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드와 쿠취를 가르는 실체로써의 란
2. 신드와 쿠취를 가르는 실체로써의 란
파키스탄에 따르면, 란은, 해양적 형상을 가진 것으로써, 해변영토들을 가르는 것으로 설명되고 그려졌다 (묘사된다). 이와 관련하여 파키스탄이 의지하는 참고자료들은 본 섹션 속에서 다뤄진다.
인도 측 답변은, 일반적으로, 란은 해양적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니고 란을 분할하는 실체로 보는 것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인접한 것으로 필연적으로 의미하는, 1965년 6월 30일자 합의와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신드는 24도선 밑까지 확장된다는 파키스탄 입장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항변은, 육지가 아닌 란의 진정한 본질, 란은 여하한 공국의 땅 (육지) 속에 포함된 것으로써 비춰지지 않는다는 파키스탄 측 입장을 잘못 해석한 것에 근거하고 있다. 신드가 란의 중간까지 밑으로 확장된다는 파키스탄 측 입장도 아니고, 혹은 1965년 6월 30일자 합의하고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인도 측 답변은, 일반적으로, 란은 해양적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니고 란을 분할하는 실체로 보는 것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인접한 것으로 필연적으로 의미하는, 1965년 6월 30일자 합의와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신드는 24도선 밑까지 확장된다는 파키스탄 입장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항변은, 육지가 아닌 란의 진정한 본질, 란은 여하한 공국의 땅 (육지) 속에 포함된 것으로써 비춰지지 않는다는 파키스탄 측 입장을 잘못 해석한 것에 근거하고 있다. 신드가 란의 중간까지 밑으로 확장된다는 파키스탄 측 입장도 아니고, 혹은 1965년 6월 30일자 합의하고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a) 윌리암스, 1809-1810기간 내 수집된 정보로부터 얻은 인디아의 서쪽 국경선의 부분들에 관한 측지학적 기록물 (인도자료 A-11) :
윌리암스는 봄베이 관구 측량총관이었다. 파키스탄은, 쿠취는, 그 북쪽 선 전체를 따라 잇는, 그리고 그것을 구자랏의 동쪽에서부터 분할하고 있는 란이라는 결과 때문에, 일정한 섬이라고 적절하지 못하게 명명될 수도 있다는 그의 언급을 인용한 바 있었다. 인도 측 답변은, 쿠취는, 란이 그것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바람에 자주 하나의 섬이라고 언급된 바 있었다는 것이다. 윌리암스의 언급은 순전히 묘사적인 것이다.
(b) 맥무르도, 쿠취의 룬에 관한 언급들과 함께하는, 카티아와르 주에 관한 수상록, 1815 (파키스탄 책 2):
184페이지에서, 맥무르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룬(Runn)은 카티아와르로부터 쿠취(Cutch)를 나눈다” 그리고 176페이지에서 그는 란을 구자랏으로부터 카티아와르를 나누는 것으로 묘사한다. 맥무르도는 1812년에 쿠취 업무를 위한 고문으로 임명되었고 1816년에서 1820년까지 쿠취 내 총독대리였다. 파키스탄은, 위에 언급한 진술은, 란은 쿠취도 혹은 카티아와르도 아니고 이러한 언급은 개인적 지식을 가진 어떤 사람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인도 측 답변은, 언급된 내용은 소규모 란에 관한 것이다 - 그것은 쿠취의 본토와 카티아와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분할하는 실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단순히 란의 형상과 성격들을 묘사할 뿐이다.
인도 측 답변은, 언급된 내용은 소규모 란에 관한 것이다 - 그것은 쿠취의 본토와 카티아와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분할하는 실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단순히 란의 형상과 성격들을 묘사할 뿐이다.
(c) 동인도회사와 쿠취 간 체결된 1816년 조약 (파키스탄 자료 A.2) 그리고 1816년 맥무르도의 해석 (파키스탄 자료 B.272) 그리고 1820년의 해밀톤의 해석 (인도자료 CCC-2):
이 조약의 제4조는, 관련된 여타 해변국가들 뿐만 아니라 쿠취가 적대적 목적으로 란을 횡단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당해 조약은 또한 라크파트를 신드 경계선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 조약의 체결자인 맥무르도는, 영국정부에 보고하면서, 제4조는 쿠취에 진입하려는 영국 정부의 목적을 반영하였고, 그리고 그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정부들은 룬(Run)과 걸프(Gulf)를 그들 경계선으로 봐야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파키스탄 자료 B.272). 비슷하게, 해밀톤은, 1816년 조약까지, 쿠취의 라오는 “룬과 쿠취의 란을 그의 영역의 동쪽 경계선으로 결정하였다”고 말한 바 있었다. (인도자료 CC-2, 591면).
(d) 맥무르도, 안자르 소재 총독대리, 쿠취 주 그리고 구제랏과 인더스 강 사이에 놓인 지방들에 관한 설명서, 1820 (파키스탄 책 18):
파키스탄은, 렌넬처럼, 맥무르도에 개념 속에서는, 거대한 모래사막이 쿠취의 북쪽에 있었고, 거대한 란은 그 사막의 남쪽에 있었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 의존한다:
“쿠취(Cutch)의 경계선들은 자연적으로 다른 지방보다 더욱 분명하게 확실한 방법으로 정해진다... 서쪽으로는, 인더스 강의 동쪽 끝 지류고, 신드로부터 쿠취를 나누는 수 마일에 걸친 버려진 땅이다; 동쪽으로는, 쿠취의 만이고 룬이라고 일컬어지는 소금사막이다; 북쪽으로는, 바다가 그 주의 남쪽해변을 접하면서, 모래사막이 있다.” (205면)
p.254
인도는, 상기 인용문은, 그 모래사막, 즉 타르(Thar), 쿠취의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되고 따라서 그러한 묘사는 란을 쿠취의 영토 속에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파키스탄은, 반면에, 맥무르도는 란을 거대한 란의 남쪽부분으로 보았다고 주장하고, 맥무르도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 한다:
“적절하게 말한다면, 그 사막은 파르쿠르와 신드의 경계선들 및 푸란 강 사이에 놓여있다. 그것은 평평한 모래가 흐르는 쿠취의 북서 경계선 위에서 시작하고, 그것은 곧 툴 (Thull) 혹은 언덕 같은 외관을 띠는데, 그것은 아메르코트 만큼 높게 유지된다... ”. (전게서, 237면.)
파키스탄은 또한, 란은 쿠취의 일부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맥무르도에서 발췌한 다음의 인용문에 의지한다:
“쿠취는 몬순기간동안 물로 여타 지방으로부터 고립되고, 날씨가 좋을 때에는, 4마일부터 60마일에 걸쳐 그 폭이 일정한 사막지역에 의해 또한 고립된다. 몬순기간동안 북쪽 국경선 전체가 물로, 통상 소금물로 덮인다...”. (전게서, 205면)
“... 자라(Jharra)는 쿠취를 신드로부터 분할하는 사막 위에 가장자리를 이루고 있다”. (전게서, 208면)
“북쪽 경계를 따라서, 그리고 그 사막의 주변으로, 분니(Bhunni)라고 지칭되는 육지지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쿠취의 북쪽 국경선을 따라 확장된다... ”. (전게서, 208면)
“... 자라(Jharra)는 쿠취를 신드로부터 분할하는 사막 위에 가장자리를 이루고 있다”. (전게서, 208면)
“북쪽 경계를 따라서, 그리고 그 사막의 주변으로, 분니(Bhunni)라고 지칭되는 육지지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쿠취의 북쪽 국경선을 따라 확장된다... ”. (전게서, 208면)
파키스탄은 또한, 대규모 란을 거대한 모래사막의 일부분으로 묘사하고 있는, 맥무르도가 작성한, 파키스탄 자료 130을 증거로 제출하였다. 파키스탄에 따르면, 맥무르도가 “툴” 사막으로 의미했었던, 바로 그 모래사막에 의해, 어떠한 논란도 이 지도에 의해 해결된다.
(e) A. 번즈, 쿠취 소재 병참사령관보좌, 쿠취 및 그에 접속하는 지방들에 관한 일련의 오리지널 서면자료, 옛 도회, 진기물, 관습, 역사 및 지도, 1825-28 (인도자료 A-6):
파크함(Pachham)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번즈는, 거대한 란은, 파크함과 신드 사이에 있는 “뚫을 수 없는 장애물” 이라고 말한다.
(f) A. 번즈, 복카라(Bokhara) 속으로의 여행, 1834, 제3권 (파키스탄 책 29):
번즈는 쿠취의 “거대한(Grand)” 란을 “신드와 푸컴 그리고 쿠리어 섬들 사이에 위치한 부분”이라고 묘사한다.
파키스탄은 쿠취의 한계를 그 본토에 한정하면서, 알렉산더 번즈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 의존한다:
파키스탄은 쿠취의 한계를 그 본토에 한정하면서, 알렉산더 번즈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 의존한다:
“그 주의 북서쪽 부분은, 나라에서 무르단까지 15마일 거리에 걸쳐 담수가 거의 없는데, 부르칸 강이 유일한 마실 물이다... ”.
“쿠취의 북쪽 국경선에 염수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룬의 근처이기 때문이다... ”. (인도자료 A-6, 88면.)
“발리아리 마을은 부지의 거의 80마일 북쪽에 있는, 투르 내 룬을 가로질러 위치하고 있지만, 쿠취 주는 첫 번째 17마일 보다 더 확장되지 않는다.” (전게서, 51면.)
“... 본인은 그 이래로 그 [란의] 하안 위에 있는 쿠취의 북쪽 국경선 전체를 자세히 조사한 바 있다....” (인도자료 A-5, 20면.)
“베일라 소재 쿠취의 북동쪽 부분에서 기이한 형태를 또한 보게 될 것이다... .” (전게서, 32면.)
“더군다나, 쿠취의 북쪽 전체 면은 루크풋에서 베일까지 룬 위를 경계 짓는다... .” (전게서, 36면.)
“쿠취의 북쪽 국경선에 염수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룬의 근처이기 때문이다... ”. (인도자료 A-6, 88면.)
“발리아리 마을은 부지의 거의 80마일 북쪽에 있는, 투르 내 룬을 가로질러 위치하고 있지만, 쿠취 주는 첫 번째 17마일 보다 더 확장되지 않는다.” (전게서, 51면.)
“... 본인은 그 이래로 그 [란의] 하안 위에 있는 쿠취의 북쪽 국경선 전체를 자세히 조사한 바 있다....” (인도자료 A-5, 20면.)
“베일라 소재 쿠취의 북동쪽 부분에서 기이한 형태를 또한 보게 될 것이다... .” (전게서, 32면.)
“더군다나, 쿠취의 북쪽 전체 면은 루크풋에서 베일까지 룬 위를 경계 짓는다... .” (전게서, 36면.)
(g) 1820년 1월 3일자, 봄베이 총독 엘핀스톤 경이 신드의 아미르에게 보낸 서한 (인도자료 A-90).
p.255.
파키스탄은 쿠취가 란의 남쪽 가장자리 끝에서 끝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 의존한다:
“코사스에 대한 이 같은 군사작전이 종지될 즈음에, 영국 군대는... 쿠취 또는 파티와르 국경선 안에서 철군할 것이다. ” (인도자료 A-90, 238면.)
(h) T. 포스탄스, 신드에 관한 개인적 관찰의견, 1843 (파키스탄 책 16):
포스탄스는 신드 및 발루치스탄의 정치고문의 보좌관 이었다. 그는 “... 그것 [신드]과 쿠취 주 사이에 끼여 있는 사막지역...”이라고 말한다. (1면.)
(i) 르 그란드 자콕(제이콕), 카티아와르 주에 대한 보고서, 1844 (파키스탄 책 7):
카티아와르 정치고문 보좌관이었던 제이콥은, 폭이 좁은 란이 (카티아와르 내) 오카문둘 구역을 카티아와르 반도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분리시켰다고 쓴다.
(J) 1853년 3월 17일자로, 타르 파르카르 부징수관 겸 지방행정관인, 라이크스 중령이 신드 내 집정관에게 보낸 편지(파키스탄 자료 B.176):
라이크스는 파르카르와 와구르는 란에 의하여 구분된다고 묘사한다; 그는 또한 신드와 쿠취 두 주는 오로지 쿠취의 란에 의해서만 분할되었다고 말한다. 인도 측 설명은, “분할된 (나뉘어진)” 라는 단어는 분명히 순수하게 지리학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k) 봄베이 정부의 기록물 제 40호에서 나온 발췌문들 -- 오메르코트와 투르 구역 내 세수 정착에 관한 새로운 일련의 서면 자료, 1856 ( 파키스탄 책 17):
이것은 1856년 1월 21일자 신드 내 프레레 집정관이 봄베이 총독에게 보낸 한 편지를 담고 있는데, 거기서 프레레는 란은 타르 및 파르카르구역 들을 쿠취로부터 분리시키고, 파르카르는 란에 의하여 구자랏의 북쪽 부분으로부터 나뉘어 졌으며, 그것은 란에 의해 그 쿠취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말했다. (37-38 면.)
(l) 1865년 3월 1일자 쿠취의 정치고문인 쇼트 대령(A. Y. Short)의 메모 (보고서)의 서문 (파키스탄 자료 B.300):
쇼트는 쿠취를, “쿠취의 거대한 룬에 의해 인도 대륙으로부터 북동쪽으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일정한 섬으로 만들어져가고 있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인도는, 같은 서문은 또한, 란을 제외한 쿠취 지역은 6,500 평방 마일에 달하는데, 이것은 란이 쿠취 내에 속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에 대해서, 파키스탄은 만약 같은 저자가 어떤 한 서면자료 속에서 두개의 언급을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정상적인 방법은 그 두 개의 효과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그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라고 답한다. 만약 두 언급을 함께 이해 할 필요가 있다면, 당해 본토 지역은 6,500 평방 마일 이고 당시에 란이라고 불리는 쿠취의 부분들 - 반니와 파캄 등이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쿠취는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란 부분과 본토 부분, 그리고 주어진 당해 지역은 란 부분에 배타적인 부분, 다시 말해 반니와 파캄의 전속부분(배타적 부분)이다.
(m) 와인, 쿠취의 지리학에 관한 예비 보고서, 1869 (파키스탄 책 10):
지질학자인 와인(Wynne)은, 쿠취는 “한쪽 편으로는 아라비아 해와 쿠취의 만에 의해 경계되고, 다른 쪽으로는, 커다란 그리고 그것보다 작은 룬들에 의해 그 본토와 투르(Thurr)혹은 작은 규모의 사막 등으로부터 쿠취는 고립되어 있다”고 보았다. (52면.) 인도는, 란을 포함한 쿠취 지역은 대략 아일랜드(Ireland)의 절반에 해당되는 크기이라고 지적하면서, 인도는, 쿠취의 본토 지역은 대략 6,500 평방 마일, 란 지역은 대략 9,000 평방 마일, 그래서 전체 쿠취 지역은 대략 16,000 평방 마일에 달한다 - 아일랜드의 절반 크기라고 부가한다. (전게서, 52면.) 이것에 대하여, 파키스탄은, 와인이 지질학자였던 관계로, 그의 주된 목적은 정치적인 분할이 아니었고 이 같은 관찰의견은 반드시 정치적으로 모든 당해 지역이 쿠취의 주권에 속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와인은 자신이 조언을 했던 몇몇 서면 자료를 바탕으로 수치를 제시 하였고, 그가 그의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에는, 상당한 변환가 있어서 그는 동일한 용어로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지 않았다. 인디아 지질 측량 조사에 관한 수상록 제 9집 (파키스탄 책 20) 속에 보이는 최종 보고서 안에서, 와인은 그의 사실들을 확인 확증 하는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면서, 그의 “분리된 섬들” (파캄 과 카디르를 의미함)을 포함한 쿠취는, 6,608 평방 마일 이고, 반면에 란은 반니를 포함하여 대략 10,000 평방 마일에 달한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은 또한, 최종보고서는 더 나아가 초라르(Chorar)는 쿠취의 정치적 경계 안에 있게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5면.) 인도는, 비록 와인이 지질학자 일지라도, 그가 말할 때에 그는 그가 말하는 것 이외의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항변 한다; 그는 당해 지역에 대하여 일정한 언급을 하고 그는 그것을 분명히 정치적인 것으로 의미한다. 그 최종보고서로부터 관련 있는 인용문들은 또한 란을 쿠취의 일부분으로 언급하고 있고, 당해지역은 그 크기가 아일랜드의 절반과 동일하다는 이전 진술과 일치한다. (전게서, 5면.)
(n) 블랙, 인디아 측량에 관한 수상록, 1875 -90 (1891) (파키스탄 책 14):
란에 대하여, 블랙은, “이 놀랄만한 지역은... 쿠취를 신드 주에서 분리시키는 모래로 된 황무지와 소금 하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 말한다. (85 - 86 면.)
(o) 제국 인디아 지명 사전집 제 11권, 1908 (인도자료 C-28):
이 지명 사전집은 쿠취의 란을 묘사하면서, 그것은 “북쪽으로는 신드에서 분리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라드한푸르와 카티아와르로부터 구분되는 쿠취 공국의 북쪽과 남쪽을 따라서 ” 넓게 펼쳐진다고 말한다. (84 - 85 면.)
(p) 1925년 2월 10일자, 신드 경찰 구사찰관이 신드 내 집정관에게 보낸 편지 (파키스탄 자료 B.383):
그 편지에서는, 쿠취와 카티와르가 쿠취의 란에 의해 타르 파르카르 구역에서 분리된다고 하고 있다.
(q) 봄베이 정부 기록물 번호 제 11호로부터의 발췌물 - 오메르코트와 투르 등 구역 내 세수 정착에 관한 새로운 일련의 서면 자료 (1856) (파키스탄 책 17).
파키스탄은 신드 내 집정관 대리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의견에 의존한다:
“이 구역 [타르 파르카르]은 사실 ... 룬에 의해 쿠취에서 분리되는데, 그것은 마치 거기에 있는 바다가 여전히 그 이전의 해상 (바다 밑바닥)을 커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룬이 여전히 바다에 의해 덮어 있다면, 쿠취로부터 훨씬 더 완벽하게 분리 되는데, 그 이유는 그 같은 경우에 룬의 소금 늪지를 가로질러 가는 것 보다 배를 타고 교통하는 것이 더 확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89면.)
p.257
(r) 1827년 2월 21일자로 W. 하브로크 선장이 봄베이 정부의 선임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인도자료 A-15).
파키스탄은 다음과 같은 하브로크로부터의 인용문에 신뢰를 둔다:
“대략 다섯 개가 [분디아나로부터] 당해 경계선을 따라 우리에게 보내졌고, 두 개가 더 도회지로 보내졌다...”. (18면.)
“타코르와 본인의 자메다르는 그 주변 지방에 관한한 너무 많이 달라서, 그로부터 나온 호기심은 본인으로 하여금 라오 전하의 국경선을 돌아보게 합니다.” (154면; 보충자료집)
“타코르와 본인의 자메다르는 그 주변 지방에 관한한 너무 많이 달라서, 그로부터 나온 호기심은 본인으로 하여금 라오 전하의 국경선을 돌아보게 합니다.” (154면; 보충자료집)
파키스탄은, 하브로크는 란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난 쿠취의 한계지역을 여행하였고 이 지역을 “룬 국경선”이라고 지칭하였다. 인도는, 반면에, 이러한 묘사는 쿠취의 영토를 한정시키는 것으로 해석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란은 국경선 표식을 설치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하브로크가 한 언급은 “일정한 방어가 가능한 국경선을 따라서”에 위치해야 한다.
이것들은 하브로크가 방어적 목적을 위한 국경선으로써 보았던 것 위에 있는 표식(말뚝) 이었고, 이러한 묘사는 쿠취의 영토로부터 일정하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을 반드시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에 대하여, 파키스탄은, 인도는 한 측면에서만 그 본토에 한정된 쿠취의 묘사를 볼 뿐이고, 다른 측면으로는 그 본토에 한정된 신드의 묘사만을 볼 뿐이라고 답한다. 인도는, 란의 남쪽 가장자리가 북쪽 가장자리만큼 일정한 자연적 경계선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것들은 하브로크가 방어적 목적을 위한 국경선으로써 보았던 것 위에 있는 표식(말뚝) 이었고, 이러한 묘사는 쿠취의 영토로부터 일정하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을 반드시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에 대하여, 파키스탄은, 인도는 한 측면에서만 그 본토에 한정된 쿠취의 묘사를 볼 뿐이고, 다른 측면으로는 그 본토에 한정된 신드의 묘사만을 볼 뿐이라고 답한다. 인도는, 란의 남쪽 가장자리가 북쪽 가장자리만큼 일정한 자연적 경계선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s) 월터, 쿠취 역사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1827 (인도자료 C-4).
파키스탄은 쿠취 경계선 묘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 의존한다:
“신드 군대가, 굴람 샤와 푼자 샛과 더불어 히데라바드를 떠났다; 그리고 쉽게 쿠취를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매우 확신하면서, 그 이후에 엄청나게 많은 실체들이 그들 군대와 함께 무언가를 강탈할 목적으로 그 뒤를 따랐는데 그들이 쿠취 경계선에 도착할 무렵에는 그 수가 7만에 달했다. 룬을 가로질러 건넌 신드 사람들이 행군 후 나라에 도착하면서...”. (97면.)
(t) 쿠취 내 정치 고문이 1877년 3월 20일자로, 봄베이 정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 (파키스탄 자료 B.307) 그리고 1877년 3월 29일자 봄베이 정부의 결의안 제 1913호 (파키스탄 자료 B.308).
이들 자료는, 쿠취의 정치 고문과 봄베이 정부 간에 있었던 서신 교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쿠취의 북쪽 한계처럼, 쿠취의 본토 상에, 카브다(Khavda)를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과 관련하여 파키스탄이 취한 입장은, 분명히 란은, 두 주 사이를 가르고 있고, 그것은, 그 안에 있는 두 주 간의 경계선이 다른 증거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을 나누고 있다고 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그리고 강력한 지리학적 실체라는 점이다. 란은 그 자체로 그것이 분할하고 있는 영토들 간의 경계선이다 - 그 전체 폭이 그 반대편 해안의 영토들 사이에 있는 넓은 경계선 벨트를 형성한다. 각각의 해변 영토에 대한 주권은, 그 반대편 해안으로부터 동일한 정도로 주권의 확장이 그것을 만나는 데 까지를 한계로 하여 란 속으로 뻗어 있다.
란이 신드와 쿠취를 나누거나 혹은 분리하고 있다고 말하는 다양한 언급에 관한 인도 측 일반적 코멘트는, 만약 물리적 형상이라는 측면에서 란을 지리학적 문제로 본다면, 란은 그런 종류의 독특한 지역에서 인식 할 수 있는 특정한 형상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이것은 A와 B 사이에 놓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언급은,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쿠취 또는 신드의 어느 쪽의 일부분도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언급과 관련하여 파키스탄이 취한 입장은, 분명히 란은, 두 주 사이를 가르고 있고, 그것은, 그 안에 있는 두 주 간의 경계선이 다른 증거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을 나누고 있다고 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그리고 강력한 지리학적 실체라는 점이다. 란은 그 자체로 그것이 분할하고 있는 영토들 간의 경계선이다 - 그 전체 폭이 그 반대편 해안의 영토들 사이에 있는 넓은 경계선 벨트를 형성한다. 각각의 해변 영토에 대한 주권은, 그 반대편 해안으로부터 동일한 정도로 주권의 확장이 그것을 만나는 데 까지를 한계로 하여 란 속으로 뻗어 있다.
란이 신드와 쿠취를 나누거나 혹은 분리하고 있다고 말하는 다양한 언급에 관한 인도 측 일반적 코멘트는, 만약 물리적 형상이라는 측면에서 란을 지리학적 문제로 본다면, 란은 그런 종류의 독특한 지역에서 인식 할 수 있는 특정한 형상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이것은 A와 B 사이에 놓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언급은,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쿠취 또는 신드의 어느 쪽의 일부분도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 되어서는 안 된다.
색인어
-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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