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백제, 신라에 대한 대응과 한강 유역 상실
2장 백제, 신라에 대한 대응과 한강 유역 상실
한강은 한반도 중앙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유유히 관통하면서 황해로 흘러들어간다. 한강은 500여km의 길이와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등 중부지방의 여러 지류 강을 수렴하는 장대한 유역 면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 역사상 한강이 차지하는 위상은 언제나 독보적이었지만, 특히 고대의 정치·경제·군사적인 의미는 더 각별하였다. 농업생산성과 물길교통로로서의 가치에 더하여, 중국대륙의 국가들과 뱃길로 교류할 수 있는 항구가 한강 하류에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도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각축의 주도권을 행사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고구려 역사상 최전성기로 일컬어지는 광개토왕대(391~412년)와 장수왕대(413~491년) 국력의 원천도 적극적인 남방 진출과 그에 따른 한강 유역의 장악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장수왕이 475년 9월 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한 것은 삼국 관계의 동향에서 획기적이었다. 이로써 백제의 한성기가 불시에 끝났고, 한강 유역을 교두보로 한 고구려의 남방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었다.
이 글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475년부터 신라·백제 동맹군의 급습에 한강을 상실한 551년까지의 삼국 간 역관계와 한강 유역 영유권의 동향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그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분분했던 475~551년 한강 유역 영유권 관련 논쟁을 쟁점별로 소개하고, 이에 대한 이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6세기 전반기 삼국 관계의 흐름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각축하는 과정을 살핀 후, 안장왕대(519~531년)부터 양원왕대(545~559년)까지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그 결과를 추적하고자 한다. 또한 551년 9월 고구려가 나·제 동맹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후 이 지역을 둘러싼 백제·신라의 다툼과 최종적으로 신라가 차지하는 과정을 추적하겠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한강 유역 상실 배경과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진단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