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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달(諳達)이 공물 바치기를 청하자 구란이 마시(馬市)를 열어 거래하기를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는데, 암달이 개시를 마치자 다시 침입하였다는 내용

  • 국가
    달단(韃靼)
바야흐로 엄답이 도성(都城) 가까이에 접근했을 때, 포로로 잡혀있던 마방(馬房) 내관(內官) 양증(楊增)을 풀어주고 [그에게] 서신을 가지고 도성에 들어가 공물 바치기를 청한다고 했다. 보신(輔臣) 서계(徐階) 주 001
각주 001)
徐階(1503~1583): 字 子升, 號 少湖로 松江府 華亭縣 사람이다. 嘉靖 2년(1523)에 探花로 及第하여 翰林院 編修가 되었다. 延平府 推官으로 도적을 체포하고 쌓인 안건을 처리하여 黃州 同知로 진급하였다. 후에 浙江 按察僉事, 江西 按察副使, 國子監 祭酒, 禮部尙書, 文淵閣 大學士 등을 역임했다. 鹹寧侯 仇鸞의 罪行을 密疏하여 嘉靖帝의 信任을 얻었다. 10여 년 동안 조정에서 嚴嵩과 함께 하면서 謹愼하고 황제의 뜻에 영합하기를 잘해 오랫동안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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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마땅히 계책을 가지고 그들을 귀순시켜야 한다고 말하니, 유지(諭旨)를 내려 변경 밖으로 물러가 주둔하도록 하였는데, 변신(邊臣)이 [이렇게 하도록] 청했기 때문이다. 엄답이 돌아와 아들 태태를 보내 귀순하겠다고 진언(陳言)하도록 했다. 당시 구란이 마침 일을 맡고 있었는데, 마시(馬市)주 002
각주 002)
馬市: 중국이 필요한 말을 얻기 위해 女直, 韃靼 등 滿洲族 및 蒙古族과 행한 互市場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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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열어 적과 거래하기를 건의하였다. 병부낭중(兵部郞中) 양계성(楊繼盛) 주 003
각주 003)
楊繼盛(1516~1555): 字는 仲芳, 號는 椒山으로, 直隸 容城 사람이다. 嘉靖 26년(1547)에 進士가 되어 南京 吏部 主事가 되었다. 兵部 員外郞 재직 시절에 俺答이 여러 차례 北部 邊境을 침입하였는데, 大將軍 仇鸞이 馬市를 열어 화의하자고 한 것에 대해 「請罷馬市疏」를 올렸다가 탄핵을 받아 狄道(지금의 甘肅 臨洮縣) 典史가 되었다. 가정 32년(1553)에 嚴嵩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처벌받고, 가정 34년(1555)에 엄숭이 閩浙 總督 張經, 浙江 巡撫 李天寵, 蘇松 副總兵 湯克寬 등 9인과 함께 處決하도록 하여 棄市되었다. 死後 12년이 지나 隆慶皇帝 시기에 ‘忠湣’이라는 諡號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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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소하여 이에 대해 간쟁(諫爭)하였으나 제지할 수 없었다.주 004
각주 004)
俺答이 互市를 청하자 이에 대해 仇鸞을 비롯한 群臣들의 논의 및 황제의 制可와 兵部 員外郞 楊繼盛의 반대 上疏에 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춘3월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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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1551) 봄에 시랑(侍郞) 사도(史道)가 그 일을 맡아 백금(白金)주 005
각주 005)
白金: 銀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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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량]을 주고 대동에서 개시(開市)주 006
각주 006)
開市: 변경의 소수민족 지역에서 시장을 설치하여 通商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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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주 007
각주 007)
嘉靖 30년(1551) 하4월에 宣府와 大同에서 馬市가 열렸고, 史道가 이를 주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하4월條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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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로 연수·영하도 개시하였다. 반인(叛人) 소근(蕭芹)·여명진(呂明鎭)이라는 자가 예전에 죄를 짓고 도망가 적에게 들어갔는데, 백련사교(白蓮邪敎)주 008
각주 008)
白蓮敎: 민간종교로 하늘과 땅이 개벽하고 다음 개벽까지의 시기를 나타내는 불교의 劫사상과 미륵사상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종교이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가 사망한 이후 한 겁이 지나고 새로운 겁이 시작되어 미륵불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종교에서는 현세에 내려온 미륵불은 피폐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을 개벽하고 새로운 이상향의 세상을 건설한다고 믿었다. 남송 초 고종 때에 茅子元(?~1166)을 교조로 하는 白蓮宗이 일어났는데 점차 呪術的 경향이 짙어졌다. 이 미륵신앙은 당시 생활난에 허덕이던 서민층에 쉽게 수용되었는데, 그들은 종교적 비밀결사까지 만들어 탄압하는 정부에 저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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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끼고 그의 무리인 조전(趙全)·구부(丘富)·주원(周原)·교원(喬源) 등 여러 사람과 엄답을 인도(引導)하여 우환이 되었다. 엄답이 개시가 끝나자 바로 침입하여 약탈했다. 변방의 신하가 이를 질책하자, 소근 등은 그것을 구실로 삼았다. 소근은 거짓으로 법술(法術)이 있어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하였다. 적이 그것을 시험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마침내 소근여명진을 포박하였는데, 조전·구부 등은 끝내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주 009
각주 009)
蕭芹·張攀隆·王得道·丘富·喬源 등 60여 명이 俺答에게 투항하여 이들이 행한 여러 가지 행위는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추7월條에 보이는데, 俺答은 蕭芹 등 叛人을 명조에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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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답이 다시 우마(牛馬)를 속두(粟豆)로 바꾸어주기를 청하고 직역(職役)과 고칙(誥敕)주 010
각주 010)
誥勅: 誥命 혹은 誥라고도 한다. 황제가 관원을 임명하거나 追贈하는 데 사용하는 문서를 통칭한다. 여기서는 王으로 임명한다는 사령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明代에 公·侯·伯을 追封할 경우 모두 1등급을 번갈아 승진시키는데, 3品 이상으로 정치의 업적이 대단히 뛰어나거나 死諫·死節·陣亡者에게는 모두 贈官하였다. 現任으로서 처음으로 散階를 除授받거나, 京官으로 一考(3년간의 평가)가 끝난 자 및 外官으로 一考가 끝난 자 중에서 으뜸인 자는 모두 본인에게 誥敕을 지급하였다. 7품 이상은 모두 그 선조를 推恩할 수 있었다. 5品 이상은 誥命을, 6品 이하는 敕命을 제수하였다. 살아있는 자에게 줄 때는 封이라 하고, 죽은 자에게 줄 때는 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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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구하였으며, 또 하서 여러 부락과 몰래 약속하여 내지를 침범하여 여러 변의 성 담장주 011
각주 011)
韃靼, 女直 등 外夷의 침입에 대비하여 正統 2년(1437) 이래 遼東에 축조한 邊牆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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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허물었다.주 012
각주 012)
이와 관련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12월條에도 보이는데, 당시 엄답은 遼東에서도 시장을 열어줄 것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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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그를 미워하여 조서(詔書)를 내려 마시를 폐하고 사도를 소환하였다. 이로부터 적은 날마다 서쪽 변경을 침범해서 약탈하여, 변경 사람들은 매우 곤궁하였다.

  • 각주 001)
    徐階(1503~1583): 字 子升, 號 少湖로 松江府 華亭縣 사람이다. 嘉靖 2년(1523)에 探花로 及第하여 翰林院 編修가 되었다. 延平府 推官으로 도적을 체포하고 쌓인 안건을 처리하여 黃州 同知로 진급하였다. 후에 浙江 按察僉事, 江西 按察副使, 國子監 祭酒, 禮部尙書, 文淵閣 大學士 등을 역임했다. 鹹寧侯 仇鸞의 罪行을 密疏하여 嘉靖帝의 信任을 얻었다. 10여 년 동안 조정에서 嚴嵩과 함께 하면서 謹愼하고 황제의 뜻에 영합하기를 잘해 오랫동안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馬市: 중국이 필요한 말을 얻기 위해 女直, 韃靼 등 滿洲族 및 蒙古族과 행한 互市場을 일컫는다. 바로가기
  • 각주 003)
    楊繼盛(1516~1555): 字는 仲芳, 號는 椒山으로, 直隸 容城 사람이다. 嘉靖 26년(1547)에 進士가 되어 南京 吏部 主事가 되었다. 兵部 員外郞 재직 시절에 俺答이 여러 차례 北部 邊境을 침입하였는데, 大將軍 仇鸞이 馬市를 열어 화의하자고 한 것에 대해 「請罷馬市疏」를 올렸다가 탄핵을 받아 狄道(지금의 甘肅 臨洮縣) 典史가 되었다. 가정 32년(1553)에 嚴嵩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처벌받고, 가정 34년(1555)에 엄숭이 閩浙 總督 張經, 浙江 巡撫 李天寵, 蘇松 副總兵 湯克寬 등 9인과 함께 處決하도록 하여 棄市되었다. 死後 12년이 지나 隆慶皇帝 시기에 ‘忠湣’이라는 諡號가 내려졌다. 바로가기
  • 각주 004)
    俺答이 互市를 청하자 이에 대해 仇鸞을 비롯한 群臣들의 논의 및 황제의 制可와 兵部 員外郞 楊繼盛의 반대 上疏에 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춘3월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5)
    白金: 銀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6)
    開市: 변경의 소수민족 지역에서 시장을 설치하여 通商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7)
    嘉靖 30년(1551) 하4월에 宣府와 大同에서 馬市가 열렸고, 史道가 이를 주관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하4월條에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8)
    白蓮敎: 민간종교로 하늘과 땅이 개벽하고 다음 개벽까지의 시기를 나타내는 불교의 劫사상과 미륵사상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종교이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가 사망한 이후 한 겁이 지나고 새로운 겁이 시작되어 미륵불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종교에서는 현세에 내려온 미륵불은 피폐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을 개벽하고 새로운 이상향의 세상을 건설한다고 믿었다. 남송 초 고종 때에 茅子元(?~1166)을 교조로 하는 白蓮宗이 일어났는데 점차 呪術的 경향이 짙어졌다. 이 미륵신앙은 당시 생활난에 허덕이던 서민층에 쉽게 수용되었는데, 그들은 종교적 비밀결사까지 만들어 탄압하는 정부에 저항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9)
    蕭芹·張攀隆·王得道·丘富·喬源 등 60여 명이 俺答에게 투항하여 이들이 행한 여러 가지 행위는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추7월條에 보이는데, 俺答은 蕭芹 등 叛人을 명조에 바쳤다. 바로가기
  • 각주 010)
    誥勅: 誥命 혹은 誥라고도 한다. 황제가 관원을 임명하거나 追贈하는 데 사용하는 문서를 통칭한다. 여기서는 王으로 임명한다는 사령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明代에 公·侯·伯을 追封할 경우 모두 1등급을 번갈아 승진시키는데, 3品 이상으로 정치의 업적이 대단히 뛰어나거나 死諫·死節·陣亡者에게는 모두 贈官하였다. 現任으로서 처음으로 散階를 除授받거나, 京官으로 一考(3년간의 평가)가 끝난 자 및 外官으로 一考가 끝난 자 중에서 으뜸인 자는 모두 본인에게 誥敕을 지급하였다. 7품 이상은 모두 그 선조를 推恩할 수 있었다. 5品 이상은 誥命을, 6品 이하는 敕命을 제수하였다. 살아있는 자에게 줄 때는 封이라 하고, 죽은 자에게 줄 때는 贈이라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11)
    韃靼, 女直 등 外夷의 침입에 대비하여 正統 2년(1437) 이래 遼東에 축조한 邊牆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12)
    이와 관련된 내용은 『明史紀事本末』 卷60 「俺答封貢」 嘉靖 30년 12월條에도 보이는데, 당시 엄답은 遼東에서도 시장을 열어줄 것을 청하였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엄답, 양증(楊增), 서계(徐階), 엄답, 태태, 구란, 양계성(楊繼盛), 사도(史道), 소근(蕭芹), 여명진(呂明鎭), 조전(趙全), 구부(丘富), 주원(周原), 교원(喬源), 엄답, 엄답, 소근, 소근, 소근, 여명진, 조전, 구부, 엄답, 사도
지명
연수, 영하, 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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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달(諳達)이 공물 바치기를 청하자 구란이 마시(馬市)를 열어 거래하기를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는데, 암달이 개시를 마치자 다시 침입하였다는 내용 자료번호 : jo.k_0024_0327_0670