란, 신드, 란, 란, 신드, 쿠취, 쿠취, 라드한푸르, 조드푸르, 쿠취, 쿠취, 란, 쿠취, 란, 란, 팔란푸르, 쿠취(Cutch), 카티아와르, 쿠취(Cutch), 카이타와르, 란, 팔란푸르, 란, 쿠취, 란, 신드, 란, 쿠취, 구자랏, 란, 란, 란, 쿠취, 카티아와르, 팔란푸르, 쿠취, 쿠취, 타르 파르카르, 쿠취, 카티아와르, 란, 쿠취, 카티아와르, 쿠취, 카티아와르, 신드, 란, 란, 란, 란, 란, 구자랏, 쿠취, 란, 란, 쿠취, 구자랏, 란, 란, 쿠취, 카티아와르, 란, 타르 파르카르, 쿠취, 카티아와르, 타르 파르카르, 쿠취, 신드, 란, 란, 구자랏, 쿠취, 란, 신드, 쿠취, 쿠취, 신드, 파르카르, 쿠취, 쿠취, 신드, 푸란, 인더스 강, 란, 란, 봄베이, 쿠취, 파르카르, 란, 팔란푸르, 타르 파르카르, 신드, 쿠취, 쿠취, 신드, 쿠취, 란, 신드, 신드, 란, 쿠취, 신드, 란, 쿠취, 쿠취, 란, 신드, 란, 신드, 신드, 타르, 파르카르, 타르, 쿠취, 거대한 란, 타르 파르카르, 쿠취의 란, 타르 파르카르, 봄베이, 신드, 히데라바드, 타르 파르카르, 히데라바드, 타르 파르카르, 타르 파르카르, 신드, 타르, 파르카르, 타르 파르카르, 신드, 란, 디플로, 미티, 나가르 파르카르, 란, 신드, 신드, 히데라바드, 히데라바드, 바딘, 히데라바드, 란, 봄베이, 신드, 신드, 카라치, 히데라바드, 타르 파르카르, 자티, 바딘, 디플로, 미티, 나가르 파르카르, 신드, 란, 신드, 쿠취, 란, 신드, 란, 쿠취, 란, 란, 신드, 쿠취, 란, 란, 란, 신드, 신드, 신드, 신드, 신드, 쿠취, 신드, 란, 신드, 신드, 쿠취, 봄베이, 쿠취, 란, 신드, 란, 쿠취, 란, 란, 란, 란, 쿠취, 란, 신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