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왕자의 통공(通貢)을 불허하자 분노하여 침략하였고, 총제 당용(唐龍)이 허락하기를 주청하였지만 황제가 듣지 않음
[가정] 11년(1532) 봄에, 소왕자가 통공(通貢)을 청하였으나 명을 얻지 못하자, 분노하여 마침내 10만 기병을 가지고 침략하였다.주 001 총제(總制) 당용(唐龍)
주 002
각주 002)

이 [소왕자의 통공을] 허락하기를 청하였지만 황제가 듣지 않았다. 당용이 연이어 싸워 참하고 붙잡은 자가 매우 많았다.唐龍(1477~1546): 蘭溪 사람으로 字는 虞佐이고, 號는 漁石이다. 그의 저작으로는 『易經大旨』·『群忠錄』·『黔南集』·『江右集』·『晉陽集』 등이 있다. 正德 3년(1508)에 進士가 되어 郯城의 知縣이 되었다. 후에 陝西提學副使·山西按察使·太僕寺卿을 역임하였다. 嘉靖 7년(1528)에 右僉都御史로 漕運을 감독하고 鳳陽을 巡撫하였다. 가정 11년(1531) 陝西에 기근이 들어 몽골의 吉囊·俺答 두 部에서 무리를 이끌고 河套에서 陕西로 침입하였다. 이에 그를 兵部尙書로 삼아 總制三邊軍務와 구휼을 함께 처리하도록 하였다. 그가 상주한 구황책 14조는 모두 실용적이었다. 그는 후에 南京刑部尙書를 거쳐 吏部尙書가 되었으나, 변경에서 급박한 보고가 계속되자 다시 병부상서가 되어 직접 방어를 진두지휘하였다. 이후 太子太保 직함이 더해졌고, 吏部尙書가 되었다. 사후 少保가 追贈되었고, 諡號는 文襄이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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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唐龍(1477~1546): 蘭溪 사람으로 字는 虞佐이고, 號는 漁石이다. 그의 저작으로는 『易經大旨』·『群忠錄』·『黔南集』·『江右集』·『晉陽集』 등이 있다. 正德 3년(1508)에 進士가 되어 郯城의 知縣이 되었다. 후에 陝西提學副使·山西按察使·太僕寺卿을 역임하였다. 嘉靖 7년(1528)에 右僉都御史로 漕運을 감독하고 鳳陽을 巡撫하였다. 가정 11년(1531) 陝西에 기근이 들어 몽골의 吉囊·俺答 두 部에서 무리를 이끌고 河套에서 陕西로 침입하였다. 이에 그를 兵部尙書로 삼아 總制三邊軍務와 구휼을 함께 처리하도록 하였다. 그가 상주한 구황책 14조는 모두 실용적이었다. 그는 후에 南京刑部尙書를 거쳐 吏部尙書가 되었으나, 변경에서 급박한 보고가 계속되자 다시 병부상서가 되어 직접 방어를 진두지휘하였다. 이후 太子太保 직함이 더해졌고, 吏部尙書가 되었다. 사후 少保가 追贈되었고, 諡號는 文襄이다.
색인어
- 이름
- 소왕자, 당용(唐龍), 소왕자, 당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