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영충의 광동 평정 이후 연혁
홍무 원년(1368)에, 정남장군 요영충(廖永忠)
주 001
각주 001)

이 광동을 평정하고 건녕안무사를 경주부(瓊州府)로 바꾸고, 애주(崖州)의 길양군(吉陽軍)과 담주(儋州)의 만안군(萬安軍)을 모두 주(州)로 바꾸었는데, 남건주(南建州)는 정안현(定安縣)에 예속되었다.주 002
廖永忠(1323∼1375): 南京 廬州府 巢州 사람으로, 楚國公 廖永安의 동생이다. 형이 강소성 싸움에서 패하자 형의 직책을 이어받아 樞密僉院이 되어 군사를 통솔하였다. 張士誠의 군대와 일전을 겨룬 鄱陽湖 전투에서 陳友諒의 둘째 아들인 陳理를 포로로 잡는 군공을 세우자, 주원장이 특별히 「功超群將, 智邁雄師」이라는 八字를 하사하여 문에 걸도록 하는 영예를 얻었다. 洪武 원년(1368)에는 복건·광동·광동·광서를 평정하는 데 참가하였으며, 대장군 徐達과 함께 北征에도 참여하였다. 四川을 정벌하는데 종군하여 공적을 세우자 주원장은 ‘平蜀文’을 지어 그의 공적을 표창하였다. 그러나 洪武 8年(1375)에 황제의 표징이라 할 수 있는 龍鳳을 사용하였다는 죄에 연루되어 자결을 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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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廖永忠(1323∼1375): 南京 廬州府 巢州 사람으로, 楚國公 廖永安의 동생이다. 형이 강소성 싸움에서 패하자 형의 직책을 이어받아 樞密僉院이 되어 군사를 통솔하였다. 張士誠의 군대와 일전을 겨룬 鄱陽湖 전투에서 陳友諒의 둘째 아들인 陳理를 포로로 잡는 군공을 세우자, 주원장이 특별히 「功超群將, 智邁雄師」이라는 八字를 하사하여 문에 걸도록 하는 영예를 얻었다. 洪武 원년(1368)에는 복건·광동·광동·광서를 평정하는 데 참가하였으며, 대장군 徐達과 함께 北征에도 참여하였다. 四川을 정벌하는데 종군하여 공적을 세우자 주원장은 ‘平蜀文’을 지어 그의 공적을 표창하였다. 그러나 洪武 8年(1375)에 황제의 표징이라 할 수 있는 龍鳳을 사용하였다는 죄에 연루되어 자결을 명받았다.
- 각주 002)
색인어
- 이름
- 요영충(廖永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