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소속 여족들의 귀부
[영락] 4년(1406)에, 경주 소속의 현 가운데 생여(生黎)의 동(峒) 수령 나현(羅顯)·허지광(許志廣)·진충(陳忠) 등 33명이 내조하였다. 처음에는 생여(生黎)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 귀화하지 않아 유명(劉銘)을 보내 그들을 불러들여 위무하도록 하였다. 이에 이르러 귀화한 자가 1만여 호(戶)에 달했는데, 나현 등은 유명을 따라 내조하였고, 또 유명으로 하여금 그 무리를 위무토록 해달라고 청하였다. 영락제가 드디어 유명에게 경주지부를 제수하여 오로지 여족을 위무토록 하고, 계속해서 나현 등에게 지현·현승(縣丞)주 001·순검(巡檢)주 002 등의 관직을 제수하고 관대와 초폐를 하사하여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여러 여족이 감격하고 기뻐하여 서로 이어서 내조하여 귀부하였다.주 003 경산·임고(臨高) 등 여러 현의 생여(生黎)의 동(峒) 수령 왕벌(王罰)·종이(鍾異)·왕림(王琳) 등이 내조하자 주부(主簿)주 004·순검을 맡도록 명하였다.주 005 [영락] 6년(1408)에 유명이 다시 토족의 여동 수령 왕현우(王賢祐)·왕혜(王惠)·왕존례(王存禮) 등을 데리고 내조하여 마필을 바쳤다. [이에] 왕현우를 담주 동지(同知)주 006로 임명하고, 왕혜와 왕존례를 만녕현(萬寧縣) 주부로 임명하였다.주 007 [영락] 8년(1410)에 문창현(文昌縣) 참각채(斬脚寨)의 여족 수령 주진생(周振生) 등이 내조하자 초폐를 하사하고,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여러 동에 가서 초무하도록 하였다.주 008 [영락] 9년(1411)에 임고현의 전사 왕기부(王寄扶)가 명을 받들어 생여족(生黎族) 2,000여 호를 초무하여 불러들였는데, 동의 수령 왕내(王乃) 등이 내조하였다. 왕기부를 현의 주부로 임명하고, 아울러 왕내 등에게 초를 하사하였다.주 009 [영락] 11년(1413)에 경산현 동양도(東洋都)의 백성 주공수(周孔洙)가 초무하여 효유한 포여(包黎) 등 촌의 여족 사람 왕관교(王觀巧) 등 230호가 부적(附籍)하여 [조정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였다. [영락제가] 이 청원을 받아들였다.주 010 임고의 백성 황무(黃茂)가 명을 받들어 심동(深峒)·나태(那呆) 등 24동의 생여족(生黎族)을 불러들여 위무하고, 여족 수령 왕취(王聚)·부희(符喜) 등을 거느리고 내조하여 마필을 바치니, 여족 백성으로서 내조하여 귀화한 자가 400호 남짓 되었다. 앞뒤로 위무한 여러 여족을 통틀어 계산하면 모두 1,670곳에 3만 호 남짓인데, 대개 모두 묘산(廟算)주 011에 근거한 것이라 한다.주 012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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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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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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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10)
- 각주 011)
- 각주 012)
색인어
- 이름
- 나현(羅顯), 허지광(許志廣), 진충(陳忠), 유명(劉銘), 나현, 유명, 유명, 유명, 나현, 왕벌(王罰), 종이(鍾異), 왕림(王琳), 유명, 왕현우(王賢祐), 왕혜(王惠), 왕존례(王存禮), 왕현우, 왕혜, 왕존례, 주진생(周振生), 왕기부(王寄扶), 왕내(王乃), 왕기부, 왕내, 주공수(周孔洙), 왕관교(王觀巧), 황무(黃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