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김청평 등을 보내 옴
정묘(3일)에 신라가 사찬주 001
김청평(金淸平)
주 002을 보내어 국정을 알렸다주 003
번역주 003)

. 아울러 급찬주 004
김호유(金好儒)
주 005와 제감대사(弟監大舍)주 006
김흠길(金欽吉)
주 007 등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그 송사인 나말주 008
피진나(被珍那)
주 009와 부사 나말 호복(好福)
주 010이 청평 등을 축자까지 보내왔다주 011. 원문은 請政이다. 이 해(676년) 2월, 신라의 저항에 직면한 당이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김으로써 마침내 신라가 한반도의 통일을 완성하였다. 이번 신라 사절은 전 달(10월)의 왜국 측의 견신라사 파견에 대한 답례의 의미도 있으나 신라가 당을 축출하고 한반도를 통일한 사정을 왜국에 전할 목적으로 파견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日本書紀』 원문은 이 신라사의 파견 목적을 「請政」이라 표현하고 있다. 請政은 「奏請國政」의 의미로 자국의 國政을 上奏하여 허가를 얻는다는 말이다. 당시의 신라가 왜국에 국정을 보고할 의무도 없었고, 양자가 정치적으로 그러한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請政이라는 文言은 『日本書紀』 편자가 신라=蕃國觀에 기초해 文飾한 것으로 이해된다.
- 번역주 001)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원문은 請政이다. 이 해(676년) 2월, 신라의 저항에 직면한 당이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김으로써 마침내 신라가 한반도의 통일을 완성하였다. 이번 신라 사절은 전 달(10월)의 왜국 측의 견신라사 파견에 대한 답례의 의미도 있으나 신라가 당을 축출하고 한반도를 통일한 사정을 왜국에 전할 목적으로 파견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日本書紀』 원문은 이 신라사의 파견 목적을 「請政」이라 표현하고 있다. 請政은 「奏請國政」의 의미로 자국의 國政을 上奏하여 허가를 얻는다는 말이다. 당시의 신라가 왜국에 국정을 보고할 의무도 없었고, 양자가 정치적으로 그러한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請政이라는 文言은 『日本書紀』 편자가 신라=蕃國觀에 기초해 文飾한 것으로 이해된다.
- 번역주 004)
- 번역주 005)
- 번역주 006)
- 번역주 007)
- 번역주 008)
- 번역주 009)
- 번역주 010)
- 번역주 011)
색인어
- 이름
- 김청평(金淸平), 김호유(金好儒), 김흠길(金欽吉), 피진나(被珍那), 호복(好福), 청평
- 지명
- 축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