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경(隆慶) 원년, 암달이 산서 및 정평(井坪) 등을 침입하였는데 변장(邊將)이 막지 못하여 치죄한 일과 삼위(三衛)가 토묵특과 결탁하여 침입한 내용
융경(隆慶)주 001 원년(1567)에 엄답이 산서를 여러 차례 침범하였다. [그해] 가을에 다시 무리 수 만을 통솔하여, 3도(道)로 나누어 정평(井坪)·삭주(朔州)·노영(老營)·편두관(偏頭關) 등 여러 곳을 침입하였다. 변장(邊將)이 막을 수가 없자, 마침내 멀리 달려 가람(岢嵐)과 분주(汾州)를 공격하고 석주(石州)를 격파했으며, 지주(知州) 왕량채(王亮采)를 죽이고 그 백성들을 도살(屠殺)하였다. [그리고] 다시 효의(孝義)·개휴(介休)·평요(平遙)·문수(文水)·교성(交城)·대곡(太谷)·습주(隰州) 사이를 대거 약탈하였는데, 죽은 남녀가 수만 명이었다. 사정이 [조정에] 보고되자, 여러 변신(邊臣)은 차등하여 치죄되어 벌을 받았다. 그리고 삼위가 토만과 결탁하여 동시에 침입했는데, 계진·창려(昌黎)·무녕(撫寧)·낙정(樂亭)·노룡(盧龍)이 모두 유린당했다. 유기(遊騎)가 난하(灤河)에 이르니 경사가 진동하였는데, 3일 있다가 곧 물러갔다. 여러 장수들이 그들을 추격하였으나 적은 의원구(義院口)로 나가버렸다. 마침 안개가 짙게 껴서 길을 잃고 봉퇴애(棒槌崖) 중에 떨어져 사람과 말이 서로 얽혀서 죽은 자가 매우 많았는데, 여러 장수들이 이에 그(적)의 머리를 재빨리 베었다.
색인어
- 이름
- 엄답, 왕량채(王亮采)
- 지명
- 산서, 정평(井坪), 삭주(朔州), 노영(老營), 편두관(偏頭關), 가람(岢嵐), 분주(汾州), 석주(石州), 효의(孝義), 개휴(介休), 평요(平遙), 문수(文水), 교성(交城), 대곡(太谷), 습주(隰州), 삼위, 토만, 계진, 창려(昌黎), 무녕(撫寧), 낙정(樂亭), 노룡(盧龍), 난하(灤河), 의원구(義院口), 봉퇴애(棒槌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