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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제도와 해동성국(海東盛國)

종부 [대]인수가 왕위에 올라 건흥으로 개원하였다. 그의 4세조 [대]야발은 [대]조영의 동생이다. [대]인수는 자못 바다 북쪽의 여러 부를 토벌하여 영토를 크게 개척하여 공이 있으니, 조서를 내려 검교사공주 001
번역주 001)
檢校司空 : 檢校는 우대하여 원래 正職이나 品階 보다 높여 승진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司空은 당의 三公 중 하나로 정1품이다. 실무가 없는 명예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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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제수하고 왕위를 잇게 하였다. 원화 연간(806~820)에 모두 열여섯 번 조공하였고, 장경 연간(821~824)에 네 번, 보력 연간(825~826)에 [사신이] 모두 두 번 왔다. 대화 4년(830)에 [대]인수가 죽으니,주 002
번역주 002)
『구당서』에는 대인수(선왕)이 대화 5년(831)에 죽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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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는 선왕이다. 아들 [대]신덕은 일찍 죽고, 손자 [대]이진이 왕위에 올라 연호를 함화로 고쳤다. 이듬해에 조서를 내려 작위를 세습시켰다. [당] 문종(재위: 826~840)의 치세가 끝날 때까지 열두 번 내조하였고, 회창 연간(841~846)에 [사신이] 모두 네 번을 왔다. [대]이진이 죽으니, 동생 [대]건황이 왕위에 올랐다. [대건황이] 죽으니, [대]현석이 왕위에 올랐다. 함통 연간(860~873)에 세 번 조공하였다.
앞서 그 왕은 자주 여러 학생을 보내 경사(장안)의 태학주 003
번역주 003)
太學 : 당의 최고학부인 國子監을 이른다. 국자감 내에는 國子學, 太學, 四門學, 律學, 書學, 算學 6개의 학부가 나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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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들어가 고금의 제도를 배우고 익히게 하였는데,주 004
번역주 004)
발해는 건국 초부터 학생을 선발하여 당에 유학을 보냈는데, 당에 학생을 파견한 것이 확인되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玉海』 권153, 朝貢 外夷來朝 內附 唐渤海遣子入侍 ‘開元 二年 (714) 三月 令生徒六人入學 新羅七人’, 『冊府元龜』 권999, 請求 ‘太和七年(833) 春正月 己亥 銀靑光祿大夫 簡較秘書監 忽汗都督 國王 大彛震奏 遣學士解楚卿 趙孝明 劉寶俊 三人 附謝恩使 同中書右平章事 高賞英 赴上都學問 遣學生 李居正 朱承朝 高壽海等 三人 事業稍成 請准例遞乘歸本國 許之’, 『舊唐書』 권199下 列傳제149下 北狄 渤海靺鞨 ‘(太和)七年(833) 正月 遣同中書右平章事 高寶英 來謝册命 仍遣學生三人 隨 寶英 請赴 上都 學問 先遣學生三人 事業稍成 請歸本國 許之’, 『唐會要』 권36 附學讀書 ‘(開成)二年(837) 三月 渤海國 隨賀正王子 大俊明 幷入朝學生 共一十六人 勅 渤海 所請生徒習學 宜令 靑州 觀察使 放六人到上都 餘十人勒迴 又 新羅 差入朝宿衛王子 幷准舊例 割留習業學生 並及先住學生等 共二百十六人 請時服糧料 又請舊住學習業者 放還本國 勅 新羅 學生內 許七人 准去年八月勅處分 餘時十馬畜糧料等 旣非舊例 並勒還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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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이르러 드디어 해동성국이 되었다. 그 땅에는 5경·15부·62주가 있다. 숙신의 옛 땅을 상경으로 삼고, 용천부라고 부르며, 용[주]주 005
번역주 005)
龍州 : 上京의 首州로서 상경성이 위치하는 곳으로 추정된다(金毓黻, 1934 ; 和田淸, 1954). 遼代에는 扶餘府故地에 黃龍府를 두어 龍州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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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주 006
번역주 006)
湖州 : 그 名稱으로 보아 지금의 鏡泊湖 방면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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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주 007
번역주 007)
渤州 : 지금의 寧安 부근일 것이라는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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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를 다스린다. 그 남쪽을 중경주 008
번역주 008)
中京 : 第3代 文王 때 上京으로 천도하기에 전 수도로 있었다. 위치 비정에 대해서는 蘇密城說, 那丹佛勒城說, 敦化縣說, 西古城子說 등이 있었다. 지금은 和龍 인근에 용두산고분군에서 文王의 네 번째 딸 貞孝公主의 무덤이 발굴되고 주변에 발해 유적들이 함께 발견되고 있어 서고성을 발해 중경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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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삼고, 현덕부라고 부르며, 노[주]주 009
번역주 009)
盧州 : 『遼史』 地理志에 ‘在京東一百三十里’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 보이는 ‘京’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아 위치를 알 수 없다. 게다가 요대의 주명은 거란이 발해 유민을 요동 방면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에 옛 지명을 사용한 경우가 많아 『遼史』 「地理志」로 위치를 비정하기 힘들다. 노주를 龍井村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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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주 010
번역주 010)
顯州 : 중경 현덕부의 부명에 ‘顯’과 동일하여 顯德府의 부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그 위치를 西古城子로 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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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주]주 011
번역주 011)
鐵州 : 『遼史』 「地理志」에는 위치가 ‘在京西南六十里’로 되어 있고, 位城, 河端·蒼山·龍珍 4縣을 거느리며 遼代에 屬縣이 廢한 것으로 되어 있다. 和田淸은 鐵州라는 이름이 ‘位城의 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西古城子의 西南, 咸鏡北道 茂山 西北에 철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이곳을 鐵州로 비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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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주]주 012
번역주 012)
湯州 : 『遼史』 「地理志」에 위치가 ‘在京西北一百里’로 되어 있고, 屬縣은 靈峰·常豊·白石·均谷·嘉利 등 5縣이 있다. 遼代에 속현을 廢하였고 湯州治는 北鎭縣과 黑山縣의 2縣 부근인 乾州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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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주 013
번역주 013)
榮州 : 『遼史』 「地理志」에 ‘在京東北一百五十里’로 나오며, 崇山·潙水·綠成의 3縣을 거느린다. 『遼史』에는 ‘崇州’로 되어 있어 ‘崇州’로 보는 견해가 있다. 延吉 부근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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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주]주 014
번역주 014)
興州 : 『遼史』 「地理志」에 ‘在京西南三百里’이며, 盛吉·蒜山·鐵山의 3縣을 거느린다. 西古城子에서 西南으로 分水嶺을 넘어 豆滿江 下流 一帶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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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를 다스린다. 예맥의 옛 땅을 동경으로 삼고, 용원부라고 부르는데, 책성부라고도 부르며, 경[주]주 015
번역주 015)
慶州 : 『遼史』 「地理志」에 ‘壘石爲城周圍二十里’라고 하였고, 屬縣으로 龍原·永安·鳥山·壁谷·熊山·白楊의 6縣을 거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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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주 016
번역주 016)
鹽州 : 『遼史』 「地理志」에 ‘一名 龍河郡’으로, 海陽·接海·格川·龍河의 4縣을 거느린다. 和田淸은 Possjet灣 北岸에 顔楚(Yen-Chu) 또는 眼春(Yen-Chun)이라는 地名이 있었던 것은 이 鹽州(Yen-Chou)의 轉訛일지도 모른다는 臆測을 하였던 바 있다(「渤海國地理考」). 현재는 연해주 크라스키노성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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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주]주 017
번역주 017)
穆州 : 『遼史』 「地理志」에 ‘一名 會農郡’으로, 會農·水岐·順化·美縣의 4縣을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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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주 018
번역주 018)
賀州 : 『遼史』 「地理志」에 ‘一名 吉理郡’으로, 洪賀·送誠·吉理·石山의 4縣을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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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를 다스린다. 옥저의 옛 땅을 남경주 019
번역주 019)
南京 : 位置에 대하여는 丁若鏞의 咸興說(『我邦疆域考』 「渤海考」)과 韓鎭書의 北靑說(『續海東繹史』 「渤海」), 內藤虎次郞의 咸鏡北道 鏡城說(「日本滿洲交通略說」), 松井等의 咸鏡北道 鏡城說(「渤海國の疆域」), 鳥山喜一의 北靑說(「北滿の二大古都址」) 등이 있다. 『遼史』 「地理志」에 南海府가 ‘壘石爲城 幅員九里’라고 하였다. 현재는 북청의 청해토성으로 비정하는 것이 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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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삼고, 남해부라고 부르며, 옥[주]주 020
번역주 020)
沃州 : 『遼史』 「地理志」에 沃沮·鷲巖·龍山·濱海·昇平·靈泉의 6縣을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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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주 021
번역주 021)
晴州 : 『遼史』 「地理志」에 天晴·神陽·蓮池·狼山·仙巖의 5縣을 거느렸다. 和田淸(1954)은 위치를 城津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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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주]주 022
번역주 022)
椒州 : 『遼史』 「地理志」에 椒山·貂嶺·澌泉·尖山·巖淵의 5縣을 거느렸다. 和田淸(1954)은 鏡城으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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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를 다스린다. 고구려의 옛 땅을 서경주 023
번역주 023)
西京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淥州 鴨淥軍 節度 本高麗故國 渤海號西京鴨淥府 城高三丈 廣輪二十里 都督 神·桓·豊·正四州事’로 나온다. 丁若鏞은 平安北道 慈城 北에서 鴨綠江 對岸으로(『我邦疆域考』 「渤海考」), 韓鎭書는 江界府의 滿浦鎭 對岸으로(『續海東繹史』 「渤海」), 松井等(1913)은 奉天省 臨江縣帽兒山으로, 鳥山喜一(1915)은 通溝로 비정하였고, 현재 臨江 지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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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삼고, 압록부라고 부르며, 신[주]주 024
번역주 024)
神州 : 『遼史』 「地理志」에 神鹿·神化·劍門의 3縣을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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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주]주 025
번역주 025)
桓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高麗中都城 故縣三 桓都·神鄕·淇水(浿水) 皆廢 高麗王於此創立宮闕 國人謂之新國 五世孫釗 晋康帝建元初爲慕容皝所敗 宮室焚蕩 … 隷淥州 在西南二百里’로 나와 고구려의 丸都 즉 지금의 輯安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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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주]주 026
번역주 026)
豊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에는 ‘渤海置盤安郡 … 隷淥州 在東北二百一十里’으로, 安豊·渤恪·隰壤·硤石의 4縣을 거느렸다. 和田淸은 鴨綠江 上源의 厚昌古邑方面 또는 長白·惠山鎭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地理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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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주 027
번역주 027)
正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本沸流王故地 國爲公孫康所倂 渤海置沸流郡 有沸流水 … 隷淥州 在西北三百八十里’라고 되어 있다. 和田淸(1954)은 위치를 通化나 桓仁으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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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를 다스린다. 장령부주 028
번역주 028)
長嶺府 : 位置에 대하여 『滿洲源流考』에서는 ‘今吉林西南五百里 有長嶺子 滿洲語稱果勒敏珠敦(Golmin Judun, 長嶺의 뜻)’이라고 하고, 지금의 英額門 부근으로 比定하였다. 韓鎭書는 ‘永吉州等地’로 비정하였는데(『續海東繹史』 「渤海」), 지금의 吉林이다. 津田左右吉(1915)은 輝發河 上流에 있는 北山城子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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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부르며, 하[주]주 029
번역주 029)
瑕州 : 『滿洲源流考』 「疆域」 嶺府條에 ‘按瑕州無考 常爲附郭之州 遼廢’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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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주 030
번역주 030)
河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河州 德化軍 置軍器坊’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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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를 다스린다. 부여의 옛 땅을 부여부주 031
번역주 031)
농안 일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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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항상 강한 군대를 주둔시켜 거란을 방어하며, 부[주]주 032
번역주 032)
扶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 通州條에 속현 扶餘·布多·顯義·鵲川 중에 보인다. 『滿洲源流考』 「疆域」에는 開原 부근으로 金毓黻은 昌圖 부근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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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주 033
번역주 033)
仙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 通州條에 渤海시기 强師·新安·漁谷의 3縣을 거느린 것으로 나온다. 和田淸은 北流 松花江 부근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地理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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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를 다스린다. 막힐부주 034
번역주 034)
鄚頡府 : 『遼史』 「地理志」 東京道 韓州條에 ‘ … 本槀離國舊治柳河縣 高麗置鄚頡府 都督鄚·頡二州 渤海因之 … ’라고 하여 고구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金毓黻은 農安 북쪽으로 比定하였고(『渤海國志長編』 「地理考」), 和田淸(1954)은 阿城 부근으로 比定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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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막[주]주 035
번역주 035)
鄚[州] : 屬縣에 奧喜·萬安의 2縣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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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주 036
번역주 036)
高[州] : 『遼史』 「地理志」에는 頡州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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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를 다스린다. 읍루의 옛 땅을 정리부주 037
번역주 037)
定理府 : 位置에 대하여 『盛京通志』와 『大淸一統志』에서 熱河의 承德城으로 比定하였고, 韓鎭書는 寧古塔 부근으로(『續海東繹史』 「渤海」), 松井等(1913)과 金毓黻은 烏蘇里江 부근으로, 和田淸(1954)은 沿海州의 Olga 부근으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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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정[주]주 038
번역주 038)
定州 : 一名 安定郡이라고 하며, 定理·平邱·巖城·慕美·安夷의 5縣을 거느렸다. 和田淸(1954)은 沿海州 南部인 蘇城(Suchan) 부근으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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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주 039
번역주 039)
潘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瀋州’로 되어 있고 9縣을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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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를 다스린다. 안변부주 040
번역주 040)
安邊府 : 위치에 대해 金毓黻은 烏蘇里江 流域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卷14 「地理考」). 和田淸(1954)은 定理·安邊 2府가 挹婁의 故地로 서로 근접하다고 보고 金代의 錫林路로서 Olga 地方인 것으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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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안[주]·경[주]의 2주를 다스린다. 솔빈의 옛 땅을 솔빈부주 041
번역주 041)
率賓故地 : 그 이름이 綏芬河와 발음이 유사하여 현재 수분하 지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率賓府의 名은 遼代에도 그대로 쓰여졌으나, 金·元代에는 恤品·速頻·蘇濱의 이름으로 史書에 보이게 되며, 淸代에는 綏芬路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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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화[주]주 042
번역주 042)
華州 : 金毓黻은 率賓府의 首州이며 廢한 후 그 民은 康州로 옮기게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地理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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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주]·건[주]주 043
번역주 043)
益州·建州 : 和田淸(1954)은 三岔口로 불리던 東寧의 西北에는 大城子·小城子 등의 遺址가 있는데, 建·益 2州 중 하나는 이곳일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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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를 다스린다. 불열의 옛 땅주 044
번역주 044)
拂涅은 靺鞨 7部 중 하나였던 불열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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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동평부주 045
번역주 045)
東平府 : 拂涅部의 位置에 대해 여러 설이 있어 동평부의 위치에 대한 설도 마찬가지이다. 이 중 黑州는 흑수말갈과 관련지어 보기도 한다. 흑수말갈의 일부가 발해 후기에 복속된 것으로 보지만, 행정구역 설치가 확인되고 있지 않는데, ‘黑’州의 흑이 ‘黑’水의 흑과 같은 글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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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이[주]·몽[주]·타[주]·흑[주]·비[주] 5주를 다스린다. 철리의 옛 땅을 철리부주 046
번역주 046)
鐵利故地 : 鐵利는 말갈 7부 중에는 그 명칭이 없으나 발해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와 관계가 깊었던 불열, 월희 말갈과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당시부터 있었고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圖們江北·與凱湖의 南說(丁若鏞, 「渤海考」), 黑龍·烏蘇里江下流 地域說(松井等, 1913 ; 鳥山喜一, 1915), 木丹江流域說(津田左右吉, 1916), 阿什河流域說(池內宏, 1916), 松花江下流域의 依蘭地域說(小川裕人, 193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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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광[주]·분[주]·포[주]·해[주]·의[주]·귀[주] 6주를 다스린다. 월희의 옛 땅주 047
번역주 047)
越喜故地 : 越喜에 대한 것은 『舊唐書』 渤海靺鞨傳 월희말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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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회원부주 048
번역주 048)
懷遠府 : 월희의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원부와 그 속주들에 대한 위치 비정 역시 어렵다. 그 이름에서 발해 중심지에서 상당히 먼 지역이었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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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고, 달[주]·월[주]·회[주]·기[주]·부[주]·미[주]·복[주]·사[주]·지[주] 9주를 다스린다. 안원부주 049
번역주 049)
安遠府 : 『遼史』 「地理志」 東京道 慕州條에 “本渤海安遠府地 故縣二 慕化·崇平 … 隷淥州 在西二百里”라고 하여 屬縣으로 慕化·崇平의 2縣을 거느렸다. 西京 鴨淥府의 府治인 淥州 西北으로 200里에 있어 鴨綠江과 輝發河의 중간인 柳河縣으로 비정되기도 하며, 韓鎭書는 黑龍江 流域으로 比定한 바 있다(『續海東繹史』 「渤海」). 松井等과 和田淸은 松花江 下流로(「渤海國の疆域」 ; 「渤海國地理考」), 金毓黻은 興凱湖 東岸인 것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地理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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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영[주]·미[주]·모[주]·상[주] 4주를 다스린다. 또 영[주]주 050
번역주 050)
郢州 : 和田淸(1954)은 鐵利·越喜와 上京龍泉府을 연결하는 大道上의 要衝으로 寧古塔 북쪽 어딘가로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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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주 051
번역주 051)
銅州 : 『遼史』 「地理志」 咸州條에 ‘渤海置銅山郡 地在漢候城縣北 渤海龍泉府南 地多山險 寇盜以爲淵藪 … ’라고 하여 지금의 開原인 遼金時代의 咸州로 比定되기도 하였으나, 이 지역은 평지로 산이 많고 험하다는 동주의 지세와 맞지 않다. 동주의 이름은 銅 산지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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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주]주 052
번역주 052)
涑州 : 『吉林通志』 「沿革志」 涑州條에 吉林에서 북으로 약 65里인 打牲烏拉으로 비정한 이후 대체로 이를 따라 길림 인근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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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를 독주주주 053
번역주 053)
獨奏州 : 『滿洲源流考』 「疆域」에 ‘獨奏之義 猶今直隷州 不轄於府 而事得專達也’라고 하여 중간보고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중앙관에 속하는 주를 가리킨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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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았다. [이 중] 속주는 그 [위치가] 속말강에 가까워 [이름이 붙었는데], [속말강은] 이른바 속말수주 054
번역주 054)
粟末水 : 지금의 송화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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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듯하다. 용원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도이다.주 055
번역주 055)
渤海에서 日本으로 가는 길은 東京龍原府인 지금의 琿春에서 그 東南인 Possjet 灣의 鹽州(크라스키노성)에서 배를 타고 日本의 能登·加賀 等郡에서 北으로 出羽·佐渡諸港에서 上陸하는 航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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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신라도이다.주 056
번역주 056)
『三國史記』 「地理志」에 인용되어 있는 『古今郡國志』에 新羅의 泉井郡에서 柵城府(발해 동경용원부)까지 39驛이었다고 하는데, 당나라 시기 역참 사이는 일반적으로 30里여서, 역산해 보면 琿春에서 1,170里를 南下하면 대체로 德源 지역에 이르는데, 때문에 덕원 부근이 신라의 井泉郡으로 비정되며, 신라도는 문왕 때 개통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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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은 조공도이다.주 057
번역주 057)
『新唐書』 「地理志」에 인용되어 있는 賈耽의 『道里記』에는 ‘自鴨江口 舟行百餘里 及小舫泝流東北三十里 至泊汋口 得渤海之境又泝流五百里 至丸都城·故高麗王都 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又陸行四百里 至顯州 天寶中王所都 又正北如東六百里 至渤海王城’이라고 하여 그 노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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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은 영주도이다.주 058
번역주 058)
『道里記』에는 ‘營州東百八十里 至燕郡城 又經汝羅守提 渡遼水 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故漢襄平城也 … 自都護府東北 經古蓋牟·新城, 又經渤海長嶺府千五百里 至渤海王城’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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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거란도이다.주 059
번역주 059)
上京에서 張廣才嶺을 거쳐 扶餘府인 四面城 부근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懷德·梨樹·遼源 等地를 거쳐 契丹의 上京臨潢府에 도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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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의] 풍속에 왕을 ‘가독부’라고 부르고, ‘성주’라고도 부르며, ‘기하’라고도 부른다. 왕명은 ‘교’라고 한다. 왕의 아버지는 ‘노왕’이라 부르고, 어머니는 ‘태비’, 처는 ‘귀비’, 장자는 ‘부왕’이라 부르며, [나머지] 아들들은 ‘왕자’라 부른다. 관[제]에는 선조성주 060
번역주 060)
宣詔省 : 唐의 門下省에 該當하는 官署이다. 中書省에서 기초한 詔令을 심의하고, 반포하여 시행된 政令의 成果를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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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는데, 좌상·좌평장사·시중·좌상시·간의가 소속되어 있다. 중대성주 061
번역주 061)
中臺省 : 唐의 中書省에 해당하는 官署이며, 모든 詔令을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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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우상·우평장사·내사·조고사인이 소속되어 있다. 정당성주 062
번역주 062)
政堂省 : 唐의 尙書省에 해당하는 官署이다. 唐代의 尙書省은 吏·戶·禮·兵·刑·工의 6部를 두고, 省의 長인 尙書令의 命으로 國政을 분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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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대내상 1명이 좌·우상의 위에 있고, 좌·우사정 각 1명이 좌·우평장사의 아래에 있는데, [당의] 복야주 063
번역주 063)
僕射 : 官名이다. 秦 以後부터 있었던 것이나 唐代의 僕射는 從二品職으로 尙書令 다음의 官位이며, 天子를 보필하여 大政을 의논한다. 玄宗 開元 初에 左·右丞相으로 官이 바뀌었다(『唐六典』 卷1 尙書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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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비견된다. 좌·우윤은 [당의] 2개의 승주 064
번역주 064)
二丞 : 唐代 官制의 佐丞과 右丞을 말한다. 즉, 尙書省의 左·右丞相의 下位인 左丞과 右丞은 定員이 各 1人이며, 左丞은 正四品上이고, 右丞은 正四品下의 秩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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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비견된다. 좌6사에는 충[부]주 065
번역주 065)
忠部 : 唐의 吏部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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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주 066
번역주 066)
仁部 : 唐의 戶部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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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부주 067
번역주 067)
義部 : 唐의 禮部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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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각 1명의 경주 068
번역주 068)
卿 : 唐의 尙書省 六部尙書의 尙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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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정의 아래에 있다. 지사인 작[부]·창[부]·선부에는 부[마다] 낭중과 원외가 있다. 우6사에는 지[부]주 069
번역주 069)
智部 : 唐의 兵部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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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주 070
번역주 070)
禮部 : 唐의 刑部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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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주 071
번역주 071)
信部 : 唐의 工部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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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지사인 융[부]·계[부]·수부가 있는데, 경과 낭[중·원외]는 좌[6사]에 준하고, [이것은 당의] 6관과 비견된다.주 072
번역주 072)
주례에 보이는 6관(6경 : 천관, 지관, 춘관, 하관, 추관, 동관)에서 발전한 것이다. 수당대에 6부제도가 갖추어지며, 천관은 이부, 지관은 호부, 춘관은 예부, 하관은 병부, 추관은 형부, 동관은 공부로 명칭을 바꾸었고 그 수장을 상서(尙書)라고 하였다. 이후 역대 중국 왕조와 발해, 고려, 조선 등에서는 6부 또는 6조를 두었고, 기본적으로 이름을 이호예병형공으로 하였다. 때때로 개칭한 경우도 있으나 대개 담당 업무와 관련된 명칭을 사용하였던 반면, 발해는 충부, 인부, 의부, 예부, 지부, 신부라고 하여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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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대주 073
번역주 073)
中正臺 : 唐의 御史臺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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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대중정 1명이 있는데, [당의] 어사대부와 비견되며, 사정의 아래이다. 소정 1명이 있다.
또 전중시와 종속시가 있는데, [각각] 대령이 있다. 문적원에는 감이 있다. [대]령과 감 [밑]에는 모두 소[령]·소[감]이 있다. 태상[시]·사빈[시]·대농시에는 시마다 경이 있다. 사장[시]·사선시에는 시마다 령과 승이 있다. 주자감에는 감장이 있다. 항백국에는 상시 등의 관원이 있다. 무관으로는 좌[맹분]·우맹분·태위·비위·남좌[위]·[남]우위·북좌[위]·[북]우위가 있고, 각각 대장군 1명과 장군 1명이 있다. 대개 중국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 이와 같다. 품계는 질로 쓰는데, 3질 이상은 자복을 입고 아홀과 금어를 찬다. 5질 이상은 비복을 입고 아홀과 은어를 찬다. 6질과 7질은 옅은 비의를 입고, 8질은 녹의를 입는데, 모두 목홀이다.
[그 나라의] 세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태백산의 토끼, 남해의 다시마, 책성의 메주, 부여의 사슴, 막힐의 돼지, 솔빈의 말, 현주의 베, 옥주의 솜, 용주의 명주, 위성의 철, 노성의 벼, 미타호주 074
번역주 074)
湄沱湖 : 忽汗海 즉 지금의 鏡泊湖로 비정하는 견해(松井等, 「渤海國の疆域」)와 興凱湖說(『海東繹史』 ; 吳向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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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붕어이다. 과일로는 구도주 075
번역주 075)
九都 : 『滿洲源流考』는 九都를 丸都의 오기로 보았다. 西京鴨淥府 恒州屬縣의 桓都가 곧 丸都일 가능성이 높다. 丸都는 고구려의 舊都로서, 중국 길림성 집안시로 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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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오얏과 낙유주 076
번역주 076)
樂游 : 『滿洲源流考』는 樂游를 樂浪의 오기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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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배가 있다. 나머지 풍속은 고구려와 거란과 대략 같다. 유주절도부와 서로 빙문하였으나, 영[주]·평[주]에서 경사(장안)까지는 8,000리나 되는 먼 거리이므로, 그 뒤에 조공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사가들도 전하지 못하였다. 고로 [발해가] 배반하였는지 귀부하였는지 고찰할 길이 없다.

  • 번역주 001)
    檢校司空 : 檢校는 우대하여 원래 正職이나 品階 보다 높여 승진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司空은 당의 三公 중 하나로 정1품이다. 실무가 없는 명예직이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구당서』에는 대인수(선왕)이 대화 5년(831)에 죽었다고 전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太學 : 당의 최고학부인 國子監을 이른다. 국자감 내에는 國子學, 太學, 四門學, 律學, 書學, 算學 6개의 학부가 나뉘어 있었다. 바로가기
  • 번역주 004)
    발해는 건국 초부터 학생을 선발하여 당에 유학을 보냈는데, 당에 학생을 파견한 것이 확인되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玉海』 권153, 朝貢 外夷來朝 內附 唐渤海遣子入侍 ‘開元 二年 (714) 三月 令生徒六人入學 新羅七人’, 『冊府元龜』 권999, 請求 ‘太和七年(833) 春正月 己亥 銀靑光祿大夫 簡較秘書監 忽汗都督 國王 大彛震奏 遣學士解楚卿 趙孝明 劉寶俊 三人 附謝恩使 同中書右平章事 高賞英 赴上都學問 遣學生 李居正 朱承朝 高壽海等 三人 事業稍成 請准例遞乘歸本國 許之’, 『舊唐書』 권199下 列傳제149下 北狄 渤海靺鞨 ‘(太和)七年(833) 正月 遣同中書右平章事 高寶英 來謝册命 仍遣學生三人 隨 寶英 請赴 上都 學問 先遣學生三人 事業稍成 請歸本國 許之’, 『唐會要』 권36 附學讀書 ‘(開成)二年(837) 三月 渤海國 隨賀正王子 大俊明 幷入朝學生 共一十六人 勅 渤海 所請生徒習學 宜令 靑州 觀察使 放六人到上都 餘十人勒迴 又 新羅 差入朝宿衛王子 幷准舊例 割留習業學生 並及先住學生等 共二百十六人 請時服糧料 又請舊住學習業者 放還本國 勅 新羅 學生內 許七人 准去年八月勅處分 餘時十馬畜糧料等 旣非舊例 並勒還蕃’바로가기
  • 번역주 005)
    龍州 : 上京의 首州로서 상경성이 위치하는 곳으로 추정된다(金毓黻, 1934 ; 和田淸, 1954). 遼代에는 扶餘府故地에 黃龍府를 두어 龍州라고 칭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湖州 : 그 名稱으로 보아 지금의 鏡泊湖 방면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渤州 : 지금의 寧安 부근일 것이라는 추정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中京 : 第3代 文王 때 上京으로 천도하기에 전 수도로 있었다. 위치 비정에 대해서는 蘇密城說, 那丹佛勒城說, 敦化縣說, 西古城子說 등이 있었다. 지금은 和龍 인근에 용두산고분군에서 文王의 네 번째 딸 貞孝公主의 무덤이 발굴되고 주변에 발해 유적들이 함께 발견되고 있어 서고성을 발해 중경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 되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盧州 : 『遼史』 地理志에 ‘在京東一百三十里’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 보이는 ‘京’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아 위치를 알 수 없다. 게다가 요대의 주명은 거란이 발해 유민을 요동 방면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에 옛 지명을 사용한 경우가 많아 『遼史』 「地理志」로 위치를 비정하기 힘들다. 노주를 龍井村으로 보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0)
    顯州 : 중경 현덕부의 부명에 ‘顯’과 동일하여 顯德府의 부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그 위치를 西古城子로 보는 경우가 많다.바로가기
  • 번역주 011)
    鐵州 : 『遼史』 「地理志」에는 위치가 ‘在京西南六十里’로 되어 있고, 位城, 河端·蒼山·龍珍 4縣을 거느리며 遼代에 屬縣이 廢한 것으로 되어 있다. 和田淸은 鐵州라는 이름이 ‘位城의 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西古城子의 西南, 咸鏡北道 茂山 西北에 철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이곳을 鐵州로 비정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12)
    湯州 : 『遼史』 「地理志」에 위치가 ‘在京西北一百里’로 되어 있고, 屬縣은 靈峰·常豊·白石·均谷·嘉利 등 5縣이 있다. 遼代에 속현을 廢하였고 湯州治는 北鎭縣과 黑山縣의 2縣 부근인 乾州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13)
    榮州 : 『遼史』 「地理志」에 ‘在京東北一百五十里’로 나오며, 崇山·潙水·綠成의 3縣을 거느린다. 『遼史』에는 ‘崇州’로 되어 있어 ‘崇州’로 보는 견해가 있다. 延吉 부근으로 비정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4)
    興州 : 『遼史』 「地理志」에 ‘在京西南三百里’이며, 盛吉·蒜山·鐵山의 3縣을 거느린다. 西古城子에서 西南으로 分水嶺을 넘어 豆滿江 下流 一帶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15)
    慶州 : 『遼史』 「地理志」에 ‘壘石爲城周圍二十里’라고 하였고, 屬縣으로 龍原·永安·鳥山·壁谷·熊山·白楊의 6縣을 거느린다.바로가기
  • 번역주 016)
    鹽州 : 『遼史』 「地理志」에 ‘一名 龍河郡’으로, 海陽·接海·格川·龍河의 4縣을 거느린다. 和田淸은 Possjet灣 北岸에 顔楚(Yen-Chu) 또는 眼春(Yen-Chun)이라는 地名이 있었던 것은 이 鹽州(Yen-Chou)의 轉訛일지도 모른다는 臆測을 하였던 바 있다(「渤海國地理考」). 현재는 연해주 크라스키노성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7)
    穆州 : 『遼史』 「地理志」에 ‘一名 會農郡’으로, 會農·水岐·順化·美縣의 4縣을 거느렸다.바로가기
  • 번역주 018)
    賀州 : 『遼史』 「地理志」에 ‘一名 吉理郡’으로, 洪賀·送誠·吉理·石山의 4縣을 거느렸다.바로가기
  • 번역주 019)
    南京 : 位置에 대하여는 丁若鏞의 咸興說(『我邦疆域考』 「渤海考」)과 韓鎭書의 北靑說(『續海東繹史』 「渤海」), 內藤虎次郞의 咸鏡北道 鏡城說(「日本滿洲交通略說」), 松井等의 咸鏡北道 鏡城說(「渤海國の疆域」), 鳥山喜一의 北靑說(「北滿の二大古都址」) 등이 있다. 『遼史』 「地理志」에 南海府가 ‘壘石爲城 幅員九里’라고 하였다. 현재는 북청의 청해토성으로 비정하는 것이 통설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20)
    沃州 : 『遼史』 「地理志」에 沃沮·鷲巖·龍山·濱海·昇平·靈泉의 6縣을 거느렸다.바로가기
  • 번역주 021)
    晴州 : 『遼史』 「地理志」에 天晴·神陽·蓮池·狼山·仙巖의 5縣을 거느렸다. 和田淸(1954)은 위치를 城津으로 추정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22)
    椒州 : 『遼史』 「地理志」에 椒山·貂嶺·澌泉·尖山·巖淵의 5縣을 거느렸다. 和田淸(1954)은 鏡城으로 비정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23)
    西京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淥州 鴨淥軍 節度 本高麗故國 渤海號西京鴨淥府 城高三丈 廣輪二十里 都督 神·桓·豊·正四州事’로 나온다. 丁若鏞은 平安北道 慈城 北에서 鴨綠江 對岸으로(『我邦疆域考』 「渤海考」), 韓鎭書는 江界府의 滿浦鎭 對岸으로(『續海東繹史』 「渤海」), 松井等(1913)은 奉天省 臨江縣帽兒山으로, 鳥山喜一(1915)은 通溝로 비정하였고, 현재 臨江 지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24)
    神州 : 『遼史』 「地理志」에 神鹿·神化·劍門의 3縣을 거느렸다.바로가기
  • 번역주 025)
    桓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高麗中都城 故縣三 桓都·神鄕·淇水(浿水) 皆廢 高麗王於此創立宮闕 國人謂之新國 五世孫釗 晋康帝建元初爲慕容皝所敗 宮室焚蕩 … 隷淥州 在西南二百里’로 나와 고구려의 丸都 즉 지금의 輯安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26)
    豊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에는 ‘渤海置盤安郡 … 隷淥州 在東北二百一十里’으로, 安豊·渤恪·隰壤·硤石의 4縣을 거느렸다. 和田淸은 鴨綠江 上源의 厚昌古邑方面 또는 長白·惠山鎭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地理考」).바로가기
  • 번역주 027)
    正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本沸流王故地 國爲公孫康所倂 渤海置沸流郡 有沸流水 … 隷淥州 在西北三百八十里’라고 되어 있다. 和田淸(1954)은 위치를 通化나 桓仁으로 비정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28)
    長嶺府 : 位置에 대하여 『滿洲源流考』에서는 ‘今吉林西南五百里 有長嶺子 滿洲語稱果勒敏珠敦(Golmin Judun, 長嶺의 뜻)’이라고 하고, 지금의 英額門 부근으로 比定하였다. 韓鎭書는 ‘永吉州等地’로 비정하였는데(『續海東繹史』 「渤海」), 지금의 吉林이다. 津田左右吉(1915)은 輝發河 上流에 있는 北山城子로 보았다.바로가기
  • 번역주 029)
    瑕州 : 『滿洲源流考』 「疆域」 嶺府條에 ‘按瑕州無考 常爲附郭之州 遼廢’라고 되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30)
    河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河州 德化軍 置軍器坊’이라고 되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31)
    농안 일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32)
    扶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 通州條에 속현 扶餘·布多·顯義·鵲川 중에 보인다. 『滿洲源流考』 「疆域」에는 開原 부근으로 金毓黻은 昌圖 부근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地理志」).바로가기
  • 번역주 033)
    仙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 通州條에 渤海시기 强師·新安·漁谷의 3縣을 거느린 것으로 나온다. 和田淸은 北流 松花江 부근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地理考」).바로가기
  • 번역주 034)
    鄚頡府 : 『遼史』 「地理志」 東京道 韓州條에 ‘ … 本槀離國舊治柳河縣 高麗置鄚頡府 都督鄚·頡二州 渤海因之 … ’라고 하여 고구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金毓黻은 農安 북쪽으로 比定하였고(『渤海國志長編』 「地理考」), 和田淸(1954)은 阿城 부근으로 比定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35)
    鄚[州] : 屬縣에 奧喜·萬安의 2縣이 있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36)
    高[州] : 『遼史』 「地理志」에는 頡州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37)
    定理府 : 位置에 대하여 『盛京通志』와 『大淸一統志』에서 熱河의 承德城으로 比定하였고, 韓鎭書는 寧古塔 부근으로(『續海東繹史』 「渤海」), 松井等(1913)과 金毓黻은 烏蘇里江 부근으로, 和田淸(1954)은 沿海州의 Olga 부근으로 비정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38)
    定州 : 一名 安定郡이라고 하며, 定理·平邱·巖城·慕美·安夷의 5縣을 거느렸다. 和田淸(1954)은 沿海州 南部인 蘇城(Suchan) 부근으로 비정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39)
    潘州 : 『遼史』 「地理志」 東京道條에 ‘瀋州’로 되어 있고 9縣을 거느렸다.바로가기
  • 번역주 040)
    安邊府 : 위치에 대해 金毓黻은 烏蘇里江 流域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卷14 「地理考」). 和田淸(1954)은 定理·安邊 2府가 挹婁의 故地로 서로 근접하다고 보고 金代의 錫林路로서 Olga 地方인 것으로 비정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41)
    率賓故地 : 그 이름이 綏芬河와 발음이 유사하여 현재 수분하 지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率賓府의 名은 遼代에도 그대로 쓰여졌으나, 金·元代에는 恤品·速頻·蘇濱의 이름으로 史書에 보이게 되며, 淸代에는 綏芬路로 알려지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42)
    華州 : 金毓黻은 率賓府의 首州이며 廢한 후 그 民은 康州로 옮기게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地理考」).바로가기
  • 번역주 043)
    益州·建州 : 和田淸(1954)은 三岔口로 불리던 東寧의 西北에는 大城子·小城子 등의 遺址가 있는데, 建·益 2州 중 하나는 이곳일 것으로 보았다.바로가기
  • 번역주 044)
    拂涅은 靺鞨 7部 중 하나였던 불열부를 가리킨다.바로가기
  • 번역주 045)
    東平府 : 拂涅部의 位置에 대해 여러 설이 있어 동평부의 위치에 대한 설도 마찬가지이다. 이 중 黑州는 흑수말갈과 관련지어 보기도 한다. 흑수말갈의 일부가 발해 후기에 복속된 것으로 보지만, 행정구역 설치가 확인되고 있지 않는데, ‘黑’州의 흑이 ‘黑’水의 흑과 같은 글자이기 때문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46)
    鐵利故地 : 鐵利는 말갈 7부 중에는 그 명칭이 없으나 발해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와 관계가 깊었던 불열, 월희 말갈과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당시부터 있었고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圖們江北·與凱湖의 南說(丁若鏞, 「渤海考」), 黑龍·烏蘇里江下流 地域說(松井等, 1913 ; 鳥山喜一, 1915), 木丹江流域說(津田左右吉, 1916), 阿什河流域說(池內宏, 1916), 松花江下流域의 依蘭地域說(小川裕人, 1937) 등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47)
    越喜故地 : 越喜에 대한 것은 『舊唐書』 渤海靺鞨傳 월희말갈 주석 참조.바로가기
  • 번역주 048)
    懷遠府 : 월희의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원부와 그 속주들에 대한 위치 비정 역시 어렵다. 그 이름에서 발해 중심지에서 상당히 먼 지역이었음을 짐작할 따름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49)
    安遠府 : 『遼史』 「地理志」 東京道 慕州條에 “本渤海安遠府地 故縣二 慕化·崇平 … 隷淥州 在西二百里”라고 하여 屬縣으로 慕化·崇平의 2縣을 거느렸다. 西京 鴨淥府의 府治인 淥州 西北으로 200里에 있어 鴨綠江과 輝發河의 중간인 柳河縣으로 비정되기도 하며, 韓鎭書는 黑龍江 流域으로 比定한 바 있다(『續海東繹史』 「渤海」). 松井等과 和田淸은 松花江 下流로(「渤海國の疆域」 ; 「渤海國地理考」), 金毓黻은 興凱湖 東岸인 것으로 비정하였다(『渤海國志長編』 「地理考」).바로가기
  • 번역주 050)
    郢州 : 和田淸(1954)은 鐵利·越喜와 上京龍泉府을 연결하는 大道上의 要衝으로 寧古塔 북쪽 어딘가로 비정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51)
    銅州 : 『遼史』 「地理志」 咸州條에 ‘渤海置銅山郡 地在漢候城縣北 渤海龍泉府南 地多山險 寇盜以爲淵藪 … ’라고 하여 지금의 開原인 遼金時代의 咸州로 比定되기도 하였으나, 이 지역은 평지로 산이 많고 험하다는 동주의 지세와 맞지 않다. 동주의 이름은 銅 산지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52)
    涑州 : 『吉林通志』 「沿革志」 涑州條에 吉林에서 북으로 약 65里인 打牲烏拉으로 비정한 이후 대체로 이를 따라 길림 인근으로 본다.바로가기
  • 번역주 053)
    獨奏州 : 『滿洲源流考』 「疆域」에 ‘獨奏之義 猶今直隷州 不轄於府 而事得專達也’라고 하여 중간보고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중앙관에 속하는 주를 가리킨다고 보았다.바로가기
  • 번역주 054)
    粟末水 : 지금의 송화강을 가리킨다.바로가기
  • 번역주 055)
    渤海에서 日本으로 가는 길은 東京龍原府인 지금의 琿春에서 그 東南인 Possjet 灣의 鹽州(크라스키노성)에서 배를 타고 日本의 能登·加賀 等郡에서 北으로 出羽·佐渡諸港에서 上陸하는 航路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56)
    『三國史記』 「地理志」에 인용되어 있는 『古今郡國志』에 新羅의 泉井郡에서 柵城府(발해 동경용원부)까지 39驛이었다고 하는데, 당나라 시기 역참 사이는 일반적으로 30里여서, 역산해 보면 琿春에서 1,170里를 南下하면 대체로 德源 지역에 이르는데, 때문에 덕원 부근이 신라의 井泉郡으로 비정되며, 신라도는 문왕 때 개통된 것으로 본다.바로가기
  • 번역주 057)
    『新唐書』 「地理志」에 인용되어 있는 賈耽의 『道里記』에는 ‘自鴨江口 舟行百餘里 及小舫泝流東北三十里 至泊汋口 得渤海之境又泝流五百里 至丸都城·故高麗王都 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又陸行四百里 至顯州 天寶中王所都 又正北如東六百里 至渤海王城’이라고 하여 그 노정을 알 수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58)
    『道里記』에는 ‘營州東百八十里 至燕郡城 又經汝羅守提 渡遼水 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故漢襄平城也 … 自都護府東北 經古蓋牟·新城, 又經渤海長嶺府千五百里 至渤海王城’으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59)
    上京에서 張廣才嶺을 거쳐 扶餘府인 四面城 부근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懷德·梨樹·遼源 等地를 거쳐 契丹의 上京臨潢府에 도달하는 길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60)
    宣詔省 : 唐의 門下省에 該當하는 官署이다. 中書省에서 기초한 詔令을 심의하고, 반포하여 시행된 政令의 成果를 검토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61)
    中臺省 : 唐의 中書省에 해당하는 官署이며, 모든 詔令을 기초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62)
    政堂省 : 唐의 尙書省에 해당하는 官署이다. 唐代의 尙書省은 吏·戶·禮·兵·刑·工의 6部를 두고, 省의 長인 尙書令의 命으로 國政을 분리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63)
    僕射 : 官名이다. 秦 以後부터 있었던 것이나 唐代의 僕射는 從二品職으로 尙書令 다음의 官位이며, 天子를 보필하여 大政을 의논한다. 玄宗 開元 初에 左·右丞相으로 官이 바뀌었다(『唐六典』 卷1 尙書省 참조).바로가기
  • 번역주 064)
    二丞 : 唐代 官制의 佐丞과 右丞을 말한다. 즉, 尙書省의 左·右丞相의 下位인 左丞과 右丞은 定員이 各 1人이며, 左丞은 正四品上이고, 右丞은 正四品下의 秩品이었다. 바로가기
  • 번역주 065)
    忠部 : 唐의 吏部에 해당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66)
    仁部 : 唐의 戶部에 해당한다. 바로가기
  • 번역주 067)
    義部 : 唐의 禮部에 해당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68)
    卿 : 唐의 尙書省 六部尙書의 尙書에 해당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69)
    智部 : 唐의 兵部에 해당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70)
    禮部 : 唐의 刑部에 해당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71)
    信部 : 唐의 工部에 해당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72)
    주례에 보이는 6관(6경 : 천관, 지관, 춘관, 하관, 추관, 동관)에서 발전한 것이다. 수당대에 6부제도가 갖추어지며, 천관은 이부, 지관은 호부, 춘관은 예부, 하관은 병부, 추관은 형부, 동관은 공부로 명칭을 바꾸었고 그 수장을 상서(尙書)라고 하였다. 이후 역대 중국 왕조와 발해, 고려, 조선 등에서는 6부 또는 6조를 두었고, 기본적으로 이름을 이호예병형공으로 하였다. 때때로 개칭한 경우도 있으나 대개 담당 업무와 관련된 명칭을 사용하였던 반면, 발해는 충부, 인부, 의부, 예부, 지부, 신부라고 하여 대비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73)
    中正臺 : 唐의 御史臺에 해당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74)
    湄沱湖 : 忽汗海 즉 지금의 鏡泊湖로 비정하는 견해(松井等, 「渤海國の疆域」)와 興凱湖說(『海東繹史』 ; 吳向之)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75)
    九都 : 『滿洲源流考』는 九都를 丸都의 오기로 보았다. 西京鴨淥府 恒州屬縣의 桓都가 곧 丸都일 가능성이 높다. 丸都는 고구려의 舊都로서, 중국 길림성 집안시로 비정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76)
    樂游 : 『滿洲源流考』는 樂游를 樂浪의 오기로 보았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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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제도와 해동성국(海東盛國) 자료번호 : jd.k_0017_0219_002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