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여과가 죽고 아들 복(伏)이 즉위하여 딸을 후궁으로 보내도록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함

  • 국가
    토욕혼(吐谷渾)
11년(591)에 여과가 사망하고 아들 복(伏) 주 001
각주 001)
『北史』 〈吐谷渾傳〉에는 ‘世伏’으로 되어 있다. 吐谷渾의 可汗으로서 재위는 隋 開皇 11년(591)부터 개황17년(597)까지이다.
닫기
이 즉위하였다. 그 형의 아들 무소(無素)로 하여금 표문을 올리고 칭번(稱藩)하고 아울러 방물도 바치면서 딸을 후궁으로 보내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주상은 등왕(滕王) 주 002
각주 002)
滕王: 隋 文帝의 동생. 『隋書』 권1 「高祖本紀」에는 開皇 원년(581) 二月에 “皇弟 邵國公 慧를 滕王으로 봉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닫기
에게 이르기를 “이것은 지극한 정성이 아니라 다만 위급할 때 쓰는 계책일 뿐이다.”라고 하면서, 곧 무소에게 말하기를 “짐은 토욕혼의 군주가 여자를 보내 짐을 모시게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청을 들어주어 오게 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그것을 듣고 곧 서로 배우게 될 것이다. 하나는 들어주고 하나는 거절한다면 이는 불공평한 일이다. 만약 모두 허락한다면 그것 또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짐의 뜻은 편안하게 양육시키고 그 품성에 따르게 하려는 것인데, 어찌 자녀들을 거두어서 후궁을 채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12년(592)에 형부상서 우문필(宇文㢸) 주 003
각주 003)
宇文㢸(546∼607): 河南 洛陽人 字는 公輔. 北周 때에 관직에 나아가 禮部上士를 하면서 外邦에 出使하였고 전후 30여 部를 降付케 하였다. 576년 武帝를 따라 北齊를 공격했고 그 공로로 上儀司가 되었다. 수가 건립된 뒤 尙書右丞이 되어 西羌을 安輯하고, 鹽澤·蒲昌 2郡을 설치하였다. 陳을 공격할 때의 공로로 刑部尙書로 발탁되었고, 598년에는 高句麗 원정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隋煬帝의 의심을 사서 처형당했다.
닫기
을 보내어 그를 위무하였다. 16년(596)에는 광화공주(光化公主) 주 004
각주 004)
光化公主: 그에 관해서는 『隋書』 권47에 “吐谷渾이 來降하자 朝廷은 宗女 光化公主를 부인으로 주고, 아울러 散騎常侍로 높여주었다. 公主를 西域으로 보냈다.”는 기사가 보일 뿐이다.
닫기
복(伏)의 부인으로 삼아주었는데, 이 상표를 올려 공주를 ‘천후’(天后)로 칭하게 해달라고 하였으나 주상께서 허락지 않았다.

  • 각주 001)
    『北史』 〈吐谷渾傳〉에는 ‘世伏’으로 되어 있다. 吐谷渾의 可汗으로서 재위는 隋 開皇 11년(591)부터 개황17년(597)까지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滕王: 隋 文帝의 동생. 『隋書』 권1 「高祖本紀」에는 開皇 원년(581) 二月에 “皇弟 邵國公 慧를 滕王으로 봉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3)
    宇文㢸(546∼607): 河南 洛陽人 字는 公輔. 北周 때에 관직에 나아가 禮部上士를 하면서 外邦에 出使하였고 전후 30여 部를 降付케 하였다. 576년 武帝를 따라 北齊를 공격했고 그 공로로 上儀司가 되었다. 수가 건립된 뒤 尙書右丞이 되어 西羌을 安輯하고, 鹽澤·蒲昌 2郡을 설치하였다. 陳을 공격할 때의 공로로 刑部尙書로 발탁되었고, 598년에는 高句麗 원정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隋煬帝의 의심을 사서 처형당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光化公主: 그에 관해서는 『隋書』 권47에 “吐谷渾이 來降하자 朝廷은 宗女 光化公主를 부인으로 주고, 아울러 散騎常侍로 높여주었다. 公主를 西域으로 보냈다.”는 기사가 보일 뿐이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여과, 복(伏), 무소(無素), 등왕(滕王), 무소, 우문필(宇文㢸), 광화공주(光化公主), 복(伏),
지명
토욕혼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여과가 죽고 아들 복(伏)이 즉위하여 딸을 후궁으로 보내도록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함 자료번호 : jo.k_0013_0083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