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영평(永平) 등지를 침범하니 수비 당천록(唐天祿) 등이 싸우다 죽었고, 토묵특(土默特) 또한 여러차례 요동을 침략한 내용
이듬해(1557)에 적은 2만 기병을 이끌고 대동 변경을 나누어 침략하여, 수비(守備) 당천록(唐天祿)·파총(把總) 왕연(汪淵)을 죽였다. 엄답의 동생 노파도(老把都)가 다시 무리 수만을 옹유(擁有)하여 하류구(河流口)에 들어와 영평(永平)
주 001과 천안(遷安)을 침범하였는데, 부총병 장승훈(蔣承勛)이 힘을 다해 싸우다 죽었다. [그해] 여름에 갑자기 선부의 마미량(馬尾梁)을 침범하여, 참장 기면(祁勉)이 전사하였다. [그해] 가을에 다시 대동우위(大同右衛) 경내에 침입하여 70여 보(堡)를 공격하여 무너뜨렸는데, 죽고 포로로 잡힌 자가 아주 많았다. [그해] 겨울 엄답의 아들 신애(辛愛)
주 002에게 도송채(桃松寨)라는 첩이 있는데, 부락의 두목 수령가(收令哥)와 사통(私通)하여 주살(誅殺)될까 두려워 투항해 왔다. 총독 양순(楊順)이 스스로 [이를] 뛰어난 공로(奇功)라고 과시하고, [도송채를] 조정으로 보냈다. 신애가 와서 [도송채를] 수색했으나 찾지 못하자, 대동의 여러 돈보(墩堡)를 마음대로 약탈하고, 여러 겹으로 [대동]우위를 포위하였다. 양순이 두려워하여, 이에 “적이 우리를 조전(趙全)·구부(丘富)와 바꾸기를 원한다”주 003고 거짓으로 말하였다. 병부상서 허론(許論)이 유리하다고 여겨 곧 도송채를 풀어주어 밤에 변경의 요새를 나가게 했는데, [도송채를] 속이고 서쪽으로 달려가 몰래 신애에게 알려주니, 신애가 그녀를 붙잡아 죽였다.주 004 적이 양순이 무능함을 알아채고 [대동]우위를 포위하여 더욱 위급해졌으며, 다시 군대를 나누어 선부·계진을 침범하였다. 서쪽 변강(邊疆)이 진동(震動)하여 [대동]우위의 봉화가 끊어진 것이 6개월이 되었다. 대학사(大學士) 엄숭(嚴嵩)
주 005이 허론과 의논하여 [대동]우위를 버리려고 하였다. 황제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여러 신하에게 조서를 내려 병사를 파견하고 군향(軍餉)을 조달하도록 하였으며, 병부시랑 강동(江東)에게 양순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당시 장수 상표(尙表)가 궤향(饋餉)을 가지고 포위된 성에 들어가서 힘을 다해 방어하였는데, 곡식이 떨어져 소와 말을 먹고, 가옥을 부수어 땔감으로 썼지만 병사들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상표가 때때로 출병(出兵)하여 돌진(突進)하여 싸웠는데, 엄답의 손자와 사위, 그 부장(部將) 각 1명을 붙잡았다.주 006 마침 황제가 시랑 강동과 순무 양선(楊選)·총병 장승훈 등을 파견하여 각각 군대를 잘 정돈하여 진격하니, 곧 포위가 풀렸다. 다시 영창(永昌)
주 007·양주(涼州) 및 선부
적성을 약탈하고, 감주(甘州)를 14일 포위했다가 비로소 물러갔다. 토만 또한 여러 차례 요동을 침략하였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색인어
- 이름
- 당천록(唐天祿), 왕연(汪淵), 엄답, 노파도(老把都), 장승훈(蔣承勛), 기면(祁勉), 엄답, 신애(辛愛), 도송채(桃松寨), 수령가(收令哥), 양순(楊順), 도송채, 신애, 도송채, 양순, 조전(趙全), 구부(丘富), 허론(許論), 도송채, 도송채, 신애, 신애, 양순, 엄숭(嚴嵩), 허론, 강동(江東), 양순, 상표(尙表), 상표, 엄답, 강동, 양선(楊選), 장승훈
- 지명
- 대동, 하류구(河流口), 영평(永平), 천안(遷安), 선부, 마미량(馬尾梁), 대동우위(大同右衛), 대동, [대동]우위, [대동]우위, 선부, 계진, [대동]우위, [대동]우위, 영창(永昌), 양주(涼州), 선부, 적성, 감주(甘州), 토만, 요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