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일대 농막을 방화한 대국인 11명의 이후 행보를 계속 살펴보겠다고 안무영에 보고
□ 치보(馳報)하는 일
오늘 신시(申時)주 156에 도부(到付)한 보을하진(甫乙下鎭) 첨사(僉使)의 보고에 따르면, 어제 술시 본진 경내의 상수호소(上守護所) 소임 허근이 급히 보고하기를 말을 탄 대국인 11명이 무산으로부터 경내 백룡동(白龍洞)에 와서 간도의 농막(農幕) 한 곳을 방화하고 본소 이영환(李永桓)의 집에 이르렀는데, 첨사가 몸소 통사 한윤상(韓允尙)을 대동하여 상수호소(上守護所)에 와서 온 이유를 탐문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모두 깊이 잠들어 사정을 물어볼 수 없어서, 오늘 아침 일찍 통사 한윤상에게 그들과 문답하게 하니, 그들은 임의로 온 것이 아니라 상관의 명령을 받고서 간도 출입을 금지시키기 위하여 강 입구를 에워싸러 왔다고 하면서, 곧 건너가서 간도 농막 세 곳을 방화하고 돌아와서 말을 타고 진(鎭)을 지나 동문으로 나가 영수사(永綏社)로 향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진 영수사 사임(社任)의 첩정(牒呈)주 157에 의하면, 당일 오시(午時)주 158에 말을 탄 대국인 11명이 보을하진(甫乙下鎭)으로부터 본사(本社)를 지나 강을 건너 간도의 농막을 훼손하고 불을 질렀으며, 주민들을 능멸하고 학대하며 몰아내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고 일의 형세가 근심스러워서 다시 뭐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국인 11명은 곧 서쪽을 향하여 서래동으로 왔다고 하는데, 그 민심은 진실로 근심을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후 사건의 진행 과정을 연속해서 보고하라는 뜻을 해사(該社)에 신칙(申飭)주 159하오며, 동정을 살펴 줄줄이 치보(馳報)하려는 연유를 급히 보고하는 일입니다.
을유(1885년, 고종 22) 4월 12일 신시(申時) 안무영(按撫營)에 보고함.
오늘 신시(申時)주 156에 도부(到付)한 보을하진(甫乙下鎭) 첨사(僉使)의 보고에 따르면, 어제 술시 본진 경내의 상수호소(上守護所) 소임 허근이 급히 보고하기를 말을 탄 대국인 11명이 무산으로부터 경내 백룡동(白龍洞)에 와서 간도의 농막(農幕) 한 곳을 방화하고 본소 이영환(李永桓)의 집에 이르렀는데, 첨사가 몸소 통사 한윤상(韓允尙)을 대동하여 상수호소(上守護所)에 와서 온 이유를 탐문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모두 깊이 잠들어 사정을 물어볼 수 없어서, 오늘 아침 일찍 통사 한윤상에게 그들과 문답하게 하니, 그들은 임의로 온 것이 아니라 상관의 명령을 받고서 간도 출입을 금지시키기 위하여 강 입구를 에워싸러 왔다고 하면서, 곧 건너가서 간도 농막 세 곳을 방화하고 돌아와서 말을 타고 진(鎭)을 지나 동문으로 나가 영수사(永綏社)로 향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진 영수사 사임(社任)의 첩정(牒呈)주 157에 의하면, 당일 오시(午時)주 158에 말을 탄 대국인 11명이 보을하진(甫乙下鎭)으로부터 본사(本社)를 지나 강을 건너 간도의 농막을 훼손하고 불을 질렀으며, 주민들을 능멸하고 학대하며 몰아내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고 일의 형세가 근심스러워서 다시 뭐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국인 11명은 곧 서쪽을 향하여 서래동으로 왔다고 하는데, 그 민심은 진실로 근심을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후 사건의 진행 과정을 연속해서 보고하라는 뜻을 해사(該社)에 신칙(申飭)주 159하오며, 동정을 살펴 줄줄이 치보(馳報)하려는 연유를 급히 보고하는 일입니다.
을유(1885년, 고종 22) 4월 12일 신시(申時) 안무영(按撫營)에 보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