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국(高昌國)은 한대(漢代) 거사전왕정(車師前王庭)인데 한무제가 서방을 정벌할 때 곤핍한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살게 된 나라이다
고창국은 곧 한대
거사전왕정(車師前王庭)이다. 돈황에서 13일 걸리는 거리에 있고, 그 경역은 동서로 300리, 남북으로 500리이며, 사면에는 큰 산들이 많다. 과거에 한무제가 군대를 보내 서방을 정벌할 때 군대가 피폐하게 되어 그 가운데 특히 곤핍하게 된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서 살게 되었다. 그 지방에는 한대의 고창루(高昌壘)
주 001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국호를 짓게 되었다. 처음에 연연(蠕蠕)
주 002이 감백주(闞伯周)
주 003를 고창왕으로 세웠는데, 백주가 죽자 아들 의성(義成)이 계승하였지만 그는 종형 수귀(首歸)에게 피살되었다. 수귀가 스스로 고창왕으로 즉위하였지만 다시 고차의 아복지라(阿伏至羅)에게 피살되었다. 돈황인 장맹명(張孟明)을 군주로 삼았지만 맹명은 국인들에게 피살되고, 다시 마유(馬儒)를 왕으로 삼고 공고(鞏顧)와 국가(麴嘉) 두 사람을 좌우장사(左右長史)로 삼았다. 마유는 또한 북위에 사신을 보내 내속을 청하였다. 그러나 내속한 사람들이 모두 고토를 사모하여 동쪽으로 옮기기를 원치 않으며 서로 협력하여 마유를 살해하고 국가를 왕으로 세웠다. 국가의 자(字)는 영봉(靈鳳)이고 금성(金城) 유중(榆中) 사람으로서, 즉위한 뒤 다시 여여(茹茹)에게 신복하였다. 여여의 군주가 고차에게 피살되었을 때, 국가는 다시 고차에게 신복하였다. 마침 언기(焉耆)가 읍달(挹怛)
주 004에게 격파되어 그 무리들이 스스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국가에게 다스려 달라고 청하였다. 국가는 자신의 둘째 아들을 보내어 언기왕으로 삼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강대해지자 더욱 국인들이 복종하게 되었다. 국가가 사망하자 아들 국견(麴堅)이 계승했다.
색인어
- 이름
- 한무제, 감백주(闞伯周), 백주, 의성(義成), 수귀(首歸), 수귀, 아복지라(阿伏至羅), 장맹명(張孟明), 맹명, 마유(馬儒), 공고(鞏顧), 국가(麴嘉), 마유, 마유, 국가, 국가, 영봉(靈鳳), 국가, 국가, 국가, 국가, 국견(麴堅)
- 지명
- 고창국, 한대, 거사전왕정(車師前王庭), 돈황, 한대, 고창루(高昌壘), 연연(蠕蠕), 고차, 돈황, 북위, 금성(金城) 유중(榆中), 여여(茹茹), 여여, 고차, 고차, 언기(焉耆), 읍달(挹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