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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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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자산성(高臺子山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890
  • 위치(출토지)遼寧省 新民縣
  • 지역심양(瀋陽市)
  • 유형성곽>산성
  • 형태사항3점 
 

출토지

 

요녕성 신민현(遼寧省 新民縣)

 

연대

 

漢, 遼, 金, 元, 明, 淸

 

구조특징

 

성이 위치한 고대산 산등성이의 지세는 요형(凹形)이고, 산성은 동부에 위치함. 산성 위에 올라가서 보면 시야가 탁 트임. 산성은 자연지세를 따라 축조하였기 때문에 평면이 불규칙형임.
성벽은 산세를 따라 축조함. 성벽은 토석혼축이며, 현재는 성벽 기단의 흔적만 볼 수 있음.
산성 안에서는 벽돌과 기와편을 쉽게 볼 수 있음. 한(漢)·고구려·요·금·원·명·청의 기와편과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음.

 

역사적 의미

 

한(漢)·고구려·요(遼)·금(金)·원(元)·명(明)·청(淸) 등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한대에 축조되어 고구려·요·금·원·명·청까지 계속 사용된 것으로 추정됨(王禹浪·王宏北, 2007).
요하 도하로(渡河路)에는 신민 고대산~심양(新民 高臺山~瀋陽)의 북로(北路), 대안 손성자~안산(臺安 孫城子~鞍山)의 중로(中路), 반산~고평~우장~해성(盤山~高平~牛莊~海城)의 남로(南路) 등이 있음(王綿厚·李健才, 1990). 645년 당군은 이 길들을 통해 요하를 건너 고구려를 공격함. 이세동(李世動)은 통정진(通定鎭)에서 북로를 통해 요하를 도하한 다음, 현토성과 개모성 등을 공격하였음. 당 태종은 요택(遼澤)을 거쳐 중로로 요하를 건넌 다음, 곧바로 요동성으로 향하였음. 장검(張儉)은 남로를 건넌 다음 건안성을 공략함. 이들 도하로 가운데 고대자산성은 가장 위쪽인 북로의 도하지점임. 이 지점은 주변 일대가 광활한 평원지대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함. 이에 고구려는 무려라(武厲邏)라는 군사성보(軍事城堡)를 구축하여 중국세력의 침공에 대비하고 요서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았음. 수는 612년 고구려 침공에 나서 무려라(武厲邏)를 빼앗고 통정진(通定鎭)과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함[ 『수서』동이전 고려조 대업(大業)7년]. 그리고 645년 당의 이세동도 통정진에서 요하를 도하한 다음, 혼하(渾河) 연안의 현토성과 심양 남쪽의 개모성을 공격함. 그 뒤에 당군은 647년 남소성(南蘇城)을 공략할 때(『신당서』권220 동이전 고려조 정관(貞觀) 21년 3월조), 666년 국내성에 웅거한 남생(男生)의 투항을 받아들일 때(『신당서』권110 열전 제35 천남생(泉男生傳), 667년 신성(新城)을 공격할 때(『삼국사기』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6년조) 등 혼하~소자하(渾河~蘇子河) 일대를 공격할 때에는 대체로 고대자산성에 위치한 통정진에서 요하를 도하하였음(여호규, 1999).

 

자연환경

 

신민현에서 7.5㎞ 떨어진 고대산(高臺山) 위에 위치함.
산성이 위치한 곳은 양식목하(養息牧河)와 투수하(透水河)가 요하(遼河)로 유입되는 합류지점에서 가까운데, 요하 하류의 평원지대에 속함. 해발 75m인 고대산을 제외하고 대부분 산 언덕(山丘)이 해발 30m 이하인 개활한 평원임. 그리하여 신민 고대산 일대가 예로부터 요하를 건너는 주요 도하지점으로 이용되었고, 지금도 북경에서 요서지역을 거쳐 심양으로 향하는 철도와 도로 등 주요 교통로가 지나가고 있음.

 

유물정보

 

벽돌(塼) 1점, 기와편(瓦片) 1점, 자기편(陶片) 1점

 

참고문헌

 

· 王綿厚·李健才, 『東北古代交通』, 沈陽出版社, 1990
· 余昊奎, 『高句麗 城』 Ⅱ(遼河流域篇), 國防軍史硏究所, 1999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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