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주의 연혁과 잠영 등의 계승
귀순주(歸順州)주 001
각주 001)

는 과거에는 동(峒)주 002歸順州: 지금의 廣西 靖西縣 新靖鎭 舊州村에 위치한다. 唐 元和 초년에 歸淳州를 歸順州로 이름을 바꾸고 邕州都督府에 귀속시켰다. 唐末에 폐지하였다. 元代 至正 23년(1363)에 다시 설치하여 鎭安路에 예속시켰다. 明初에 폐지했다가 弘治 9년(1496)에 다시 설치하여 鎭安府에 예속시켰다. 嘉靖 4년(1525)에 思恩府에 귀속시켰다. 淸代 雍正 7년(1729)에 改土歸流를 실시하였는데, 思恩과의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다시 鎭安府에 예속시켰다. 光緖 12년(1886)에 歸順州를 歸順直隷州로 승격시켜 太平思順道에 귀속시켰다. 民國 원년(1912) 6월에 歸順州를 폐지하고 歸順府를 설치하였다. 이듬해(1913) 6월에 歸順府를 폐지하고 靖西縣을 설치하였다. 『讀史方輿紀要』卷111「廣西6」참조.
각주 002)

이었고, 진안부(鎭安府)에 예속되었다. 영락 연간(1403∼1424)에 진안 지부(知府) 잠지강(岑志綱)이 그 둘째 아들 잠영강(岑永綱)에게 나누어 주어 동(峒)의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였고, 그 아들 잠영(岑瑛)에게 전위(傳位)하니, [잠영은] 누차 병사를 이끌고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였다. 홍치 9년(1496)에 총독 등정찬(鄧廷瓚)이 아뢰기를, “진안부의 귀순동은 일찍이 주치(州治)였는데, 홍무 초년에 혁파되었습니다. 지금 그 동의 군주 잠영이 매번 관부에 수고로움을 다하고 있으니, 청컨대 주치(州治)를 설치하여 토관의 지주(知州)로 제수하시기 바랍니다. 무릇 출병(出兵) 시에 그로 하여금 토병 5,000명을 갖추도록 하고, 여전히 해마다 토병 2,000명을 거느리고 오주(梧州)주 003에 가서 동원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라 하니, [홍치제는] 조서를 내려 이를 받아들이고, 유관(流官)의 이목(吏目) 1명을 증설하였다.주 004
잠영이 죽자 아들 잠장(岑璋)이 계승하였다. 다시 잠장의 상주를 받아들여 본주(本州)를 포정사에 바꾸어 예속시켰다.峒: 洞으로도 표기되는데, 대체로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을 지칭하는 단어는 ‘峒(洞)’과 ‘寨’라는 명칭이 가장 보편적이다. 그러나 사료의 설명으로 미뤄 ‘峒(洞)’이란 단어는 漢族이 자신의 전통적인 행정단위를 기준으로 불렀던 명칭이며, ‘寨’는 소수민족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와 그 구성이 지닌 특성을 살려 부른 명칭으로 판단된다. 즉, 同治 『來鳳縣志』卷27 「土司志」에 등장하는, “宋參唐制析其種落, 大者爲州, 小者爲縣, 又小者爲峒, 其酋皆世襲”이란 말은 전자의 경우이고, 嚴如熤이 生苗의 풍습을 설명하면서 “寨中有父子兄弟數人數十人, 强梁健鬪或能見官府講客話者, 則寨中畏之, 共推爲寨長...又各自爲黨, 故一寨一長, 或一寨數長, 皆以盛衰强弱, 遞變更易, 不能如他部之有酋長, 世受統轄也”라는 언급은 후자의 경우라 할 수 있다. 嚴如熤, 『苗防備覽』卷8 「風俗」上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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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歸順州: 지금의 廣西 靖西縣 新靖鎭 舊州村에 위치한다. 唐 元和 초년에 歸淳州를 歸順州로 이름을 바꾸고 邕州都督府에 귀속시켰다. 唐末에 폐지하였다. 元代 至正 23년(1363)에 다시 설치하여 鎭安路에 예속시켰다. 明初에 폐지했다가 弘治 9년(1496)에 다시 설치하여 鎭安府에 예속시켰다. 嘉靖 4년(1525)에 思恩府에 귀속시켰다. 淸代 雍正 7년(1729)에 改土歸流를 실시하였는데, 思恩과의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다시 鎭安府에 예속시켰다. 光緖 12년(1886)에 歸順州를 歸順直隷州로 승격시켜 太平思順道에 귀속시켰다. 民國 원년(1912) 6월에 歸順州를 폐지하고 歸順府를 설치하였다. 이듬해(1913) 6월에 歸順府를 폐지하고 靖西縣을 설치하였다. 『讀史方輿紀要』卷111「廣西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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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峒: 洞으로도 표기되는데, 대체로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을 지칭하는 단어는 ‘峒(洞)’과 ‘寨’라는 명칭이 가장 보편적이다. 그러나 사료의 설명으로 미뤄 ‘峒(洞)’이란 단어는 漢族이 자신의 전통적인 행정단위를 기준으로 불렀던 명칭이며, ‘寨’는 소수민족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와 그 구성이 지닌 특성을 살려 부른 명칭으로 판단된다. 즉, 同治 『來鳳縣志』卷27 「土司志」에 등장하는, “宋參唐制析其種落, 大者爲州, 小者爲縣, 又小者爲峒, 其酋皆世襲”이란 말은 전자의 경우이고, 嚴如熤이 生苗의 풍습을 설명하면서 “寨中有父子兄弟數人數十人, 强梁健鬪或能見官府講客話者, 則寨中畏之, 共推爲寨長...又各自爲黨, 故一寨一長, 或一寨數長, 皆以盛衰强弱, 遞變更易, 不能如他部之有酋長, 世受統轄也”라는 언급은 후자의 경우라 할 수 있다. 嚴如熤, 『苗防備覽』卷8 「風俗」上 참조.
- 각주 003)
- 각주 004)
색인어
- 이름
- 잠지강(岑志綱), 잠영강(岑永綱), 잠영(岑瑛), 잠영, 등정찬(鄧廷瓚), 잠영, 잠영, 잠장(岑璋), 잠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