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A. 인디아 32마일 지도
10A. 인디아 32마일 지도
인도 변론서는 제133문 속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써, 그 중요성이 증명된 두 번째 그룹의 통합지도들을 소개하고 있다:
“1914년에는, 인디아 측량총관이 인디아 및 그와 인접하고 있는 지방에 대한 32마일 지도의 제5판 지도면들에 대한 증거를 준비하였다. 이 지도는 12장으로 되어있었고, 그 중 제5번 지도면은 신드와 쿠취 지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증거들은 승인받기 위해 인도 정부의 외무 및 정치성에게 제출됐다. 측량총관청과 외무 및 정치성 사이에 오간 노트는 A-30에 있다” (다시 말해, 부록30). “증거 복사(B-15)는 신드의 경계선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핑크색으로 심볼은 ―·―·―· 으로 되어있다. 정치성 내에서 지도면 제5호에 대한 지루하고 긴 언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드의 경계선에 대한 묘사가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 심볼로, 혹은 신드를 란의 북쪽 가장자리까지 어두운 핑크색으로 표시함으로써 신드의 경계선을 묘사하는데 반대가 없었다... 당해 지도의 마지막 문제는, 인도 정부가 승인한 것처럼, 1915년에 출간되었고, 1922년에 재 인쇄되었으며 1928년에 또다시 ‘도로와 철도에만 수정을 가한 채’ 재인쇄 되었다. 1928년 재 인쇄본의 지도면 제5호 및 9호가 B-16에 있다”.
제129문 속에서 같은 변론서는 1898년과 1908년에 출간된 동일지도의 세 번째 및 네 번째 판을 언급하면서, 그것들은 “쿠취의 란은 쿠취 영토 속에 포함되었다” 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러한 판들은 인도지도 B-50 및 B-51속에서 재 제작된다.
파키스탄 측 항변서는 인도변론서 133문 속에서 언급된 두 지도를, 그 항변서 158문 속에서, “측지학적 혼동에 따른 잘못된 묘사” 라고 하면서 포함시킨다. 제179문 속에서 언급된 두 지도들은, 파키스탄 항변서 179문에 따르면, “신빙성이 없고 승인받지 않은 것으로” 선언된다.
파키스탄 항변서의 부록 J는 인도지도 B-15 및 B-16에 관하여 여러 가지 여타의 언급을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인도지도 B-15로 제출된 지도는, “왜냐하면 그것은 이 지도와 관련하여 연락 속에서 언급된 표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디아 정부에게 제출된 증거의 복사본이 아니다” (인도지도 A-30);
(b) 1936년의 측지학 핸드북, 제11장, 제136문은 “특별히 인도 공국들과 관련된 여타 내부적 경계선 안에서 발생하는 변경사항은, 관련 지방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상호연락 속에서, 봄베이 정부에게 통보되었다는 일체의 것, 인디아 정부와 쿠취 공국 간 관계를 위한 정상적인 연락관계가 보이지 않았다;
(c) 인도자료 A-30의 아이템 29속에 승인된 것처럼, 란에 대한 색깔 메김은 란이 부족지역이라는 것과 부합된다;
(d) 인도지도 B-16에 관하여 “쿠취(Cutch)라는 이름은, “쿠취(Cutch)의 란”이라는 이름이 별개로 그 글자사이가 떨어져서 란 전체와 하부 델타 지역의 일부를 커버하는 반면에, 쿠취의 본토만을 커버하게 된다”;
(e) "비록 신드의 경계선과 관련된 압도적인 혼란이 가장 최고위층에서 비춰진다고 할지라도, 영국에게 부여된 영토는, 적절한 권한을 가진 당국자의 행위를 통한 영국 왕실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다른 이에게 전환될 수 없었다. 란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이러한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일한 부록 속에 있는 동일한 항변서는 또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면서 인도지도 B-50 및 B-51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a) 이들 지도 위에서 옅은 색(담채 색)을 사용하는 것은 쿠취의 일부분으로써의 쿠취의 란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란은 신드와 쿠취의 해변영토로부터는 분리되어있는 해양적 형상을 가진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b)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심볼과 색깔 밴드는, 동일한 지도상에서, 신드를 발루치스탄으로부터 구분하는 경계선을 위해 사용된 국가 또는 주 경계선에 대한 정상적인 묘사방법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동일한 지도상에서, 신드 구역들을 나누는 선으로 사용되는 구역 경계선 묘사방법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c) 인도지도 B-51은 “데라 반니, 쉬하드 벳과 델타 지역 등의 지위는 란의 지위와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란을 커버하는 가볍게 물 빠진 푸른색으로 덮여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 중 몇 개를 위하여 파키스탄은 파키스탄 지도 27로 제출된 자기 소유의 지도에 의존하였다.
인도측 항변서와 함께 32마일 지도 중 하나의 판본이 새롭게 재 제작돼서 인도지도 BB-3으로 제출됐다. 그것은 세 번째 판 (1898) 의 다른 복사본의 재 제작물이고 그것은 왼편 가장자리 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된다: “총천연색 오피스카피(관청용 인쇄본)”. “1901년 2월 20일에 외무성으로부터 서명을 득함”. 두 번째 내용의 맨 위에, H. S. Barnes (인디아 정부의 외무장관) 의 서명이 있다.
인도측 항변서, 제37문, 22쪽 속에서, 이러한 새로운 지도가 이전에 제출된 지도들 (인도지도 B-5, B-6, B-9, B-10, B-11과 파키스탄 지도 27 및 32), 이 “비록 풀란 대령이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도 측량국이 그 이후에 출간된 지도 속에서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것으로 보여주었다...”는 논리를 위하여, 부가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도지도 B-16을 인디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하였고, 동일한 인도 BB-3 일련지도들의 새로운 지도가 “또한 인디아 정부의 승인을 얻었다”는 사실이 지적된 바 있었다.
파키스탄의 최종 변론서는, 제106문 및 114문 속에서, 새롭게 제출된 지도인 인도지도 BB-3에 관하여 인도가 이전에 제출한 동일한 일련지도들과 관련하여 제기한 것에 대해 유사한 비판을 가하였는데, 다시 말해, 그것은 “신드와 쿠취의 본토를 가르는 해양적 형상을 가진 하나의 형상으로써 란을 보여주며”, “신드의 본토가 란의 인접하여 표기되는데 그 심볼은 신드의 다른 구역들 반을 분할하는 경계선 위에 있는 심볼과 동일하다”, 즉, 신드와 발루치스탄 그리고 신드와 라지푸타나 간 경계선들이 이중색깔 리본으로 된 반면에, 그것은 좁은 단일색깔 리본인데, 그러므로, “BB-3지도는 란을 쿠취의 일부분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파키스탄 측 항변서는 인도변론서 133문 속에서 언급된 두 지도를, 그 항변서 158문 속에서, “측지학적 혼동에 따른 잘못된 묘사” 라고 하면서 포함시킨다. 제179문 속에서 언급된 두 지도들은, 파키스탄 항변서 179문에 따르면, “신빙성이 없고 승인받지 않은 것으로” 선언된다.
파키스탄 항변서의 부록 J는 인도지도 B-15 및 B-16에 관하여 여러 가지 여타의 언급을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인도지도 B-15로 제출된 지도는, “왜냐하면 그것은 이 지도와 관련하여 연락 속에서 언급된 표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디아 정부에게 제출된 증거의 복사본이 아니다” (인도지도 A-30);
(b) 1936년의 측지학 핸드북, 제11장, 제136문은 “특별히 인도 공국들과 관련된 여타 내부적 경계선 안에서 발생하는 변경사항은, 관련 지방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상호연락 속에서, 봄베이 정부에게 통보되었다는 일체의 것, 인디아 정부와 쿠취 공국 간 관계를 위한 정상적인 연락관계가 보이지 않았다;
(c) 인도자료 A-30의 아이템 29속에 승인된 것처럼, 란에 대한 색깔 메김은 란이 부족지역이라는 것과 부합된다;
(d) 인도지도 B-16에 관하여 “쿠취(Cutch)라는 이름은, “쿠취(Cutch)의 란”이라는 이름이 별개로 그 글자사이가 떨어져서 란 전체와 하부 델타 지역의 일부를 커버하는 반면에, 쿠취의 본토만을 커버하게 된다”;
(e) "비록 신드의 경계선과 관련된 압도적인 혼란이 가장 최고위층에서 비춰진다고 할지라도, 영국에게 부여된 영토는, 적절한 권한을 가진 당국자의 행위를 통한 영국 왕실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다른 이에게 전환될 수 없었다. 란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이러한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일한 부록 속에 있는 동일한 항변서는 또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면서 인도지도 B-50 및 B-51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a) 이들 지도 위에서 옅은 색(담채 색)을 사용하는 것은 쿠취의 일부분으로써의 쿠취의 란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란은 신드와 쿠취의 해변영토로부터는 분리되어있는 해양적 형상을 가진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b)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심볼과 색깔 밴드는, 동일한 지도상에서, 신드를 발루치스탄으로부터 구분하는 경계선을 위해 사용된 국가 또는 주 경계선에 대한 정상적인 묘사방법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동일한 지도상에서, 신드 구역들을 나누는 선으로 사용되는 구역 경계선 묘사방법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c) 인도지도 B-51은 “데라 반니, 쉬하드 벳과 델타 지역 등의 지위는 란의 지위와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란을 커버하는 가볍게 물 빠진 푸른색으로 덮여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 중 몇 개를 위하여 파키스탄은 파키스탄 지도 27로 제출된 자기 소유의 지도에 의존하였다.
인도측 항변서와 함께 32마일 지도 중 하나의 판본이 새롭게 재 제작돼서 인도지도 BB-3으로 제출됐다. 그것은 세 번째 판 (1898) 의 다른 복사본의 재 제작물이고 그것은 왼편 가장자리 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된다: “총천연색 오피스카피(관청용 인쇄본)”. “1901년 2월 20일에 외무성으로부터 서명을 득함”. 두 번째 내용의 맨 위에, H. S. Barnes (인디아 정부의 외무장관) 의 서명이 있다.
인도측 항변서, 제37문, 22쪽 속에서, 이러한 새로운 지도가 이전에 제출된 지도들 (인도지도 B-5, B-6, B-9, B-10, B-11과 파키스탄 지도 27 및 32), 이 “비록 풀란 대령이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도 측량국이 그 이후에 출간된 지도 속에서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것으로 보여주었다...”는 논리를 위하여, 부가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도지도 B-16을 인디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하였고, 동일한 인도 BB-3 일련지도들의 새로운 지도가 “또한 인디아 정부의 승인을 얻었다”는 사실이 지적된 바 있었다.
파키스탄의 최종 변론서는, 제106문 및 114문 속에서, 새롭게 제출된 지도인 인도지도 BB-3에 관하여 인도가 이전에 제출한 동일한 일련지도들과 관련하여 제기한 것에 대해 유사한 비판을 가하였는데, 다시 말해, 그것은 “신드와 쿠취의 본토를 가르는 해양적 형상을 가진 하나의 형상으로써 란을 보여주며”, “신드의 본토가 란의 인접하여 표기되는데 그 심볼은 신드의 다른 구역들 반을 분할하는 경계선 위에 있는 심볼과 동일하다”, 즉, 신드와 발루치스탄 그리고 신드와 라지푸타나 간 경계선들이 이중색깔 리본으로 된 반면에, 그것은 좁은 단일색깔 리본인데, 그러므로, “BB-3지도는 란을 쿠취의 일부분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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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9
32마일 일련지도들에 대한 인도 측 입장에 대하여 파키스탄이 그의 항변서와 최종 변론서 속에서 제기한 비판을 인도가 자신의 모두 변론 속에서 다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이 제기되었다 (녹취록, 236, 521-531, 926, 1001-11, 1258-61):
(1) 제출된 이 같은 일련지도들 일체 속에서, 신드는 영국령 인디아의 핑크색이고 이 색은 란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끝난다; 동일한 가장자리를 따라, 쿠취 본토와 란 간에는 이러한 리본과 점선이 없는 반면에, 옅은 붉은색 리본과 점선이 보인다.
(2) 유사한 옅은 단일적색 리본이 내부적 구역 경계선들을 위하여 역시 사용된 반면에, 한편으로는 신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루치스탄과 라지푸타나 간에, 외곽으로 더 두꺼운 이중 색깔 리본이 봄베이 관구의 외곽 경계를 보여준다.
(3)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판 (인도지도 B-51, 15, 16) 속에서, 란의 북쪽 가장자리 상에 점선과 함께하는 옅은 붉은색 리본이 쿠취 쪽으로 엷은 노란색 리본과 함께 강조된다; 쿠취 본토의 북쪽 가장자리 상에는 이러한 리본이 없다.
(4) 리본 혹은 여타 심볼에 의해 쿠취 본토로부터 어느 곳에서도 분리되지 않은, 란은 몇몇 지도들 상에서는, 쿠취와 상이한 틴트 색 (담채 색) 을 갖고 있다: 쿠취는 인디아 공국으로써 엷은 노란색을 갖고, 란은 늪지 표식(심볼) 과 함께 푸른색이다; 그해로부터 란 위에는 또한 노란색으로 색칠된다는 반면에 (인도지도 B-16), 이 같은 것은, 그해이후로부터 1908년까지 이전 지도들 경우이다 (파키스탄 지도 27 및 32 그리고 인도지도 B-50, 51 및 BB-3).
한 색깔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은 권한 있는 당국자들의 특별한 결정에 의해서 설명된다. 이것과 여러 가지 여타 요점들에 관하여, 인도는 인도 항변서와 함께하는 “외무 및 정치성. 노트 (외교문서). 인디아 지도 개정판, 1도=32마일” 라는 제목을 가진 인도자료 A-30이라는 서면자료에서 인용하였다. 그것은 1913년에서 1915년까지 노트들을 편집한 것이다. 첫 번째 것은, “인도 측량총관의 노트”는 그 지도의 네 번째 판과 관련된 언급들 목록을 칼럼 3개에 걸쳐 담고 있다: 다음 것인 제5판 상 색칠체계와 경계선들은 네 번째 판 상 그것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목록 가운데, 29번 밑에, 다음과 같은 노트 (칼럼1 속에서) 가 보인다: “쿠취(Cutch) 속 색깔 메김이 바뀌어졌다”: (두 번째 칼럼 속에서): “서쪽 란이 육지 색깔 (노란색) 과 함께 푸르게 그리고 마른 란으로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칼럼3 속에서): “호수보다 늪지로 마른 란을 색칠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보이고 현재 색깔은 승인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노트 속에서 란은 첫 번째 칼럼 (“쿠취 속을 색칠하기”) 속에서 그리고 마른 란을 노란색으로 칠하는 결정 속에서 쿠취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는 것을 강조한다.
상기 결정에 따라, 다섯 번째 판, 인도지도 B-16은 란 위에 물 빠진 노란색으로 색칠되어 있고 그 안에 단지 몇몇 지점 위에 푸른색깔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란의 당해 부분들이 건기 동안에 마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5) “... 당해 경계선이 거의 100년 전 실수로부터 유래하였고 아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그 오류가 매해마다 복사되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있을 수가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이 제기되었다 (녹취록, 236, 521-531, 926, 1001-11, 1258-61):
(1) 제출된 이 같은 일련지도들 일체 속에서, 신드는 영국령 인디아의 핑크색이고 이 색은 란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끝난다; 동일한 가장자리를 따라, 쿠취 본토와 란 간에는 이러한 리본과 점선이 없는 반면에, 옅은 붉은색 리본과 점선이 보인다.
(2) 유사한 옅은 단일적색 리본이 내부적 구역 경계선들을 위하여 역시 사용된 반면에, 한편으로는 신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루치스탄과 라지푸타나 간에, 외곽으로 더 두꺼운 이중 색깔 리본이 봄베이 관구의 외곽 경계를 보여준다.
(3)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판 (인도지도 B-51, 15, 16) 속에서, 란의 북쪽 가장자리 상에 점선과 함께하는 옅은 붉은색 리본이 쿠취 쪽으로 엷은 노란색 리본과 함께 강조된다; 쿠취 본토의 북쪽 가장자리 상에는 이러한 리본이 없다.
(4) 리본 혹은 여타 심볼에 의해 쿠취 본토로부터 어느 곳에서도 분리되지 않은, 란은 몇몇 지도들 상에서는, 쿠취와 상이한 틴트 색 (담채 색) 을 갖고 있다: 쿠취는 인디아 공국으로써 엷은 노란색을 갖고, 란은 늪지 표식(심볼) 과 함께 푸른색이다; 그해로부터 란 위에는 또한 노란색으로 색칠된다는 반면에 (인도지도 B-16), 이 같은 것은, 그해이후로부터 1908년까지 이전 지도들 경우이다 (파키스탄 지도 27 및 32 그리고 인도지도 B-50, 51 및 BB-3).
한 색깔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은 권한 있는 당국자들의 특별한 결정에 의해서 설명된다. 이것과 여러 가지 여타 요점들에 관하여, 인도는 인도 항변서와 함께하는 “외무 및 정치성. 노트 (외교문서). 인디아 지도 개정판, 1도=32마일” 라는 제목을 가진 인도자료 A-30이라는 서면자료에서 인용하였다. 그것은 1913년에서 1915년까지 노트들을 편집한 것이다. 첫 번째 것은, “인도 측량총관의 노트”는 그 지도의 네 번째 판과 관련된 언급들 목록을 칼럼 3개에 걸쳐 담고 있다: 다음 것인 제5판 상 색칠체계와 경계선들은 네 번째 판 상 그것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목록 가운데, 29번 밑에, 다음과 같은 노트 (칼럼1 속에서) 가 보인다: “쿠취(Cutch) 속 색깔 메김이 바뀌어졌다”: (두 번째 칼럼 속에서): “서쪽 란이 육지 색깔 (노란색) 과 함께 푸르게 그리고 마른 란으로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칼럼3 속에서): “호수보다 늪지로 마른 란을 색칠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보이고 현재 색깔은 승인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노트 속에서 란은 첫 번째 칼럼 (“쿠취 속을 색칠하기”) 속에서 그리고 마른 란을 노란색으로 칠하는 결정 속에서 쿠취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는 것을 강조한다.
상기 결정에 따라, 다섯 번째 판, 인도지도 B-16은 란 위에 물 빠진 노란색으로 색칠되어 있고 그 안에 단지 몇몇 지점 위에 푸른색깔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란의 당해 부분들이 건기 동안에 마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5) “... 당해 경계선이 거의 100년 전 실수로부터 유래하였고 아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그 오류가 매해마다 복사되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있을 수가 없다.”
p.210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인도는 몇 개의 사례들과, 더욱 특정해서, 위에서 인용된 인도자료 A-30과 제출된 지도면 상의 붙어있는 노트들 내용처럼, 그 지도들의 정확성을 위한 고위 당국자들의 마음씀(신경씀)을 언급하였다. 1914년 결의안 이전 판들 속에서는, 당해 경계선에 대한 맥도날드 혹은 에어스킨의 조정사항이, 이 결의안 이후에는 일정한 수정사항들이 정확하게 제시되는 반면에, 지적된 바 있었다. 당해 지도들은 정부의 승인을 얻었다. 인디아 정부의 국무위원의 일원인 외무 및 정치부 장관이 교정쇄본에 서명하였다. 당해 정부가 신판준비에 협조하였다. 동일한 인도자료 A-30은 성실하게 협조를 받았다. 당해 서면자료는 측량총관의 88개 언급과 외교 및 정치부에서 결정한 모든 진술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쿠취-신드 경계는, 그러한 시험판(교정판) 속에 묘사된 것처럼, 1914년 수정과 관련한 것을 제외하고는, 분명히 증명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 * *
답변 속에서, 파키스탄은 인도가 위에서 제기한 점을 다음과 같은 언급으로 다루었다(녹취록, 7436-7530면):
(1) 마지막인 제5판까지의 지도들 일체 위에서 신드를 란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점들과 좁다란 색깔리본으로 묘사된 당해 라인은, 구역 경계선이다; 그것은 타르 파르카르과 히데라바드, 히데라바드와 카라치 사이를 가르는 선으로 사용된다; 오로지 일정한 구역 경계만이 승인을 위해 제출된 32마일 인도지도, 인도자료 A-30 속에 있는 측량총관의 편지의 제5문에 의해 증명 되는데,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도 출판 명령 제39호에 따라, 구역 경계로 제4판 상에 사용된 흐릿하게 점으로 된 경계선은 당해 새 지도상에서는 얇은 실선으로 변경되었는데, 이 실선은 우리의 다른 축척지도 일체 상에서 이러한 경계선을 위해 사용되는 심볼 (표식) 이다” (녹취록, 7477면).
(2) 당해 지도들은 많이 부정확하고 측량부서는 이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도자료 A-30속에서 심지어 외무부서 조차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인도자료 A-30 속의 내용은, 당해 부서가, 지연과 “측량 부서의 기타 문제점들” 을 피하고자, 실제적 이유로써 일정한 부정확한 자료의 출간에 동의한다 (인도자료 A-30, 191면). “다른 말로 하자면, 외무성의 자세는 이것이다: 우리는 이 지도가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측량총관이 이미 그것을 인쇄판을 떴고 출판을 지연하기 보다는, 이 문제가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하고 있었다” (녹취록, 7481면).
(3) “측량 부서의 우두머리 속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은 인도지도 B-50 및 BB-3 즉 동일한 세 번째 판의 두 복사본들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국 통제 밑에 있는 경계선 부족들” 은 인도지도 B-50이 아니라 인도지도 BB-3 속에서 참고 도표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 이 부서는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녹취록, 7511면).
비슷하게도, 인디아 측량총관은 1891년에 32마일 인도지도의 두 번째 판을 발행하고 이 지도는 파키스탄지도 27이고 1년 후인 1892년에는 96마일 인도 지도인데, 이들 둘은 신드-란 경계를 서로 다르게 그리고 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 인도 측량국의 서로 상이한 출판물들 간에 있는 일관성의 부재”를 보여 준다 (녹취록, 7517면).
(4) 주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어떻게 신드-란 경계선을 따라 난 구역경계선 심볼이 네 번째 및 다섯 번째 간격 중에 있는 ―·― 국가 또는 주 경계선 심볼로 어떻게 변경 되었는지, 후자 판이 - 인도지도 B-16 속에 보이는 것처럼 - 이전 판들 모두와 비교해 본다면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것이다.
(1) 마지막인 제5판까지의 지도들 일체 위에서 신드를 란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점들과 좁다란 색깔리본으로 묘사된 당해 라인은, 구역 경계선이다; 그것은 타르 파르카르과 히데라바드, 히데라바드와 카라치 사이를 가르는 선으로 사용된다; 오로지 일정한 구역 경계만이 승인을 위해 제출된 32마일 인도지도, 인도자료 A-30 속에 있는 측량총관의 편지의 제5문에 의해 증명 되는데,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도 출판 명령 제39호에 따라, 구역 경계로 제4판 상에 사용된 흐릿하게 점으로 된 경계선은 당해 새 지도상에서는 얇은 실선으로 변경되었는데, 이 실선은 우리의 다른 축척지도 일체 상에서 이러한 경계선을 위해 사용되는 심볼 (표식) 이다” (녹취록, 7477면).
(2) 당해 지도들은 많이 부정확하고 측량부서는 이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도자료 A-30속에서 심지어 외무부서 조차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인도자료 A-30 속의 내용은, 당해 부서가, 지연과 “측량 부서의 기타 문제점들” 을 피하고자, 실제적 이유로써 일정한 부정확한 자료의 출간에 동의한다 (인도자료 A-30, 191면). “다른 말로 하자면, 외무성의 자세는 이것이다: 우리는 이 지도가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측량총관이 이미 그것을 인쇄판을 떴고 출판을 지연하기 보다는, 이 문제가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하고 있었다” (녹취록, 7481면).
(3) “측량 부서의 우두머리 속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은 인도지도 B-50 및 BB-3 즉 동일한 세 번째 판의 두 복사본들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국 통제 밑에 있는 경계선 부족들” 은 인도지도 B-50이 아니라 인도지도 BB-3 속에서 참고 도표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 이 부서는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녹취록, 7511면).
비슷하게도, 인디아 측량총관은 1891년에 32마일 인도지도의 두 번째 판을 발행하고 이 지도는 파키스탄지도 27이고 1년 후인 1892년에는 96마일 인도 지도인데, 이들 둘은 신드-란 경계를 서로 다르게 그리고 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 인도 측량국의 서로 상이한 출판물들 간에 있는 일관성의 부재”를 보여 준다 (녹취록, 7517면).
(4) 주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어떻게 신드-란 경계선을 따라 난 구역경계선 심볼이 네 번째 및 다섯 번째 간격 중에 있는 ―·― 국가 또는 주 경계선 심볼로 어떻게 변경 되었는지, 후자 판이 - 인도지도 B-16 속에 보이는 것처럼 - 이전 판들 모두와 비교해 본다면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것이다.
이점에 관하여 파키스탄에 제출한 이유서는 다음과 같았다:
(a) 외무성에 보낸 측량총관의 서신은 인도자료 A-30 제2문 속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네 번째 판에서 채택된 경계선과 색상 체제는 1908년에 귀하께서 면밀히 검토한 바 있었습니다; 새로운 다섯 번째 판에서 보이는 경계선들 속에 보이는 유일한 변화는 인디아 내 지방 및 구역 경계선들의 재조정과 네 번째 판이 인쇄된 이래로 발한 명령들로 인한 것이었다.” 이것은 단지 이전 판 이래로 오로지 “승인받고 보장된” 변경사항들만이 그 새로운 것 속에 묘사될 수 있다 (녹취록, 7472면) 는 측량총관의 인지상태를 분명히 보여준다.
(b) 이러한 변경사항은 1914년 결의안에 뒤따른 것이었다; 외무성 안에서는, ‘1913년 명령 아래서’ 24도 선 살짝 아래에 있는 한 라인이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으로 결정된 바가 있었다는 내용의 노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녹취록, 7487면.);
(c) 그러나 정확하게 여기서 우리는, 증거로 제출된 다섯 번째 판, 즉 인도지도 B-16을 출판하기 이전 상황들 중 하나를 살펴본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가정에 성립을 가능케 한다:
(b) 이러한 변경사항은 1914년 결의안에 뒤따른 것이었다; 외무성 안에서는, ‘1913년 명령 아래서’ 24도 선 살짝 아래에 있는 한 라인이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으로 결정된 바가 있었다는 내용의 노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녹취록, 7487면.);
(c) 그러나 정확하게 여기서 우리는, 증거로 제출된 다섯 번째 판, 즉 인도지도 B-16을 출판하기 이전 상황들 중 하나를 살펴본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가정에 성립을 가능케 한다:
“보낸 증거자료는, 환상 고리들, 그리고 수직선을 따라서 표시된... 자주색 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신드해변을 따라서가 아니라 그 수직선의 끝 - 다시 말해 코리 샛강의 맨 위쪽 지점으로부터 - 남쪽으로, 그것은 코리 샛강의 중간을 따라 있다... 외무성의 언급은 이것과는 달리 다음과 같았다: ‘최근의 협정에 따른다면 코리 샛강은 더 이상 신드와 쿠취(Cutch)간 경계선을 이루지 않는다. 1913년 11월에 이에 따른 제가가 있었는데 그것은 24도선의 약간 남쪽에 위치한 한 지점까지 써 샛강으로 둘러싸인 어떤 한 지역을 쿠취(Cutch)공국에게 양도하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경계는 증거로써 푸른색 라인으로 표시되었고 그것은 그 밑에서부터 자세하게 보인다’.”
그러나 “모사와 증명은 여기에는 없다; 그리하여 두 소명자료가 없는 상태이다”. 우리는, 그와는 반대로, 이도지도 B-15와 B-16이라는 그 후에 발행된 두 개가 있는데, 이것들은 연속된 상항의 결과물이다: 그들은 국가 혹은 주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선견지명을 견지해서, 측량총관이 외무성에게 신드-란 경계가 코리 만 섹터 안에서 수정되어야 했다고 알려 주면서, 그는 “조정 내용은 신경 쓰지 마라... 지금 현안은, 이 지역은 쿠취에게 이미 이전에 양도 되었으므로, 더 이상 없다” 는 대답을 얻었다. 신드와 란 간 경계의 코리 샛강 구분이 역시 신드-쿠취 경계로 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혼동이 생겨났고 인도지도 B-15 와 같은 지도들이 인쇄될 수 있었으며, 파키스탄의 청구 이유 속에서, 최종 승인을 받고자 외무성으로 결코 송부된 바 없었다. “B-15에 대하여 외무성의 승인은 없다 ”.
p.212
인도지도 B-16이 1928년 그 동일한 판의 재 인쇄본이고, 그것은 인도지도 B-15와 완전히 부합하지 않으므로 (인도지도 B-15안에서는 마른 란을 위한 노란색이 없다)... “오로지 신만이 1915년에 정확하게 무엇이 인쇄 되었는지 알고 있다”. 만약 그러한 재인쇄본에 관하여 그 간격(gap)이 매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슨 권한으로 B-16지도상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를 알 수가 없다 (녹취록, 7506-7면).
게다가, 인도지도 B-16은, 인도지도 A-30 속에 담겨있는, 란 속의 물 빠진 색깔의 수정을, 매우 기이한 방법으로 하라는 지시사항들을 따른다. 그러한 지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마른 란을 대하여 푸른색은 노란 색으로 변경하라. 이 지도에서 이루어졌던 것은 푸른색 부분이 노란색으로 (당해 경계선의 동쪽에) 변경하는 것이었고, 이와 동시에, “쿠취의 란 (Rann of Kutch)” 단어의 글자 사이를 넓혀서 “푸른색 점” 선의 남쪽 부분까지 확장시키는데, 한편으로는 얇게 수평선으로 된 대쉬들로 표시된, “흐르는(runny)” 토양 심볼이 그 수직선과 “푸른색 점” 라인양쪽을 가로질러 확장 시킨다. “푸른색 선이 1914년에 등장해서 란의 일부분이 1914년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그렇게 글자 사이를 넓힌 것은 “분명 승인 없이” 했던 것인 반면에, 이것은 측지학의 “대단한 업적”이다.
줄여서 말한다면, 인도지도 B-16은 “승인받지 않은 지도이다” (녹취록, 7506면).
(5) 정부승인과 관련하여서, 인디아 정부는 영국령 인디아에 속하는 영토를 인도 공국에게 양도하는 것을 승인할 적절한 권한이 어쨌든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오로지 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1893년 9월 27일에 양쪽 대표단들이 조사하고, 불완전한 지도로 판명된 당해지도 제3판의 준비와 연관된, 어떤 한 편지가 승인받기 위해서 런던으로 보내졌다. 그 지도는 훨씬 만은 지도면을 가졌어도, 당해 지도의 단지 네 장만이 런던으로 송부되었다. 보낸 것은 “인디아의 외곽 육지 경계선을 담고 있는 지도면이고, 인디아의 외곽 경계선을 담고 있지 않는 것들은 인디아가 영국의 국무장관에게 보내지 않았다”. 신드-쿠취 경계선은 5번 지도면상 나타나있는 반면, 보내진 지도면들은 1, 2, 4 및 6번 이었다. 이것은, 본사건의 해당경계선을 보여주는 지도면은 런던으로 가지 않았고 따라서 거기서 승인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녹취록, 10182-2면.)
게다가, 인도지도 B-16은, 인도지도 A-30 속에 담겨있는, 란 속의 물 빠진 색깔의 수정을, 매우 기이한 방법으로 하라는 지시사항들을 따른다. 그러한 지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마른 란을 대하여 푸른색은 노란 색으로 변경하라. 이 지도에서 이루어졌던 것은 푸른색 부분이 노란색으로 (당해 경계선의 동쪽에) 변경하는 것이었고, 이와 동시에, “쿠취의 란 (Rann of Kutch)” 단어의 글자 사이를 넓혀서 “푸른색 점” 선의 남쪽 부분까지 확장시키는데, 한편으로는 얇게 수평선으로 된 대쉬들로 표시된, “흐르는(runny)” 토양 심볼이 그 수직선과 “푸른색 점” 라인양쪽을 가로질러 확장 시킨다. “푸른색 선이 1914년에 등장해서 란의 일부분이 1914년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그렇게 글자 사이를 넓힌 것은 “분명 승인 없이” 했던 것인 반면에, 이것은 측지학의 “대단한 업적”이다.
줄여서 말한다면, 인도지도 B-16은 “승인받지 않은 지도이다” (녹취록, 7506면).
(5) 정부승인과 관련하여서, 인디아 정부는 영국령 인디아에 속하는 영토를 인도 공국에게 양도하는 것을 승인할 적절한 권한이 어쨌든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오로지 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1893년 9월 27일에 양쪽 대표단들이 조사하고, 불완전한 지도로 판명된 당해지도 제3판의 준비와 연관된, 어떤 한 편지가 승인받기 위해서 런던으로 보내졌다. 그 지도는 훨씬 만은 지도면을 가졌어도, 당해 지도의 단지 네 장만이 런던으로 송부되었다. 보낸 것은 “인디아의 외곽 육지 경계선을 담고 있는 지도면이고, 인디아의 외곽 경계선을 담고 있지 않는 것들은 인디아가 영국의 국무장관에게 보내지 않았다”. 신드-쿠취 경계선은 5번 지도면상 나타나있는 반면, 보내진 지도면들은 1, 2, 4 및 6번 이었다. 이것은, 본사건의 해당경계선을 보여주는 지도면은 런던으로 가지 않았고 따라서 거기서 승인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녹취록, 10182-2면.)
인도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제안과 함께, 그 답변서 속에서 이상과 같은 파키스탄 측 입장에 대처하였다 (녹취록, 13233-35, 14531-53, 14621-822면):
(1) 인도는, 시작하면서, 본 중재재판소에 제출된 인디아 32마일지도의 여러 가지 서로 상이한 판들과 재 인쇄본들에 대한 재검토를 제안하였다. 이 재검토는 다음의 내용이다 (녹취록, 14622면):
(1) 인도는, 시작하면서, 본 중재재판소에 제출된 인디아 32마일지도의 여러 가지 서로 상이한 판들과 재 인쇄본들에 대한 재검토를 제안하였다. 이 재검토는 다음의 내용이다 (녹취록, 14622면):
“이 32마일 대 1인치 지도라는 특정 지도는 다섯 개의 여러 판들과 재 인쇄본 과정을 통하였다. 첫 번째 판의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고 기록상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판의 날짜는 1889년으로 알려진다; 세 번째 판은 1898년 이다; 네 번째 판은 1908년이다; 다섯 번째 판은 1915년 이고 다섯 번째 판의 재 인쇄본은 1922년과 1928년 이다. 그것이 주된 시간 순서이다. 그렇지만, 이들 날짜 사이에, 인쇄된 판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또는 이미 인쇄된 판의 수정된 지도면 방식으로, 몇몇 여타 것들이 존재한다. 증거로 제출 할 지도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파키스탄 지도 27이 있는데 이것은 1889년 두 번째 판의 1891년 인쇄본이다. 두 번째 판은 1889년 이었지만 파키스탄 지도 27은 1891년에 인쇄되었다; 추정하건데 그것은 그 이전 판의 인쇄본이다. 1898년 세 번째 판은 인도지도 B-50이다. 세 번째 판 이후에, 쿠취와 신드를 보여주는 관련 지도면 제 3번이 1901년에 인디아 정부 외무장관이 가한 일정한 수정사항들과 함께 승인되었다. 그것이 인도지도 BB-3이다. 그 다음에는 1908년 네 번째 판이 나왔는데, 이것이 인도지도 B-51이다. 다섯 번째 판은 1915년이고 이것을 교정쇄판으로 네 세트 이상을 인디아 정부에게 측량부서가 보냈다. 다섯 번째 판의 교정하기 위한 첫 번째 세트가 1913년 10월에 송부되었고 그것은 지금 증거로 제출될 예정이다. 교정판 두 번째 세트가 1914년 7월에 보내졌고 이것이 인도지도 B-15 증거로 제출된다. 세 번째 및 네 번째 교정판 세트는 각각 1915년 4월과 1915년 11월이고 그들은 지금 사건과 무관한 관계로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그 다음에 1915년 다섯 번째 판이 나왔는데 그것은 증거로 제출될 것이다. 증거로 제출될 예정인 1922년 다섯 번째 판의 재 인쇄본이 있었다. 또한 1928년 다섯 번째 판의 재 인쇄본이 있었는데, 이것이 B-16이고 여기서 보이는 벽지도(wall map)이다. 그것이 32마일 대 1인치 일련 지도의 마지막 것이다. 그것은 위치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1914년에 수정되었던 그 라인을 보여준다.”
여기서 언급된 지도들은 뒤에 가서 증거로 재출되었고 다음과 같은 번호가 매겨졌다: 다섯 번째 판을 위한 첫 번째 증명 세트는 인도지도 TB-21로, 다섯 번째 판 그 자신은 인도지도 TB-22, 그리고 1922년 다섯 번째 판의 재 인쇄본은 인도지도 TB-23으로 각각 번호가 매겨졌다.
인도가 언급한 모든 지도들은 증거로 제출되었다 (인도지도 B-50, B-51, BB-3, B-15, B-16, TB-21, TB-22 및 TB-23). 새롭게 제출된 것들인 TB-21, TB-22 및 TB-23 또한 사진 복사본으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2) 인디아가 32마일 지도를 제작한 것은 “연속된 과정: 하나의 판이 끝나자마자 그것은 새로운 수정사항, 제안 및 궁극적으로는 더 나아가 하나의 개정판을 위해 바탕, 주제, 논거 등이 되었다... 이전 판의 인쇄된 지도면들은 그 다음 판들을 위한 수정, 조정, 등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제안 사항들은 때때로 최종판 재 인쇄본 속에 포함되었고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판 속에서 수용되곤 한다”는 것이었다. (녹취록, 14682면.)
이러한 절차를 예증하고 이러한 지도에 관한 여러 가지 제안을 실증하기 위하여, 인도는
그것들에 대한 원본 및 사진 카피(복사본)를 당 중재재판소가 이용하도록 증거로 제출하였다.
(3) 인디아의 32마일 지도는 특별히 높게 랭크된 지도들이다. 그 지도는, 특별한 지도들이 함께 작성 되었거나 혹은 에치슨의 조약집, 즉, 인디아 정부의 국제 조약 표준서, 서로 다른 판에 부속된, 특별한 지도들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사실에 의해 예증된다. 이것은, 에치슨의 1892년판에서 1927년판까지 걸쳐서 그랬는데, 1927년은 1929년판인 그 다음 판이, 분할지도면(degree sheets)들이, 인디아의 아틀라스 지도면들의 연결체가 이미 당해 정부와 공중(public)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관계로, 지도 없이 출판될 수 있었을 때었다.
에치슨 조약집의 지도들은 또한 32마일 대 1인치 축척을 가진 지도들이고 그것들은 인디아 32마일 지도와 실제로 동일하다. 인디아 정부는 그 준비과정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인디아 32마일 지도와 같이, 신드-쿠취 경계선을 란의 북쪽 가장자리 위에 보여준다.
에치슨의 조약집의 여러 카피가 증거로 제출되었고 그 안에 담긴 지도들을 본 재판소가 조사하였다. (녹취록, 14633-73면.)
(4) 이러한 일련 지도들 제작과 관련된 일체의 것들이 지극한 주의를 보여주었고 이전 판들에 대한 그들 간 상호 연락과 새로운 판에 대한 증명자료를 위하여 수년간이 소요되었다. 인디아의 총독 및 부 태수인 쿠르존 경(Sir Curzon)은 1900년 5월 25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쪽지를 썼다:
인도가 언급한 모든 지도들은 증거로 제출되었다 (인도지도 B-50, B-51, BB-3, B-15, B-16, TB-21, TB-22 및 TB-23). 새롭게 제출된 것들인 TB-21, TB-22 및 TB-23 또한 사진 복사본으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2) 인디아가 32마일 지도를 제작한 것은 “연속된 과정: 하나의 판이 끝나자마자 그것은 새로운 수정사항, 제안 및 궁극적으로는 더 나아가 하나의 개정판을 위해 바탕, 주제, 논거 등이 되었다... 이전 판의 인쇄된 지도면들은 그 다음 판들을 위한 수정, 조정, 등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제안 사항들은 때때로 최종판 재 인쇄본 속에 포함되었고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판 속에서 수용되곤 한다”는 것이었다. (녹취록, 14682면.)
이러한 절차를 예증하고 이러한 지도에 관한 여러 가지 제안을 실증하기 위하여, 인도는
그것들에 대한 원본 및 사진 카피(복사본)를 당 중재재판소가 이용하도록 증거로 제출하였다.
(3) 인디아의 32마일 지도는 특별히 높게 랭크된 지도들이다. 그 지도는, 특별한 지도들이 함께 작성 되었거나 혹은 에치슨의 조약집, 즉, 인디아 정부의 국제 조약 표준서, 서로 다른 판에 부속된, 특별한 지도들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사실에 의해 예증된다. 이것은, 에치슨의 1892년판에서 1927년판까지 걸쳐서 그랬는데, 1927년은 1929년판인 그 다음 판이, 분할지도면(degree sheets)들이, 인디아의 아틀라스 지도면들의 연결체가 이미 당해 정부와 공중(public)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관계로, 지도 없이 출판될 수 있었을 때었다.
에치슨 조약집의 지도들은 또한 32마일 대 1인치 축척을 가진 지도들이고 그것들은 인디아 32마일 지도와 실제로 동일하다. 인디아 정부는 그 준비과정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인디아 32마일 지도와 같이, 신드-쿠취 경계선을 란의 북쪽 가장자리 위에 보여준다.
에치슨의 조약집의 여러 카피가 증거로 제출되었고 그 안에 담긴 지도들을 본 재판소가 조사하였다. (녹취록, 14633-73면.)
(4) 이러한 일련 지도들 제작과 관련된 일체의 것들이 지극한 주의를 보여주었고 이전 판들에 대한 그들 간 상호 연락과 새로운 판에 대한 증명자료를 위하여 수년간이 소요되었다. 인디아의 총독 및 부 태수인 쿠르존 경(Sir Curzon)은 1900년 5월 25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쪽지를 썼다:
“우리가 소유, 혹은 통제, 혹은 주장, 혹은 소유, 통제 혹은 주장하고 싶은 것을 색칠해야하는 것과 함께하는 다양한 물 빠진 색깔에 대한 6년간의 긴 논쟁을 안 사람 누구라도, 그 모든 것은 어느 정도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본인이 끼어들기에는 지금 너무 늦다. 만약 본인이 좀 더 일찍 통보받았었더라면, 본인은 그 지도를 전혀 나오지 않게 했을 것이다. 각각의 지도 속에 섞여진 이러한 색깔들은 우리의 입장을 약간 의구심이 들게 한다; 선들이 한 지점 속에서는 분명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희미하다; 영국 영토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한 이 같은 애매한 판단은 세상에 있는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그들은 단지 우리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우리의 적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며, 그리고 우리 자신 미래에게 정치적 문제만 야기 시킬 뿐이다. 본인 판단으로는 이들 지도에 색깔을 입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획정된 경계선들은 그 안에서 날카로운 점선으로 표시될 수 있겠다: 그러나 물 빠진 색깔은 망상이고 매우 자주 거짓이다. 이 지도 위에 쏟아 부은 6년간의 노고 후에, 본인은 본인이 아는 지식이라는 견지에서 그 안에서 부정확함을 여전히 목도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과거이고 이미 이뤄진 일이다. 본인은 단지 인디아의 내적 분할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하건 간에, 경계선들이 색깔로 칠해진 지도는” -즉, 외곽 경계선들- “더 이상 제작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희망을 표시할 뿐이다. 그러나, 더 강하게, 측량부서는 외무성의 서면 재가 및 명시적 동의 없이 이러한 지도를 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아미르와 관련하여서, 그에게 당해 지도를 보내는 것은 이러한 웃음거리를 비극으로 단지 전환할 뿐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과거이고 이미 이뤄진 일이다. 본인은 단지 인디아의 내적 분할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하건 간에, 경계선들이 색깔로 칠해진 지도는” -즉, 외곽 경계선들- “더 이상 제작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희망을 표시할 뿐이다. 그러나, 더 강하게, 측량부서는 외무성의 서면 재가 및 명시적 동의 없이 이러한 지도를 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아미르와 관련하여서, 그에게 당해 지도를 보내는 것은 이러한 웃음거리를 비극으로 단지 전환할 뿐일 것이다.”
그러나, 크루존 경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지도들은 계속 발행되었다...” (녹취록, 14723-4면.) 비록 크루존 경이 “경계선들이 색칠된 지도가 더 이상은 제작되어서는 안 된다” 고 했지만, 그는, 외무부 장관과, 영국령 인디아와 영국 통치 하의 지방은 핑크색으로 그리고 인도 공국들은 노란색으로 색칠될 수 있다고 그 이후에 더 계속된 후에 토론, 합의하였다 (녹취록, 14731면).
(5) 이런 범주의 지도들은 그 하단에 “인디아 측량총관 등등의 지시아래 발행되었음” 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는데, 그 측량총관은 공공연히 측량 국 및 그의 관청의 권위를 보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었다. 그들이 비 유럽지역에 대한 정치적 및 행정적 구조체계를 물에 빠진 색과 경계선 심볼 및 리본 등으로 묘사하고 있었던 관계로, 이러한 지도들을 발행하는 것은 일종의 국가 행위로 여겨지고 취급되었다. 특정되고 잘 정의된 일정한 절차가 세워졌고 엄격하게 지켜졌다. 이러한 절차의 주된 생각은 인디아 정부와 런던에 있는 제국 정부는 이러한 지도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협조하였고, 그러한 지도들은, 두 정부의 제가를 득하지 않는 한 출판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단 출판된다면, 이러한 지도들은 인디아 정부와 제국 정부 양쪽의 권위를 보증한다는 의미가 된다.
상세한 절차사항들은 본 중재재판소에 서면자료로 제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절차의 중요한 특색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인디아 32마일 지도의 어떤 한 판의 발행 이후에, 측량총관은 그 다음번 판을 준비하는데 영향을 주는 비판과 정보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당해 비판적 언급과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는 교정 인쇄본을 마련하였다. 어떤 한 주어진 시점에, 그는 이 같은 교정쇄본과 함께 당해 언급사항들의 편찬물을 인디아 정부의 외무 및 정치성으로 통보하였다. 거기로부터, 일정한 서류가 외무성 및 철도청으로 갔다. 이 같은 부서들로부터 그것들은 정치성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에 이 같은 세 부서의 의견과 함께 당해 측량총관에게 송부되었다. 측량총관은, 그 이후에, 그러한 의견들을 수용하고 면밀히 살펴본 다음 새로운 교정쇄 자료를 준비하였다. 이것들은 또다시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세 번째 네 번째가 이어졌다. 새로운 판의 발간이 임박할 무렵, 하나의 완전한 교정쇄세트 10개가 런던에 소재하고 있는 인디아 국무장관에게 보내졌다. 그는 또한 끼워 넣어야 할 의견을 내었다. 새로운 교정쇄가 제작됐고 런던으로 송부되었다. 마지막 승인이 런던으로부터 떨어진 경우에만, 당해 측량총관청은 새로운 판을 발간하였다.
이 절차 속에 두 개가 특별히 명확하게 될 필요가 있다.
하나: 어느 범주까지 인디아 정부의 부서(성)의 밑에 있는 하위 당국자들이 이 같은 지도들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협조했는가? 신드 내 집정관과 같이 지방행정관 같은 이들로부터의 수정의견들을 접수하면서, “주(province)들을 포함한 상이한 여러 지방들로부터 교정사항들이 요구되었다. 신드 내 집정관이 당해 내부 경계선에 대한 변경을 지적해도, 그는 신드-쿠취 경계선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녹취록, 14632면.)
둘: 런던 소재 국무장관의 승인이 인디아의 외곽 경계선들에 한정 되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파키스탄은, 1889년 두 번째 판과 1898년 세 번째 판 사이 기간을 참고하면서, 그 다음 판 여러 지도면들 중에 외부적 경계선이 보이는 오로지 그 지도면만이 런던으로 보내졌다. 1915년 최종 본이었던 다섯 번째 판까지, 해당 판 모두는 6장이었고 다섯 번째 판은 12장이었다. 증거로 제출된 서신연락서류로부터, 발간된 두 번째 판의 여섯 장 완전한 세트와 세 번째 판인 그 다음 판 교정쇄지의 완전한 세트 10개가 런던으로 송부되었다.
파키스탄을 오류로 몰아넣은 것은 1893년 중 한 시점에 준비 중에 있는 세 번째 판 6개의 지도면 중 4장만이 런던에 송부됐고 그 지도면들은 인디아의 외곽지역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인디아가 증거로 제출한 완전한 서신연락자료는, 다음과 같은 전체적 상쇄사항을 낳았다. 먼저, 이 6장 모두가 런던에 보내졌다. 국무장관 부서는, 나머지 2개를 승인하면서, 그들 중 4장에 대한 평가의견을 제시했다. 그 이후에 수정되어야 할 그 4장이 측량총관에 의해 고쳐졌고, 이 4장의 “새로운 교정쇄 세트”가 런던으로 송부됐다. 이렇게 그들이 외곽경계지도가 됐다 (녹취록, 14531-53 및 14631-704면.)
(6) 마지막인 다섯 번째 판은, 그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특별히 많은 정보와 서면자료와 함께 나왔다.
이점에 관하여, 그 지도들이 오리지널 형태로 그리고 사진 복사 형태로 증거로 제출되는데, 이것은 지도들과 함께하는 이 같은 최종판을 위한 준비절차에 관하여 완벽한 예증이었다.
인도지도 TB-21 번호를 가진 그 새로운 지도는 당해 판의 첫 번째 교정쇄세트의 한 카피(인쇄본)이다. 그것은 맨 꼭대기에 잉크를 사용하여 손으로 쓴 “색깔 및 경계선들에 대한 승인을 위하여 정부에게 제출된 첫 번째 색깔 인쇄본” 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다른 손 글씨로, 여러 가지 언급이 있었는데, 그들 중 2개가 쿠취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부지(Bhuj)는 붉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영국 군대 주둔지) 라고 되어있다. 두 번째 것은 “경계선이 1913년에 변경된 바 있었다... 새로운 경계선이 흑백 인쇄본 상에 수정된 선을 따라 나 있다. 적절한 색칠” 이다. 이러한 의견은 코리 샛강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동그라미와 연결되는데, 이것은 이 샛강과 “수직선” 의 하부 부분을 따라 난 당해 경계선을 부분을 감싸고 있다. 이것들이 외무 및 정치성의 의견이었다고 했다.
이전에 제출된 인도지도 B-15가 재차 본 재판소의 주목을 끌었고 그것의 원본이 제출됐다. 그것은 준비하는데 있어서 그 다음번 단계에 관한 예증이었다. 그것은 (잉크를 사용하여 손으로) “색깔과 경계선 승인을 위하여 정부에게 제출된 두 번째 색깔인쇄본세트” 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다시 수기로 된 의견을 담고 있는데, 카이르프르에 관한 것이었다. 코리 샛강을 따라 난 경계는 1914년 조정에 따라 변경됐다. 만에 걸쳐서 푸르스름하게 색이 바란 것은 몇몇 지점으로 줄어들었다. 란의 나머지 부분은 쿠취 본토와 같이 하얗게 보인다.
새로운 인도지도 TB-22는 다섯 번째 판의 마지막 형태였다. 그것은 증거로 제출됐고 사진 복사본 또한 그랬다. 그 지도는 1914년 경계선 조정을 포함하고 란은 쿠취의 본토와 같이 몇몇 지점을 제외하고는 물 빠진 노란색을 하고 있다.
1922년에 같은 판의 재 인쇄본인 새로운 인도지도 TB-23은, 행정통치단위에 걸쳐 물 빠진 색은 없지만 일정한 경계선 심볼들과 함께, 인디아의 물리적 형상을 담고 있다. 그것은 1914년 라인과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 경계선 심볼을 갖는다 (인도지도 TB-24와 동일한 경계선 조정).
이전에 제출된 지도, 인도지도 B-16은, 당해 지도의 동일한 마지막 판의 재 인쇄본을 의미하고 인디아는 그 지도를 그 범주 안에서는 가장 중요한 측지학적 서면자료라고 지적한다. 그 오리지널 인쇄본이 본 중재재판소의 회합실(meeting room) 벽에 최근 몇 주일동안 인도가 구술변론을 하는 가운데 걸려있었다. 그것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었다.
인디아 32마일 지도 다섯 번째 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이전 판들과 상이하다는 것이 지적된 바 있었다:
(a) 그것은 서쪽의 써 샛강 어귀에서 동쪽으로는 남동 트라이정션까지 쿠취-신드 경계선을 따라서 이중 색 리본과 ―·― 심볼을 가지고 있다 (1914년 수정);
(b) 란은 쿠취의 본토와 같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몇몇 지점의 예외와 함께);
(c) 바딘 탈루카 섹터 내 두 번째 고리는 에어스킨의 측량지도 결과처럼 수정되었다;
(d) 미티 탈루카를 따라 난 경계선은 거의 직선이고 당해 지역의 만 입구를 따라 나 있지는 않다;
(e) 그것은, 당사자들이 합의한 바대로, 조드푸르 경계선 조정내용을 담고 있다.
(7) 제출된 서면자료와 지도들 일체로부터 인도가 도출해 낸 결론은 다음과 5개 속에 요약되었다:
(a) 인디아의 32마일 지도는 영국령 지역을 결정 하기위한 권위적 실체이다;
(b) “인디아 정부와 국무장관이 자세하게 조사하고 면밀하게 살펴본” 이 지도는, 신드 경계선을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것으로 보여 준다;
(c)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은 인접한 것으로 보인다;
(d) 란은 쿠취에게 귀속하는 늪지 또는 소택지로 보인다;
(e) 이 마지막 두 요점에 대한 애매모호한 일체는 당해 지도의 다섯 번째 판에 의하여, 인도지도 TB-22 상에 있는 1915년 원래 형태 속에 보이는 대로, 의구심을 불식시킨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판인 그 최종 본은, 본 사건과의 “역사적 근접성(유사성)”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유의성(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5) 이런 범주의 지도들은 그 하단에 “인디아 측량총관 등등의 지시아래 발행되었음” 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는데, 그 측량총관은 공공연히 측량 국 및 그의 관청의 권위를 보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었다. 그들이 비 유럽지역에 대한 정치적 및 행정적 구조체계를 물에 빠진 색과 경계선 심볼 및 리본 등으로 묘사하고 있었던 관계로, 이러한 지도들을 발행하는 것은 일종의 국가 행위로 여겨지고 취급되었다. 특정되고 잘 정의된 일정한 절차가 세워졌고 엄격하게 지켜졌다. 이러한 절차의 주된 생각은 인디아 정부와 런던에 있는 제국 정부는 이러한 지도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협조하였고, 그러한 지도들은, 두 정부의 제가를 득하지 않는 한 출판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단 출판된다면, 이러한 지도들은 인디아 정부와 제국 정부 양쪽의 권위를 보증한다는 의미가 된다.
상세한 절차사항들은 본 중재재판소에 서면자료로 제출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절차의 중요한 특색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인디아 32마일 지도의 어떤 한 판의 발행 이후에, 측량총관은 그 다음번 판을 준비하는데 영향을 주는 비판과 정보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당해 비판적 언급과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는 교정 인쇄본을 마련하였다. 어떤 한 주어진 시점에, 그는 이 같은 교정쇄본과 함께 당해 언급사항들의 편찬물을 인디아 정부의 외무 및 정치성으로 통보하였다. 거기로부터, 일정한 서류가 외무성 및 철도청으로 갔다. 이 같은 부서들로부터 그것들은 정치성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에 이 같은 세 부서의 의견과 함께 당해 측량총관에게 송부되었다. 측량총관은, 그 이후에, 그러한 의견들을 수용하고 면밀히 살펴본 다음 새로운 교정쇄 자료를 준비하였다. 이것들은 또다시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세 번째 네 번째가 이어졌다. 새로운 판의 발간이 임박할 무렵, 하나의 완전한 교정쇄세트 10개가 런던에 소재하고 있는 인디아 국무장관에게 보내졌다. 그는 또한 끼워 넣어야 할 의견을 내었다. 새로운 교정쇄가 제작됐고 런던으로 송부되었다. 마지막 승인이 런던으로부터 떨어진 경우에만, 당해 측량총관청은 새로운 판을 발간하였다.
이 절차 속에 두 개가 특별히 명확하게 될 필요가 있다.
하나: 어느 범주까지 인디아 정부의 부서(성)의 밑에 있는 하위 당국자들이 이 같은 지도들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협조했는가? 신드 내 집정관과 같이 지방행정관 같은 이들로부터의 수정의견들을 접수하면서, “주(province)들을 포함한 상이한 여러 지방들로부터 교정사항들이 요구되었다. 신드 내 집정관이 당해 내부 경계선에 대한 변경을 지적해도, 그는 신드-쿠취 경계선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녹취록, 14632면.)
둘: 런던 소재 국무장관의 승인이 인디아의 외곽 경계선들에 한정 되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파키스탄은, 1889년 두 번째 판과 1898년 세 번째 판 사이 기간을 참고하면서, 그 다음 판 여러 지도면들 중에 외부적 경계선이 보이는 오로지 그 지도면만이 런던으로 보내졌다. 1915년 최종 본이었던 다섯 번째 판까지, 해당 판 모두는 6장이었고 다섯 번째 판은 12장이었다. 증거로 제출된 서신연락서류로부터, 발간된 두 번째 판의 여섯 장 완전한 세트와 세 번째 판인 그 다음 판 교정쇄지의 완전한 세트 10개가 런던으로 송부되었다.
파키스탄을 오류로 몰아넣은 것은 1893년 중 한 시점에 준비 중에 있는 세 번째 판 6개의 지도면 중 4장만이 런던에 송부됐고 그 지도면들은 인디아의 외곽지역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인디아가 증거로 제출한 완전한 서신연락자료는, 다음과 같은 전체적 상쇄사항을 낳았다. 먼저, 이 6장 모두가 런던에 보내졌다. 국무장관 부서는, 나머지 2개를 승인하면서, 그들 중 4장에 대한 평가의견을 제시했다. 그 이후에 수정되어야 할 그 4장이 측량총관에 의해 고쳐졌고, 이 4장의 “새로운 교정쇄 세트”가 런던으로 송부됐다. 이렇게 그들이 외곽경계지도가 됐다 (녹취록, 14531-53 및 14631-704면.)
(6) 마지막인 다섯 번째 판은, 그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특별히 많은 정보와 서면자료와 함께 나왔다.
이점에 관하여, 그 지도들이 오리지널 형태로 그리고 사진 복사 형태로 증거로 제출되는데, 이것은 지도들과 함께하는 이 같은 최종판을 위한 준비절차에 관하여 완벽한 예증이었다.
인도지도 TB-21 번호를 가진 그 새로운 지도는 당해 판의 첫 번째 교정쇄세트의 한 카피(인쇄본)이다. 그것은 맨 꼭대기에 잉크를 사용하여 손으로 쓴 “색깔 및 경계선들에 대한 승인을 위하여 정부에게 제출된 첫 번째 색깔 인쇄본” 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다른 손 글씨로, 여러 가지 언급이 있었는데, 그들 중 2개가 쿠취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부지(Bhuj)는 붉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영국 군대 주둔지) 라고 되어있다. 두 번째 것은 “경계선이 1913년에 변경된 바 있었다... 새로운 경계선이 흑백 인쇄본 상에 수정된 선을 따라 나 있다. 적절한 색칠” 이다. 이러한 의견은 코리 샛강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동그라미와 연결되는데, 이것은 이 샛강과 “수직선” 의 하부 부분을 따라 난 당해 경계선을 부분을 감싸고 있다. 이것들이 외무 및 정치성의 의견이었다고 했다.
이전에 제출된 인도지도 B-15가 재차 본 재판소의 주목을 끌었고 그것의 원본이 제출됐다. 그것은 준비하는데 있어서 그 다음번 단계에 관한 예증이었다. 그것은 (잉크를 사용하여 손으로) “색깔과 경계선 승인을 위하여 정부에게 제출된 두 번째 색깔인쇄본세트” 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다시 수기로 된 의견을 담고 있는데, 카이르프르에 관한 것이었다. 코리 샛강을 따라 난 경계는 1914년 조정에 따라 변경됐다. 만에 걸쳐서 푸르스름하게 색이 바란 것은 몇몇 지점으로 줄어들었다. 란의 나머지 부분은 쿠취 본토와 같이 하얗게 보인다.
새로운 인도지도 TB-22는 다섯 번째 판의 마지막 형태였다. 그것은 증거로 제출됐고 사진 복사본 또한 그랬다. 그 지도는 1914년 경계선 조정을 포함하고 란은 쿠취의 본토와 같이 몇몇 지점을 제외하고는 물 빠진 노란색을 하고 있다.
1922년에 같은 판의 재 인쇄본인 새로운 인도지도 TB-23은, 행정통치단위에 걸쳐 물 빠진 색은 없지만 일정한 경계선 심볼들과 함께, 인디아의 물리적 형상을 담고 있다. 그것은 1914년 라인과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 경계선 심볼을 갖는다 (인도지도 TB-24와 동일한 경계선 조정).
이전에 제출된 지도, 인도지도 B-16은, 당해 지도의 동일한 마지막 판의 재 인쇄본을 의미하고 인디아는 그 지도를 그 범주 안에서는 가장 중요한 측지학적 서면자료라고 지적한다. 그 오리지널 인쇄본이 본 중재재판소의 회합실(meeting room) 벽에 최근 몇 주일동안 인도가 구술변론을 하는 가운데 걸려있었다. 그것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었다.
인디아 32마일 지도 다섯 번째 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이전 판들과 상이하다는 것이 지적된 바 있었다:
(a) 그것은 서쪽의 써 샛강 어귀에서 동쪽으로는 남동 트라이정션까지 쿠취-신드 경계선을 따라서 이중 색 리본과 ―·― 심볼을 가지고 있다 (1914년 수정);
(b) 란은 쿠취의 본토와 같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몇몇 지점의 예외와 함께);
(c) 바딘 탈루카 섹터 내 두 번째 고리는 에어스킨의 측량지도 결과처럼 수정되었다;
(d) 미티 탈루카를 따라 난 경계선은 거의 직선이고 당해 지역의 만 입구를 따라 나 있지는 않다;
(e) 그것은, 당사자들이 합의한 바대로, 조드푸르 경계선 조정내용을 담고 있다.
(7) 제출된 서면자료와 지도들 일체로부터 인도가 도출해 낸 결론은 다음과 5개 속에 요약되었다:
(a) 인디아의 32마일 지도는 영국령 지역을 결정 하기위한 권위적 실체이다;
(b) “인디아 정부와 국무장관이 자세하게 조사하고 면밀하게 살펴본” 이 지도는, 신드 경계선을 란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것으로 보여 준다;
(c) 신드와 쿠취 간 경계선은 인접한 것으로 보인다;
(d) 란은 쿠취에게 귀속하는 늪지 또는 소택지로 보인다;
(e) 이 마지막 두 요점에 대한 애매모호한 일체는 당해 지도의 다섯 번째 판에 의하여, 인도지도 TB-22 상에 있는 1915년 원래 형태 속에 보이는 대로, 의구심을 불식시킨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판인 그 최종 본은, 본 사건과의 “역사적 근접성(유사성)”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유의성(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첫째로, 다섯 번째 판인 1915년 판은 1914년 결의안 말미에 나왔다. 1913-14 기간 에, 이것은 쿠취와 영국 정부 간의 분쟁이다. 그 분쟁은 해결된다. 1915년에 다섯 번째 판이 나오자마자 거의 즉시, 신드/쿠취 인접 경계선은 B.44 결의안 지도 속에서 보여주고, 자주색 선은 우리가 주장한 바대로 인접한 경계선이다. 마찬가지로 귀하께서는, 이른바 1928년 재 인쇄본인 가장 마지막 32마일 지도 출판물이 신드 주의 창설과 근접해있음을 알고 있다. 여기서 그 상이함은 더 이상 7년을 넘지 않는다. 7년 후에, 신드가 하나의 주로 창설됐을 때, B.16에서 보이는 이 경계선은 신드 주의 경계선이 되고 그것은 인덱스맵, 인도지도 B.45 위에 다시 나타난다.” (녹취록, 14822면.)
색인어
- 지명
- 신드, 쿠취, 신드, 신드, 신드, 란, 신드, 쿠취의 란, 쿠취, 봄베이, 쿠취, 란, 쿠취(Cutch), 쿠취(Cutch)의 란, 란, 쿠취, 신드, 쿠취, 쿠취의 란, 란, 신드, 쿠취, 란, 신드, 발루치스탄, 신드, 데라 반니, 쉬하드 벳, 란, 란, 신드, 쿠취, 신드, 쿠취, 란, 신드, 신드, 신드, 발루치스탄, 신드, 라지푸타나, 쿠취, 신드, 란, 쿠취, 신드, 발루치스탄, 라지푸타나, 봄베이, 란, 쿠취, 쿠취, 쿠취, 란, 쿠취, 쿠취, 란, 란, 쿠취(Cutch), 란, 쿠취, 쿠취, 쿠취, 신드, 신드, 란, 타르 파르카르, 히데라바드, 히데라바드, 카라치, 신드, 란, 신드, 란, 신드, 쿠취, 신드, 코리 샛강, 코리 샛강, 코리 샛강, 신드, 쿠취(Cutch), 쿠취(Cutch), 신드, 란, 코리, 쿠취, 신드, 란, 코리 샛강, 신드, 쿠취, 란, 란, 란, 쿠취의 란 (Rann of Kutch), 신드, 쿠취, 쿠취, 신드, 신드, 쿠취, 란, 신드, 신드, 신드, 쿠취, 부지(Bhuj), 코리 샛강, 쿠취, 쿠취, 란, 써 샛강, 쿠취, 신드, 란, 쿠취, 바딘, 미티, 조드푸르, 신드, 신드, 쿠취, 란, 쿠취, 쿠취, 신드, 쿠취, 신드, 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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