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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왕 흠무(欽茂)와 발해의 연호

보응 원년(762)에 [당 대종(재위: 762~779)은] 조서를 내려 발해를 국으로 삼고, [대]흠무를 그 왕으로 삼았으며주 001
번역주 001)
『구당서』에는 보응 원년(762)에 대흠무를 國王에 진봉하였다고 전한다. 당의 작위는 9등급으로, 王/國王은 그중 첫 번째이다. 정1품이고 식읍이 1만 호이다. 君王은 두 번째로 종1품이고, 식읍은 5,000호이다. 이어서 國公·君公·縣公·縣侯·縣伯·縣子·縣男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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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교태위주 002
번역주 002)
檢校太尉 : 檢校는 우대하여 원래 正職이나 品階 보다 높여 승진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太尉는 당의 三公 중 하나로 정1품이다. 실무가 없는 명예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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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진봉하였다.주 003
번역주 003)
『구당서』에는 태위직을 대력(766~779) 연간에 제수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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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력 연간(766~779)에 [사신이] 스물다섯 번 왔으며, 일본의 무녀 11명을 조정에 헌상하였다.주 004
번역주 004)
『구당서』에는 일본무녀를 헌상한 것을 대력 12년(777)의 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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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785~804) 연간에 [도성을] 동남쪽에 동경주 005
번역주 005)
東京 :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었으나, 현재는 중국 길림성 혼춘의 팔련성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第3代 文王 大欽茂 말년에서 成王 大華璵의 卽位(795)까지 십여 년간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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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옮겼다.
[대]흠무가 죽으니, 사사로이 시호를 문왕이라 하였다. 아들 [대]굉림은 일찍 죽어, 족제 [대]원의가 왕위에 올랐는데, 의심이 많고 포학하여 1년 만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대]굉림의 아들 [대]화여를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다. [대화여는] 다시 상경으로 환도하고, 연호를 중흥으로 고쳤다. [대화여가] 죽으니, 시호를 성왕이라 하였다. [대]흠무의 작은 아들 [대]숭린주 006
번역주 006)
大嵩璘 : 『全唐文』 권40, 元宗皇帝, 弔渤海郡王大欽茂書에는 대숭린이 대흠무(문왕)의 長嫡이라고 하였고, 『日本後紀』 권4 ‘(延曆)十五年(796) 四月 戊子조에는 일본에 파견된 呂定琳이 가지고 간 계서에 문왕을 “祖 대행대왕”이라고 하여 할아버지로 표현하며 대숭린 자신을 ‘孤孫’이라고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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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왕위에 올라, 연호를 정력으로 고쳤다. 우효위대장군주 007
번역주 007)
右驍衛大將軍 : 唐의 諸衛 가운데 左驍衛의 관직으로 정3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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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제수하고 왕위를 잇는 [당 덕종(재위: 779~805)의] 조서가 있었다. 건중(780~783)과 정원(785~804) 사이에 [사신이] 모두 네 번 왔다. [대숭린이] 죽으니, 시호는 강왕이다. 아들 [대]원유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영덕으로 고쳤다. [대원유가] 죽으니, 시호는 정왕이다. 아우 [대]언의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주작으로 고치고, 아울러 왕위 세습은 전례와 같았다. [대언의가] 죽으니, 시호는 희왕이다. 동생 [대]명충이 왕위에 올라 연호를 태시로 고쳤다. 왕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죽으니, 시호는 간왕이다.

  • 번역주 001)
    『구당서』에는 보응 원년(762)에 대흠무를 國王에 진봉하였다고 전한다. 당의 작위는 9등급으로, 王/國王은 그중 첫 번째이다. 정1품이고 식읍이 1만 호이다. 君王은 두 번째로 종1품이고, 식읍은 5,000호이다. 이어서 國公·君公·縣公·縣侯·縣伯·縣子·縣男 순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檢校太尉 : 檢校는 우대하여 원래 正職이나 品階 보다 높여 승진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太尉는 당의 三公 중 하나로 정1품이다. 실무가 없는 명예직이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구당서』에는 태위직을 대력(766~779) 연간에 제수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구당서』에는 일본무녀를 헌상한 것을 대력 12년(777)의 일로 전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東京 :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었으나, 현재는 중국 길림성 혼춘의 팔련성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第3代 文王 大欽茂 말년에서 成王 大華璵의 卽位(795)까지 십여 년간 수도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大嵩璘 : 『全唐文』 권40, 元宗皇帝, 弔渤海郡王大欽茂書에는 대숭린이 대흠무(문왕)의 長嫡이라고 하였고, 『日本後紀』 권4 ‘(延曆)十五年(796) 四月 戊子조에는 일본에 파견된 呂定琳이 가지고 간 계서에 문왕을 “祖 대행대왕”이라고 하여 할아버지로 표현하며 대숭린 자신을 ‘孤孫’이라고 칭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右驍衛大將軍 : 唐의 諸衛 가운데 左驍衛의 관직으로 정3품이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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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왕 흠무(欽茂)와 발해의 연호 자료번호 : jd.k_0017_0219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