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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철리극(徹哩克)이 대를 이으니 수년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하투부의 장도리(嶂圖哩) 등이 수당(水塘) 등지를 점거·침범한 설명

  • 국가
    달단(韃靼)
[만력] 15년(1587) 봄에, 아들 차력극(撦力克) 주 001
각주 001)
撦力克(?~1607): Chürüke의 音譯인데, 楚嚕克 혹은 那穆岱徹辰洪台吉(Namudai sechen qong tayji)이라고도 표기한다. 알탄칸의 손자로, 1586년에 그의 부친 乞慶哈이 사망하자 장자인 그가 칸 위에 올랐고, 스스로 제3대 順義王이라 칭했다. 三娘子가 명조와 互市를 할 수 있는 印信을 알탄의 아들 布塔施里에게 넘기자 분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였다. 이에 명 조정은 정식으로 撦力克을 순의왕으로 책봉하였고, 삼낭자를 忠順夫人으로 삼아서 두 사람이 화해하도록 하였다. 『明史』 卷330 「西域」2 西番諸衛에는 扯力克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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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를 이었다.주 002
각주 002)
撦力克이 順義王에 冊封된 것은 萬曆 15년(1587) 추7월로 기재되어 있다(『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萬曆 15년 추7월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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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처 삼낭자(三娘子)는 죽은 엄답의 외손녀이면서 부인인데, 세 왕의 아내를 지내면서 병권(兵權)을 장악하여 중국을 위해 변경을 수비하고 요새를 지켜 무리들이 그녀를 경외하고 순복하니, 이에 칙서를 내려 충순부인(忠順夫人)주 003
각주 003)
忠順夫人: 明代 몽골 右翼 土默特部의 여성 지도자인 三娘子(1550~1612)를 일컫는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烏納楚, 烏延楚 혹은 諾延楚라고 표기하였다. 兒克兎哈屯(Erketü qatun, 권세가 있는 夫人이라는 의미)이나 鍾金哈屯(Jönggen qatun, 中宮夫人)이라고도 불렸다고 하지만, 실제 이름에 대해서는 고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게다가 俺答汗의 세 번째 부인이어서 三娘子라고 불렸다는 설과 俺答汗의 외손녀 혹은 甥女라는 설도 있다. 鄂爾多斯 초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총명하였고, 가무와 무예에도 뛰어났으며, 兵略에도 출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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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봉하였는데, 선부·대동에서 감숙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차력극이 서쪽으로 가서 먼 변경에 이르렀으나 하투부장독뢰(莊禿賴) 등이 수당(水塘)을 점거하고, 복실토(卜失兎) 주 004
각주 004)
卜失兎: 撦力克의 長孫으로 靑海에서 유목생활을 하였다. 1607년에 撦力克이 사망한 후 庫庫和屯城으로 돌아와 자리를 승계하고자 하였다. 三娘子는 자신의 손자인 素囊台吉을 지지하면서 汗의 兵符와 順義王의 印信을 내놓지 않았다. 1611년에 각 부의 수령들이 卜失兎를 지지하자 三娘子는 어쩔 수 없이 병부와 인신을 넘겨주었다. 1613년에 드디어 卜失兎가 정식으로 汗位를 승계하였고 명 조정은 그를 네 번째 順義王으로 책봉하였다. 1627년에 察哈爾部의 林丹汗이 庫庫和屯城을 공격하자 卜失兎는 도망쳤는데, 이로부터 土默特 順義王 정권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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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락적(火落赤) 주 005
각주 005)
火落赤: 黑勞赤이라고도 표기한다. 1570년대에 俺答을 따라 靑海로 가서 달라이라마를 영접하는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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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망랄천(莽剌川) 주 006
각주 006)
莽剌川: 지금의 靑海省 貴德·貴南·同德·海西蒙古族藏族自治縣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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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공천(捏工川) 주 007
각주 007)
捏工川: 지금의 靑海省 同仁·澤庫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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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점거하여 감(甘)·량(涼)·조(洮)·맹(氓)·서녕(西寧) 주 008
각주 008)
西寧: 지금의 靑海省 西寧市와 湟中·湟源·大通 등의 縣이다. 明 洪武 6년(1372)에 西寧衛가 설치되었는데, ‘西陲安寧’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靑藏高原의 東方門戶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며, 예로부터 ‘西海鎖鑰’이라 칭해졌다. 漢나라에서는 龍居郡으로 편제되었고, 魏나라에서는 西平郡을 설치하였으며, 隋唐 시대에도 그대로 명칭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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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를 수차례 침범하였다. 다른 부락(部落) 대략 수십 종(種)이 변경 이남에 출몰하였는데, 순역(順逆)이 일정치 않았다. 황제가 이들을 싫어하여 [만력] 19년(1591)에 조서를 내려 차력극에 대한 마시와 은상(恩賞)을 모두 정지하였다.주 009
각주 009)
撦力克이 火落赤을 도왔기 때문에 馬市와 恩賞을 罷하였다(『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萬曆 15년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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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차력극이 변경에 와서 귀복을 하겠다고 하고 부락의 무리를 이끌고 동쪽에서 돌아갔는데, 유독 장독뢰·복실토 등만이 예전처럼 침범하여 약탈하였다. 그해 겨울에 다른 부락인 명안(明安) 주 010
각주 010)
明安(?~1654): Mingyan의 音譯이다. 蒙古 察哈爾兀魯特部의 貴族이다. 天命 7년(1622)에 林丹汗에 불만을 품고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여 三等總兵官에 제수되었다. 그의 部를 兀魯特蒙古旗로 삼았다. 1631년 大凌河 전투에 참가하였고, 1632년에는 後金軍을 따라 察哈爾部를 공격하였는데, 후금의 통제를 어겨 兀魯特蒙古旗가 해체되고 明安은 滿洲正黃旗에 예속되었다. 死後에 ‘忠順’이라는 諡號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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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매(土昧)유림 변경을 나누어 침범하니, 총병 두동(杜桐)이 방어하여 500명을 참획(斬獲)하고 명안을 죽였다.

  • 각주 001)
    撦力克(?~1607): Chürüke의 音譯인데, 楚嚕克 혹은 那穆岱徹辰洪台吉(Namudai sechen qong tayji)이라고도 표기한다. 알탄칸의 손자로, 1586년에 그의 부친 乞慶哈이 사망하자 장자인 그가 칸 위에 올랐고, 스스로 제3대 順義王이라 칭했다. 三娘子가 명조와 互市를 할 수 있는 印信을 알탄의 아들 布塔施里에게 넘기자 분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였다. 이에 명 조정은 정식으로 撦力克을 순의왕으로 책봉하였고, 삼낭자를 忠順夫人으로 삼아서 두 사람이 화해하도록 하였다. 『明史』 卷330 「西域」2 西番諸衛에는 扯力克으로 기재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撦力克이 順義王에 冊封된 것은 萬曆 15년(1587) 추7월로 기재되어 있다(『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萬曆 15년 추7월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3)
    忠順夫人: 明代 몽골 右翼 土默特部의 여성 지도자인 三娘子(1550~1612)를 일컫는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烏納楚, 烏延楚 혹은 諾延楚라고 표기하였다. 兒克兎哈屯(Erketü qatun, 권세가 있는 夫人이라는 의미)이나 鍾金哈屯(Jönggen qatun, 中宮夫人)이라고도 불렸다고 하지만, 실제 이름에 대해서는 고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게다가 俺答汗의 세 번째 부인이어서 三娘子라고 불렸다는 설과 俺答汗의 외손녀 혹은 甥女라는 설도 있다. 鄂爾多斯 초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총명하였고, 가무와 무예에도 뛰어났으며, 兵略에도 출중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4)
    卜失兎: 撦力克의 長孫으로 靑海에서 유목생활을 하였다. 1607년에 撦力克이 사망한 후 庫庫和屯城으로 돌아와 자리를 승계하고자 하였다. 三娘子는 자신의 손자인 素囊台吉을 지지하면서 汗의 兵符와 順義王의 印信을 내놓지 않았다. 1611년에 각 부의 수령들이 卜失兎를 지지하자 三娘子는 어쩔 수 없이 병부와 인신을 넘겨주었다. 1613년에 드디어 卜失兎가 정식으로 汗位를 승계하였고 명 조정은 그를 네 번째 順義王으로 책봉하였다. 1627년에 察哈爾部의 林丹汗이 庫庫和屯城을 공격하자 卜失兎는 도망쳤는데, 이로부터 土默特 順義王 정권은 붕괴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火落赤: 黑勞赤이라고도 표기한다. 1570년대에 俺答을 따라 靑海로 가서 달라이라마를 영접하는 일을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6)
    莽剌川: 지금의 靑海省 貴德·貴南·同德·海西蒙古族藏族自治縣 일대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7)
    捏工川: 지금의 靑海省 同仁·澤庫 일대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8)
    西寧: 지금의 靑海省 西寧市와 湟中·湟源·大通 등의 縣이다. 明 洪武 6년(1372)에 西寧衛가 설치되었는데, ‘西陲安寧’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靑藏高原의 東方門戶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며, 예로부터 ‘西海鎖鑰’이라 칭해졌다. 漢나라에서는 龍居郡으로 편제되었고, 魏나라에서는 西平郡을 설치하였으며, 隋唐 시대에도 그대로 명칭을 사용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9)
    撦力克이 火落赤을 도왔기 때문에 馬市와 恩賞을 罷하였다(『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萬曆 15년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10)
    明安(?~1654): Mingyan의 音譯이다. 蒙古 察哈爾兀魯特部의 貴族이다. 天命 7년(1622)에 林丹汗에 불만을 품고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여 三等總兵官에 제수되었다. 그의 部를 兀魯特蒙古旗로 삼았다. 1631년 大凌河 전투에 참가하였고, 1632년에는 後金軍을 따라 察哈爾部를 공격하였는데, 후금의 통제를 어겨 兀魯特蒙古旗가 해체되고 明安은 滿洲正黃旗에 예속되었다. 死後에 ‘忠順’이라는 諡號가 내려졌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차력극(撦力克), 삼낭자(三娘子), 엄답, 차력극, 복실토(卜失兎), 화락적(火落赤), 차력극, 차력극, 장독뢰, 복실토, 명안(明安), 토매(土昧), 두동(杜桐), 명안
지명
중국, 선부, 대동, 감숙, 하투부, 장독뢰(莊禿賴), 수당(水塘), 망랄천(莽剌川), 날공천(捏工川), 감(甘), 량(涼), 조(洮), 맹(氓), 서녕(西寧),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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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철리극(徹哩克)이 대를 이으니 수년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하투부의 장도리(嶂圖哩) 등이 수당(水塘) 등지를 점거·침범한 설명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