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하투부가 영하(寧夏) 등지를 침입하였으나 순무 진기유(陳奇瑜) 등이 격퇴 시켰으며, 명(明)이 망하기 전에 찰합이가 죽고 그의 부락은 대청에 귀부함

  • 국가
    달단(韃靼)
그 후 하투부가 매년 영하·감주·양주 변경을 침입하였으나, 순무 진기유(陳奇瑜)·총병 마세용(馬世龍)·독사(督師) 홍승주(洪承疇) 주 001
각주 001)
洪承畴(1593~1665): 字는 彦演, 號는 亨九이고, 福建省 泉州府 사람이다. 明朝에서 參政, 巡撫, 陝西三邊總督 등을 역임하였지만, 松山에서의 패배 후에 淸에 투항하였다.
닫기
등이 번번이 격퇴시켰다.주 002
각주 002)
이와 관련된 내용은 『崇禎實錄』 卷7 崇禎 7년 3월 丙午條 및 同 5월 辛卯條, 同 추7월 壬戌條 참조.
닫기
하투부간아매(干兒罵) 또한 총병 우세록(尤世祿)에게 참살되었다.주 003
각주 003)
河套部의 干兒罵가 寧河를 침범하다가 總兵 尤世祿에게 참살되었다는 내용은 본문에 崇禎 7년(1634) 이후의 일로 기록되어 있으나 『崇禎實錄』 卷2 崇禎 2년 동10월 戊寅條에 나와 있다. 이로 보아 崇禎 2년(1629)의 일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닫기
말에 이르기까지 변경은 평온하지 않고, 중원(中原)에는 도적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일을 담당한 자들은 엄답 등과 공시(貢市)의 편리함을 행하고자 했는데, 삽한이 동에서 멋대로 하는 것을 보고서 매년 금전 수십만을 주어 일시의 평안을 얻고자 하였고, 또 쓰기 위해 이들을 거두려고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에 이르러, 이 망하기 전에 삽한이 먼저 죽었고, 여러 부락은 모두 대청에 귀부하였다. 나라의 재정이 점점 곤궁해지고 변경의 일은 점점 위급해졌는데, 조정의 의논이 점점 어지러워져, 역시 마침내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 각주 001)
    洪承畴(1593~1665): 字는 彦演, 號는 亨九이고, 福建省 泉州府 사람이다. 明朝에서 參政, 巡撫, 陝西三邊總督 등을 역임하였지만, 松山에서의 패배 후에 淸에 투항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와 관련된 내용은 『崇禎實錄』 卷7 崇禎 7년 3월 丙午條 및 同 5월 辛卯條, 同 추7월 壬戌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3)
    河套部의 干兒罵가 寧河를 침범하다가 總兵 尤世祿에게 참살되었다는 내용은 본문에 崇禎 7년(1634) 이후의 일로 기록되어 있으나 『崇禎實錄』 卷2 崇禎 2년 동10월 戊寅條에 나와 있다. 이로 보아 崇禎 2년(1629)의 일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진기유(陳奇瑜), 마세용(馬世龍), 홍승주(洪承疇), 간아매(干兒罵), 우세록(尤世祿), 엄답, 삽한, 삽한
지명
하투부, 영하, 감주, 양주, 하투부, , , 대청,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하투부가 영하(寧夏) 등지를 침입하였으나 순무 진기유(陳奇瑜) 등이 격퇴 시켰으며, 명(明)이 망하기 전에 찰합이가 죽고 그의 부락은 대청에 귀부함 자료번호 : jo.k_0024_0327_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