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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재 고구려금석문

고을덕(高乙德)

중국소재 고구려금석문

고을덕(高乙德)

周冠軍大將軍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高乙德墓誌銘
  • 생몰년
    생년 : 617년 (음) ~ 몰년 : 699년 2월 8일(음)
  • 출전
    王連龍, 2015.4 「唐代高麗移民高乙德墓誌及相關問題硏究」 『吉林師範大學學報』, 人文社會科學版, 32쪽
  • 시기
    고구려
  • 시기
    당대

周冠軍大將軍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高乙德墓誌銘

판독문
誌石
[大] 주 603
각주 603)
大로 판독하였다.(이성제)
‘周’ 앞에는 한 글자 분량의 공백이 보이고 있고, 또한 묘주의 관력을 언급한 부분에는 ‘大唐’ㆍ‘大周’의 용례가 보이고 있어, 이 공백에는 ‘大’ 자가 들어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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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冠軍大將軍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高乙德墓誌幷序 주 605
각주 605)
誌題가 쓰여진 제1행은 괘선과 상관없이 글자를 새겨넣었다. 26자를 모두 제1행에 넣다보니 칸에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1행 말미의 ‘墓誌’ 다음에는 공백이 있고 우측 면이 깨져 있다. 탁본 상으로는 획으로 보이는 선이 보인다. ‘幷序’일 것으로 판단된다.(葛繼勇,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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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 주 606
각주 606)
公으로 판독하였다.(이성제)
王連龍은 제2행 첫 칸을 판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글자 분량의 공백이 있고 자획이라 여겨지는 선들이 보인다. ‘公’이나 ‘君’이 쓰여졌을 부분인데, 본문에 고을덕을 公으로 칭하고 있어, ‘公’으로 판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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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卞圀 주 607
각주 607)
國의 이체자.(則天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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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部𤯔也.주 608
각주 608)
人의 이체자.(則天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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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09
각주 609)
昔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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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政龍興炎靈, 虏據三韓𧫘주 610
각주 610)
競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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覇, 四𣴴주 611
각주 611)
海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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騰波, 白신출자 주 612
각주 612)
日의 이체자.(則天文字), 𡆠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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降精, 朱蒙誕□주 613
각주 613)
孼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09쪽).
〈李他仁墓誌〉에서 유사한 구절을 찾을 수 있다(“朱蒙遺孼, 靑丘誕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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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治燕土, 신출자 주 614
각주 614)
王의 이체자.(이성제)
王連龍과 葛繼勇은 𠙺(正의 이체자)으로 판독하였다.(則天文字)(王連龍, 32쪽 ; 葛繼勇, 308쪽)
그런데 자형으로 보아 王의 이체자가 맞다. 그런데 이 묘지의 다른 곳에 쓰여진 王 자는 ‘建武太王’‧‘寶藏王’과 같이 모두 정자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묘지 안에서 한 글자에 대해 이체자와 정자를 혼용한 사례는 北魏 太和12년(488)에 제작된 〈暉福寺碑〉에서 찾아볼 수 있다. “用能慈液流於當時”에서는 時의 정자를, “散騎常侍安西將軍吏部內行尙書宕昌公王慶旹”에서는 王慶時의 이름에 이체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관련 탁본과 글자의 석독은 毛遠明 校注, 『漢魏六朝碑刻校注』 第3冊(北京: 紙裝書局, 2008), 269∼273쪽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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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陽.」
신출자 주 615
각주 615)
天의 이체자(篆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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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下, 因命爲姓. 公家氏族, 卽其後也. 門傳軒蓋, 經」
往代而聯榮. 宗繼冠纓, 歷今辰而疊彩. 祖 신출자 주 616
각주 616)
夸의 이체자.(이성제)
王連龍과 葛繼勇은 ‘岑’으로 판독하였으나(王連龍, 32쪽 ; 葛繼勇, 309쪽), 자형에서 유사한 자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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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17
각주 617)
첫 자는 ‘宀’의 자형이 두 번째 자는 우측으로 ‘阝’의 자형이 보인다. 王連龍은 이 두 글자에 대해 ‘東部’라고 판독하였으나(王連龍, 32쪽), 앞뒤로 연결되지 않을뿐더러 첫 자의 남은 자형에 해당되지 않아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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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자 주 618
각주 618)
受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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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太王中裏小兄, 𡙕주 619
각주 619)
執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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垧事, 緣敎責, 追垧事, 降黜外官, 轉」
任, 經歷數政, 遷신출자 遼府都督 卽奉敎追, 신출자 𡭊주 620
각주 620)
對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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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 依신출자 주 621
각주 621)
舊의 이체자. 신출자와 유사한 자체라고 판단된다.(이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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𡙕垧事, 任評臺之職. 父孚, 신출자 寶藏王 中裏小兄, 任南蘇
道史, 遷신출자 주 622
각주 622)
陟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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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兄, 任𣴴谷府都督, 又遷신출자太相, 任司府大」
, 承襲𡙕垧事. 公𠡦주 623
각주 623)
年의 이체자.(則天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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纔立志, 仕被邦官, 신출자中裏小兄, 任」
주 624
각주 624)
貴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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端道史. 曁乎大唐龍朔元𠡦, ◆◆신출자皇大帝주 625
각주 625)
‘天皇大帝’ 앞에 平闕이 적용되어 두 칸의 공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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勅發義」
軍, 問罪遼左, 公率兵敵戰, 遂被生擒. ◆◆𨲢주 626
각주 626)
聖의 이체자.(則天文字) 앞에 平闕이 적용되어 두 칸의 공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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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捨其拒」
抗之愆, 許以歸降之禮. 二𠡦蒙𥠢주 627
각주 627)
授의 이체자.(則天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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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衛藍田府折衝長」
上. 至總章元𠡦, 高麗失政, 東土歸命西朝, ◆◆勅주 628
각주 628)
앞에 平闕이 적용되어 두 칸의 공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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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公」
奉國盡忠, 令檢校本土東州長史. 至咸亨五𠡦, 蒙𥠢左」
淸道率府頻陽府折衝
. 至大周𥠢신출자二𠡦, 加𥠢冠軍大」
將軍
, 餘竝依신출자. 何期逝水不定, 生涯有限. 至𨲢歷二𠡦」
二𠥱주 629
각주 629)
月의 이체자.(則天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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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자, 遂於所任, 枕疾以終, 春秋八十有二, 權殯私」
弟. 至大足元𠡦九𠥱卄八신출자 發墳於杜陵之北, 合葬禮」
也. 煙雲黯靉, 原野蒼茫. 寒泉噎而(含)悲, 風樹吟而結歎」.
恩旣不逮, 悼亦何追. 爰勒哀銘, 式灮주 630
각주 630)
光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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殲誄」.주 631
각주 631)
誄 다음에 5칸의 공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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誌蓋
其詞曰,」주 632
각주 632)
曰 다음에 9칸의 공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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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哉器幹, 盛矣徽猷. 衣冠二域,」
令譽千秋. 宗標圖史, 代秀英謀.」
雄懷勝氣, 志潔淸流. 其一. 𧺈주 634
각주 634)
赳의 이체자.
王連龍은 ‘赴’로 판독하였다(王連龍,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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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不」
憚, 恥心唯恪. 武蘊六韜, 仁深一」
諾. 吐言蘭蕙, 傾心葵蒮주 635
각주 635)
萑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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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生建龍」
旌, 亾주 636
각주 636)
亡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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麟閣. 其二. 忽從朝露, 長偃」
夜臺. 佳城鬱鬱, 玄壤莓莓. 林寒」
葉蘀, 草㫵霜暟.주 637
각주 637)
葛繼勇은 ‘暃(㫵)’를 ‘腓’로, ‘暟’를 ‘皚’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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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烟凝栢思,주 638
각주 638)
‘烟’ 자 앞에 한 칸의 공백이 있는데, 공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王連龍은 ‘思’를 ‘悤’으로 판독하고 있다(王連龍, 32쪽). 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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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
結松哀. 其三. 寂夢주 640
각주 640)
‘㱳’으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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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理, 蕭條𤯔事.」
春色靡同, 𠡦灮是異. 幽明永隔,」
顔傛安値. 式表殲良, 鐫諸銘誌. 其四.
번역문
誌石
[대]주(大周)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행좌청도솔부‧빈양절충도위(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 고을덕묘지(高乙德墓誌) 아울러 서(序)
[공의] 휘는 덕(德)으로 변국(卞國) 동부인(東部人)이다. 옛적 적제(赤帝)를 이어 왕자(王子)의 기운이 흥해 한(漢)을 건국하고, (동이) 오랑캐는 삼한(三韓)의 땅에 살면서 (서로) 패권을 차지하고자 다투었을 때, 사해(四海)가 파도를 일으키고 순백의 태양이 정기를 내려주니, 주몽이 태어났다. (주몽은) 연(燕) 땅을 크게 다스려 요양에 왕통(王統)을 세웠다. (주몽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천)명으로 인하여 성씨를 삼았으니, 공의 집안 씨족들은 (모두) 그 후예였도다.
(공의) 집안은 고관귀인을 계승하여 지난 세월 번영을 이어왔고, 일족은 벼슬을 이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광채를 더해왔다. 조부 과(夸)는 □□ 건무태왕(建武太王)에게서 중리소형(中裏小兄)의 관등을 받아 상사(垧事)를 맡아 다스렸다. 그러다가 교(敎)에 의해 견책을 받아, 상사는 박탈되고, (관등)이 떨어져 외관(外官)으로 쫓겨났다. 직을 바꿔가며, 여러 직무를 거쳐 옮겨가 요부도독(遼府都督)(의 직을) 받았다. 곧바로 교로써, 대로(對盧)의 관등을 추가로 받아, 전과 다름없이 상사를 맡았고 평대(評臺)의 직을 맡았다.
부친 부(孚)는 보장왕(寶藏王)에게서 중리소형의 관등을 받아 남소(성)도사(南蘇道史)가 되었다. (관등이) 大兄으로 올라 해곡부도독(海谷府都督)이 되었다. 다시 태상(太相)의 관등을 받아 사부대부(司府大夫)의 직을 맡아 상사를 맡아 다스리는 것을 이어받았다.
공은 겨우 15세 나이에 벼슬길에 나아가 나라의 관직(邦官)을 받았다. 중리소형의 관등을 받아 귀단(성)도사(貴端道史)의 직을 맡았다. 대당(大唐) 용삭(龍朔) 원년(661)에 이르러, 고종 황제가 칙을 내려 의로운 군대를 발하여 요좌(遼左)의 죄를 문책하시니, 공은 군대를 이끌고 (황제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가 사로잡혔다. 황제는 저항한 허물을 묻지 않고 귀항(歸降)의 예를 허락하였다.
(용삭) 2년에 성은을 입어 우위‧남전부절충장상(右衛藍田府折衝長上)에 제수되었다. 총장(總章) 원년(668)에 이르러 고구려에서 정사가 어지러워지니 동방의 땅(東土)이 (모두) 천명을 당나라에 되돌렸다. 황제가 칙을 내려 공이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고 여겨, 검교본토동주장사(檢校本土東州長史)를 맡게 하였다. 함형(咸亨) 5년(674)에 이르러 성은을 입어 좌청도솔부‧빈양부절충(도위)(左淸道率府頻陽府折衝)에 제수되었다. 대주(大周) 천수(天授) 2년(691)에 이르러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이 더해졌고 나머지는 종전과 같았다.
어찌 흘러가는 냇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기대하리오! 사람의 생애는 유한하나니. 성력(聖歷) 2년(699) 2월 8일, 임지에서 와병 중에 사망하니, 춘추 82세였다. 임시로 사저에 가매장하였다가 대족(大足) 원년(701) 9월 28일 발상하여 두릉(杜陵)의 북쪽에 무덤을 마련하였다. 장사(葬事)의 예(禮)에 부합하였다. (하늘에는) 안개같은 구름이 가득하고, 들판은 멀리 [아득]하니 차가운 샘 소리에는 슬픔이 서려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소리에도 한탄이 맺혀 있구나. 은의가 미치지 못했으니 애도한다 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살아 생전) 정리를 다 나누지 못했으니 애도하는 마음을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구나]. 이에 애통함을 담은 묘지명을 새기고 섬세한 만가(輓歌; 誄辭)로 빛나게 한다.
誌蓋
그 사(詞)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았다)
아름답도다! (공의) 재간이여, 성대하도다! (공의) 지모(智謀)여. 두 나라에서 출사하였으니 천추에 영예를 남겼다. 사서(史書)에 으뜸으로 표시되었고 대대로 지모가 빼어났다. 뛰어난 기상을 웅장하게 품었고 품은 뜻은 청류와 같이 맑았다. (여기까지가) 첫째.
(공은) (군대를) 모으는 수고로움을 고달파하지 않았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몸가짐과 언행을 삼가하였다. 무(武)에서는 육도를 온축(蘊蓄)하였고 인(仁)에 있어서는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았다. 내뱉은 말은 모두 군자의 덕에 합당한 것이었고 임금에게 품은 마음은 해바라기와 같았다. 나면서는 용이 그려진 기치를 세웠으며 [장수가 되었으며] 죽어서는 기린각(麒麟閣)에 (이름을) 올렸다 [공신이 되었다]. (이것이) 둘째.
홀연히 스러져 몸을 무덤에 누이니 무덤에서의 안식이 영원하고 저승에서도 안녕을 누리기를. 숲은 추위에 몸을 떨어 낙엽이 지고, 풀이 떨어진 데 서리가 아름답게 내렸네. 안개조차 측백나무에 엉겨 (공을) 사모하고 바람도 소나무에 엉겨붙어 슬퍼하는구나. 셋째.
죽은 이의 이치가 혼미해지니 사람의 일도 쇠미해지는구나. 봄의 아름다운 빛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세월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으로 영원히 떨어졌으니 아름다웠던 낯과 자태는 어찌 만날 것인가. (하늘이) 어지신 분을 죽였음을 [어지신 분이 죽었음을] 보이고자 명(銘)과 지(誌)에 새겨둔다. 넷째.

  • 각주 603)
    大로 판독하였다.(이성제)
    ‘周’ 앞에는 한 글자 분량의 공백이 보이고 있고, 또한 묘주의 관력을 언급한 부분에는 ‘大唐’ㆍ‘大周’의 용례가 보이고 있어, 이 공백에는 ‘大’ 자가 들어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바로가기
  • 각주 605)
    誌題가 쓰여진 제1행은 괘선과 상관없이 글자를 새겨넣었다. 26자를 모두 제1행에 넣다보니 칸에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1행 말미의 ‘墓誌’ 다음에는 공백이 있고 우측 면이 깨져 있다. 탁본 상으로는 획으로 보이는 선이 보인다. ‘幷序’일 것으로 판단된다.(葛繼勇, 308쪽) 바로가기
  • 각주 606)
    公으로 판독하였다.(이성제)
    王連龍은 제2행 첫 칸을 판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글자 분량의 공백이 있고 자획이라 여겨지는 선들이 보인다. ‘公’이나 ‘君’이 쓰여졌을 부분인데, 본문에 고을덕을 公으로 칭하고 있어, ‘公’으로 판독한다. 바로가기
  • 각주 607)
    國의 이체자.(則天文字) 바로가기
  • 각주 608)
    人의 이체자.(則天文字) 바로가기
  • 각주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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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10)
    競의 이체자. 바로가기
  • 각주 611)
    海의 이체자. 바로가기
  • 각주 612)
    日의 이체자.(則天文字), 𡆠과 동일 바로가기
  • 각주 613)
    孼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09쪽).
    〈李他仁墓誌〉에서 유사한 구절을 찾을 수 있다(“朱蒙遺孼, 靑丘誕命”). 바로가기
  • 각주 614)
    王의 이체자.(이성제)
    王連龍과 葛繼勇은 𠙺(正의 이체자)으로 판독하였다.(則天文字)(王連龍, 32쪽 ; 葛繼勇, 308쪽)
    그런데 자형으로 보아 王의 이체자가 맞다. 그런데 이 묘지의 다른 곳에 쓰여진 王 자는 ‘建武太王’‧‘寶藏王’과 같이 모두 정자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묘지 안에서 한 글자에 대해 이체자와 정자를 혼용한 사례는 北魏 太和12년(488)에 제작된 〈暉福寺碑〉에서 찾아볼 수 있다. “用能慈液流於當時”에서는 時의 정자를, “散騎常侍安西將軍吏部內行尙書宕昌公王慶旹”에서는 王慶時의 이름에 이체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관련 탁본과 글자의 석독은 毛遠明 校注, 『漢魏六朝碑刻校注』 第3冊(北京: 紙裝書局, 2008), 269∼273쪽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615)
    天의 이체자(篆書). 바로가기
  • 각주 616)
    夸의 이체자.(이성제)
    王連龍과 葛繼勇은 ‘岑’으로 판독하였으나(王連龍, 32쪽 ; 葛繼勇, 309쪽), 자형에서 유사한 자를 찾을 수 없다. 바로가기
  • 각주 617)
    첫 자는 ‘宀’의 자형이 두 번째 자는 우측으로 ‘阝’의 자형이 보인다. 王連龍은 이 두 글자에 대해 ‘東部’라고 판독하였으나(王連龍, 32쪽), 앞뒤로 연결되지 않을뿐더러 첫 자의 남은 자형에 해당되지 않아 따르지 않는다 바로가기
  • 각주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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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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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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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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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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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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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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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5)
    ‘天皇大帝’ 앞에 平闕이 적용되어 두 칸의 공백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626)
    聖의 이체자.(則天文字) 앞에 平闕이 적용되어 두 칸의 공백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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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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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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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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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31)
    誄 다음에 5칸의 공백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632)
    曰 다음에 9칸의 공백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634)
    赳의 이체자.
    王連龍은 ‘赴’로 판독하였다(王連龍, 32쪽) 바로가기
  • 각주 635)
    萑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10쪽). 바로가기
  • 각주 636)
    亡의 이체자. 바로가기
  • 각주 637)
    葛繼勇은 ‘暃(㫵)’를 ‘腓’로, ‘暟’를 ‘皚’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10쪽). 바로가기
  • 각주 638)
    ‘烟’ 자 앞에 한 칸의 공백이 있는데, 공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王連龍은 ‘思’를 ‘悤’으로 판독하고 있다(王連龍, 32쪽). 𢙦 바로가기
  • 각주 640)
    ‘㱳’으로 판독하였다(葛繼勇, 310쪽)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高乙德, , 朱蒙, 신출자, , 武太王, 寶藏王
지명
三韓, 遼陽, 杜陵
관직
周冠軍大將軍, 遼府都督, 𡭊盧, 中裏小兄, 南蘇, 道史, 大兄, 谷府都督, 司府大」夫, 檢校本土東州長史, 左」淸道率府頻陽府折衝, 冠軍大」將軍
국명
卞圀, 高麗
기타
龍朔, 總章, 咸亨, 𨲢歷, 大足, 麟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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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덕(高乙德) 자료번호 : gg.d_0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