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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암달과 소왕자가 대동·선부 적성 등지를 침략하니 지휘 왕공(王恭) 및 순무 조시춘(趙時春) 등이 막았으나 전사 또는 궤멸된 설명

  • 국가
    달단(韃靼)
[가정] 31년(1552) 봄에, 적 2천 기병이 대동을 침략하여,주 001
각주 001)
『殊域周咨錄』 卷22 「韃靼」 嘉靖 31년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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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왕공(王恭)평천돈(平川墩)에서 막았으나 전사하였다.주 002
각주 002)
俺答은 嘉靖 31년(1552) 정월과 2월에 연이어 대동에 침략하였다. 이에 관한 내용과 中軍 指揮 王恭이 전사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1년 춘정월 및 2월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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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에 동쪽으로 요동 변새(邊塞)를 침입하여 삼도구(三道溝)에서 백호 상록(常祿), 지휘 요대모(姚大謨)·유동(劉棟)·유계기(劉啓基) 등을 포위하여 4명이 모두 전사하였다. 비어지휘(備禦指揮) 왕상(王相)이 원조하러 가 사아산(寺兒山)에서 크게 싸워 사상자가 상당하였는데 적이 버리고 가버렸다. 천호 섭정서(葉廷瑞)가 100명을 이끌고 와서 왕상을 도왔다. 다음날 왕상은 다친 곳을 싸매고 다시 납려산(蠟黎山)에서 적을 만나 사투(死鬪)를 벌였는데, 화살이 바닥나 마침내 수하의 장령과 병사 300명과 함께 모두 죽었다.주 003
각주 003)
嘉靖 31년(1552) 여름 俺答의 遼東에 대한 침범은 모두 朶顔三衛의 引導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내용과 王相의 戰死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1년 하4월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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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서는 부상을 입어 죽다 살아났고, 적도 [군대를] 이끌고 물러갔다. 그해에 무릇 대동을 네 차례, 요양(遼陽) 주 004
각주 004)
遼陽: 지금의 南滿洲 遼寧省의 한 도시로, 明初에 遼東都指揮使司를 두어 南滿洲의 軍政을 맡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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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세 차례, 영하를 한 차례 침범하였다. 이듬해(1553) 봄에, 선부연수를 침범하였다. [그해] 여름에 감숙대동을 침범하였다.주 005
각주 005)
『殊域周咨錄』 卷22 「韃靼」 嘉靖 32년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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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守將)이 이를 막아 번번이 패퇴시켰다. [그해] 가을에 엄답이 다시 대거 침입하여 혼원(渾源)·영구(靈丘)·광창(廣昌)을 함락시키고 삽전욕(揷箭峪)·부도욕(浮圖峪) 등을 급습하였다. 고원(固原) 유격(遊擊) 진봉(陳鳳)·영하 유격 주옥(朱玉)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원조하여 크게 싸워 물리쳤다. 적은 군대를 나누어 동으로는 울주(蔚州)를 침범하고, 서로는 대주(代州)·번치(繁畤)를 약탈하였다. 이후 부(鄜)·연(延)에 20일간 주둔하면서 연경(延慶) 여러 성이 거의 전부 도살되고 약탈당하여, 이에 군영(軍營)을 중부(中部)로 옮겨 경(涇)·원(原) 지역을 엿보았는데 마침 비가 오래 내려 물러갔다. 당시 소왕자 또한 틈을 타 침략하여 선부 적성(赤城) 주 006
각주 006)
赤城: 지금의 河北省 赤城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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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침범하였다. 오래지 않아 엄답이 다시 1만 기병을 이끌고 대동을 침입하여 팔각보(八角堡)까지 멋대로 약탈하였다. 순무 조시춘(趙時春) 주 007
각주 007)
趙時春(1509~1567): 字는 景仁, 號는 浚穀으로 平涼 사람이다. 嘉靖 5년(1526)에 進士가 되어 庶吉士에 선발되었다. 兵部主事를 거쳐 翰林院 編修가 되었다가 御史로 발탁되어 山西巡撫가 되었다. 廣武에서 적을 만나 싸웠으나 패하였다. 당시 將帥들이 모두 적을 피하였는데, 비록 승전하지는 못했으나 천하가 그의 氣象은 높이 샀다. 論罪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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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를 막았는데, 대충령(大蟲嶺)에서 적을 만나 총병 이협(李淶)이 전사하고 군대는 궤멸되었으며, 조시춘 혼자 겨우 몸만 빠져 나왔다.

  • 각주 001)
    『殊域周咨錄』 卷22 「韃靼」 嘉靖 31년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2)
    俺答은 嘉靖 31년(1552) 정월과 2월에 연이어 대동에 침략하였다. 이에 관한 내용과 中軍 指揮 王恭이 전사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1년 춘정월 및 2월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3)
    嘉靖 31년(1552) 여름 俺答의 遼東에 대한 침범은 모두 朶顔三衛의 引導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내용과 王相의 戰死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1년 하4월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4)
    遼陽: 지금의 南滿洲 遼寧省의 한 도시로, 明初에 遼東都指揮使司를 두어 南滿洲의 軍政을 맡게 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殊域周咨錄』 卷22 「韃靼」 嘉靖 32년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6)
    赤城: 지금의 河北省 赤城縣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7)
    趙時春(1509~1567): 字는 景仁, 號는 浚穀으로 平涼 사람이다. 嘉靖 5년(1526)에 進士가 되어 庶吉士에 선발되었다. 兵部主事를 거쳐 翰林院 編修가 되었다가 御史로 발탁되어 山西巡撫가 되었다. 廣武에서 적을 만나 싸웠으나 패하였다. 당시 將帥들이 모두 적을 피하였는데, 비록 승전하지는 못했으나 천하가 그의 氣象은 높이 샀다. 論罪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왕공(王恭), 상록(常祿), 요대모(姚大謨), 유동(劉棟), 유계기(劉啓基), 왕상(王相), 섭정서(葉廷瑞), 왕상, 왕상, 섭정서, 엄답, 진봉(陳鳳), 주옥(朱玉), 소왕자, 엄답, 조시춘(趙時春), 이협(李淶), 조시춘
지명
대동, 평천돈(平川墩), 요동, 삼도구(三道溝), 사아산(寺兒山), 납려산(蠟黎山), 대동, 요양(遼陽), 영하, 선부, 연수, 감숙, 대동, 혼원(渾源), 영구(靈丘), 광창(廣昌), 삽전욕(揷箭峪), 부도욕(浮圖峪), 울주(蔚州), 대주(代州), 번치(繁畤), 부(鄜), 연(延), 연경(延慶), 경(涇), 원(原), 선부 적성(赤城), 대동, 팔각보(八角堡), 대충령(大蟲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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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달과 소왕자가 대동·선부 적성 등지를 침략하니 지휘 왕공(王恭) 및 순무 조시춘(趙時春) 등이 막았으나 전사 또는 궤멸된 설명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