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 북주 교체기에 변경을 약탈하자 고조가 군대를 출동하여 모두 토벌함
북위·북주 교체기에 여러 차례 변경에 소요를 일으켰다. 고조가 승상일 때 중원에 변고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연유로 크게 약탈을 범했던 것이다. 장공(蔣公) 양예(梁睿)
주 001가 왕겸(王謙)을 평정한 뒤 군대를 귀환시켜 그들을 토벌하자고 청하였으나, 고조는 허락지 않았다. 개황 4년(584), 천여 가가 귀화하였다. 5년(585)에 탁발영총(拓拔寧叢) 등이 각자 부중을 이끌고 욱주(旭州)로 와서 항복을 청하여, [탁발영총에게] 대장군의 지위를 주고 그 부하들에게도 [관작을] 차등적으로 지급하였다. 16년(596)에 다시 회주를 노략질하여, 조칙을 내려 농서의 군사들을 징발하여 이들을 토벌하게 하여 그 무리들을 크게 깨뜨렸다. [그러자] 또 무리들을 거느리고 항복을 청하면서 신하가 될 것을 원하고 자제를 입조시켜 사죄하였다. 고조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돌아가서 너희 부형들에게 말하라. 사람은 반드시 정해진 거처가 있어야 늙은이를 공양하고 어린애를 기르는 법인데, 금새 돌아왔다가 금새 가버린다면 어찌 고향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그 뒤로 조공이 끊어지지 않았다.
색인어
- 이름
- 고조, 장공(蔣公) 양예(梁睿), 왕겸(王謙), 고조, 탁발영총(拓拔寧叢), 고조
- 지명
- 북위, 북주, 중원, 욱주(旭州), 회주, 농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