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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액삼이 부하에게 피살되고 탁극탁포합의 아들 목이격이(穆爾格爾)를 세우니 달단(韃靼)이 다시 강성해짐

  • 국가
    달단(韃靼)
얼마 후 [야선은] 부하인 아랄(阿剌) 주 001
각주 001)
阿剌(?~1456): Alag의 音譯으로, 명대 瓦剌部의 우두머리이다. 瓦剌의 巴圖特部 출신으로 也先汗의 重臣으로써 瓦剌右翼을 관장했다. 正統 14년(1449)에 對明戰爭 때 宣府를 공격하고 赤城을 포위했으며, 이후 英宗이 포로로 잡혀오자 그는 극력 영종을 송환시켜 明과의 우호관계를 회복하자고 주장하였다. 1453년에 也先이 可汗을 칭하자, 그는 太師의 職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하여 둘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454년에 그는 군대를 일으켜 먼저 也先의 심복인 伯顔帖木兒를 죽이고 이어 也先을 죽였다. 그러나 이듬해 에센의 부하 孛來의 공격을 받았으며, 1456년에 피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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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知院)에게 피살되었다. 달단 부락의 수령 패래(孛來) 주 002
각주 002)
孛來(?~1465): Bolai의 音譯이다. 博雷, 孛羅라고도 한다. 명대 몽골 哈喇嗔部의 우두머리이며, 也先의 부하로 平章을 稱했다. 1455년에 也先의 복수를 위해 阿剌知院을 죽이고, 傳國璽를 탈취하여 명조에 바치려 했다. 이후 명과 通貢했으나 변경에서 충돌도 많았다. 毛里孩와 함께 馬可古兒吉思를 汗位에 擁立하고 太師가 되어 강세를 이루었으며, 1465년에 馬可古兒吉思汗을 죽였는데, 곧 그도 毛里孩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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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다시 아랄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태태불화의 아들 마아가아(麻兒可兒)를 구해 그를 세워 소왕자(小王子)라고 불렀다.주 003
각주 003)
脫脫不花 一族은 에센의 추적으로 살해되고, 脫脫不花와 에센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馬可古兒吉思만 살아남았다. 『蒙古原流』에 따르면 이 아들이 당시 10세의 어린 나이에 太子가 되어 ‘小王子’라고 불렸는데, 이후로 明朝人들은 역대 蒙古汗을 대부분 소왕자라 칭했다(萩原淳平, 195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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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이 죽자 패래와 그의 부하 모리해(毛里孩) 주 004
각주 004)
毛里孩(?~1468?): Moliqai의 音譯인데, 卯里孩, 摩里海 등으로도 漢譯된다. 칭기스칸의 동생인 別里古台의 14世孫으로, 1460년에 河套 지구에 들어와 활동하고 太師 孛來와 자웅을 겨뤘으며, 1466년에 孛來를 죽였다. 馬可古兒吉思汗을 시해하고, 그의 형 摩倫을 汗으로 세웠으며, 수만의 군대를 擁有하여 강세를 이루었다. 이후 명과는 通貢을 하면서도 여러 차례 변방을 침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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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은 모두 부락 사이에서 웅걸이라 칭했고, 이에 달단은 다시 강성해졌다.

  • 각주 001)
    阿剌(?~1456): Alag의 音譯으로, 명대 瓦剌部의 우두머리이다. 瓦剌의 巴圖特部 출신으로 也先汗의 重臣으로써 瓦剌右翼을 관장했다. 正統 14년(1449)에 對明戰爭 때 宣府를 공격하고 赤城을 포위했으며, 이후 英宗이 포로로 잡혀오자 그는 극력 영종을 송환시켜 明과의 우호관계를 회복하자고 주장하였다. 1453년에 也先이 可汗을 칭하자, 그는 太師의 職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하여 둘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454년에 그는 군대를 일으켜 먼저 也先의 심복인 伯顔帖木兒를 죽이고 이어 也先을 죽였다. 그러나 이듬해 에센의 부하 孛來의 공격을 받았으며, 1456년에 피살당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孛來(?~1465): Bolai의 音譯이다. 博雷, 孛羅라고도 한다. 명대 몽골 哈喇嗔部의 우두머리이며, 也先의 부하로 平章을 稱했다. 1455년에 也先의 복수를 위해 阿剌知院을 죽이고, 傳國璽를 탈취하여 명조에 바치려 했다. 이후 명과 通貢했으나 변경에서 충돌도 많았다. 毛里孩와 함께 馬可古兒吉思를 汗位에 擁立하고 太師가 되어 강세를 이루었으며, 1465년에 馬可古兒吉思汗을 죽였는데, 곧 그도 毛里孩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脫脫不花 一族은 에센의 추적으로 살해되고, 脫脫不花와 에센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馬可古兒吉思만 살아남았다. 『蒙古原流』에 따르면 이 아들이 당시 10세의 어린 나이에 太子가 되어 ‘小王子’라고 불렸는데, 이후로 明朝人들은 역대 蒙古汗을 대부분 소왕자라 칭했다(萩原淳平, 1957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4)
    毛里孩(?~1468?): Moliqai의 音譯인데, 卯里孩, 摩里海 등으로도 漢譯된다. 칭기스칸의 동생인 別里古台의 14世孫으로, 1460년에 河套 지구에 들어와 활동하고 太師 孛來와 자웅을 겨뤘으며, 1466년에 孛來를 죽였다. 馬可古兒吉思汗을 시해하고, 그의 형 摩倫을 汗으로 세웠으며, 수만의 군대를 擁有하여 강세를 이루었다. 이후 명과는 通貢을 하면서도 여러 차례 변방을 침략하였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야선, 아랄(阿剌), 패래(孛來), 아랄, 태태불화, 마아가아(麻兒可兒), 아랄, 패래, 모리해(毛里孩)
지명
달단, 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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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삼이 부하에게 피살되고 탁극탁포합의 아들 목이격이(穆爾格爾)를 세우니 달단(韃靼)이 다시 강성해짐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