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황제가 효유하여 거취의 기회와 화보의 분별을 신중히 살피도록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는 글

  • 국가
    달단(韃靼)
[영락] 6년(1408) 봄에 황제가 곧 새서(璽書)를 보내 본아실리를 효유하여 이르기를, “의 명운(命運)이 끝난 뒤, 순제(順帝)의 후예 애유식리달랍(愛猷識理達臘)으로부터 곤첩목아(坤帖木兒)에 이르기까지 무릇 6대(代)가 이어졌지만 순식간이었고, 한 사람도 제 명에 죽은 자가 없었다. 나의 황고(皇考)주 001
각주 001)
皇考: 돌아가신 황제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洪武帝를 일컫는다.
닫기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께서는 원조의 자손(子孫)에게 특별히 위무(慰撫)와 구휼(救恤)을 베풀어, 귀부해 온 자를 번번이 북쪽으로 돌려보내도록 했는데, 예컨대 탈고사첩목아를 돌려보내 계위하여 가한이 되게 한 것으로, 이는 남북인(南北人)주 002
각주 002)
여기서 南北人은 漢人과 韃靼人을 가리킨다.
닫기
이 모두 다 알고 있는 바이니라. 짐(朕)의 마음은 곧 황고의 마음이다. 이에 원씨(元氏)의 종조(宗祧)가 실 같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거취(去就)의 기회와 화복(禍福)의 분별은 네가 마땅히 신중하게 살펴 처리해야 할 것이다”주 003
각주 003)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77 永樂 6년 춘3월 辛酉條에 보인다.
닫기
고 하였으나 [본아실리는] 듣지 않았다.주 004
각주 004)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6년 춘3월條에 보이는데, 당시 鴻臚寺丞 劉帖木兒不花가 織金文綺와 璽書를 가지고 本雅失里에게 가 曉諭하였다. 이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坤帖木兒(Gün Temür)가 피살되자 鬼力赤을 세웠으나, 元의 후예가 아니어서 부하가 반란을 일으켜 그를 살해하였다. 阿魯台는 太師가 되어 대신하여 그 무리를 이끌었고, 本雅失里를 汗으로 세웠다(관련된 내용은 『殊域周咨錄』 卷17 「韃靼」 永樂 6년條 참조).
닫기


  • 각주 001)
    皇考: 돌아가신 황제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洪武帝를 일컫는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여기서 南北人은 漢人과 韃靼人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이와 관련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77 永樂 6년 춘3월 辛酉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에 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21 「親征漠北」 永樂 6년 춘3월條에 보이는데, 당시 鴻臚寺丞 劉帖木兒不花가 織金文綺와 璽書를 가지고 本雅失里에게 가 曉諭하였다. 이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坤帖木兒(Gün Temür)가 피살되자 鬼力赤을 세웠으나, 元의 후예가 아니어서 부하가 반란을 일으켜 그를 살해하였다. 阿魯台는 太師가 되어 대신하여 그 무리를 이끌었고, 本雅失里를 汗으로 세웠다(관련된 내용은 『殊域周咨錄』 卷17 「韃靼」 永樂 6년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본아실리, 순제(順帝), 애유식리달랍(愛猷識理達臘), 곤첩목아(坤帖木兒), 태조(太祖), 탈고사첩목아, 본아실리
지명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황제가 효유하여 거취의 기회와 화보의 분별을 신중히 살피도록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는 글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