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운한의 직무 회복
만력(萬曆)주 001 2년(1574)에 사성 토관 잠승훈(岑承勳) 등이 마필과 향로(香爐) 등의 방물을 바쳤다. [만력] 41년(1613)에 토관 잠운한(岑雲漢)이 방물을 바쳤다.주 002 당초에 잠운한은 곧 잠소훈(岑紹勳)의 적자(嫡子)였는데, 잠소훈이 서자 잠뢰한(岑雷漢)을 총애하자 두목 황마(黃瑪) 등이 내부에서 반란을 선동하여 불을 지르고 약탈하며 칭병(稱兵)주 003하기에 이르렀다. 잠운한이 어미를 속여 관인(官印)을 가지고 나와 아우를 데리고 달아나니, 순무(巡撫)주 004
각주 004)

와 순안(巡按)이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조정에서 의논하여 청하기를, 잠소훈의 죄를 사면해주어 대륜(大倫)주 005을 보존해주고, 잠뢰한·황마 등에게 장형(杖刑)을 가하여 시끄러운 재화(災禍)[가 재연될 소지]를 종식시키며, 잠운한은 관대하게 조치하여 관직을 벗기되 죄를 짊어지고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자 하니, [만력제는] 조서를 내려 [이를] 허가하였다. 천계(天啓)주 006 2년(1622)에 순무(巡撫) 하사진(何士晉)
주 007巡撫: 明淸시대 지방의 최고 軍政大員 가운데 하나로서 撫臺라고도 칭한다. 각지의 軍政과 民政을 巡視하는 大臣이다. 北周와 唐初에 관료를 각지에 파견하여 巡撫토록 한 일이 있었는데, 모두 임시직이었고, 아직 官名은 아니었다. 明代에 巡撫의 이름은 洪武 24년(1391)년에 처음으로 보인다. 즉, 洪武帝는 皇太子 朱標를 陝西로 보내어 巡撫토록 한 바 있다. 永樂 19년(1421)에는 蹇義 등 26명을 各 省으로 나누어 보내 巡撫토록 하였다. 宣德 5년(1430)에는 于謙과 周忱등 6명을 南·北直隷 等處로 나누어 巡撫토록 했는데, 이로부터 各 省에 巡撫를 두는 것이 제도로 정착되었다. 巡撫가 처음 두어졌을 때는 稅糧督理, 河道總理, 流民撫治, 邊關整飭 등을 주로 맡았는데, 후에는 점차 軍事에 편중되어 갔다. 明代에 巡撫는 대부분 進士出身이 맡았다. 당초에 內地巡撫는 吏部가 戶部와 회동하여 推擧했고, 邊地巡撫는 吏部가 兵部와 회동하여 推擧하였는데, 嘉靖 14년(1535)에 처음으로 內地와 邊地를 불문하고 九卿이 廷推하였다. 明代에 巡撫는 비록 지방의 정식 軍政長官은 아니었지만, 地方을 巡撫하며 三司 즉 布政司, 按察司, 都指揮司를 節制하여 실제로는 지방의 軍政大權을 장악하였다.
각주 007)

이 잠운한의 지주(知州) 직무를 회복시키고 실정을 감안하여 도사(都司)주 008의 직함을 더해 주어 그로 하여금 토병(土兵)을 거느려 검(黔)주 009을 지원하도록 하자고 청하니, [천계제가] 이를 받아들였다.주 010
何士晉: 字는 武莪로 宜興 출신이다. 萬曆 26년(1598)에 進士로 급제하였다. 天啓 2년(1622)에 右僉都御史의 직함으로 廣西巡撫가 되었다. 당시 安南이 침입하자 將吏를 동원하여 물리쳤다. 천계 4년(1624)에 兵部右侍郞으로 승진하여 兩廣의 軍務를 總督하고 아울러 廣東巡撫가 되었다. 이듬해(1625) 4월에 환관 魏忠賢이 國政을 농단하면서 대규모 옥사를 일으켜 忠良의 인사를 탄압했는데, 何士晉도 무함을 받아 革職되었다. 얼마 후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崇禎帝가 즉위한 뒤 魏忠賢이 축출되고 체포 되어 끝내 자살하자 何士晉이 비로소 平反되어 억울함을 씻을 수 있었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巡撫: 明淸시대 지방의 최고 軍政大員 가운데 하나로서 撫臺라고도 칭한다. 각지의 軍政과 民政을 巡視하는 大臣이다. 北周와 唐初에 관료를 각지에 파견하여 巡撫토록 한 일이 있었는데, 모두 임시직이었고, 아직 官名은 아니었다. 明代에 巡撫의 이름은 洪武 24년(1391)년에 처음으로 보인다. 즉, 洪武帝는 皇太子 朱標를 陝西로 보내어 巡撫토록 한 바 있다. 永樂 19년(1421)에는 蹇義 등 26명을 各 省으로 나누어 보내 巡撫토록 하였다. 宣德 5년(1430)에는 于謙과 周忱등 6명을 南·北直隷 等處로 나누어 巡撫토록 했는데, 이로부터 各 省에 巡撫를 두는 것이 제도로 정착되었다. 巡撫가 처음 두어졌을 때는 稅糧督理, 河道總理, 流民撫治, 邊關整飭 등을 주로 맡았는데, 후에는 점차 軍事에 편중되어 갔다. 明代에 巡撫는 대부분 進士出身이 맡았다. 당초에 內地巡撫는 吏部가 戶部와 회동하여 推擧했고, 邊地巡撫는 吏部가 兵部와 회동하여 推擧하였는데, 嘉靖 14년(1535)에 처음으로 內地와 邊地를 불문하고 九卿이 廷推하였다. 明代에 巡撫는 비록 지방의 정식 軍政長官은 아니었지만, 地方을 巡撫하며 三司 즉 布政司, 按察司, 都指揮司를 節制하여 실제로는 지방의 軍政大權을 장악하였다.
- 각주 005)
-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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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7)
何士晉: 字는 武莪로 宜興 출신이다. 萬曆 26년(1598)에 進士로 급제하였다. 天啓 2년(1622)에 右僉都御史의 직함으로 廣西巡撫가 되었다. 당시 安南이 침입하자 將吏를 동원하여 물리쳤다. 천계 4년(1624)에 兵部右侍郞으로 승진하여 兩廣의 軍務를 總督하고 아울러 廣東巡撫가 되었다. 이듬해(1625) 4월에 환관 魏忠賢이 國政을 농단하면서 대규모 옥사를 일으켜 忠良의 인사를 탄압했는데, 何士晉도 무함을 받아 革職되었다. 얼마 후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崇禎帝가 즉위한 뒤 魏忠賢이 축출되고 체포 되어 끝내 자살하자 何士晉이 비로소 平反되어 억울함을 씻을 수 있었다.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
색인어
- 이름
- 잠승훈(岑承勳), 잠운한(岑雲漢), 잠운한, 잠소훈(岑紹勳), 잠소훈, 잠뢰한(岑雷漢), 황마(黃瑪), 잠운한, 잠소훈, 잠뢰한, 황마, 잠운한, 하사진(何士晉), 잠운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