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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원(元)의 태자가 죽자 아들이 계승하였고, 그의 승상 여아(驢兒) 등이 변방에 출몰하니 군대를 내어 격퇴한 설명

  • 국가
    달단(韃靼)
홍무 11년(1378) 여름에 옛 의 태자(太子) 애유식리달랍(愛猷識理達臘)이 죽자, 태조는 직접 글을 써서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주 001
각주 001)
愛猷識理達腊의 죽음에 대해서는 『太祖實錄』 卷118 洪武 11년 하4월조에 실려 있으며, 관련 내용은 『太祖實錄』 卷119 洪武 11년 6월 壬子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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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 탈고사첩목아(脫古思帖木兒, 1342~1388; 재위 1378~1388)주 002
각주 002)
脫古思帖木兒: Tögüs Temür의 音譯이며, 北元의 3대 可汗 益宗 寧孝皇帝를 일컫는다. 北元의 惠宗 妥權帖睦爾의 아들로, 洪武 21년(1378)에 형인 昭宗이 죽자 帝位에 올라 天元이라고 改元하였다. 洪武 21년(1388)에 藍玉이 이끄는 明軍에 쫓기는 중에 部將 也速迭兒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蒙古 諡號는 烏薩哈爾可汗(Uskhal Khan)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長子 天保奴는 1388년에 아버지와 함께 피살되었고, 次子인 地保奴는 明軍에게 붙잡혀 琉球에 安置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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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계승하였다.주 003
각주 003)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11년 5월條에 보면, 脫古思帖木兒가 계승한 것은 그해 5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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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승상 여아(驢兒), 만자(蠻子) 합랄장(哈剌章), 국공(國公) 탈화적(脫火赤),주 004
각주 004)
脫火赤(?~1433): Toqochi의 音譯이다. 泰寧衛 都督인 阿只罕의 아들로(혹자는 阿札失里의 아들이라고도 함), 1428년에 指揮僉事로 명조에 入貢한 후 오랫동안 명조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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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장 완자불화(完者不花)·내아불화(乃兒不花), 추밀지원(樞密知院)주 005
각주 005)
樞密知院: 樞密院은 唐·五代·宋·遼·元 시대의 官署 명칭이다. 주로 軍政을 담당하였다. 唐 永泰 원년(765)에 처음 설치되어, 본래는 內廷에 속해있었는데 宦官이 樞密使가 되면서 주요 사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宋代에는 군사기밀과 변방사무를 맡아보았는데, 中書省과 함께 국가 최고기관이 되었다. 遼나라 시기에 北樞密院(兵部에 해당), 南樞密院(吏部에 해당)및 漢人樞密院이 설치되었다. 元代의 樞密院은 주로 군사기밀과 邊防, 宮廷 禁衛 등의 사무를 맡아보았고, 전쟁 시에는 行樞密院을 설치해 軍政만 담당하게 하였다. 명청 시대에는 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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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愛足) 등이 응창·화림에서 무리를 옹유하고 있다가 때때로 변방 이남(以南)에 출몰(出沒)하였다. 태조는 누차 새서(璽書)를 내려 이들을 효유했지만 따르지 않았다. [홍무] 13년(1380) 봄에 서평후(西平侯) 목영(沐英) 주 006
각주 006)
沐英(1344~1392): 安徽 鳳陽 사람으로, 字는 文英이며, 朱元璋의 義子이다. 일찍이 주원장을 따라 南征北戰에 참가하였고, 明朝 建立 후에는 滇鎭에 남아 수비하며 屯田을 크게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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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군대가 영주(靈州) 주 007
각주 007)
靈州: 故城은 현재 寧夏 靈武縣 西南部에 위치한다. 北魏 시기에는 薄骨律鎭이었다가, 西魏 시기에 靈州 普樂郡으로 개칭하였다. 北周 시기에 靈州 靈武郡으로 바꾸었다. 隋代에 靈武郡이 되었다가 唐代에 다시 靈州를 두어 朔方節度使가 주둔하였다. 宋代에 西夏에 함락되어 翔慶軍 西平府가 되었다. 元代에 다시 靈州 이름을 회복하고, 甘肅行省 寧夏府路에 소속되었다. 明代에 靈州所가 설치되어 陝西省 寧夏衛 소속이 되었고, 淸代의 靈州는 甘肅省 寧夏府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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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나와 황하(黃河) 주 008
각주 008)
黃河: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 제2의 강으로, 길이는 5,464km, 유역면적은 752,443㎢이다. 靑海省 巴顔喀拉 산맥의 雅合拉達澤山(5,442m)에서 발원하는 約古宗列渠가 원류로서, 星宿海 및 鄂陵湖·札陵湖를 거치는 하류를 가리킨다. 청해성 남동부를 흘러서 四川省 경계에 이르고 積石山脈 동단을 굽어 甘肅省 남부로 들어가 북서로 흘러 다시 청해성으로 들어간 다음 西寧 남쪽을 흘러, 劉家峽의 협곡을 지나 감숙성 蘭州에 이르러 북동으로 流路를 바꾸고, 寧夏回族自治區의 銀川 동쪽을 지나 內蒙古自治區 오르도스 지방으로 들어간다. 다시 巴頭 부근을 동류한 다음 山西省 河曲縣 부근에서 남하하여 潼關 부근에서 또다시 동으로 진로를 바꾸어 三門峽을 거쳐 황토고원을 관통하여 華北平野로 들어가 山東省 墾利縣에서 渤海灣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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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건너 하란산(賀蘭山) 주 009
각주 009)
賀蘭山: 中國 寧夏 回族自治區 西北쪽에 위치한 山嶺이다. 古代 鮮卑族 賀蘭氏가 이 지역에서 거주했던 연유로 이름이 붙여졌다. 賀蘭氏는 北魏 孝文帝가 漢化改革을 실행한 이후 漢族에 융합되었다. ‘賀蘭山’이라는 명칭은 『隋書』 「趙仲卿傳」에 제일 먼저 나오는데, 開皇 3년(583)에 趙仲卿이 突厥을 공격하기 위해 하란산을 나왔다고 한다. 明代에 하란산 서쪽과 북쪽의 韃靼이 하란산 지역에서 명조와 대치하기 시작하여 明朝 政府는 영하 北部에 대규모 長城을 쌓고, 영하에 總鎭·衛·千戶所·屯堡 등을 완비하고 삼엄한 軍事防禦 계통을 세웠다. 하란산 위의 명대 장성은 타타르와 명조 사이에 지속된 180여 년의 군사 분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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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거쳐 유사(流沙)를 지나갔는데, 화림에서 탈화적·애족 등을 사로잡고 그 부곡(部曲)주 010
각주 010)
部曲: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군대의 편제와 사회계층을 가리키는 것이다. 漢代에는 군대 편제의 명칭이었다. 大將軍營 아래 다섯 개의 部가 있었고, 그 部 아래에 曲이 있었다. 따라서 部와 曲을 연결해서 지휘관이 통솔하는 군대를 지칭하였다. 그 후 部曲의 지휘가 하락하기 시작하였는데, 魏晋南北朝 시기에는 家兵이나 私兵을 지칭하였고, 隋唐 시기에는 노비와 良人 사이에서 존재하는 사회계층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뜻 외에 部下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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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모두 돌려보냈다.주 011
각주 011)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130 洪武 13년 2월 壬子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13년 춘3월條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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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에 완자불화 또한 사로잡혔다.주 012
각주 012)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134 洪武 13년 11월 丙午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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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1381) 봄에 서달과 부장군(副將軍) 탕화(湯和)·부우덕(傅友德)내아불화를 정벌하고, 하북(河北)에 이르러 회산(灰山)을 습격하였는데, 죽거나 포로로 잡힌 자가 아주 많았다.주 013
각주 013)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135 洪武 14년 춘정월 戊子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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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愛猷識理達腊의 죽음에 대해서는 『太祖實錄』 卷118 洪武 11년 하4월조에 실려 있으며, 관련 내용은 『太祖實錄』 卷119 洪武 11년 6월 壬子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2)
    脫古思帖木兒: Tögüs Temür의 音譯이며, 北元의 3대 可汗 益宗 寧孝皇帝를 일컫는다. 北元의 惠宗 妥權帖睦爾의 아들로, 洪武 21년(1378)에 형인 昭宗이 죽자 帝位에 올라 天元이라고 改元하였다. 洪武 21년(1388)에 藍玉이 이끄는 明軍에 쫓기는 중에 部將 也速迭兒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蒙古 諡號는 烏薩哈爾可汗(Uskhal Khan)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長子 天保奴는 1388년에 아버지와 함께 피살되었고, 次子인 地保奴는 明軍에게 붙잡혀 琉球에 安置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11년 5월條에 보면, 脫古思帖木兒가 계승한 것은 그해 5월로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4)
    脫火赤(?~1433): Toqochi의 音譯이다. 泰寧衛 都督인 阿只罕의 아들로(혹자는 阿札失里의 아들이라고도 함), 1428년에 指揮僉事로 명조에 入貢한 후 오랫동안 명조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바로가기
  • 각주 005)
    樞密知院: 樞密院은 唐·五代·宋·遼·元 시대의 官署 명칭이다. 주로 軍政을 담당하였다. 唐 永泰 원년(765)에 처음 설치되어, 본래는 內廷에 속해있었는데 宦官이 樞密使가 되면서 주요 사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宋代에는 군사기밀과 변방사무를 맡아보았는데, 中書省과 함께 국가 최고기관이 되었다. 遼나라 시기에 北樞密院(兵部에 해당), 南樞密院(吏部에 해당)및 漢人樞密院이 설치되었다. 元代의 樞密院은 주로 군사기밀과 邊防, 宮廷 禁衛 등의 사무를 맡아보았고, 전쟁 시에는 行樞密院을 설치해 軍政만 담당하게 하였다. 명청 시대에는 폐지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6)
    沐英(1344~1392): 安徽 鳳陽 사람으로, 字는 文英이며, 朱元璋의 義子이다. 일찍이 주원장을 따라 南征北戰에 참가하였고, 明朝 建立 후에는 滇鎭에 남아 수비하며 屯田을 크게 일으켰다. 바로가기
  • 각주 007)
    靈州: 故城은 현재 寧夏 靈武縣 西南部에 위치한다. 北魏 시기에는 薄骨律鎭이었다가, 西魏 시기에 靈州 普樂郡으로 개칭하였다. 北周 시기에 靈州 靈武郡으로 바꾸었다. 隋代에 靈武郡이 되었다가 唐代에 다시 靈州를 두어 朔方節度使가 주둔하였다. 宋代에 西夏에 함락되어 翔慶軍 西平府가 되었다. 元代에 다시 靈州 이름을 회복하고, 甘肅行省 寧夏府路에 소속되었다. 明代에 靈州所가 설치되어 陝西省 寧夏衛 소속이 되었고, 淸代의 靈州는 甘肅省 寧夏府 소속이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8)
    黃河: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 제2의 강으로, 길이는 5,464km, 유역면적은 752,443㎢이다. 靑海省 巴顔喀拉 산맥의 雅合拉達澤山(5,442m)에서 발원하는 約古宗列渠가 원류로서, 星宿海 및 鄂陵湖·札陵湖를 거치는 하류를 가리킨다. 청해성 남동부를 흘러서 四川省 경계에 이르고 積石山脈 동단을 굽어 甘肅省 남부로 들어가 북서로 흘러 다시 청해성으로 들어간 다음 西寧 남쪽을 흘러, 劉家峽의 협곡을 지나 감숙성 蘭州에 이르러 북동으로 流路를 바꾸고, 寧夏回族自治區의 銀川 동쪽을 지나 內蒙古自治區 오르도스 지방으로 들어간다. 다시 巴頭 부근을 동류한 다음 山西省 河曲縣 부근에서 남하하여 潼關 부근에서 또다시 동으로 진로를 바꾸어 三門峽을 거쳐 황토고원을 관통하여 華北平野로 들어가 山東省 墾利縣에서 渤海灣으로 들어간다. 바로가기
  • 각주 009)
    賀蘭山: 中國 寧夏 回族自治區 西北쪽에 위치한 山嶺이다. 古代 鮮卑族 賀蘭氏가 이 지역에서 거주했던 연유로 이름이 붙여졌다. 賀蘭氏는 北魏 孝文帝가 漢化改革을 실행한 이후 漢族에 융합되었다. ‘賀蘭山’이라는 명칭은 『隋書』 「趙仲卿傳」에 제일 먼저 나오는데, 開皇 3년(583)에 趙仲卿이 突厥을 공격하기 위해 하란산을 나왔다고 한다. 明代에 하란산 서쪽과 북쪽의 韃靼이 하란산 지역에서 명조와 대치하기 시작하여 明朝 政府는 영하 北部에 대규모 長城을 쌓고, 영하에 總鎭·衛·千戶所·屯堡 등을 완비하고 삼엄한 軍事防禦 계통을 세웠다. 하란산 위의 명대 장성은 타타르와 명조 사이에 지속된 180여 년의 군사 분쟁을 보여준다. 바로가기
  • 각주 010)
    部曲: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군대의 편제와 사회계층을 가리키는 것이다. 漢代에는 군대 편제의 명칭이었다. 大將軍營 아래 다섯 개의 部가 있었고, 그 部 아래에 曲이 있었다. 따라서 部와 曲을 연결해서 지휘관이 통솔하는 군대를 지칭하였다. 그 후 部曲의 지휘가 하락하기 시작하였는데, 魏晋南北朝 시기에는 家兵이나 私兵을 지칭하였고, 隋唐 시기에는 노비와 良人 사이에서 존재하는 사회계층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뜻 외에 部下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11)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130 洪武 13년 2월 壬子條에 보이고, 『明史紀事本末』 卷10 「故元遺兵」 洪武 13년 춘3월條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12)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134 洪武 13년 11월 丙午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13)
    이와 관련된 내용은 『太祖實錄』 卷135 洪武 14년 춘정월 戊子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애유식리달랍(愛猷識理達臘), 태조, 탈고사첩목아, 脫古思帖木兒, 여아(驢兒), 합랄장(哈剌章), 탈화적(脫火赤), 완자불화(完者不花), 내아불화(乃兒不花), 애족(愛足), 태조, 목영(沐英), 탈화적, 애족, 완자불화, 서달, 탕화(湯和), 부우덕(傅友德), 내아불화
지명
, 응창, 화림, 영주(靈州), 황하(黃河), 하란산(賀蘭山), 유사(流沙), 화림, 하북(河北), 회산(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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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원(元)의 태자가 죽자 아들이 계승하였고, 그의 승상 여아(驢兒) 등이 변방에 출몰하니 군대를 내어 격퇴한 설명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