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달(諳達)이 공물 바치기를 청하자 구란이 마시(馬市)를 열어 거래하기를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는데, 암달이 개시를 마치자 다시 침입하였다는 내용
바야흐로 엄답이 도성(都城) 가까이에 접근했을 때, 포로로 잡혀있던 마방(馬房) 내관(內官) 양증(楊增)을 풀어주고 [그에게] 서신을 가지고 도성에 들어가 공물 바치기를 청한다고 했다. 보신(輔臣) 서계(徐階)
주 001 등이 마땅히 계책을 가지고 그들을 귀순시켜야 한다고 말하니, 유지(諭旨)를 내려 변경 밖으로 물러가 주둔하도록 하였는데, 변신(邊臣)이 [이렇게 하도록] 청했기 때문이다. 엄답이 돌아와 아들 태태를 보내 귀순하겠다고 진언(陳言)하도록 했다. 당시 구란이 마침 일을 맡고 있었는데, 마시(馬市)주 002를 열어 적과 거래하기를 건의하였다. 병부낭중(兵部郞中) 양계성(楊繼盛)
주 003
각주 003)

이 상소하여 이에 대해 간쟁(諫爭)하였으나 제지할 수 없었다.주 004 이듬해(1551) 봄에 시랑(侍郞) 사도(史道)가 그 일을 맡아 백금(白金)주 005 10만 [량]을 주고 대동에서 개시(開市)주 006하고,주 007 차례로 연수·영하도 개시하였다. 반인(叛人) 소근(蕭芹)·여명진(呂明鎭)이라는 자가 예전에 죄를 짓고 도망가 적에게 들어갔는데, 백련사교(白蓮邪敎)주 008楊繼盛(1516~1555): 字는 仲芳, 號는 椒山으로, 直隸 容城 사람이다. 嘉靖 26년(1547)에 進士가 되어 南京 吏部 主事가 되었다. 兵部 員外郞 재직 시절에 俺答이 여러 차례 北部 邊境을 침입하였는데, 大將軍 仇鸞이 馬市를 열어 화의하자고 한 것에 대해 「請罷馬市疏」를 올렸다가 탄핵을 받아 狄道(지금의 甘肅 臨洮縣) 典史가 되었다. 가정 32년(1553)에 嚴嵩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처벌받고, 가정 34년(1555)에 엄숭이 閩浙 總督 張經, 浙江 巡撫 李天寵, 蘇松 副總兵 湯克寬 등 9인과 함께 處決하도록 하여 棄市되었다. 死後 12년이 지나 隆慶皇帝 시기에 ‘忠湣’이라는 諡號가 내려졌다.
각주 008)

를 끼고 그의 무리인 조전(趙全)·구부(丘富)·주원(周原)·교원(喬源) 등 여러 사람과 엄답을 인도(引導)하여 우환이 되었다. 엄답이 개시가 끝나자 바로 침입하여 약탈했다. 변방의 신하가 이를 질책하자, 소근 등은 그것을 구실로 삼았다. 소근은 거짓으로 법술(法術)이 있어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하였다. 적이 그것을 시험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마침내 소근과 여명진을 포박하였는데, 조전·구부 등은 끝내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주 009
엄답이 다시 우마(牛馬)를 속두(粟豆)로 바꾸어주기를 청하고 직역(職役)과 고칙(誥敕)주 010白蓮敎: 민간종교로 하늘과 땅이 개벽하고 다음 개벽까지의 시기를 나타내는 불교의 劫사상과 미륵사상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종교이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가 사망한 이후 한 겁이 지나고 새로운 겁이 시작되어 미륵불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종교에서는 현세에 내려온 미륵불은 피폐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을 개벽하고 새로운 이상향의 세상을 건설한다고 믿었다. 남송 초 고종 때에 茅子元(?~1166)을 교조로 하는 白蓮宗이 일어났는데 점차 呪術的 경향이 짙어졌다. 이 미륵신앙은 당시 생활난에 허덕이던 서민층에 쉽게 수용되었는데, 그들은 종교적 비밀결사까지 만들어 탄압하는 정부에 저항하였다.
각주 010)

을 구하였으며, 또 하서 여러 부락과 몰래 약속하여 내지를 침범하여 여러 변의 성 담장주 011을 허물었다.주 012 황제가 그를 미워하여 조서(詔書)를 내려 마시를 폐하고 사도를 소환하였다. 이로부터 적은 날마다 서쪽 변경을 침범해서 약탈하여, 변경 사람들은 매우 곤궁하였다.誥勅: 誥命 혹은 誥라고도 한다. 황제가 관원을 임명하거나 追贈하는 데 사용하는 문서를 통칭한다. 여기서는 王으로 임명한다는 사령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明代에 公·侯·伯을 追封할 경우 모두 1등급을 번갈아 승진시키는데, 3品 이상으로 정치의 업적이 대단히 뛰어나거나 死諫·死節·陣亡者에게는 모두 贈官하였다. 現任으로서 처음으로 散階를 除授받거나, 京官으로 一考(3년간의 평가)가 끝난 자 및 外官으로 一考가 끝난 자 중에서 으뜸인 자는 모두 본인에게 誥敕을 지급하였다. 7품 이상은 모두 그 선조를 推恩할 수 있었다. 5品 이상은 誥命을, 6品 이하는 敕命을 제수하였다. 살아있는 자에게 줄 때는 封이라 하고, 죽은 자에게 줄 때는 贈이라 한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楊繼盛(1516~1555): 字는 仲芳, 號는 椒山으로, 直隸 容城 사람이다. 嘉靖 26년(1547)에 進士가 되어 南京 吏部 主事가 되었다. 兵部 員外郞 재직 시절에 俺答이 여러 차례 北部 邊境을 침입하였는데, 大將軍 仇鸞이 馬市를 열어 화의하자고 한 것에 대해 「請罷馬市疏」를 올렸다가 탄핵을 받아 狄道(지금의 甘肅 臨洮縣) 典史가 되었다. 가정 32년(1553)에 嚴嵩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처벌받고, 가정 34년(1555)에 엄숭이 閩浙 總督 張經, 浙江 巡撫 李天寵, 蘇松 副總兵 湯克寬 등 9인과 함께 處決하도록 하여 棄市되었다. 死後 12년이 지나 隆慶皇帝 시기에 ‘忠湣’이라는 諡號가 내려졌다.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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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8)
白蓮敎: 민간종교로 하늘과 땅이 개벽하고 다음 개벽까지의 시기를 나타내는 불교의 劫사상과 미륵사상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종교이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가 사망한 이후 한 겁이 지나고 새로운 겁이 시작되어 미륵불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종교에서는 현세에 내려온 미륵불은 피폐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을 개벽하고 새로운 이상향의 세상을 건설한다고 믿었다. 남송 초 고종 때에 茅子元(?~1166)을 교조로 하는 白蓮宗이 일어났는데 점차 呪術的 경향이 짙어졌다. 이 미륵신앙은 당시 생활난에 허덕이던 서민층에 쉽게 수용되었는데, 그들은 종교적 비밀결사까지 만들어 탄압하는 정부에 저항하였다.
-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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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0)
誥勅: 誥命 혹은 誥라고도 한다. 황제가 관원을 임명하거나 追贈하는 데 사용하는 문서를 통칭한다. 여기서는 王으로 임명한다는 사령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明代에 公·侯·伯을 追封할 경우 모두 1등급을 번갈아 승진시키는데, 3品 이상으로 정치의 업적이 대단히 뛰어나거나 死諫·死節·陣亡者에게는 모두 贈官하였다. 現任으로서 처음으로 散階를 除授받거나, 京官으로 一考(3년간의 평가)가 끝난 자 및 外官으로 一考가 끝난 자 중에서 으뜸인 자는 모두 본인에게 誥敕을 지급하였다. 7품 이상은 모두 그 선조를 推恩할 수 있었다. 5品 이상은 誥命을, 6品 이하는 敕命을 제수하였다. 살아있는 자에게 줄 때는 封이라 하고, 죽은 자에게 줄 때는 贈이라 한다.
- 각주 011)
- 각주 012)
색인어
- 이름
- 엄답, 양증(楊增), 서계(徐階), 엄답, 태태, 구란, 양계성(楊繼盛), 사도(史道), 소근(蕭芹), 여명진(呂明鎭), 조전(趙全), 구부(丘富), 주원(周原), 교원(喬源), 엄답, 엄답, 소근, 소근, 소근, 여명진, 조전, 구부, 엄답, 사도
- 지명
- 연수, 영하, 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