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원의 남은 적구(賊寇)가 변경의 우환이 될 것이라 여겨 대장군 남옥 등으로 하여금 공격하여 항복 받은 일
납합출이 이미 항복했지만, 황제는 옛 원의 남은 적구(賊寇)가 끝내는 변경의 우환이 될 것이라고 여겨 군중(軍中)의 남옥(藍玉)을 대장군(大將軍)으로 임명하고, 당승(唐勝)
주 001·곽영(郭英)
주 002을 부(副)장군으로, 경충(耿忠)·손낙(孫恪)을 좌·우참장(左·右參將)주 003으로 삼아 군대 15만을 이끌고 가 이를 정벌하도록 하였다.주 004 [그해] 겨울에 원의 장군 태태(脫脫) 등이 남옥에게 항복하였다.주 005 이듬해(1388) 봄에 남옥이 대군을 이끌고 대녕(大寧)
주 006에서 경주(慶州)에 이르렀는데, 탈고사첩목아(脫古思帖木兒)가 포어아해(捕魚兒海)
주 007에 있다는 걸 듣고 샛길로 빠르게 나아가 백안정(百眼井)에 이르렀지만, 척후가 적을 보지 못해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려고 하였다. 정원후(定遠侯) 왕필(王弼)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성주(聖主)의 위덕(威德)을 받들어 10만여 군대를 이끌고 여기까지 깊이 들어왔는데, 얻은 것이 없으면 어떻게 복명(復命)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남옥이 이에 땅에 구멍을 파고 밥을 지으며, 하룻밤에 빠르게 달려 포어아해에 이르렀다. 희미하게 날이 밝을 무렵, 적의 군영으로부터 80리 떨어져 있었다. 그때 큰 바람이 불고 모래가 날려 낮인데도 어두워 군대의 행진을 알아차리지 못해, 적이 대비를 하지 못했다. 왕필이 선봉(先鋒)이 되어 곧바로 [적] 가까이에 다가가 마침내 그 [적]군을 크게 격파하고, 태위(太尉)·만자(蠻子) 수천 명주 008을 참(斬)하였다. 탈고사첩목아는 그의 태자 천보노(天保奴)·지원(知院)주 009
날겁래(捏怯來)·승상 실렬문(失烈門) 등 수십 기(騎)를 이끌고 달아났지만, 그의 둘째 아들 지보노(地保奴)와 후비(后妃) 및 공주(公主) 50여 명주 010·거수(渠率)주 011 3천 [명]·남녀 7만여 [명], 말·낙타·소·양 10만주 012 [마리]를 포획하고, 적의 개갑(鎧甲)과 병기(兵器)를 모아 태워버렸다.주 013 또한 그의 부장(部將) 합랄장(哈剌章)의 군영을 공격하여 그 무리를 모두 항복시켰다. 이에 막북(漠北)이 평정되었다. 전승(戰勝) 상주(上奏)가 도착하자,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지보노 등에게 초폐(鈔幣)를 하사하고, 담당 관원에게 명하여 생활용구를 지급하도록 하였다.주 014 얼마 후 어떤 사람이 남옥이 원 군주의 비(妃)와 사통(私通)한다고 말하였는데, [이에] 황제가 노하였고, [원 군주의] 비는 부끄럽고 두려워 자살하였다. 지보노가 원망하는 말을 하자 [홍무]제가 그를 유구(琉球)
주 015
각주 015)

에서 거주하게 하였다.주 016
琉球: 14세기 후반, 沖繩(오키나와) 본섬을 중심으로 北山, 中山, 南山의 세 세력(三山)이 형성되어 각기 명나라에 조공하였다. 고려와의 관계는 1389년에 中山王이 왜구에게 잡혀갔던 고려인 포로와 특산물을 바치면서 시작되었다. 1429년에 중산왕이 된 尙邑志가 三山을 통일하고 琉球 왕국을 성립시켰다. 琉球 왕국은 명조와의 조공책봉체제 하에서 室町막부, 朝鮮王朝와도 국교를 맺었으며, 명·조선·일본·타이·자바·수마트라 등을 잇는 중개무역지로 번영하였다. 중개 물품은 蘇木·胡椒·檀木·象牙 등 동남아시아 산물들이었다. 琉球의 중개무역은 16세기에 이르러 명의 해금정책이 완화되면서 중국 상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이 활약하게 되자 쇠퇴하였다. 그 후 琉球 왕국은 1609년 江戶막부에 사실상 복속되는 한편 明과 淸에도 조공을 계속하였는데, 이것을 兩屬관계라고 한다. 근대에 들어 1879년에 琉球 왕국은 沖繩縣이 되어 일본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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琉球: 14세기 후반, 沖繩(오키나와) 본섬을 중심으로 北山, 中山, 南山의 세 세력(三山)이 형성되어 각기 명나라에 조공하였다. 고려와의 관계는 1389년에 中山王이 왜구에게 잡혀갔던 고려인 포로와 특산물을 바치면서 시작되었다. 1429년에 중산왕이 된 尙邑志가 三山을 통일하고 琉球 왕국을 성립시켰다. 琉球 왕국은 명조와의 조공책봉체제 하에서 室町막부, 朝鮮王朝와도 국교를 맺었으며, 명·조선·일본·타이·자바·수마트라 등을 잇는 중개무역지로 번영하였다. 중개 물품은 蘇木·胡椒·檀木·象牙 등 동남아시아 산물들이었다. 琉球의 중개무역은 16세기에 이르러 명의 해금정책이 완화되면서 중국 상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이 활약하게 되자 쇠퇴하였다. 그 후 琉球 왕국은 1609년 江戶막부에 사실상 복속되는 한편 明과 淸에도 조공을 계속하였는데, 이것을 兩屬관계라고 한다. 근대에 들어 1879년에 琉球 왕국은 沖繩縣이 되어 일본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 각주 016)
색인어
- 이름
- 납합출, 남옥(藍玉), 당승(唐勝), 곽영(郭英), 경충(耿忠), 손낙(孫恪), 태태(脫脫), 남옥, 남옥, 탈고사첩목아(脫古思帖木兒), 왕필(王弼), 남옥, 왕필, 탈고사첩목아, 천보노(天保奴), 날겁래(捏怯來), 실렬문(失烈門), 지보노(地保奴), 합랄장(哈剌章), 태조, 지보노, 남옥, 지보노
- 지명
- 원, 원, 대녕(大寧), 경주(慶州), 포어아해(捕魚兒海), 백안정(百眼井), 포어아해, 막북(漠北), 유구(琉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