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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적이 선부의 적수애(滴水崖) 등지를 침입하니 유한 등이 물리쳤고, 토묵특의 요동 침입은 해수의 범람으로 수몰되었다는 내용

  • 국가
    달단(韃靼)
[가정] 42년(1563) 봄에, 적이 선부적수애(滴水崖) 주 001
각주 001)
滴水崖: 河北省 承德縣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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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침입하자, 유한이 이를 물리쳤다. 적이 마침내 물러나 동쪽으로 향해 요(遼)의 새(塞)를 여러 차례 침범하였다. [그해] 가을에 총병 양조(楊照)가 패하여 죽었다. 당시 계요(薊遼)주 002
각주 002)
薊遼: 薊, 즉 薊州鎭과 遼, 즉 遼東鎭의 倂稱이며, 이들 鎭이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들의 邊鎭은 明代 長城 內外의 要地에 설치된 이른바 9邊鎭 중 要塞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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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總督)주 003
각주 003)
總督: 明淸 시대의 지방장관으로 巡撫와 함께 ‘督撫’라고 불렸다. 명 중기 正統 연간(1436~1449)에 지방의 巡察을 위해 중앙에서 지방에 임시로 파견한 武官으로 ‘提督’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명 말에 邊防이 중요시되고 지방이 혼란하면서 상설화되었다. 지방 행정장관인 布政使 등의 위에 있으면서 지방의 軍務行政을 總轄했다. 巡撫가 文官으로 주로 民政을 전담했던 것에 비해 總督은 주로 軍政을 전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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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이 3위(三衛)주 004
각주 004)
3衛: 朶顔·福餘·泰寧衛를 가리키는 것으로, 洪武帝가 설치하였다. 黑龍江 남쪽, 漁陽塞 북쪽인 兀良哈(Uriyangqai) 지역에 있어서 兀良哈 3衛라고도 한다. 이들은 초기에 洮兒河 유역에서 유목했지만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潢河를 넘어왔다. 喜峰口를 통해 明에 조공했고, 廣寧에서 명조와 互市했다(『明史』 卷328 「外國傳」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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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수장(首長) 통한(通罕)을 체포하여 구금하고 그의 여러 아들을 차례로 인질로 삼도록 했다. 통한신애의 빙부(聘父)로주 005
각주 005)
通罕이 엄답의 아들 辛愛의 聘父라는 내용은 『明史』 卷328 「外國傳」9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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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를 견제하려고 한 것인데, 삼위가 모두 원망하였다.주 006
각주 006)
이러한 이유로 엄답을 안내하여 順義와 三河에 침입하는 것을 도왔다(이와 관련된 내용은 『明史』 卷328 「外國傳」9, 『世宗實錄』 卷521, 嘉靖 42년 5월 戊寅朔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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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에 순의(順義)·삼하(三河)를 대거 약탈하였다. 제장(諸將) 조진(趙溱)·손빈(孫臏)이 전사하여, 경사가 계엄에 들어갔다. 대동 총병 강응웅(姜應熊)밀운(密雲)에서 그들을 막아 패배시켜 적이 물러갔다. 조서를 내려 양선을 주살(誅殺)하도록 하였다. 이듬해(1564)에 토만요동을 침입하였는데, 도어사 유수(劉燾)가 여러 장수들이 수비한 공적을 상주하여 아뢰기를, 해수(海水)가 범람하여 적의 기병이 대부분 수몰되었다고 하였다. 황제가 이르기를, “바다가 마치 신령을 드러낸 것 같다”고 하였다. 담당 관원에게 제사를 지내 알리도록 하고, 유수 등에게는 모두 상을 내렸다. [그해] 겨울에 적이 섬서를 침범하여, 판교(板橋)·향갑아(響閘兒) 등 여러 곳을 크게 약탈하였다.

  • 각주 001)
    滴水崖: 河北省 承德縣에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薊遼: 薊, 즉 薊州鎭과 遼, 즉 遼東鎭의 倂稱이며, 이들 鎭이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들의 邊鎭은 明代 長城 內外의 要地에 설치된 이른바 9邊鎭 중 要塞鎭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總督: 明淸 시대의 지방장관으로 巡撫와 함께 ‘督撫’라고 불렸다. 명 중기 正統 연간(1436~1449)에 지방의 巡察을 위해 중앙에서 지방에 임시로 파견한 武官으로 ‘提督’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명 말에 邊防이 중요시되고 지방이 혼란하면서 상설화되었다. 지방 행정장관인 布政使 등의 위에 있으면서 지방의 軍務行政을 總轄했다. 巡撫가 文官으로 주로 民政을 전담했던 것에 비해 總督은 주로 軍政을 전담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3衛: 朶顔·福餘·泰寧衛를 가리키는 것으로, 洪武帝가 설치하였다. 黑龍江 남쪽, 漁陽塞 북쪽인 兀良哈(Uriyangqai) 지역에 있어서 兀良哈 3衛라고도 한다. 이들은 초기에 洮兒河 유역에서 유목했지만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潢河를 넘어왔다. 喜峰口를 통해 明에 조공했고, 廣寧에서 명조와 互市했다(『明史』 卷328 「外國傳」9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5)
    通罕이 엄답의 아들 辛愛의 聘父라는 내용은 『明史』 卷328 「外國傳」9에도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이러한 이유로 엄답을 안내하여 順義와 三河에 침입하는 것을 도왔다(이와 관련된 내용은 『明史』 卷328 「外國傳」9, 『世宗實錄』 卷521, 嘉靖 42년 5월 戊寅朔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유한, 양조(楊照), 양선, 통한(通罕), 통한, 신애, 신애, 조진(趙溱), 손빈(孫臏), 강응웅(姜應熊), 양선, 유수(劉燾), 유수
지명
선부, 적수애(滴水崖), 요(遼), 삼위, 순의(順義), 삼하(三河), 밀운(密雲), 토만, 요동, 섬서, 판교(板橋), 향갑아(響閘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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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선부의 적수애(滴水崖) 등지를 침입하니 유한 등이 물리쳤고, 토묵특의 요동 침입은 해수의 범람으로 수몰되었다는 내용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