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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아로태는 위랍특에게 수차례 패하여 날로 곤궁해지니 요동 변경으로 옮겨 방목생활을 하게 됨

  • 국가
    달단(韃靼)
당시 아로태와랄에게 여러 차례 패하여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에 속해 있던 파적(把的) 등이 차례로 와 귀부하니, 조정은 모두에게 관직을 주고 초폐(鈔幣)를 하사하였으며, 담당 관원에게 조서를 내려 생활용품을 지급하라고 하였다. 이후 와서 기부하는 자는 모두 이 예와 같이 하였다. 아로태는 날로 곤궁해지자 이에 그 부하들을 이끌고 동으로 올량합(兀良哈) 주 001
각주 001)
兀良哈: Uriyangqai의 음역으로, 兀良哈 3衛를 일컬으며, 朶顔·泰寧·福餘 3衛를 가리키는데, 朶顔 3衛라고도 부른다. 명 태조가 遼東을 평정하고, 이어 興安嶺 동부의 몽골 諸部를 항복시킨 뒤 이곳, 즉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西拉木倫강 이북 일대에 3衛를 설치한 데에서 비롯된다. 洪武 22년(1389)에 3衛를 설치했지만 永樂 이후에 남쪽으로 옮겨 지금의 河北省 동북부의 장성 일대와 遼寧省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明史』 卷328 「朶顔 福餘 泰寧傳」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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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가서, 요동 변경에서 주둔하며 방목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출병하여 그를 공격하기를 청하였으나,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 각주 001)
    兀良哈: Uriyangqai의 음역으로, 兀良哈 3衛를 일컬으며, 朶顔·泰寧·福餘 3衛를 가리키는데, 朶顔 3衛라고도 부른다. 명 태조가 遼東을 평정하고, 이어 興安嶺 동부의 몽골 諸部를 항복시킨 뒤 이곳, 즉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西拉木倫강 이북 일대에 3衛를 설치한 데에서 비롯된다. 洪武 22년(1389)에 3衛를 설치했지만 永樂 이후에 남쪽으로 옮겨 지금의 河北省 동북부의 장성 일대와 遼寧省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明史』 卷328 「朶顔 福餘 泰寧傳」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아로태, 파적(把的), 아로태
지명
와랄, 올량합(兀良哈),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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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태는 위랍특에게 수차례 패하여 날로 곤궁해지니 요동 변경으로 옮겨 방목생활을 하게 됨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