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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포니아석리가 위랍특(衛拉特)에게 살해되자 아로태가 조정에 원수를 갚아주기를 청한 내용

  • 국가
    달단(韃靼)
2년이 지나(1412) 본아실리와랄마합목(馬哈木) 주 001
각주 001)
馬哈木(?~1416): Mahmū의 音譯으로, 明朝 初期 蒙古 瓦剌部의 수령 중 한 명이다. 東部 蒙古의 大汗 本雅失里와 太師 阿魯台는 明朝에 대항했는데, 馬哈木은 그의 동생 太平·把禿孛羅와 함께 永樂 6년(1408)에 明朝에 귀순하였다. 永樂 7년(1409)에 永樂帝로부터 順寧王의 封號를 받았으며, 아로태 및 본아실리를 격파하고 和林 일대를 점령하였다. 이듬해 본아실리로부터 빼앗은 傳國璽를 바치겠다고 하며, 명조와 연합하여 아로태를 공격했다. 그러나 교만하고 횡포하여 明에 조공하지 않아서 永樂 12년(1414)에 영락제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후 永樂 15년(1417)에 里海 지구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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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게 살해되었다.주 002
각주 002)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10년 추9월條에 보이는데, 馬哈木은 本雅失里를 滅한 후, 答里把를 세우고 정치를 專斷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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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태는 이미 여러 차례 입공(入貢)하여 황제가 모두 후하게 보답하였고, 아울러 전에 포로가 된 친형제자매(同産兄妹) 2명을 돌려보냈다. 이에 이르러 상주하기를, 마합목 등이 그의 군주(본아실리)를 시해하고 멋대로 답리파(答里巴)주 003
각주 003)
答里巴(1395~1415): Delbek의 音譯인데, 蒙古의 大汗으로 阿里不哥의 후예이다. 1412년에 瓦剌의 首領 馬哈木이 本雅失里를 시해하자, 瓦剌은 明朝에게 稱臣하고, 1415년에 答里巴를 大汗으로 옹립하였다. 馬哈木은 太師로 自任하고 답리파가 본아실리의 동생이라고 칭하였다. 明 成祖가 제2차 몽골을 親征할 때 답리파와 마합목을 크게 패퇴시켰고, 明軍이 철수한 후 阿魯台가 재차 오이라트를 습격하여 답리파와 마합목이 차례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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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세웠으므로, 진심으로 조정에 귀부하기를 원한다고 했고, 옛 주인을 위해 원수를 갚아주기를 청하였다.주 004
각주 004)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40 永樂 11년 5월 庚子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11년 7월條에도 보인다. 『殊域周咨錄』 卷17 「韃靼」에서는 瓦剌의 세 추장이 함께 本雅失里를 폐하고 答里巴를 세웠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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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는 이를 의롭다고 여기고, [아로태를] 화녕왕(和寧王)에 봉하였다.주 005
각주 005)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41 永樂 11년 7월 戊寅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11년 7월條에도 보이는데, 和寧王에 封함과 아울러 金帛을 내리고, 예전처럼 漠北에 거주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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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해마다 한 차례, 또는 두 차례 진공하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 각주 001)
    馬哈木(?~1416): Mahmū의 音譯으로, 明朝 初期 蒙古 瓦剌部의 수령 중 한 명이다. 東部 蒙古의 大汗 本雅失里와 太師 阿魯台는 明朝에 대항했는데, 馬哈木은 그의 동생 太平·把禿孛羅와 함께 永樂 6년(1408)에 明朝에 귀순하였다. 永樂 7년(1409)에 永樂帝로부터 順寧王의 封號를 받았으며, 아로태 및 본아실리를 격파하고 和林 일대를 점령하였다. 이듬해 본아실리로부터 빼앗은 傳國璽를 바치겠다고 하며, 명조와 연합하여 아로태를 공격했다. 그러나 교만하고 횡포하여 明에 조공하지 않아서 永樂 12년(1414)에 영락제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후 永樂 15년(1417)에 里海 지구에서 죽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10년 추9월條에 보이는데, 馬哈木은 本雅失里를 滅한 후, 答里把를 세우고 정치를 專斷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答里巴(1395~1415): Delbek의 音譯인데, 蒙古의 大汗으로 阿里不哥의 후예이다. 1412년에 瓦剌의 首領 馬哈木이 本雅失里를 시해하자, 瓦剌은 明朝에게 稱臣하고, 1415년에 答里巴를 大汗으로 옹립하였다. 馬哈木은 太師로 自任하고 답리파가 본아실리의 동생이라고 칭하였다. 明 成祖가 제2차 몽골을 親征할 때 답리파와 마합목을 크게 패퇴시켰고, 明軍이 철수한 후 阿魯台가 재차 오이라트를 습격하여 답리파와 마합목이 차례로 전사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40 永樂 11년 5월 庚子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11년 7월條에도 보인다. 『殊域周咨錄』 卷17 「韃靼」에서는 瓦剌의 세 추장이 함께 本雅失里를 폐하고 答里巴를 세웠다는 내용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41 永樂 11년 7월 戊寅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11년 7월條에도 보이는데, 和寧王에 封함과 아울러 金帛을 내리고, 예전처럼 漠北에 거주하도록 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본아실리, 마합목(馬哈木), 아로태, 마합목, (본아실리), 아로태
지명
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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