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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스트여닫기 앞방_남벽(입구동쪽)_의장대열 이미지 앞방 남벽 무덤 입구의 동쪽 벽 상단에 그려진, 공손하면서도 절도 있는 모습의 의장대열이다. 모두 7명의 문무관들로 구성된 이 의장대열은 무덤의 입구를 향하여 서있는 자세로, 입구를 지나 무덤 안으로 들어오는 묘주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앞에 서있는 긴 두루마기를 착용한 4명의 인물이 문관이며, 그 뒤편에 나란히 서있는 짧은 저고리를 착용한 3명의 인물은 무관이다. 이들의 신분은 의복을 통해서도 알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쓰고 있는 관모와 손에 들고 있는 지물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 리스트여닫기 앞방_남벽(입구동쪽)_부월수 이미지 모두 네 명의 부월수(斧鉞手)가 양손으로 도끼를 세워들고 입구를 향해 일렬로 서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머리에는 무관(武官)용 책(幘 : 문관이나 무관의 의례용 모자로, 뒷부분의 운두가 두 갈래로 갈라져 앞으로 구부러진 형태와 운두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은 형태 두 가지가 있음. 전자는 문관(文官)용이며 후자는 무관용임)을 쓰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붉은 색 계통의 저고리에 흰색의 통이 좁은 바지인 궁고(窮袴)를 착용하고 있다. 저고리 가운데 닳아 헤지기 쉬운 목둘레와 소매, 아랫단에는 색깔을 달리하는 천을 덧대어 실용성과 장식성을 모두 살리고 있다. 이처럼 덧댄 천을 ‘선(襈)’이라고 부른다. 궁고는 대개 활동성이 뛰어나 고려시대의 무관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입던 바지이다. 원래 도끼는 고대로부터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데 의장용 기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왕을 상징하는 한자의 王자가 바로 도끼를 상징하는 상형문자(象形文字)에서 유래하였다 사실에서도 잘 확인된다. 물론 도끼는 전투용 무기로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고구려 시대에도 전투용 무기로서의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도끼가 실제 병기(兵器)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눌최전에서도 확인된다. 신라 장군 눌최가 백제군과의 전쟁에서 도끼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도끼는 당시 고구려 뿐 아니라 삼국의 다른 나라에서도 무기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악 3호분(安岳3號墳) 앞방 남벽에 그려진 부월수도 앞방 동벽에 그려진 부월수와 마찬가지로 의장대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도끼를 든 부월수들이 묘주가 거주하는 공간 여기저기서 묘주를 호위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묘주의 높은 권위를 상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