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족의 수령들이 방물을 바침
[영락] 14년(1416)에 왕현우가 생여(生黎)의 동(峒) 수령 왕살(王撒)·여불금(黎佛金) 등을 거느리고 와서 방물을 바치니, 영락제는 가상히 여기며 이를 받아들였다. [영락제는] 예부에 명을 내려 말하기를, “여족 사람들이 멀리 해남(海南)주 001에 살면서도 인의(仁義)를 경모(敬慕)하여 와서 귀의하였는데, 만약 입조하여 방물을 바치는 것이 [지나치게] 빈번하다면 [조정에서 그들을] 위무하는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생여(生黎)의 토관(土官)과 동(峒)의 수령은 모두 3년에 1번 방물을 바치도록 하고, 이를 제도화하도록 하라”고 하였다.주 002 [영락] 16년(1418)에 감은(感恩)의 토관 지현(知縣) 누길록(樓吉祿)이 동의 수령을 데리고 와서 마필을 바쳤다. [영락] 19년(1421)에 영원(寧遠)의 토관 현승(縣丞) 형경(邢京)이 동의 수령 나림(羅淋)을 데리고 와서 방물을 바쳤다.주 003 당시 애주(崖州)의 백성들은 사적인 원망으로 서로 싸우고 있었는데, 위(衛)의 장수가 [중간에서] 취하고자 하는 바의 것을 얻어내려고 병사를 내어 토벌하고자 하였다. 경주 지주 왕백정(王伯貞)이 완강하게 버티며 불가하다면서 말하기를, “저들은 스스로 서로 원수가 되어 살해하고 있을 뿐이지 성읍(城邑)을 노략질하고 양민(良民)을 죽이는 악행은 없었으므로, 관군을 번거롭게 하기에는 족하지 않다”라 하였다. 위의 장수가 [이에] 따르지 않자, 왕백정은 이에 영원의 현승 황동(黃童)을 보내 살펴 조사토록 하였다. 과연 원수가 되어 살해한 것이었으므로, 몇 명을 체포하여 처벌하니, 여족 사람들이 드디어 안정되었다.주 004
색인어
- 이름
- 왕현우, 왕살(王撒), 여불금(黎佛金), 누길록(樓吉祿), 형경(邢京), 나림(羅淋), 왕백정(王伯貞), 왕백정, 황동(黃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