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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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奇雅志, 1983, 『古代東アジア諸國の國際意識-“中華思想”を中心として』, 歷史學硏究 別冊特輯.
酒奇雅志, 2001, 『渤海と古代の日本』, 校倉書房.
阪元義種, 1978, 『古代東アジアの日本と朝鮮』, 吉川弘文館.
武田幸男, 1989, 『高句麗史と東アジア-「廣開土王碑」硏究序說』, 岩波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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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藤浩一, 2014, 「6世紀百濟の思想的基盤と天下観の形成」, 『京都産業大學日本文化研究所紀要』19.
武田幸男, 1978, 「高句麗好太王碑文にみえる歸王について」, 『古代東アジア史論集』上, 吉川弘文館.
武田幸男, 1986, 「倉寺緣起からみた新羅人の國際觀」, 『中村治兵衛古稀紀念 東洋史論叢』, 刀水書房.
浜田耕策, 1987, 「朝鮮古代の「太王」と「大王」」, 『咆沫集』5.
李成市, 1995, 「新羅僧慈藏の政治外交上の役割」, 『朝鮮文化硏究』2, 東京大學 文學部.
李成市, 1998, 『古代東アジアの民族と國家』, 岩波書店.
李鎔賢, 1999, 「「梁職貢圖」百濟國使條の「旁小國」」, 『朝鮮史硏究會論文集』37, 綠蔭書房.
川崎晃, 1992, 「高句麗好太王碑と中國古典」, 『古代國家の歴史と傳承』, 吉川弘文館.
川本芳昭, 2002, 「漢唐間における「新」中華意識の形成-古代日本·朝鮮と中國との關連をめぐって」, 『東洋史論集』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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