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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소왕자가 5만 기병을 이끌고 유림(楡林)에서 침입하니 황제가 친히 군대를 독려하여 크게 싸워 이긴 내용

  • 국가
    달단(韃靼)
[정덕] 12년(1517) 겨울에, 소왕자가 5만 기병을 이끌고 유림(楡林)에서 침범해 들어와, 응주(應州) 주 001
각주 001)
應州: 山西 北部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상 戰亂이 많았다. 唐末에 설치되어 龍首山, 雁門山이 남북으로 대응하고 있어서 ‘응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金城·渾源 2縣을 거느리고, 治所는 금성현에 있었다. 遼代에는 西京道, 宋代에는 雲中路, 金代에는 西京路, 元代에는 大同路, 明·淸代는 大同府 소속이고, 民國 원년(1912)에 應縣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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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총병(總兵) 왕훈 등을 포위하였다. 황제가 양화(陽和) 주 002
각주 002)
陽和: 陽和口를 일컫는데, 지금의 山西省 陽高 西北 長城의 隘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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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행차하여 친히 각기 할 일을 분담시키고 여러 장수들에게 가서 돕도록 독려하여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니, 적이 조금 물러났다.주 003
각주 003)
관련 내용이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正德 13년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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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적이] 다시 와서 공격하여 진시(辰時)주 004
각주 004)
辰時: 하루를 12시로 나눈 다섯째 時間 곧, 上午 7시부터 9시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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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유시(酉時)주 005
각주 005)
酉時: 午後 5시부터 7시까지의 時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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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백여 합을 싸웠으며, 적이 서쪽으로 물러나자 추격하여 평로(平虜)·삭주(朔州)에 이르렀는데, 마침 큰 바람이 불고 검은 안개가 껴서 낮인데도 어두워져 황제가 이에 돌아와 조정에 승전(勝戰)을 널리 알리도록 명하였다. 이후로 해마다 변경을 침범하기는 하였으나 감히 크게 침입하지는 못했다.

  • 각주 001)
    應州: 山西 北部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상 戰亂이 많았다. 唐末에 설치되어 龍首山, 雁門山이 남북으로 대응하고 있어서 ‘응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金城·渾源 2縣을 거느리고, 治所는 금성현에 있었다. 遼代에는 西京道, 宋代에는 雲中路, 金代에는 西京路, 元代에는 大同路, 明·淸代는 大同府 소속이고, 民國 원년(1912)에 應縣으로 개칭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陽和: 陽和口를 일컫는데, 지금의 山西省 陽高 西北 長城의 隘口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3)
    관련 내용이 『殊域周咨錄』 卷18 「韃靼」 正德 13년條에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辰時: 하루를 12시로 나눈 다섯째 時間 곧, 上午 7시부터 9시까지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5)
    酉時: 午後 5시부터 7시까지의 時刻이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소왕자, 왕훈
지명
유림(楡林), 응주(應州), 양화(陽和), 평로(平虜), 삭주(朔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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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왕자가 5만 기병을 이끌고 유림(楡林)에서 침입하니 황제가 친히 군대를 독려하여 크게 싸워 이긴 내용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