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달이 공손히 조정을 섬기다 죽자 아들 황태길이 이었는데 3년 만에 죽었음
엄답이 교역을 하게 된 이후, 매우 공손하게 조정(朝廷)을 섬겼다. 부하 병졸이 변경의 백성들을 약탈하면 반드시 처벌하고 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니, 조정 또한 후하게 더 많은 상을 내려주었다. [만력] 10년(1582) 봄에 엄답이 죽자,주 001
각주 001)

황제는 특별히 제칠단(祭七壇)·채단(綵緞) 12표리(表裏)·포(布) 100필을 하사하여 우휼(優恤)을 보였다. [이에] 그(엄답)의 처 합둔(哈屯)
주 002이 아들 황태길 등을 데리고 표문(表文)을 올리고 말을 바치며 사은(謝恩)하니, 다시 폐포(幣布)를 차등있게 하사하였다. 황태길을 순의왕(順義王)에 봉하고, 걸경합(乞慶哈)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주 003 [그런데] 재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죽어,주 004 조정에서는 규정에 따라 휼전(恤典)을 베풀었다.俺答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神宗實錄』 卷121 萬曆 10년 2월 癸巳條(“北虜順義王俺答卒, 邊臣以聞”)에 나와 있지만, 이 날짜는 엄답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엄답이 萬曆 10년(1582)에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萬曆 9년 12월條와 『萬曆武功錄』 등에는 萬曆 9년(1581) 12월 중에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 『蒙古原流』에는 “俺答이 萬曆 10년 큰 병에 걸려 의식불명이 되어 1년 후 사람들이 安撫하여 77세로 죽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이는 라마교의 설화일 것이다(靑木富太郞, 195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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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俺答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神宗實錄』 卷121 萬曆 10년 2월 癸巳條(“北虜順義王俺答卒, 邊臣以聞”)에 나와 있지만, 이 날짜는 엄답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엄답이 萬曆 10년(1582)에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萬曆 9년 12월條와 『萬曆武功錄』 등에는 萬曆 9년(1581) 12월 중에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 『蒙古原流』에는 “俺答이 萬曆 10년 큰 병에 걸려 의식불명이 되어 1년 후 사람들이 安撫하여 77세로 죽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이는 라마교의 설화일 것이다(靑木富太郞, 1957 참조).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색인어
- 이름
- 엄답, 엄답, (엄답), 합둔(哈屯), 황태길, 황태길, 걸경합(乞慶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