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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879-86 쿠취 측량지도 (풀란)

6. 1879-86 쿠취 측량지도 (풀란)
1879-86년 간 쿠취 공국의 측량이 인도측량국의 지취아래 진행되었다. 측량단 일행의 우두머리는 인도측량국 부감독관인 풀란 (A. Pullan) 대령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측량은 본 사건 속에서 풀란의 측량으로 일컬어진다.
풀란의 측량은 1873년에 시작된 쿠취의 지역적 세수조사 뒤에 따르는 것이었다. 그 측량은, 그렇지만, 단지 라오 소유의 땅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도들은 탈루카 경계선을 심지어 그리지도 않았다. 인도는 샘플로 이 같은 지도들 중 세 가지 인도 지도, TB-31에서 TB-33 등을 보여주었다. 파키스탄은 심지어 이 같은 샘플지도 속에서도 은 마을 경계선에 의해서 분리된 것으로 보였다고 지적하며, 묘사된 그 지점은 맥도날드 지도와 동일했다고 주장한다.
파키스탄은 풀란 측량 초창기에는 인도측량국은 맥도날드 라인을 다르게 해석하는 두 가지 지도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인도측량국총책임자(측량총관)의 지시 아래 1880년에 출간된 파키스탄 지도 25 안에서는, 맥도날드의 수직선과 두 환형(loop)을 따라 난 선은 “신드 안에 있는 내부적 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도지도 B-46은 의 상당부분을 쿠취 안에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준다. 이 지도는 1878년에 후나에 있는 인디아 정부 포토징코그라피 청에서 인쇄하였다, 그리고 1880년 봄베이관구지도색인 속에서 발간되었다.
양 당사자들 간에는, 풀란의 작업은 “쿠취 지방의 지형측량지도”를 작성하는 것이었다는데 그 의견이 합치된다. 그의 측량지도는 인디아 정부, 봄베이 지방정부 그리고 정치고문 대리가 장인 쿠취 공국 섭정위원회(Regency Committee) 등이 승인하였다. (인디아 정부가 승인하였다는 정확한 문구를 담고 있는 서신은 기록에 없지만, 봄베이 지방정부의 승인을 얻어 쿠취 공국이 측량되었음을 넌지시 의미하면서 측량국총책임자가 인디아 정부에 보낸 편지는 인도자료 TA 62로 증거로 제출되었다.)
풀란은 다음 측량기간들에 걸쳐 수행한 작업에 대하여 측량국총책임자에게 매년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1880-81, 1881-82, 1882-83 및 1883-84 등 기간에 따른 보고서 (인도 자료 TA62)는 인도가 제출하였고 이들 보고서들 중 몇 개는 쿠취를 구역/공국 (District/State) 가운데 우두머리로 언급하고 있는 “지형학 상설” 및 “삼각측량의 상설” 이라는 표(tabular)를 담고 있다. 인도측량국 책임자는 그 기간 동안 인도측량국의 업무와 관한 일반보고서(General Reports)를 매년 발간하였다. 풀란의 측량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에 덧붙여서 일반보고서 1880-81, 1881-82, 1882-83, 1883-84 및 1885-86 에서는 “쿠취의 지형측량도에 대한 색인도표(목록)”을 담고 있다. 색인도표(Index Chart)는 그 이전 측량된 지역들, 당해 시즌에 측량된 지역들 그리고 미리 삼각작도법으로 측량된 지역을 각각 다르게 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지역들은, 거대한 란에 붙어 있는 신드와 인도 공국들과 “중첩된” 부분들뿐만 아니라 북동쪽 끝 지점 부분은 제외하고, 쿠취의 주요지역, 의 전체 지역을 커버한다. 일반보고서는 봄베이 지방정부에 제출되었고, 거기에 근거하여 그 정부는 그것과 관련된 결의안들을 통과시켰으며, 그리고 또한 인디아 정부와 인디아 국무장관에게 그것들을 통보하였다.
풀란 측량 기간 동안, 그리고 1884년 11월 21일 에어스킨 집정관의 서신 (상기 참조) 직후에, 전체에 대하여 “쿠취다르바르(Darbar)가 제기한 청구(영토적 주장)”에 대하여 풀란과 신드 당국 간 토의가 있었다. 그렇지만, 1885년 7월 3일에 봄베이 정부는 풀란에게, 당해 정부는 “신드 지방과 쿠취 공국 간 내 경계선에 대한 일체의 이의제기가 발생되기를 원치” 않음 (파키스탄 자료 B.10) 을 넌지시 암시하였다. 파키스탄은 이것을 신드-쿠취 간 경계선 문제가 특정한 고려사항 중에 있는 것으로 취급하였고, 이것은 제8장 2에서 다룬다.
인도는 풀란 측량지도를, 그 측량은 전체를 포함한 쿠취 공국에 대한 것이었고, 이런 생각은 모든 당국 실체들 – 국무장과, 인디아 정부, 봄베이 정부, 신드 집정관 및 인도측량국총책임자 등이 인지하고 승인하였던 것이라는 논거 위에서, 신뢰한다.
인도에 따르면, 풀란은 을, 그것은 쿠취의 영역이고 따라서 신드-쿠취 경계선이 그려졌으나, 풀란은 위에 언급한 봄베이 정부 결의안 뒤에 그 작업을 중지하였다는 근거(바탕) 위에서 측량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하여 의 동부지역 내에 있는 다른 경계선들을 그렸다, 1887년의 파키스탄 지도 103A 및 111, 1888년의 파키스탄 지도 101을 참조하시오.)
이와 연관된 인도 측 의견은 다음과 같다: 풀란의 생각은 이미 1880년 8월 9일자 그의 편지 속에서 알 수 있는데, 그 안에서 그는 측량국총책임자에게 다음 시기에는 그가 을 8장의 지면 속에 측량할 것이라고 고지한다. 그는 그럼에 따라 “두르바르 당국의 적극적 협조를 요청하고, “측량이 완료되면 그것은 당해 지역의 신뢰할만한 지도를 얻기를 고대하고 있는 두르바르가 그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할 것이다”는 점을 강조한다. 1880년 9월 13일에 풀만이 측량국총책임자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 속에서 (인도자료 TA62),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은 과거 한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이고 조금씩 그 지방의 일부분들이 더 비옥해짐과 함께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이다...봄베이 정부 평의회 선임위원인 존경하는 애쉬버너(Ashburner) 씨는 본인에게, 자신은 그 입장에 대해 본인과 견해를 같이 하고, ‘coute que coute’ 의 측량은 당해 지역의 나머지에 대한 측량과 함께 동시에 매년 수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게 했습니다 (이탤릭체화 된 부분은 인도가 강조한 부분이다). 1880-81 풀란 보고서 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과거 답사기간 동안 측량된 쿠취 부분은 먼저 거대한 ‘’의 한 부분과 라크파크 마을 남쪽과 남동쪽에 있는 두껍고 낮게 자란 수목으로 덮인 땅과 더불어 ‘바니(Bani)’라고 알려진 넓게 퍼진 수풀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쿠취 지도 3, 4, 5 및 11쪽)”. 쿠취 지형측량지도 색인표 (인도지도 BB-2)는 를 보여준다. 5쪽을 제외한 이 모든 지도용지들은 북위 24도 선 위 지역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풀란이 “쿠취의 부분(the part of Cutch)”이라고 언급한다 (상기 인용한 부분 참조). 1886년에 발간된 일반보고서는 봄베이 결의안이 다음과 같은 내용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실지 측량작업은 1886년 3월 31까지 계속되었고 그것들은 그에 인접한 ‘(Ran)’과 더불어 쿠취의 지형측량의 완결과, 쿠취(Cutch) 측량지도 가장자리(난외)에 있는 북 구자랏의 자그마한 부분들뿐만 아니라, 나가르 파르카르 반도의 완성 등으로 구성된다. 휴식기간 동안에 상당한 양의 도해 작업이 지면 위에서 완성 된다 ... 따라서 쿠취 지방 측량은 성공적인 결론을 가져왔다.” (파키스탄 책 92면) 그것은 또 쿠취 공국에서 풀란이 도움을 받은 것은 언급하고 있는데, 측량국총책임자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풀란 중령은 당해 측량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관해서 [쿠취의 정치고문] 리브스 중령, 굿펠로우와 필립스, 그리고 디완 바하두르 마니바이 자스바이 (Diwan Bahadur Manibai Jasbai) 등; 또한 라오의 경찰이며 실제 측량답사작업 동안 그와 함께 했던 두파다르 칼리 칸 전하(Duffadar Kali Khan of His Highness) 으로 그가 받은 충심어린 협조와 조력에 감사를 표시한다.” (상게 자료, 동면)
인도는 또한, 1880-81 및 1881-82 기간에는 “지형학 상설” 또는 “삼각작도법 상설”이라는 도표 속에서, “쿠취(Cutch)”는 “주요구역들과, 계절별로 지형조사가 수행되었던 공국들 이름”이라는 표제 밑에 언급되고, 1880-81 및 1882-83년에는 “쿠취(Cutch)”는 “당해 계절의 삼각작도를 통해서 측량이 수행되었던 지역과 공국들 이름” 표제 밑에 언급된다. 이 기간들 동안에 지형적으로 측량되고 삼각작도 된 지역들은 북위 24도 선 위로 란의 북쪽 가장자리까지 걸친 지역을 포함하므로 (인도지도 BB-2, TB-19 및 TB-20을 보시오), 이 지역을 “쿠취(Cutch)”라고 풀란이 묘사한 것은 그가 그것이 쿠취의 영토 일부분을 이룬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도는, 인도지도 BB-2, TB-19, TB-20 과 파키스탄 지도 93 및 114 속 색인표는 풀란이 란 전체를 측량하였고 삼각작도 하였음 (그것의 남동쪽 구석 내 한 자그마한 부분을 제외하고는)을 지적한다; 그가 쿠취 지방 측량 작업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는 전체는 쿠취의 부분이었을텐데,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을 측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이런 색인표는 국무장관을 포함한 고위직 공무원 모두가 승인한 일반보고서에 담긴다. 의 북쪽 부분이 24도선 위에 있는 것으로 보여주는 지도들 가운데, 1882년 인도지도 B-47(“대규모 의 일부”라는 부제와 함께) 그리고 1886년의 파키스탄 지도 40 및 80은 모두 주로 “쿠취(Cutch)” 영토를 포함하는 것으로 표시되었으며, 그리고 1884년 파키스탄 지도 69는 그 표제를 “신드쿠취(Cutch)의 부분들”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런 신드에 대한 표현은 신드의 주요지역으로 중첩되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라크파트 지역과 그것이 인도지도 B-47 속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것(두 고리형태를 포함하여)을 보여주는 1881년 파키스탄 지도 39 (쿠취 지도 5쪽; 부제: “쿠취거대한 란의 부분들”)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뛰이에의 정치적 경계선 표식처럼 -- (dash-dash)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쿠취신드의 경계가 명백하게 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도지도 B-47 속에서 특별히 강조되는데, 그 지도에서 당해 경계선은 이중으로 색칠된 리본 형태를 취한다. 인도는 그렇지만, 인도지도 B-47은 “두 지역(loop)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는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기준)지도”가 아니고, 또한 만약 그 경계선이 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있었다면 경계선 획정(설정)을 위한 아무런 조력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지도는, 쿠취쿠취거대한 란을 측량할 때 풀란은 거대한 란쿠취의 부분을 이룬다고 생각하고 승인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도지도 B-47 위에 경계선 표시는, 인도가 “그 경계선은 지점 및 마일 마다 정확한 것이라고 말하기 위하기 위해서 아니라 신드의 북쪽 가장자리 끝에서 끝났고 쿠취신드의 경계선은 따라서 접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신뢰(의지)한다. (녹취록, 14113/20 면.)
인도는 계속한다: 파키스탄 지도 39 및 인도지도 B-47 속에 있는 직선으로 된 경계선은 -- 표식이 전설 속에서는 “지나간 발자취(footpath)”를 뜻하긴 해도, 그런 선이 그렇게 보도로 지나간 길을 대변한다고 의미한다는 것은 누구의 입장도 될 수 없다. 더군다나, -- 선은 측량의 한계에 해당될 수도 없다. 그것은 그 이후에 발간된 공식적 지도가 한 연구에서 분명히 밝혀졌는데, 그 지도 안에서 라크파트 지역 속 그리고 두 환형지역을 따라서 쿠취-신드 경계선이 풀란이 정렬(경계선 조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1892년의 애치슨 조약들에 대한 두 가지 증거지도 (인도지도 TB-20B 및 TB-20C), 1908년의 애치슨 지도(인도지도 TB-17), 그리고 인도의 32마일 지도의 세 번째 및 네 번째 개정판 (인도지도 B-50, BB-3, 세 번째 개정판의 전정판, 그리고 B-51). 쿠취코리 샛강을 건너 확장했고 그 서쪽 하안을 하나의 발판삼아 점령했다는 풀란의 입장은 또한 1913-14에 걸친 경계선 개정작업이 뒷받침 하였다.
인도는 인도지도 B-48을 제시하는데, 이 지도는 “192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부서의 여분 정보로부터 나오는 부가물 및 수정물과 더불어 쿠취의 17, 18, 24 및 25 지도면”을 풀란이 재인쇄한 것이다. 이 지도는 의 북쪽 끝 가장자리를 따라 난 “지방(주province) 또는 공국(state)” 경계선을 담고 있다. 그 지도의 표제는 “서부 인디아 공국들”, “쿠취(Cutch) 공국”이고, 그것은 의 지역을 인도지도 B-47 속에 있는 영역의 동쪽 방향으로의 연장 가운데 북위 24도선 북쪽 편에까지 즉시 포함하며 의 북쪽 끝 가장자리를 따라 난 경계선에 걸쳐 있는 신드의 한 부분을 포함한다. 비하르 벳, 사르프 벨라, 베와를라 벳, “다름살라”, 가인다 벳, 모리 벳, 다라바니, 베디아 벳, 쉬하드 벳 그리고 메루다 언덕 등이 지도 속에 있다. 인도는 그것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신뢰하고 있다. 그것은, 쿠취-신드 경계선은 이것이 쿠취 공국과 서인디아 공국들의 지도이며 또한 이것은 24도 선 위 지역을 빼고는 어떠한 지역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24도 선을 따라 경계선이 나 있다는 파키스탄 입장을 반박한다. 가인다 벳 또는 다람살라를 따라 있는 경계선 표식은 없으나, 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경계선 표식은 존재한다. 경계선 표시의 북쪽에 위치한 것은 신드이고 남쪽에 놓여있는 것은 쿠취와 서인디아 공국들이다. 1886년에는 불확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1929년에 와서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지도 B-47 및 48 양쪽 모두는 공식적 출판물이다. 풀란 측량지도 이후에 인도측량국의 당해 지도에 대한 출판은 인도가 주장하는 대로 그 경계선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 중 몇 개는 이들 지도들이 근거하고 있는 측량 중 하나로써 풀란의 측량을 명시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결론 내린다:
(a) 풀란이 측량했던 란은 처음부터 1885년까지 그는 쿠취 공국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고 기록하였다; 그는 지리학적 필요에 따라 그것을 측량하지 않았거나 쿠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그 자신이 서명한 설명 속에서 그는 쿠취 공국의 일부분에 해당되는 북쪽 끝 가장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여 주였다.
p.120
(b) 신드-쿠취 경계선은 인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승인되었다.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국가들 간을 나누는 실체라는 의견이 옳다면, 역사는 6년 간 측량기간 동안 실체 그렇게 된 것과 같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도가 제출한 자료는 의심할 여지없이 신드-쿠취 경계선은 접하였고 풀란 같은 이들이 측량하였다는 것이다.
(c) 1885-86년에 풀란이 경계선을 그리는 것을 생략한 것은 인도지도 B-48 속에서 수정되었다, 이 지도는 디플로(Diplo)-쿠취 경계선을 보여주고 전적으로 풀란 측량지도에 근거한다. 그것은 에어스킨과 오스마스톤 간 차이(갭)의 대부분을 메우고 맥도날드가 묘사한 경계선 일체를 따라 두 번째 검증을 마친다. 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있는 경계선 표식과 함께하는 그 당해 경계선은 널리 알려질 것이다. 이 경계선은 신드쿠취에서 분리하고 다라 반니(Dhara Banni)쿠취에게 속한 것으로 한다.
파키스탄은 진술한다: 파키스탄은 풀란이 1885년 봄베이 결의안 전후를 막론하고 쿠취의 일부로 측량하였다고 보지 않는다. .인도지도 B-48의 1886년 판인 파키스탄지도 113은 일체의 경계선을 보여주지 않는다. 풀란은 단지 “쿠취(Cutch) 지역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측량되어야할 지형적 필요성이 반드시 있었기 때문에” (파키스탄 자료 B.11), 맥도날드가 측량한 지역과의 연관성을 설정하기 위하여 란을 측량하였다. 만약 쿠취의 란이 단지 그 중간 까지만 측량되었었더라면, 그 나마지 북쪽 반은 보기 흉한 간격으로 남겨져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큰 강의 하상(강 밑바닥) 같은 쿠취의 란을 적절히 측량하는 방법은 그것을 하나의 전체로써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필요성이다. 신드쿠취 간 벌어진 틈(갭) 또는 분할하는 실체라는 생각은 풀란의 위에 언급한 1880-81 보고서 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보아 분명하다: “이전에 거대한 란 부분을 실측하는 기간 동안, 쿠취(Cutch)를 신드로부터 분리하는 거칠고 황량한 모래 황무지와 소금 강바닥(하상) 지역을 1/2 대 1마일 축척으로 측량하였다.” (인도자료 TA 62). 파키스탄은 역시 위에 인용된 1886년 일반보고서를 언급하는데,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쿠취에 더하여(부가하여) 그에 부속하는 란(Ran)은 ... 지형적 측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심지어 풀란이 처음에는 그가 쿠취를 측량 중에 있었고, 그리고 나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가 측량한 영역 하나하나는 단지 그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쿠취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풀란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1885년 결의안은 모든 것을 대체하였거나, 혹은 쿠취-신드 경계선과 관련하여 그 날짜 이전에 그렇게 할 것이 고려되었다. 쿠취 측량지도에 붙은 색인표 속에서, 파키스탄은 쿠취에게 귀속했다고 볼만한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쿠취(Cutch)”가 그들 지도 상 인쇄된 곳이 어디건 간에, 그것은 단지 쿠취의 주요지역을 커버하고 대규모 혹은 소규모 으로 특별하게 표식한 것을 담고 있지 않는다.
“지형학 상설” 또는 “삼각작도 상설” 속 “주요구역” 칼럼 밑에 “쿠취(Cutch)”의 주해와 관련해서, 파키스탄은, 그것은 반드시 문제가 된 측량작업 중 풀란이 측량한 모든 조각들이 정치적으로 당해 구역의 일부분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파키스탄은 다음과 같은 통상적 진술을 개진했다:
쿠취쿠취의 란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접합점(연관성)이 존재한다. 첫째로 이름(명칭) - 쿠취쿠취의 란(Kutch and Rann of Kutch). 둘째로는, 쿠취의 란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해변(연안) 육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쿠취이 주변을 휩쓸고 있는 까닭에 위에 매우 광범위한 해안선과 함께하는 해변영토였다. 그것은 해변 육지를 한정하고, 나누고, 또 그 해변 지역 중 하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해변 영토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해변 육지들 가운데 이 쿠취 위에 가장 광범위한 해변을 가진 것이 되었다. 세 번째로 내 권리들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쿠취는 가장 중요한 지역인데 이유는 그 해변적 권리(coastal rights)가 모든 방향으로 란의 중간(가운데)까지 뻗어있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이러한 사실이 쿠취에게 안의 권리 전체 가운데 절반을, 나머지 반은 그 외 해변영토들 간에 비례하여 부여한다. 내 권리들의 반이 쿠취에게 속할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잔존하는 나머지 반은 여타 해변영토들에게 속하게 되어, 다랑가드라(Dhrangadhra) 조금, 탈란푸르(Palanpur)에게 조금, 모르비(Morvi)가 조금, 신드는 북쪽 편 대부분 덩어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나머지 전체를 합하면 반이 될 것이고, 쿠취 혼자서 그 반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쿠취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주요한 땅(지역)이다. 이상 세 가지가 쿠취의 란쿠취 간 주요 연결점들이다. (녹취록, 17302면.)
그 특정 지도들과 관련하여, 파키스탄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수많은 지도들 표제 속에 파키스탄지도 41은 “쿠취(Cutch) 측량지도”, “타르파르카르, 북 구자랏쿠취의 란 부분들”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하고 있다. 그리고 그 측량지도 중 일부가 뒤에 가서 “봄베이 측량지도” 또는 “봄베이신드 측량지도”라고 알려지면서, 그 지도들은 “타르파르카르 구역들” (두 개의 지도 위에), “타르파르카르 (신드)의 부분들 그리고 바브 공국 (팔란푸르 관리청, 봄베이)”, “팔란푸르 관리청 부분” 그리고 (북부 구자랏 지역) (각각의 파티스탄 지도 43, 44, 103, 103A 및 111; 또한 그 이후 지도인 1908년 파키스탄지도 408 및 49를 보시오)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리고 이 지도들은 동쪽 의 상당한 부분을 커버한다. 파키스탄 지도 69만이 풀란이 서명한 지도로 증거로 제시 된다. 그것은 “평면측량 지도(plane table)”이다. 이 지도는, 그 전체 지역이 비록 전 지역이 24도선 위에 있다고 해도, “신드쿠취(Cutch)”를 보여준다. 논거(이유)는, 이 각도에서는 전통적 경계선이 24도선보다 살짝 북쪽에 있는 가인다 벳트(Gainda Bet)로 나 있어서 그로부터 남쪽 지역, 가인다 벳트 위의 한 휴식처를 포함 한 그 지역은 실제로 쿠취에게 귀속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파키스탄 지오 69가 출판되지 않은 지도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그림(도해)를 위한 단지 그저 그런 기본적 자료물의 일부분일 뿐이다.) 파키스탄 지도 39와 인도지도 B-47과 관련해서는, 이 지도들은 결코 어떤 경계선을 보여주지 않는다. 맥도날드의 횡단선에 상응하는 인도지도 B-47 속에 -- (dash-dash) 표식과 함께 있는 그 선은 측량지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선이거나 (파키스탄 지도 40 및 93 참조), 혹은 그것은 “단지 아무 것도 아닌 것인 일종의 상상의 선으로” 취급될 수도 있겠다고 보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일이다. (녹취록, 6724면.) 파키스탄은 더 나아가 인도지도 B-47 속에 보인 조정과 인도지도 B-2 (91 및 92 쪽) 속에 있는 맥도날드의 조정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또는 그 조정은 인도가 청구하는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파키스탄지도 112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이 점을 그림으로 설명(도해)한다. 더군다나, 인도지도 B-47 속의 경계선 리본 색깔은 신드쿠취에게는 통상적 색깔이 아니다. 그럼으로, 풀란의 지도 어느 것도 신드-쿠취 경계선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1898년의 지도책(아틀라스), 인도지도 B-6 속에서 정확하게 평가되었는데, 이런 지도에는, 그렇지만, 라크파트 지역 내에서 맥도날드 선은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움푹 들어갔다. 그러나 32마일 지도의 이전 판뿐만 아니라 애치슨 지도 속 라인의 “기이한 모양”처럼, 약간의 혼동이 측량부서에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 선은 1915년 5번째 개정판 내에서 처음으로 바뀌었다.
파키스탄은 최종적으로 1884년 파키스탄 지도 69와 1929년 인도 B-48에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그런 지도 안에서 다라 반니의 북쪽에 있는 구분하는 모서리 또는 움푹 꺼진 곳이 라힘 키 바자르에서 나가르 파르카르까지 이르는 길(도로)의 북쪽에 그려졌다. 그 모서리(가장자리)는 함몰지에 해당하고 그것은 다라 반니에게 다른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파키스탄은 이 움푹 꺼진 땅은 우기에는 물로 찬다고 덧붙인다. “그것은 얕고 좁으며 건기에는 약간의 함몰지처럼 보인다.” (녹취록, 17381면.)
이 부분(섹션)은 풀만 보고서 중 하나의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지금 끝낼 수 있겠는데, 거기서 그는, 다라 반니나가르 파르카르 사이에 “황량하고 무형의” 거대한 란의 북쪽 지역 내 메루다 언덕(Meruda Hill)을 “매우 주목할만한 지점, 즉 다시 말해 하나의 단지 지면에서 55피트 높이로 불쑥 솟아오른 원뿔 모양의 돌 ... 그 암석은 현무암이고 식물상태는 그의 발치에 놀랍게도 몇몇 선인장 덩어리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삭막하다. 지글지글 끓는 ‘란(Ran)’ 위의 이 외로운 돌덩어리가 드리운 그림자는 사람과 짐승들이 그 사막을 지나갈 때 반가운 쉼터를 제공한다”고 언급한다. (인도자료 TA 62)

색인어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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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879-86 쿠취 측량지도 (풀란) 자료번호 : nj.d_0024_0020_006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