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덕(高乙德)
周冠軍大將軍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高乙德墓誌銘
周冠軍大將軍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高乙德墓誌銘
판독문
誌石
[大] 주 603
周冠軍大將軍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高乙德墓誌幷序
주 605
[公] 주 606諱德, 卞圀 주 607東部𤯔也.주 608㫺주 609火政龍興炎靈, 虏據三韓𧫘주 610」
覇, 四𣴴주 611騰波, 白
주 612降精, 朱蒙誕□주 613, 大治燕土,
주 614
自
주 615而下, 因命爲姓. 公家氏族, 卽其後也. 門傳軒蓋, 經」
往代而聯榮. 宗繼冠纓, 歷今辰而疊彩. 祖
주 616 □□주 617
주 618
建」
武太王中裏小兄, 𡙕주 619垧事, 緣敎責, 追垧事, 降黜外官, 轉」
任, 經歷數政, 遷
遼府都督 卽奉敎追,
𡭊주 620盧官, 依
주 621」
𡙕垧事, 任評臺之職. 父孚,
寶藏王
中裏小兄, 任南蘇」
道史, 遷
주 622
大兄, 任𣴴谷府都督, 又遷
太相, 任司府大」
夫, 承襲𡙕垧事. 公𠡦주 623纔立志, 仕被邦官,
中裏小兄, 任」
䝿주 624端道史. 曁乎大唐龍朔元𠡦, ◆◆
皇大帝주 625勅發義」
軍, 問罪遼左, 公率兵敵戰, 遂被生擒. ◆◆𨲢주 626上捨其拒」
抗之愆, 許以歸降之禮. 二𠡦蒙𥠢주 627右衛藍田府折衝長」
上. 至總章元𠡦, 高麗失政, 東土歸命西朝, ◆◆勅주 628以公」
奉國盡忠, 令檢校本土東州長史. 至咸亨五𠡦, 蒙𥠢左」
淸道率府頻陽府折衝. 至大周𥠢
二𠡦, 加𥠢冠軍大」
將軍, 餘竝依
. 何期逝水不定, 生涯有限. 至𨲢歷二𠡦」
二𠥱주 629八
, 遂於所任, 枕疾以終, 春秋八十有二, 權殯私」
弟. 至大足元𠡦九𠥱卄八
發墳於杜陵之北, 合葬禮」
也. 煙雲黯靉, 原野蒼茫. 寒泉噎而(含)悲, 風樹吟而結歎」.
恩旣不逮, 悼亦何追. 爰勒哀銘, 式灮주 630殲誄」.주 631
[公] 주 606諱德, 卞圀 주 607東部𤯔也.주 608㫺주 609火政龍興炎靈, 虏據三韓𧫘주 610」
覇, 四𣴴주 611騰波, 白
각주 614)

統遼陽.」 王의 이체자.(이성제)
王連龍과 葛繼勇은 𠙺(正의 이체자)으로 판독하였다.(則天文字)(王連龍, 32쪽 ; 葛繼勇, 308쪽)
그런데 자형으로 보아 王의 이체자가 맞다. 그런데 이 묘지의 다른 곳에 쓰여진 王 자는 ‘建武太王’‧‘寶藏王’과 같이 모두 정자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묘지 안에서 한 글자에 대해 이체자와 정자를 혼용한 사례는 北魏 太和12년(488)에 제작된 〈暉福寺碑〉에서 찾아볼 수 있다. “用能慈液流於當時”에서는 時의 정자를, “散騎常侍安西將軍吏部內行尙書宕昌公王慶旹”에서는 王慶時의 이름에 이체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관련 탁본과 글자의 석독은 毛遠明 校注, 『漢魏六朝碑刻校注』 第3冊(北京: 紙裝書局, 2008), 269∼273쪽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王連龍과 葛繼勇은 𠙺(正의 이체자)으로 판독하였다.(則天文字)(王連龍, 32쪽 ; 葛繼勇, 308쪽)
그런데 자형으로 보아 王의 이체자가 맞다. 그런데 이 묘지의 다른 곳에 쓰여진 王 자는 ‘建武太王’‧‘寶藏王’과 같이 모두 정자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묘지 안에서 한 글자에 대해 이체자와 정자를 혼용한 사례는 北魏 太和12년(488)에 제작된 〈暉福寺碑〉에서 찾아볼 수 있다. “用能慈液流於當時”에서는 時의 정자를, “散騎常侍安西將軍吏部內行尙書宕昌公王慶旹”에서는 王慶時의 이름에 이체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관련 탁본과 글자의 석독은 毛遠明 校注, 『漢魏六朝碑刻校注』 第3冊(北京: 紙裝書局, 2008), 269∼273쪽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自
주 615而下, 因命爲姓. 公家氏族, 卽其後也. 門傳軒蓋, 經」往代而聯榮. 宗繼冠纓, 歷今辰而疊彩. 祖
주 616 □□주 617
주 618
建」武太王中裏小兄, 𡙕주 619垧事, 緣敎責, 追垧事, 降黜外官, 轉」
任, 經歷數政, 遷
遼府都督 卽奉敎追,
𡭊주 620盧官, 依𡙕垧事, 任評臺之職. 父孚,
寶藏王
中裏小兄, 任南蘇」道史, 遷
주 622
大兄, 任𣴴谷府都督, 又遷
太相, 任司府大」夫, 承襲𡙕垧事. 公𠡦주 623纔立志, 仕被邦官,
中裏小兄, 任」 䝿주 624端道史. 曁乎大唐龍朔元𠡦, ◆◆
皇大帝주 625勅發義」軍, 問罪遼左, 公率兵敵戰, 遂被生擒. ◆◆𨲢주 626上捨其拒」
抗之愆, 許以歸降之禮. 二𠡦蒙𥠢주 627右衛藍田府折衝長」
上. 至總章元𠡦, 高麗失政, 東土歸命西朝, ◆◆勅주 628以公」
奉國盡忠, 令檢校本土東州長史. 至咸亨五𠡦, 蒙𥠢左」
淸道率府頻陽府折衝. 至大周𥠢
二𠡦, 加𥠢冠軍大」將軍, 餘竝依
二𠥱주 629八
弟. 至大足元𠡦九𠥱卄八
也. 煙雲黯靉, 原野蒼茫. 寒泉噎而(含)悲, 風樹吟而結歎」.
恩旣不逮, 悼亦何追. 爰勒哀銘, 式灮주 630殲誄」.주 631
誌蓋
其詞曰,」주 632
美哉器幹, 盛矣徽猷. 衣冠二域,」
令譽千秋. 宗標圖史, 代秀英謀.」
雄懷勝氣, 志潔淸流. 其一. 𧺈주 634勞不」
憚, 恥心唯恪. 武蘊六韜, 仁深一」
諾. 吐言蘭蕙, 傾心葵蒮주 635. 生建龍」
旌, 亾주 636題麟閣. 其二. 忽從朝露, 長偃」
夜臺. 佳城鬱鬱, 玄壤莓莓. 林寒」
葉蘀, 草㫵霜暟.주 637 ◆烟凝栢思,주 638 風」
結松哀. 其三. 寂夢주 640神理, 蕭條𤯔事.」
春色靡同, 𠡦灮是異. 幽明永隔,」
顔傛安値. 式表殲良, 鐫諸銘誌. 其四.
美哉器幹, 盛矣徽猷. 衣冠二域,」
令譽千秋. 宗標圖史, 代秀英謀.」
雄懷勝氣, 志潔淸流. 其一. 𧺈주 634勞不」
憚, 恥心唯恪. 武蘊六韜, 仁深一」
諾. 吐言蘭蕙, 傾心葵蒮주 635. 生建龍」
旌, 亾주 636題麟閣. 其二. 忽從朝露, 長偃」
夜臺. 佳城鬱鬱, 玄壤莓莓. 林寒」
葉蘀, 草㫵霜暟.주 637 ◆烟凝栢思,주 638 風」
結松哀. 其三. 寂夢주 640神理, 蕭條𤯔事.」
春色靡同, 𠡦灮是異. 幽明永隔,」
顔傛安値. 式表殲良, 鐫諸銘誌. 其四.
번역문
誌石
[대]주(大周)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행좌청도솔부‧빈양절충도위(行左淸道率府‧頻陽折衝都尉) 고을덕묘지(高乙德墓誌) 아울러 서(序)
[공의] 휘는 덕(德)으로 변국(卞國) 동부인(東部人)이다. 옛적 적제(赤帝)를 이어 왕자(王子)의 기운이 흥해 한(漢)을 건국하고, (동이) 오랑캐는 삼한(三韓)의 땅에 살면서 (서로) 패권을 차지하고자 다투었을 때, 사해(四海)가 파도를 일으키고 순백의 태양이 정기를 내려주니, 주몽이 태어났다. (주몽은) 연(燕) 땅을 크게 다스려 요양에 왕통(王統)을 세웠다. (주몽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천)명으로 인하여 성씨를 삼았으니, 공의 집안 씨족들은 (모두) 그 후예였도다.
(공의) 집안은 고관귀인을 계승하여 지난 세월 번영을 이어왔고, 일족은 벼슬을 이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광채를 더해왔다. 조부 과(夸)는 □□ 건무태왕(建武太王)에게서 중리소형(中裏小兄)의 관등을 받아 상사(垧事)를 맡아 다스렸다. 그러다가 교(敎)에 의해 견책을 받아, 상사는 박탈되고, (관등)이 떨어져 외관(外官)으로 쫓겨났다. 직을 바꿔가며, 여러 직무를 거쳐 옮겨가 요부도독(遼府都督)(의 직을) 받았다. 곧바로 교로써, 대로(對盧)의 관등을 추가로 받아, 전과 다름없이 상사를 맡았고 평대(評臺)의 직을 맡았다.
부친 부(孚)는 보장왕(寶藏王)에게서 중리소형의 관등을 받아 남소(성)도사(南蘇道史)가 되었다. (관등이) 大兄으로 올라 해곡부도독(海谷府都督)이 되었다. 다시 태상(太相)의 관등을 받아 사부대부(司府大夫)의 직을 맡아 상사를 맡아 다스리는 것을 이어받았다.
공은 겨우 15세 나이에 벼슬길에 나아가 나라의 관직(邦官)을 받았다. 중리소형의 관등을 받아 귀단(성)도사(貴端道史)의 직을 맡았다. 대당(大唐) 용삭(龍朔) 원년(661)에 이르러, 고종 황제가 칙을 내려 의로운 군대를 발하여 요좌(遼左)의 죄를 문책하시니, 공은 군대를 이끌고 (황제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가 사로잡혔다. 황제는 저항한 허물을 묻지 않고 귀항(歸降)의 예를 허락하였다.
(용삭) 2년에 성은을 입어 우위‧남전부절충장상(右衛藍田府折衝長上)에 제수되었다. 총장(總章) 원년(668)에 이르러 고구려에서 정사가 어지러워지니 동방의 땅(東土)이 (모두) 천명을 당나라에 되돌렸다. 황제가 칙을 내려 공이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고 여겨, 검교본토동주장사(檢校本土東州長史)를 맡게 하였다. 함형(咸亨) 5년(674)에 이르러 성은을 입어 좌청도솔부‧빈양부절충(도위)(左淸道率府頻陽府折衝)에 제수되었다. 대주(大周) 천수(天授) 2년(691)에 이르러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이 더해졌고 나머지는 종전과 같았다.
어찌 흘러가는 냇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기대하리오! 사람의 생애는 유한하나니. 성력(聖歷) 2년(699) 2월 8일, 임지에서 와병 중에 사망하니, 춘추 82세였다. 임시로 사저에 가매장하였다가 대족(大足) 원년(701) 9월 28일 발상하여 두릉(杜陵)의 북쪽에 무덤을 마련하였다. 장사(葬事)의 예(禮)에 부합하였다. (하늘에는) 안개같은 구름이 가득하고, 들판은 멀리 [아득]하니 차가운 샘 소리에는 슬픔이 서려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소리에도 한탄이 맺혀 있구나. 은의가 미치지 못했으니 애도한다 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살아 생전) 정리를 다 나누지 못했으니 애도하는 마음을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구나]. 이에 애통함을 담은 묘지명을 새기고 섬세한 만가(輓歌; 誄辭)로 빛나게 한다.
[공의] 휘는 덕(德)으로 변국(卞國) 동부인(東部人)이다. 옛적 적제(赤帝)를 이어 왕자(王子)의 기운이 흥해 한(漢)을 건국하고, (동이) 오랑캐는 삼한(三韓)의 땅에 살면서 (서로) 패권을 차지하고자 다투었을 때, 사해(四海)가 파도를 일으키고 순백의 태양이 정기를 내려주니, 주몽이 태어났다. (주몽은) 연(燕) 땅을 크게 다스려 요양에 왕통(王統)을 세웠다. (주몽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천)명으로 인하여 성씨를 삼았으니, 공의 집안 씨족들은 (모두) 그 후예였도다.
(공의) 집안은 고관귀인을 계승하여 지난 세월 번영을 이어왔고, 일족은 벼슬을 이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광채를 더해왔다. 조부 과(夸)는 □□ 건무태왕(建武太王)에게서 중리소형(中裏小兄)의 관등을 받아 상사(垧事)를 맡아 다스렸다. 그러다가 교(敎)에 의해 견책을 받아, 상사는 박탈되고, (관등)이 떨어져 외관(外官)으로 쫓겨났다. 직을 바꿔가며, 여러 직무를 거쳐 옮겨가 요부도독(遼府都督)(의 직을) 받았다. 곧바로 교로써, 대로(對盧)의 관등을 추가로 받아, 전과 다름없이 상사를 맡았고 평대(評臺)의 직을 맡았다.
부친 부(孚)는 보장왕(寶藏王)에게서 중리소형의 관등을 받아 남소(성)도사(南蘇道史)가 되었다. (관등이) 大兄으로 올라 해곡부도독(海谷府都督)이 되었다. 다시 태상(太相)의 관등을 받아 사부대부(司府大夫)의 직을 맡아 상사를 맡아 다스리는 것을 이어받았다.
공은 겨우 15세 나이에 벼슬길에 나아가 나라의 관직(邦官)을 받았다. 중리소형의 관등을 받아 귀단(성)도사(貴端道史)의 직을 맡았다. 대당(大唐) 용삭(龍朔) 원년(661)에 이르러, 고종 황제가 칙을 내려 의로운 군대를 발하여 요좌(遼左)의 죄를 문책하시니, 공은 군대를 이끌고 (황제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가 사로잡혔다. 황제는 저항한 허물을 묻지 않고 귀항(歸降)의 예를 허락하였다.
(용삭) 2년에 성은을 입어 우위‧남전부절충장상(右衛藍田府折衝長上)에 제수되었다. 총장(總章) 원년(668)에 이르러 고구려에서 정사가 어지러워지니 동방의 땅(東土)이 (모두) 천명을 당나라에 되돌렸다. 황제가 칙을 내려 공이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고 여겨, 검교본토동주장사(檢校本土東州長史)를 맡게 하였다. 함형(咸亨) 5년(674)에 이르러 성은을 입어 좌청도솔부‧빈양부절충(도위)(左淸道率府頻陽府折衝)에 제수되었다. 대주(大周) 천수(天授) 2년(691)에 이르러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이 더해졌고 나머지는 종전과 같았다.
어찌 흘러가는 냇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기대하리오! 사람의 생애는 유한하나니. 성력(聖歷) 2년(699) 2월 8일, 임지에서 와병 중에 사망하니, 춘추 82세였다. 임시로 사저에 가매장하였다가 대족(大足) 원년(701) 9월 28일 발상하여 두릉(杜陵)의 북쪽에 무덤을 마련하였다. 장사(葬事)의 예(禮)에 부합하였다. (하늘에는) 안개같은 구름이 가득하고, 들판은 멀리 [아득]하니 차가운 샘 소리에는 슬픔이 서려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소리에도 한탄이 맺혀 있구나. 은의가 미치지 못했으니 애도한다 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살아 생전) 정리를 다 나누지 못했으니 애도하는 마음을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구나]. 이에 애통함을 담은 묘지명을 새기고 섬세한 만가(輓歌; 誄辭)로 빛나게 한다.
誌蓋
그 사(詞)에 이르기를 (다음과 같았다)
아름답도다! (공의) 재간이여, 성대하도다! (공의) 지모(智謀)여. 두 나라에서 출사하였으니 천추에 영예를 남겼다. 사서(史書)에 으뜸으로 표시되었고 대대로 지모가 빼어났다. 뛰어난 기상을 웅장하게 품었고 품은 뜻은 청류와 같이 맑았다. (여기까지가) 첫째.
(공은) (군대를) 모으는 수고로움을 고달파하지 않았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몸가짐과 언행을 삼가하였다. 무(武)에서는 육도를 온축(蘊蓄)하였고 인(仁)에 있어서는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았다. 내뱉은 말은 모두 군자의 덕에 합당한 것이었고 임금에게 품은 마음은 해바라기와 같았다. 나면서는 용이 그려진 기치를 세웠으며 [장수가 되었으며] 죽어서는 기린각(麒麟閣)에 (이름을) 올렸다 [공신이 되었다]. (이것이) 둘째.
홀연히 스러져 몸을 무덤에 누이니 무덤에서의 안식이 영원하고 저승에서도 안녕을 누리기를. 숲은 추위에 몸을 떨어 낙엽이 지고, 풀이 떨어진 데 서리가 아름답게 내렸네. 안개조차 측백나무에 엉겨 (공을) 사모하고 바람도 소나무에 엉겨붙어 슬퍼하는구나. 셋째.
죽은 이의 이치가 혼미해지니 사람의 일도 쇠미해지는구나. 봄의 아름다운 빛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세월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으로 영원히 떨어졌으니 아름다웠던 낯과 자태는 어찌 만날 것인가. (하늘이) 어지신 분을 죽였음을 [어지신 분이 죽었음을] 보이고자 명(銘)과 지(誌)에 새겨둔다. 넷째.
아름답도다! (공의) 재간이여, 성대하도다! (공의) 지모(智謀)여. 두 나라에서 출사하였으니 천추에 영예를 남겼다. 사서(史書)에 으뜸으로 표시되었고 대대로 지모가 빼어났다. 뛰어난 기상을 웅장하게 품었고 품은 뜻은 청류와 같이 맑았다. (여기까지가) 첫째.
(공은) (군대를) 모으는 수고로움을 고달파하지 않았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몸가짐과 언행을 삼가하였다. 무(武)에서는 육도를 온축(蘊蓄)하였고 인(仁)에 있어서는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았다. 내뱉은 말은 모두 군자의 덕에 합당한 것이었고 임금에게 품은 마음은 해바라기와 같았다. 나면서는 용이 그려진 기치를 세웠으며 [장수가 되었으며] 죽어서는 기린각(麒麟閣)에 (이름을) 올렸다 [공신이 되었다]. (이것이) 둘째.
홀연히 스러져 몸을 무덤에 누이니 무덤에서의 안식이 영원하고 저승에서도 안녕을 누리기를. 숲은 추위에 몸을 떨어 낙엽이 지고, 풀이 떨어진 데 서리가 아름답게 내렸네. 안개조차 측백나무에 엉겨 (공을) 사모하고 바람도 소나무에 엉겨붙어 슬퍼하는구나. 셋째.
죽은 이의 이치가 혼미해지니 사람의 일도 쇠미해지는구나. 봄의 아름다운 빛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세월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으로 영원히 떨어졌으니 아름다웠던 낯과 자태는 어찌 만날 것인가. (하늘이) 어지신 분을 죽였음을 [어지신 분이 죽었음을] 보이고자 명(銘)과 지(誌)에 새겨둔다. 넷째.
- 각주 603)
- 각주 605)
- 각주 606)
- 각주 607)
- 각주 608)
- 각주 609)
- 각주 610)
- 각주 611)
- 각주 612)
- 각주 613)
-
각주 614)
王의 이체자.(이성제)
王連龍과 葛繼勇은 𠙺(正의 이체자)으로 판독하였다.(則天文字)(王連龍, 32쪽 ; 葛繼勇, 308쪽)
그런데 자형으로 보아 王의 이체자가 맞다. 그런데 이 묘지의 다른 곳에 쓰여진 王 자는 ‘建武太王’‧‘寶藏王’과 같이 모두 정자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묘지 안에서 한 글자에 대해 이체자와 정자를 혼용한 사례는 北魏 太和12년(488)에 제작된 〈暉福寺碑〉에서 찾아볼 수 있다. “用能慈液流於當時”에서는 時의 정자를, “散騎常侍安西將軍吏部內行尙書宕昌公王慶旹”에서는 王慶時의 이름에 이체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관련 탁본과 글자의 석독은 毛遠明 校注, 『漢魏六朝碑刻校注』 第3冊(北京: 紙裝書局, 2008), 269∼273쪽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 각주 615)
- 각주 616)
- 각주 617)
- 각주 618)
- 각주 619)
- 각주 620)
- 각주 621)
- 각주 622)
- 각주 623)
- 각주 624)
- 각주 625)
- 각주 626)
- 각주 627)
- 각주 628)
- 각주 629)
- 각주 630)
- 각주 631)
- 각주 632)
- 각주 634)
- 각주 635)
- 각주 636)
- 각주 637)
- 각주 638)
- 각주 640)
색인어
- 이름
- 高乙德, 德, 朱蒙,
, 建, 武太王, 寶藏王
- 지명
- 三韓, 遼陽, 杜陵
- 관직
- 周冠軍大將軍, 遼府都督, 𡭊盧, 中裏小兄, 南蘇, 道史, 大兄, 谷府都督, 司府大」夫, 檢校本土東州長史, 左」淸道率府頻陽府折衝, 冠軍大」將軍
- 국명
- 卞圀, 高麗
- 기타
- 龍朔, 總章, 咸亨, 𨲢歷, 大足, 麟閣
와 유사한 자체라고 판단된다.(이성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